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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화 〉#4-1. 아리스, 한 아리 (26) (65/162)



〈 65화 〉#4-1. 아리스, 한 아리 (26)

민성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당사자인 친구들은 박민우의 치밀한 설계를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애초에 배신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 하하! 그냥 즐기자고, 친구들.'

 손으론 술잔을, 다른 한 손으론 여자의 허리를 잡고 향락을 즐기기 시작한 박민우가 말했고, 친구들은 결국 넘어가 버렸다.


이미 이기적이고 간사한 심리로 배신을 했었기에, 성민을 한 번 더 배신하는 것은 처음보다 훨씬 쉬웠다. 눈앞의 피할  없는, 아니 피하고 싶지 않은 유혹이 친구들의 마음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차피 성민의 신상을 불은 순간부터 배신자가 됐는데, 굳이 자기 방어와 보복을 모두 치밀하게 설계한 박민우의 거미줄에서 벗어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봤자 배신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넉넉하게 호의를 베푸는 박민우까지도 배신해 버리면 의리 없이 계속 배신을 일삼는 꼴이 되잖는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니 즐기는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처음보다 훨씬 작아진 양심의 가책마저도 억누르며 자기 합리화를 하던 친구들은 눈앞에 펼쳐진 달콤한 유혹에 매료됐고, 결국 마음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성민을 배신한 배신자를 조건 없이 받아준 민우에게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하잖아? 자기 합리화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의 머릿속을 타락시켰다.

다 큰 성인조차도 속절없이 넘어갈 만한 커다란 유혹에, 안 그래도 향락을 좋아했던 친구들은 모든 것을 잊고 눈앞의 파라다이스에 뛰어들었다. 보안을 위해 핸드폰이나 전자 장비는 모두 제출해야 했지만, 하루 종일 벌어지는 술판과 온갖 놀이들은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작지만 강력한 습관마저도손쉽게 망각시켰다.


그리고 별장에서 펼쳐지는 모든 컨텐츠엔, 속살을 정말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과감하게 드러낸 탱탱한 여자들이 함께했다. 소년 중 한 명이 세어봤는데, 놀랍게도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다. 모든 남자들의 옆에는 적어도  명의 여자가 달라붙어 있었고,  명 이상을 끼고 있는 남자도 일부 있었다. 게다가 한쪽 언저리에는 열정적인 파티에서 벗어나 잠시 쉬거나 구경을 하는 여자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얼떨결에 탐색하던 소년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파라다이스의 절경이었다.


술과 여자. 남자들 대부분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전부 있었다. 옷장에서 교복도 못 버린 애송이 소년들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엄청난 향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들의 마음 속에선 성민과의 의리가 지워지고, 그 위로 박민우에 대한 감사와 충성심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순수할수록 빨리 더럽혀진다고, 그들은 금세 적응하여 자연스레 여자를 끼고 놀았다. 여자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벌써부터 '룸'이라고 부르는 여러 객실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여자의 농염한 육체를 탐했다. 그렇게 몇 번 재미를 보더니, 이내 서로 파트너를 바꿔서 새로운 여자를 먹어보거나, 한 번에 여러 여자들과 해보거나, 반대로 한 여자를 여럿이서 범하는  벌써 다른 어른들처럼 난교를 즐겼다.


그렇게 박민우의 '별장'은 향락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별장'은 일종의 개인 소유 펜션이었다. 구조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남자애들과 고용인들이 즐기는 가장 뜨거운 곳은 1층이었다. 사람도 제일 많이 몰려 있었다. 애초에 1층이 그런 용도이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조용한 2층은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남자들에게 주어진 휴게실과 여자들에게 주어진 숙소였다. 피곤해서 자고 싶거나 조용하게  일이 있으면 2층으로 가면 됐다.


3층은, 박민우가 사용하는 VIP 층이었다. 1, 2층보단 작지만 오로지 박민우와 몇몇 허락된 소수만이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층보다 훨씬 분위기가 여유로웠다.

"소감이 어때요?"

"…."

3층, 박민우의 개인실. 그곳에는 박민우의 개인 비서이자 심심풀이 역할을 하는 한 여성과 아리가 전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용인들 중 급이 되는 몇몇 간부와, 그런 사람들을 대접할만한 비싼 여자들이 있었다.


"그냥 입을 다무시겠다? 흠…."

츠르릉.

쇳소리가 나며 무언가가 바짝 당겨졌다. 그러자 아리의 몸이 속절 없이 민우 쪽으로 끌려갔다. 어느새 아리의 목에 채워진 심플한 검은색 가죽 재질 개목걸이에는 중지 정도의 굵기가 되는 체인이 연결되어 있었다. 체인의 끄트머리에 있는 가죽 손잡이는 민우가 단단히 쥐고 있었다.

말없는 아리의 얼굴은, 방금 전 겪었던 수치로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박민우는 방금 전 사람들을 물리기 전까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리를 신나게 욕보였다. 일단 당연하다는 듯이 1층의 여자들처럼 음란한 옷을 입은 아리를 완전히 발가벗겼다. 그리고는 목에 개목걸이를 채우고 주인 행세를 시작했다. 개처럼 바닥을 기어다니게 만들고 마치 개가 오줌 누는 자세로 한쪽 다리를 들게 하여, 훤히 드러난 세로선 균열에 냅다 자지를 박아서 일단 욕구를 해소했다. 정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녀석은 적당히 즐기다가 바로 안에 싸버렸다. 뒷처리로 자지를 핥게 만들었고, 머리를 발로 밟은 후 암캐를 칭찬하듯이 발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듯 슥슥 부비적거리는 굴욕적인 행위를, 아리는 그저  참아야만 했다.

그는 애초에 아리를 독점할 생각이 없었던 건지, 곧바로 다른 남자들에게 돌림빵을 지시했다. 남자들은 보기 드문 완벽한 미녀에 흥분하며 아리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어떤 여자든 다 같이 나눠먹는다. 그것이 박민우가 고용인들과 사이가 좋은 이유였다.


퍽, 퍽, 퍽, 퍽, 퍽….

"웁, 웁, 후웁, 우웁…."

땅에 두 다리를 딛고 서서 상체를 숙여 기역(ㄱ)자 자세로 따먹히던 아리는, 거친 호흡조차 내뱉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 원망스러운 자지에게도 오르가즘을 선사해야만 했다. 온몸의 뽀얀 살갗과 커다란 젖가슴, 탄탄한 엉덩이 등 낯선 손길들이 탐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몸 내부에 있는 소중한 목구멍과 질구멍 깊숙한 곳까지 전부 살덩이가 들이닥쳤다. 그녀에게 더 이상 비밀스러운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수치스러웠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만한 굴욕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


"큿…."

"뭐, 저야 좋죠. 최대한 오래 반항해주세요. 저도 길들이는 과정이 제일 재밌거든요. 나중에 학학 헐떡이면서 고분고분 말  듣는 암캐가 되는 거야 정해진 결과니까. 큭큭. 제발 오래 버텨주세요."

민우의 말을  귀로 흘려 들으며, 아리는 시선을돌려 뒤에 있는 여자를. 정확히는  여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 렌즈를 노려봤다. 저게 끝이아니었다. 방 곳곳에서 수많은 렌즈가 아리의 나신을 일제히 겨냥하고 있었다. 비록 성민이와 촬영 플레이를 해봤다지만, 이건 경우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왜냐하면 지금 찍히고 있는 영상과 사진들은….


아리는 방금 민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수치심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 있는 우리 성민이 친구 불쌍하죠? 할 것도 없을 텐데, 야동이라도 봐야 좀 즐겁지 않겠어요?'

미친 새끼….

박민우는, 잔인하게도 '별장'에서 촬영된 아리의 추태를 전부 성민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놈은 처음부터 성민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몸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 마음을 잔혹하게 난도질한다. 아리는 얘기가 다르다며 반항했지만, 이미 모든 주도권이 민우에게 넘어가 버렸기에 할  있는건 아무 것도 없었다. 민우는 아리가 너무 말을  듣는다 싶으면 성민의 신변을 빌미로 협박하여 얌전하게 만들었다.

잔혹한 수법이었다. 분명 상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고, 거래가 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 그러나 민우는 절대 무시할  없는 희망 한 줄기를 꼭 남겨뒀다. 이미 많은 것을 잃었으나, 더 잃을 것도 없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는선택지를, 녀석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아리와 성민에게 남은 희망은 일주일 가량의 기한, 그리고 서로의 신변이었다. 일주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묘한 시간이었다. 일주일만 참으면 돼. 일주일도  기다려서 애인의 인생을 파탄낼 셈이야? 민우는 그런 악마의 속삭임을, 아리와 성민에게 동시에 하는 중이었다.  결과 하루 종일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던 둘의 관계는 변질되어, 서로가 서로의 희망임과 동시에 자신을 단단히 속박하는 굴레가 됐다.

치밀한 거미줄에 제대로 걸린 아리는 분기가 가득한 얼굴로 민우를 노려보다가도, 막상  뱀 같은 눈동자와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며 이를 악물었다. 비록 지구에서의 삶이 아리에겐 유희나 다름없었지만, 매사에 진지한 그녀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민우에 대한 분노도, 그리고 녀석에게서 느끼는 수치와 굴욕도 모두 진실된 감정인 것이다.

"누나도 목마를 텐데 술이라도 좀 드세요."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 있던 술잔을 자기 입으로 들이키더니, 아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후으읍, 으읍…."

아리의  손목을 저항하지 못하게 붙잡은 민우는 그대로 아리의 입 안에 술을 보냈다. 마우스  마우스로 마신 술은 생각보다 훨씬 독했고, 아리는 초점이 살짝 풀린 채로 더운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리고는 술과 섹스, 그리고 [외강내유] 스킬로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내보냈다. 아리의 살짝 풀린 얼굴에 민우가 꼴렸는지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키스했다.

"우으읍…."

츕, 츄르릅, 키츄웃.

게걸스럽게 혀와  안을 잔뜩 탐하는 소악마의 키스를, 아리는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아리가 시달리는 내내, 카메라의 렌즈는 무심히 아리를 투영하고 있었다.





민성은 자진해서 방 밖으로 나와 있었다. 거실 소파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떡대와 눈이 마주쳤지만 어쩔  없었다.

"씨바아아알! 으아아아!"

성민의 괴성이 방문을 뚫고 나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민성은 거실의 떡대가 아무리 불편해도 방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박민우에게서, 아니 정확히는 아리의 핸드폰으로부터 온 영상과 사진들은… 그녀가 남자들에게 수없이 따먹히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악마 새끼.'

민성은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음을 후회했다. 나름  협상했다고 생각했는데, 박민우는 그리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다. 약속대로 몸을 해치지는 않았으나, 대신 마음을 잔인하게 불태웠다.

게다가 악마적이게도, 포르노나 다름 없는 아리의 촬영물을 보낸 후 경고 문자까지 덧붙였다.

[성민아 걱정 마라 ㅋㅋ 심심하지 않게 내가 계속 딸감 보내줄게. 열심히 딸이라도 치면서 시간  보내. 아, 차단은 하지 않는게 좋을걸. 이거 한아리 핸드폰인거 알지? 혹시 모르잖아. 쉬는 시간에 한아리가 울면서 너한테 몰래 연락이라도 할지. ㅋㅋㅋ 사실 차단해도  상관 없기는 해. 그냥  마음대로 해.]

퇴로를 막는 잔인한 말.


문자를 본 성민은 녀석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 악마 새끼는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 괴로운 시간을 끝까지 버텨내던가, 아니면 아리 누나를 버리고 혼자 편해지는 배신의 길을 선택하던가. 어느 쪽이든 재밌으니 상관 없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쿵! 쾅! 쾅!

성민은 침대 매트리스와 기둥을 마구 때리며 발광했다.


"하아…."

민성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내색은  했지만 사실 많이 지쳤기에 한숨 이상의 행동을 할 기운조차없었다.


한아리를 희생시켰다는 죄책감도 크긴 컸지만, 성민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녀석을 진정시킬 수만 있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아리 대신 성민을 위로해줄 천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현실성 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띠릭. 띡띡띡띡….


"음? 뭐야?"

다른 생각을 하던 민성은 느닷없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도어락 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거실 소파에 팔자 좋게 누워 있던 떡대가 반응하여 몸을 일으켰다. 누가 온다는 말은  들었기 때문이다.

끼이익.

"넌 뭐야… 어윽!"

갑작스러운 소리. 떡대가 억 소리를 내자 민성이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성민의 방문 앞에 바짝 기대어 있었기에 벽으로 가려진 현관 쪽은 볼  없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진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모퉁이를 돌자 현관 쪽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보라색?'

어두운 진보라색이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현관 앞을 가로막던 떡대는 '보라색'이 밀어내자 사과를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거실로 돌아가 소파에 다시 앉았다. 멍하니 있던 민성은 '보라색'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톡 톡 톡 톡.


'보라색'의 발걸음은 진중하고 묵직했으나, 체중이 워낙 가벼운 탓에 무게감은 별로 없었다. 듣다 보면 은근히 귀여운 발소리를 내면서 걸어온 '보라색'이 민성에게 먼저 꾸벅, 가볍게 목례하며 인사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민성 님이 맞으신지?"

"어? 아, 네. 그렇습니다만…."

낯선 사람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오자 민성은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계신 남성민 님께 볼일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런지요."

다소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무기질적인 말투였다. 민성은 저도 모르게 허락하려다가, 자신이 성민의 유일한 보호자 역할이라는걸 자각하고는 정신을 차리고 상식적인 질문을 건넸다.


"저기, 죄송한데…. 누구시길래…?"

보라색.

아니, 레이아는 한쪽 손으로 옆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레이아라고 합니다. 박민우 님의 비서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

….

 사이엔 긴 적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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