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00화 (200/650)

200화 수수료율이 다른 것과 다르다

한진영과 투자전략사업부가 기풍증권을 나간다는 것이 공식화되자마자 한진영은 자기와 거래를 진행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갔다.

“이 사람아. 그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부터 찾아왔어야지. 어떤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일해볼 생각은 없나?”

LZ그룹의 조병수 회장은 한진영을 향해 은근한 제안을 건넸다.

“이것저것 복잡하지 않게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줄 테니 자네들은 그냥 몸만 오면 되네. 독립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자율권도 보장하겠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조용재 상무는 놀란 얼굴로 한진영과 조병수 회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제안을 건넬 줄 몰랐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저는 좀 더 자유롭게 돈을 운용하고 싶어 기풍증권을 나오는 것입니다. 회장님의 제안은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워.”

조병수는 거절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대한정유의 윤길영 회장의 제안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무제한적인 지원을 약속하겠네. 그렇지 않아도 유보금이 많아 골치가 아파지고 있었는데 잘됐어. 자네만 원한다면 대한정유에 쌓여 있는 유보금을 상한액 없이 쓸 수 있도록 해주겠네.”

“회장님.”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방우열 미래전략실 실장이자 부회장이 크게 놀라 윤길영 회장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윤길영 회장은 방우열을 향해 손을 들어 더는 제지하지 말라는 뜻을 전한 후 계속 이야기했다.

“또한 어떤 간섭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 돈을 가지고 쌈을 싸먹든 아니면 똥을 닦든지 뭐든 자네 마음대로 해도 되네. 걸리지만 않는다면 횡령도 문제 될 건 없어.”

“회장님.”

“알았어. 농담이네. 방 실장은 뭐가 그렇게 걱정이라 그러는 건가? 설마 우리 한진영이 횡령 같은 걸 할만한 사람처럼 보이던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벌써부터 우리라고 부르는 윤길영 회장은 한진영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지난 만남 때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며 한진영을 향해 호감을 쌓으려 하는 행동 같았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한진영을 흔들지는 못했다.

“죄송합니다. 윤 회장님의 제안은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윤길영을 향해 완곡한 거절을 한 한진영은 다음에 회사가 세워지면 다시 찾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윤길영은 그런 한진영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쉬워.”

“그렇게 탐이 나셨습니까?”

“탐이 나다 뿐인가?”

방우열을 슬쩍 돌아본 윤길영은 낮은 탄식과 함께 아쉬움이 짙은 말을 꺼냈다.

“딸을 너무 일찍 결혼시켰어. 아니었으면 저 녀석에게 붙였을 텐데 말이야.”

방우열은 이미 시집간 자식까지 아까워하는 윤길영을 보고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 정도입니까? 사위로 들이고 싶으실 정도로요?”

“말해 무엇하나? 나한테 딸이 하나 더 없는 게 아쉬울 뿐인데…… 하긴 생각해보면 나한테 딸이 있었어도 묶어두지 못했을지도 몰라. 기풍에 그 대단한 딸내미가 있는데도 저 녀석을 묶어두지 못한 것을 보니 말이야.”

“보통은 딸을 아까워하지 않습니까? 특히 아버지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하하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딸과 평범한 사윗감에나 해당하는 말이지. 저 녀석은…… 특별해. 가족으로 묶어 옆에 앉혀 놓을 만한 존재야.”

말을 하면 할수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인지 윤길영은 팔걸이를 쓰다듬는 손에서까지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방우열은 그런 윤길영의 모습을 보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돌아보게 됐다.

윤길영에게 이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저 녀석은 생각을 바꿀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그다음을 준비해야겠어.”

“그다음이요?”

“저 녀석이 나간 뒤 말이야. 저 녀석이 나가면 저 녀석에게만 기회가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진영에게만 기회가 되는 건 아니라니요?”

윤길영은 슬쩍 한진영이 나간 문을 흘겨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된다는 말이네.”

방우열은 윤길영의 눈에서 마치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을 때와 같은 눈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진영이 대한정유에서 나와 선강그룹을 찾아갔을 때는 하이식스 인수 건에 관해 최대일 회장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일을 주관할 한진영이 독립하니 일이 어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기풍증권이 회사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기풍증권을 떠나더라도 관계를 아주 끊는 것은 아니니 자기가 수시로 살피겠다는 말을 더하기까지 했다.

한진영은 마지막으로 강선건설을 찾아갔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그런 건 문제 될 것 없어. 그렇지 않습니까?”

천정모가 먼저 대답을 하고 천계산을 바라봤다.

천계산은 그런 천정모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정모 말대로 괜찮다. 어차피 그 집은 자네에게 준 것이니 그 집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야. 그리고 팔아먹은 것도 아니지 않나? 사람이 살다 보면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

한진영은 새롭게 세우는 회사의 초기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천계산이 선물로 준 집을 담보로 돈을 구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선물한 천계산에게 알린 것이었다.

천계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진영의 말을 받아들이고는 오히려 다른 제안을 한진영에게 건넸다.

“혹시 돈이 모자라면 말하게. 내가 지원해 줄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진 돈에 선물로 주신 집을 담보로 하여 마련한 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진영의 거절에 천계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자네 사업부가 전체 다 자네를 따라나간다고 들었는데 아니던가?”

“맞습니다.”

“사업부 직원이 몇 명인데?”

“저를 포함하여 70여 명쯤 됩니다.”

“많기도 하군. 그런데…… 70여 명이 나오는데도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자네가 모아놓았다는 돈이 그렇게 많아? 집을 담보로 잡았다고 해 봤자 뻔한 수준일 텐데…… 사무실도 작은 데로 얻어서는 안 될 테고, 사무실 집기부터 시작해서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지 않나? 게다가 결정적으로 자네가 하려는 것은 자산운용사 아니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초기자본이 필요할 텐데? 일이억으로 굴려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 않나?”

천계산의 냉철한 분석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초기자본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련한 돈으로 운영비만 충당하고 회사 설립 후 바로 펀드를 설계하여 판매할 계획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천정모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운영비로도 턱없이 부족한 돈일 것 같은데? 처음 시작부터 7명이 아니라 70명을 데리고 일을 할 거라며? 그럼 회사가 자리 잡을 건물 임대료 또한 한두 푼이 아닐 텐데? 직원들 월급도 한 명당 300씩만 잡아도 2억이야. 거기에 이것저것 부대비용까지 들어간다면…… 몇 달이나 버티겠나? 설마 펀드 판매 비용을 회사 운영하는 곳으로 돌릴 생각은 아니겠지? 그랬다가는 회사 간판의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잡혀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천계산은 오랜만에 천정모가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천정모의 말에 더하여 물었다.

“규모를 작게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시작한다는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본 적이 없어. 나도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때는 경리 아가씨 하나하고 현장에 나갈 직원 하나 그리고 나까지 셋으로 시작했어. 그런데 자네는 지원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하려고 하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는 거야. 설마 이런 것은 계산해 보고 하려고 하는 거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회사 설립부터 운영까지 웬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한진영도 천계산만큼이나 맨바닥에서 시작하여 운용하는 금액이 8천억에 이르는 어엿한 자산운용사로까지 회사를 키운 사람이었다.

그도 70여 명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하는데 20억 정도의 돈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정모의 걱정대로 펀드 판매 금액을 회사 운용비로 돌려 사용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괜한 분란의 싹은 잘라내고 시작해야지.’

투자를 받고 지분을 나누어 시작하게 되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을 겪을 게 분명했다.

회사 경영권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일 수도 있으며, 지분이 희석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괜한 간섭이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진영은 회사와 관련되어 그런 분란을 다시 한번 겪고 싶지 않았다.

‘한번 겪은 것만으로 충분해.’

한진영은 온전히 모든 것을 손에 쥔 채로 시작하려 했고, 천계산과 천정모의 걱정과 달리 적은 돈으로 시작하더라도 괜찮을 만한 자신도 있었다.

천계산은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진영의 얼굴에서 자신감을 발견했다.

“생각해둔 게 있나 보구나.”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네. 70명이 아니라 700명을 데리고 시작하더라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만한 자신이 있습니다.”

“아마 투자를 이야기했던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도 여럿이 있었을 거야. 그렇지?”

“네. 그것도 맞습니다.”

천계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돈만 안 받은 것은 아닐 테고 다른 사람들의 제안도 다 거절했겠지?”

한진영은 말없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계산은 그런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고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천정모에게 지시했다.

“네 이름으로 한진영 부문장이 세우려는 회사에 투자해라.”

천정모는 천계산의 말에 한진영을 슬쩍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아버지.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에게 투자하라니요? 저 친구가 받아들일까요?”

“내가 말했던 투자는 지분이 오가는 투자를 이야기한 것이고…… 너에게 하라는 것은 새롭게 만든다는 펀드에 가입하라는 뜻이다.”

“펀드에 가입하라고요? 그걸 뭐 하러 가입합니까? 돈은 이미 충분히…….”

천정모의 말에 천계산이 창피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천정모는 그런 천계산의 표정에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천계산은 천정모를 향해 짧은 한숨을 내쉰 뒤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한도가 있나?”

“한도를 물어보시는 것을 보니 한도를 모두 채워서 들어오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있다면 그럴 생각이었지.”

천계산의 말에 한진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좋아.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돈 중에 우선 100억만 집어넣어라.”

천계산의 말에 천정모가 화들짝 놀랐다.

“아버지. 100억이라니요? 제가 무슨 돈이 있다고 100억이나 집어넣으라는 말씀이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네 이름을 준 지분 가치만 해도 1,000억을 훌쩍 넘는데 100억이 없다니 지금 누구 앞에서 죽는소리야?”

“아버지. 그건 주식 아닙니까? 묶여 있는 돈이지 않습니까? 땅도 그렇고요.”

천정모는 천계산이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 부동산 이야기를 꺼낼까 무서워 먼저 선수를 쳤다.

천계산은 그런 천정모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팔아서 들어가든 아니면 어디서 빌려서 들어가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지시한 건 100억을 집어넣으라는 거니까 네가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집어넣어.”

천정모의 변명을 듣기 싫다는 듯이 천계산은 뭐라 말하려는 천정모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언제까지 넣으면 되지?”

“회장님. 조건을 들어보셔야지요. 조건이 다른 펀드들과 다릅니다. 그러니 조건을 들어보고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조건? 상관이 없는데…… 뭐 좋아. 자네가 들어보라고 이야기하니 들어봐야겠지. 말해보게. 그 조건이란 걸 말이야.”

조건 이야기가 나오자 천계산을 향해 다시 한번 죽는소리를 하려던 천정모도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100억을 집어넣겠다는데도 감사하다는 말보다 조건을 들어보라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조건을 설명했다.

“제가 이번에 회사를 차리며 출시할 펀드는 다른 것들과 거의 흡사합니다.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도도 비슷하고요. 다만 가장 중요한 게 다릅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던 한진영은 천천히 천계산을 향해 다른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수수료율이 좀 높습니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야기 들어보니 자네 쪽 펀드들 수수료율이 높기는 하던데…… 내가 그 수수료율을 몰라서 이야기해주려고 나에게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높다고 이야기하는 건가?”

“아마 들어보신 수수료율은 20%였을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수수료율을 이야기하는 곳은 없지요.”

“괜찮아. 수익의 20% 아니던가? 그리고 그 수수료율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나?”

“다행스럽게도 모두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으셔서 그런지 수익의 20%라는 좀 의아하게 느껴지실 만한 수수료율도 만족해하시고 있으시죠.”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런데…….”

천계산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에 잠시 하려던 말을 멈추고 한진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그것 이상으로 이상한 수수료율이라는 말인가?”

“이상하다기보다는 그것보다 조금 더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할 생각입니다.”

“뭐? 얼마나 높은데?”

이야기를 듣던 천정모가 끼어들었다.

수익의 20%라는 수수료율도 터무니없는데 그보다 더 높다는 말에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놀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천정모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30%. 수익의 30%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운용비로 입금액의 1%를 수수료로 책정할 생각입니다. 매달 1%로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천정모는 들고 있던 찻잔을 떨굴 뻔했다.

입에서 미쳤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높은 수수료율에 천정모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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