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72화 (72/313)

“미유키.”

“.....”

“미유키.”

“.....”

바로 뒤에서 불렀음에도 대답이 없는 미유키.

비틀비틀 걷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녀를 건드릴까 고민하던 나는,

“하나자와.”

오래 전에 불렀던 그녀의 성을 말했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미유키가 자신의 고개를 확 돌렸던 것이다.

“.... 뭐야? 왜...?”

간만에 성으로 부른 게 제대로 먹혀들었나보다. 자신이 뭘 잘못했나 생각해보려는 듯 눈을 데구르르 굴리는 것을 보면.

미유키를 향해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했다.

“탈의실 지나갔다고.”

나는 엄지를 어깨 뒤로 뻗어 탈의실을 가리켰다.

몸을 옆으로 빼고는 그곳을 바라본 미유키가 자신의 옆머리를 긁었다.

“진짜네...”

“애가 왜 이렇게 퍼졌냐? 그렇게 힘들었어?”

“그게... 힘든 게 아니구, 다른 생각을 조금 하느라...”

“무슨 생각?”

“나, 나중에 알려줄게...”

“그래라.”

우물쭈물하며 내 반응을 살펴보던 미유키가 화제를 돌렸다.

“이번 주에 자리 바꾼다던데... 들었어?”

“아침에 미우라가 말해주던데. 추첨이야?”

“그냥 바꾼다고 말만 들었지, 어떤 식으로 할 거라는 얘기는 못 들었어. 보통은 다 추첨이니까... 똑같지 않을까?”

“반장 특권 같은 건 못 쓰나?”

“그게 무슨 소리야?”

“교수님한테 강력하게 주장해봐. 핑계거리는 많잖아. 문제아인 내가 바뀌고 있는데, 직접 옆에서 도와주겠다든가...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안 돼... 내가 개입하면 부정행위가 된단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혹하는 표정이다.

미유키에게 한 발자국 성큼 걸어간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같이 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유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 나도 마찬가지야...”

“너 진짜 괜찮냐? 체육시간인데 버틸 수 있겠어?”

“틈틈이 자둬서 괜찮아... 근데 앞으로는...”

미유키가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예상이 간다.

“평일엔 자제하도록 노력해보자.”

“응...”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뭐래애...!”

애정이 담겨있는 손으로 내 어깨를 툭 미는 미유키.

못 말리겠다는 듯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곧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

“히야아아압! 머리잇! 손모옥! 허리잇!”

검도부 뒤에 있는 동산.

허공에 여러 공격을 시연하며 꽥꽥거린 치나미가 날 돌아보았다.

“단전에서 모은 힘을 내뱉으며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몸에 힘을 불어넣으며 의지와 의욕을 보여주는 것이 기검체의 기에요. 그렇게 몸에 두른 기를 바탕으로 공격을 해야, 비로소 진정한 한판이 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죽도를 든 손을 허리춤으로 올리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무겁진 않으려나 모르겠다.

버리를 벅벅 긁은 내가 물었다.

“굳이 소리를 질러야하나요?”

“그냥 소리가 아니라 기합이에요. 이것이 호방하면 호방할수록,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에 비례해 공격이 빨라져요. 흐어어어... 머리이이이...”

갑작스레 늘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온몸을 흐느적거리는 치나미.

내 입이 살짝 벌어지는 것을 본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합을 내뱉으면 과연 칼이 빠르게 나갈까요?”

“아니 뭐...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

“기합의 중요성은 그뿐만이 아니에요. 의지를 가진 기합은 잡념을 떨쳐낼 수 있어요. 상대방의 기를 눌러 위축시키는 효과도 있죠.”

“그냥 짧게 호흡만 하면 안 되나요?”

“그때 제게 처음 보여주셨던 머리치기나, 렌카의 허리를 공격했을 때 흡!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셨던 것처럼요?”

“예... 뭐 그런 식으로...”

“그래도 괜찮지만, 그것보다 더욱 날카롭고 우렁차게 뱉어내면 더 좋겠어요. 자, 따라해 볼까요? 합!”

주먹을 불끈 쥐며 짧은 고함을 지르는데, 귀엽다.

“나중에 혼자 집에서 연습할게요.”

“왜요? 혹시 다른 사람의 앞에서 기합을 넣기 창피한 건가요? 음음...! 그럴 수 있어요. 많은 초보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하는데, 그 누구도 비웃지 않고, 저 또한 마찬가지이니 해보세요. 처음엔 조금 어색하겠지만 하다보면 적응이 될 거예요.”

“그게 아니라... 오늘은 몸이 조금 찌뿌둥하네요.”

“앗, 그래요...? 그러면 제가 마사지를 해드릴까요?”

저번에 내가 했던 것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그녀.

나는 냅다 벤치에 엎드려 눕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치나미가 당혹스러워하더니 물었다.

“무, 뭐하시는 건가요...?”

“마사지해준다면서요.”

“.... 네...? 그야...”

“설마 장난이라고 하려던 건 아니겠죠?”

“그게...”

“처음으로 스승님이 마사지를 해준다고 해서 기뻤는데... 만약 장난이었다면 이 제자, 정말 실망할 것 같습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자, 치나미가 흠흠 하는 헛기침을 했다.

“하,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 마사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데?”

“사실 제가 마사지를 할 줄 몰라서...”

“몰라서?”

“그래서... 다음에...”

“다음에?”

“왜 그러세요... 무서워요...”

“무서워?”

“후, 후배님... 오늘 이상해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는 치나미.

장난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쫙 편 내가 말했다.

“농담이었습니다. 마사지는 다음에 꼭 해주세요.”

“아, 네... 죄송해요...”

“아이스크림은 언제 먹으러 갈까요?”

“네? 그건 후배님이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스승님한테 편한 요일이랑 시간대가 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다 괜찮아요. 평일도 좋고, 주말도 좋... 흐이잇!?”

말끝을 흐린 치나미의 입에서 그녀 특유의 특이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내 손이 돌연 그녀의 머리 위로 향하자 놀란 것이다.

몸을 움츠리기까지 하며 굉장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그녀의 머리에 떨어진 나뭇잎.

그것을 잡은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방금 나뭇잎이 떨어져서 떼어주려고 그런 겁니다.”

그 말에 치나미가 한쪽 눈을 떴다.

자신의 코앞에 있는, 슬슬 색이 변해가는 나뭇잎을 본 그녀가 무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그랬군요... 갑자기 그러셔서 깜짝 놀랐지 뭐에요...”

“느낌 안 났어요?”

“네... 전혀요...”

“언제나 둔감하네요. 잘 어울려요.”

“고맙습... 네? 잘 어울린다니요?”

“스승님의 이미지랑 딱 알맞다고요. 귀여워요.”

“네에에...?”

안 그래도 큰 치나미의 눈이 더더욱 커진다.

거의 사백안이 될 정도인데...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저번에 차 안에서 예쁘다고 칭찬했을 때보다 반응이 훨씬 격하다.

얼굴이 가을 벚나무의 단풍마냥 붉어진 그녀를 내려다본 내가 물었다.

“복숭아 머리핀은 언제부터 한 건가요?”

“.... 흐에? 네?”

“머리핀 언제부터 했냐고요.”

“아... 어, 어제... 샀어요...”

떡 벌린 입을 앙다물고 황급히 대답하는 그녀.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그윽한 눈으로 치나미와 머리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잘 어울리네요.”

“그... 감사합니다아...”

상체를 꾸벅 숙이며 공손한 감사인사를 한 치나미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핀을 가렸다.

부끄러워서 저러는 건가?

엉뚱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대소가 튀어나올 것 같다.

“이제 청소하러 갈까요?”

“아, 아뇨... 오늘 호구 청소는 제가 할게요... 후배님은 몸이 찌뿌둥하시니까... 벌려걷기만 짧게 연습하고 돌아가셔도 돼요...”

벌려걷기라... 명칭이 뭔가 야한데.

“움직이다보면 다 풀리겠죠.”

“.... 그런가요?”

“그런 거죠.”

순식간에 묘하게, 그리고 말랑말랑하게 변해버린 분위기.

침을 꼴깍 삼킨 치나미는, 가라앉은 공기를 순환시켜야겠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부실을 가리켰다.

“그, 그러면 보관실로 가도록 할까요...?”

“그래요. 근데 스승님.”

“네...?”

코를 킁킁거린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러다 치나미의 고개가 15도 각도로 꺾일 때쯤,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나직이 말했다.

“복숭아 냄새나요.”

“죄, 죄송해요... 냄새나서 죄송해요...!”

치나미의 눈이 헤롱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인가?

저러니까 더 놀려주고 싶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은 나는 허리를 폈다.

“좋다고 말하는 건데 왜 사과를 하고 그래요. 시간은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죠? 조만간 연락하겠습니다.”

태연한 내 태도에 안정이 되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던 치나미의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붉은 기가 도는 분홍색 눈동자로 날 올려다본 그녀가 수줍게 대답했다.

“네에...”

치나미와의 관계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없이 순탄하다. 이대로만 가자.

**

“테츠야 군은?”

주차장에서 날 기다리던 미유키의 물음.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연 내가 대답했다.

“감독님한테 추가교육 받는다고 먼저 가래.”

“검도 감독님?”

“맞아.”

“마츠다 군은 안 받아?”

“난 괜찮아.”

“왜?”

“할 필요가 없으니까.”

“실력이 하도 안 좋아서 그냥 포기한 상태인가보네?”

미유키는 내가 렌카의 허리에 한 방 먹였던 일을 모른다.

테츠야도 말해주지 않았고, 나 또한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되면 놀라려나 싶다.

아니면 검도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 미유키인 만큼 그러려니 하거나.

“타기나 해라. 간만에 둘이서 돌아가자.”

“응.”

헤실거린 미유키가 조수석에 탔다.

가방을 발아래에 놓아놓고 안전벨트를 맨 그녀는 곧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진짜 졸리다... 그치?”

“나는 괜찮은데 넌 새벽까지 못 잤잖아. 돌아가면 바로 누워라.”

“그러려구... 근데 마츠다 군, 마리토쪼 알아?”

“마리토쪼? 그 크림으로 범벅된 빵?”

“응. 마사코가 맛있다고 하길래 한 번 사먹어보려구. 이름은 밤 크림 몽블랑 마리토쪼래. 내일 사올 테니까 같이 나눠먹자.”

빵녀의 선택이라면 믿을만하지.

미유키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나는, 그녀의 말수가 점점 적어지자 조수석을 흘끗 쳐다보았다.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머리를 꾸벅거리는 그녀.

어제 일로 피곤한데다, 체육까지 껴있는 날에, 오후수업 땐 쭉 깨어있었던 터라 수마가 확 쏟아진 모양이다.

차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게 해둬야겠다.

그리 생각한 나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음...”

피로에 찌든 목소리로 지친 탄성을 내뱉은 미유키는 곧 본격적으로 졸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뜨던 눈은 완전히 감긴지 오래.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모습이 예쁘다.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미유키를 살펴보니, 휴대폰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보였다.

화면을 누르고 있던 엄지가 떨어지면서, 옆으로 스르륵 움직여 손가락에 걸쳐지는 휴대폰.

곧 있으면 떨어뜨릴 것 같은데... 좌석 사이로 들어가면 찾을 때 짜증이 날 테니 내가 보관하고 있어야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미유키의 휴대폰으로 손을 뻗다가, 화면에 글자가 빽빽한 것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뭐 논문 같은 거라도 보고 있었나? 어지간하다.

라고 생각하던 나는 휴대폰을 가져오려다 멈칫했다.

분명히 뭔가를 봤다.

청초한 미유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쓰읍... 하며 숨을 삼킨 나는 미유키의 휴대폰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화면을 훔쳐보았다.

그 화면 안에는,

[핸드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의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일곱 가지 방법.]

이라는 제목의 글과, 그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이건 무조건 모른 척을 해야 한다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얼굴 근육을 씰룩거렸다.

살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제 더 배워서 해주겠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벌써부터 이럴 줄이야...

예습을 중시하는 미유키답다.

심지어 저걸 글로 배울 생각을 하다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닥치고 있자.’

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은 나는,

“으웅...”

타이밍 좋게 눈을 뜬 미유키가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이자 방긋 웃어보였다.

“더 자.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어.”

“응... 미안해...”

자신의 휴대폰을 품 안으로 끌어오더니 다시 눈을 감는 미유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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