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4-2. 개입 (14)
이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레이아는 집안을 가로질러 가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목적은 딱 하나, 성민을 구워삶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소년의 마음 속에서 아리스, 한아리의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내고 비집고 들어가는 것. 그래야 '뒤처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멘탈 붕괴 상태라면, 최면 마법이나 기억조작 마법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혹시라도 부작용이 세게 온다면, 차라리 그냥 죽여주는게 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최악 중 최악일 테고, 일반인을 그렇게 만들거나 그런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아가 다짜고짜 쳐들어가 모든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아리스의 '플레이'를 망칠 수 없었던 것 역시 그만큼 주요한 이유였다.
아무튼 그녀의 타겟은 남성민 뿐이었으나, 중간에 충동적으로 한민성을 건드려 버렸다.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배신이니 뭐니 자기 손을 더럽혔지만, 저 정도 의리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었다. 당장 성민의 다른 친구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쭙잖은 도덕심이나 올바름 따위를 핑계로 대며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를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어서, 건드렸다.
'재밌네. 걔도, 나도.'
예전이었으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놀이였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건, 지금 상황은 확실히 재미가 있었다. 마치 악당이, 마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으음?"
거실을 가로지르다가 시선을 느껴 돌아보니, 떡대가 이쪽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레이아의 가슴이나 골반, 훤히 드러난 균열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나 지저분한 욕망으로 가득찬 눈동자와는 다르게, 몸은 이따금 펄떡거리기만 할뿐 그녀에게 달려들진 못하고 있었다. 마치 목줄 걸린 개처럼.
"왜, 너도 나한테 박고 싶니?"
"쿠훅! 우우욱…."
레이아가 씨익 웃으며 떡대가 앉은 소파 쪽으로 다가가 한쪽 다리를 팔걸이에 척 올렸다. 자연스레 가랑이에 숨어 있던 보지가 훤히 드러났고, 번들거리던 눈은 시뻘겋게 충혈까지 되며 터질 듯이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더러운 생각은 그저 생각에서 끝이 났고, 팔다리는 아무 명령을 받지 못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못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게 아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반항하면 할수록 몸에 부담이 갈 것이다.
'자업자득이야.'
별 감흥은 없었다. 나쁜 일을 하고 살았으니, 나쁜 일을 당해도 이상할 건 없잖아?
떡대에게 걸린 마법은, 위험할 정도로 강하고 무거운 통제 마법이었다. 틀림없이 큰 부작용을 겪을 테고, 당장은 아니라 해도 머지않아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 병원 신세를 얼마나 질 지는 레이아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짧으면 한나절, 길면 한평생. 적정값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행운에 기도하는 수밖에.
그러나 마음에 드는 두 소년과는 달리 떡대에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그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일반인이냐 아니냐였다. 사람을 납치하고 강간하는 조폭은 지구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해이한 판타지 세계 기준으로 봐도 무고한 양민은 절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더러운 무리일 뿐. 그나마 운이 좋으면 기사회생할 기회라도 있으니, 레이아는 나름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지금이야 '플레이'의 일환으로 별 걱정 없이 즐기지만, 아리스가 힘없는 일반인 여자였다면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몰락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구욱, 구와악."
마치 좀비처럼 괴성을 내며 떡대가 손을 뻗었고, 눈앞의 뽀얀 다리를 붙잡았다. 그나마 마법으로억제했기에 이 정도 행동으로 끝난 것이었다. 아무 제약이 없었다면 놈은 당장 눈앞의 여자를 자빠트리고 온몸을 탐식한 다음 비좁은 구멍에 몇 번이고 정액을 싸질렀겠지.
물론, 이제와서 고작 강간을 당하는 것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살짝 끌리기까지 했다. 마치 불량식품을 먹는 것과 비슷한 심리였다. 그러나 레이아는 '플레이'에 충실하기로 했다.
"안 돼. 꺼져."
고추 달고 있다고 무조건 박게 해줄 것 같니?
레이아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이런 불량식품 따위는 언제든 먹을 수 있었다. 굶주렸다면 집어 먹었을 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 집엔 찾고 싶어도 찾기 힘든 귀한 음식이 둘이나 있었다.
'변화'를 겪은 레이아는 그때 이후로 자기 감정에 솔직해졌다.
그녀의 눈은 흥미를 느끼며 반달 모양으로 웃음짓고 있었고, 눈동자는 욕망이 가득한 보랏빛을 뿜고 있었다. 그 모습은, 위험할 정도로 요염하고 섹시했다. 그녀의 어두운 보랏빛 마수가, 아무 것도 모르는 두 소년에게 뻗쳐 들었다.
…
이틀 후.
남성민, 그리고 레이아. 둘의 관계는 빠르게 진전됐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지금 상황에 맞지 않게 천진난만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깊은 내용도 섞여 있었다. 성민은 아무에게나 해주지 않았던 개인사나 가족 이야기까지 하며, 어느새 레이아를 가슴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인 상태였다.
우우웅.
"또 왔네."
"그러게."
박민우가 보낸 악질적인 영상. 하지만 둘 다 당장 영상을 확인하긴 커녕, 연인끼리 할 법한 간질거리는 장난을 치며 핸드폰을 무시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구도였다. 쪽쪽거리다가 키스까지 오간 뒤에야 잠시 소강 상태가 됐고, 성민은 내용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다시 패턴이 좀 바뀌었다. 별장 안에서만 촬영한 이전의 원 패턴이었던 영상들과는 달리, 요즘에는 밖에 나가기도 하고 사진도 섞어서 보내왔다.
이번에 온 사진은 스티커 사진이었다. 좁은 기계 안에 들어가서 바짝 붙은 상태로 찍은 수십 장의 커플 사진. 정상적으로 차려 입은 박민우에 비해, 아리는 고작 빨간 비키니가 전부였다. 멀쩡한 동네 한복판에서 저따위로 입히다니. 빠르게 빠르게 확인하며 넘기니 그나마 중요 부위라도 가려주던 비키니도 벗겨져서 사실상 알몸으로 희롱당하고 있었다.
동영상도 있었다. 대충 넘겨가면서 내용만 확인해보니 야외에서 하는 플레이였다. 스티커 사진을 찍기 전에 촬영한 건지 사진에서 봤던 빨간 비키니를 입고 있다가, 남자가 다가오면 팬티를 내리고 다리를 벌려주는 패턴이 몇 번 반복됐다. 항상 맘에 들진 않았지만 갑자기 새로운 내용이 나오니… 꼴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할 거야?"
"으음…."
성민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레이아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성민의 왼팔에서 팔짱을 풀고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아무 것도 입지 않았기에 레이아의 몸매가 그대로 내려다보였고, 점점 일어서던 페니스는 순식간에 솟아올라 발기를 마치고는 애무해달라는 듯이 껄떡껄떡 맥박쳤다. 남성미 가득한 육봉의자태에 옅은 웃음기를 머금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레이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꿀꺽.
홀린 듯이 페니스에서 눈을 못 떼고 침을 삼키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정말 색스러웠다. 요물이 따로 없었다.
성민과 하루 종일 알콩달콩 지내면서 레이아는 마치 그의 여자친구처럼 굴며, 남자친구에게 애정 표현을 하고 마음을 달래줬다. 그러면서 몸을 부비적거리며서로에 대한 칭찬을 주고받기도 했다.
레이아에 대한 칭찬은 사실 그렇게 새로운 편은 아니었다. 예쁘다, 귀엽다, 섹시하다 등등 여자가 들을 수 있는 칭찬은 모두 들어봤기에 성민의 칭찬 역시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여자는 여자여서 예쁘다는 말을 싫어할 리가 없었고, 레이아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미소 지었다. 최근에는 그녀에게 하는 칭찬의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주로 색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귀엽게 생긴 주제에 알고 보니 그렇게 음탕하고 색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성민은 금세 새로운 사랑에 푹 빠져들었다.
레이아 역시 성민에게 칭찬을 많이 했다. 외모에 대해선, 비록 평범한 편이지만 보면 볼수록 귀엽고 매력 있다는 식으로 칭찬해줬다. 성격도 장난기가 많긴 하지만 인내심이 좋고 감정 표현을 잘 해줘서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칭찬들은 처음엔 낯간지러웠지만, 뒤돌아서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은, 역시 소년의 남성성에 대한 칭찬이었다.
은근히 목소리 섹시하다. 남자 냄새가 기분 좋아. 몸이 탄탄해서 계속 만지고 싶어져. 이런 정력은 처음이야. 이렇게 큰 자지는 본 적이 없어.
그런, 야하면서도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팍팍 치켜세워주는 레이아의 찬사는 즉효성이 강했다. 듣자마자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어서, 성민은 바보 같이 헤실거렸다. 시간이 지나자 소년은 슬슬 자신감이 생겼는지, 지금처럼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아주 넋이 나갔네?"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해."
"진짜로?"
"응."
레이아는 반쯤은 진심으로 말했다. 당연히 살면서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자들 중에선 적어도 상위 10% 안에는 들만한 훌륭한 자지였다. 어려서인지 귀두는 물론이고 껍질의 색깔도 밝고 예뻤는데, 레이아는 그게 취향이었다. 냄새 역시 아직은 살짝 풋풋하지만 분명 수컷의 그것이었고, 정액은 몇 번이나 뽑아내도 양이 줄어들지 않을 뿐더러 찐득하고 진했다. 겉보기엔 아직 철부지 소년이었지만, 그 내용물은 혈기왕성한 전성기의 정력가였다.
"너무 훌륭해서,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어."
"흐흐, 다 봤어. 그렇게 먹고 싶어?"
"…응. 먹어도 돼?"
레이아가 성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성민은 과장 좀 보태서, 머리에 마약을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과연 이 부탁을 거절할 남자가 있을까. 잠자리는 커녕 말이라도 붙여보기 위해 남자들은 자기가 가진 온갖 능력과 자원을 총동원할 것이다. 행운아 소년이 응, 하고 수락하자 귀두가 순식간에 그녀의 입술과 혀, 입안의 속살에게 점령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