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6. 미라의 여행 (19) (144/162)



〈 144화 〉#6. 미라의 여행 (19)

 번째 행선지는 백화점이었다. 저번보단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한산한 편이었다.


"이리 와."

지우가 미라를 확 잡아끌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석진 곳이었다. 안 그래도 구석인 데다가 유리문 좌우로 불투명한 칸막이가 있어서 의외로  은밀한 아지트였다.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문에 각층의 출입구이기도 해서 종종 사람이 오가긴 하지만,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 눈에 안 띄게 숨을 수도 있었다.

미라가 등지고 있는 비상출입문도 그 중 하나였다.혹여나 불건전한 장면을 들킬 수도 있지만, 비상계단으로 도망치면 보통은 쫓아오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라는 당장 야한 일을 할 줄 알고 준비했으나, 지우는 그저 조용한 곳을 원했던 건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얘기를 했다.

"미션?"

뜬금없는 지우의 말에 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까부터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미라는 모르지만 그는 미라의 사진을 올렸던 음지의 사이트 '헤라넷'에서 실시간으로 작당모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게 말이지…."

지우가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미라가 아닌척 은근히 기대했던 대로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모야 이젠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대단한 여자가 지우가 시키는대로 거리낌 없이 야한 짓을 해대니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우는 저번에 말했던 대로 아저씨와의 뜨거운 섹스는 순서를 뒤로 미루고 마치 천천히 조교하듯 수위가 가벼운 것부터 차례대로 올렸다.

아침엔 예쁘게 나온 평범한 사진과 간단한 소개글, 그리고 그 아래에 은근히 섹스 어필을 하는 사진을 몇 장 올렸다. 방금 전엔 미라가 알몸으로 양치하던 나름 일상적인 사진과 손가락으로 입안을 희롱하는 사진을 올렸다. 순종적이면서도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미라의 녹안에 유저들의 마음이 음심으로 들끓었다.


단순한포르노를 보고자 했다면 굳이 이런 음지의 사이트에서 활동할 이유가 없겠지. 그들이 원하는건 좀 더 깊고 어둡고 변태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소프트한 취향과 하드한 취향이 갈렸지만, 아무튼 헤라넷에서 원하는건 단순히 야하기만 한게 아니었다. 각종 페티쉬나 야외 노출, 스와핑, 초대남 네토 플레이, 갱뱅, 난교, 그외 기타 등등…. 미라처럼 스스로가 원해서 활동하는 음란녀 역시 헤라넷에서 환영받는 소재였다.

…컨셉, 촬영, 업로드까지 다 지우가 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지나에게 소개받아 찾아온 것도 미라고 카메라 앞에 선 것도 미라기 때문에 지우도 소개글에 이미 명시했다. 자신은 그저 도와줄 뿐, 미라가 스스로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겸손한 말이기도 하지만, 미라는 클래스가 다르기 때문에 지우도 전혀 자존심 상하는 기색이 없었다. 평범한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깍듯한 태도를 취해야 하지만, 초대형 스타들은 오히려 촬영진이 먼저 깍듯이 대하는 것과 비슷한 생리였다. 지우는 오히려 자신이 미라와 함께하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벌써부터 업로드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폭발적인 반응은 지우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강했기 때문에 서비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재물로 계획한 순간부터 지우는 미라의 사진을 수없이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딱히 모자랄 일은 없었다. 미라가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서 핸드폰을 하는 사진. 알몸인 것, 그리고 등과 엉덩이 곳곳에 키스마크가 새겨진 것을 빼면 나름 일상적인 사진이었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은근히 꼴리는 종류의 사진을 한두개씩 올려주니 마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효과가 굉장했다.

"그래서요?"

헤라넷의 상황을 얼추 들은 미라는 원했던 반응에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가는 눈매와 반쯤 드러난 이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굴도 찍을까 생각하던 지우는 그저 예뻐 보인다고 막 찍어대면  이상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반응 좋으니까 공약을 좀 걸었어. 게시물 추천이 몇 개가 넘으면 이런저런걸 하겠다는 식으로. 잠깐 패딩 좀 벌려볼래?"

지우 특유의 뜬금없는 지시. 도대체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미라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바바리맨처럼 옷을 활짝 벌리자 패딩의 안쪽이 전부 드러났다. 위쪽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딱 붙는 베이지색 니트 상의. 아래쪽은 지우의 요청으로 모처럼 스커트 대신 핫팬츠를 입었고, 데니아가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 검은색 스타킹이 다리를 섹시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래쪽은 바지, 스타킹, 앵클부츠까지 전부 검은 색인데 각자의 색감이 전부 달라서 칙칙하다거나 일관된 색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옷차림은 이 정도면 평소에 비해 야한 느낌이 거의 없는 수준이며, 그저 이 추운 날씨에도 잘 차려 입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지우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찍었다.

"자. 이거 써."

지우가 비니를 내밀었다. 롱패딩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미라도 깜빡했던 건데, 저번 쇼핑에서 롱패딩을 보기 전에다른 곳에서 샀던 것이다.

"왜요?"

"다 이유가 있어."

미라가 받아들면서 이유를 묻자 지우가 어련히 말해주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비니, 상의, 하의, 브라, 팬티, 스타킹 여섯 개네. 10분당 하나…. 대충 한 시간 나오겠다. 자, 가면서 얘기해줄게."

지우가 팔을 내밀었고, 미라는 불친절한 설명에 입술을 살짝 내밀며 지우의 팔에 깊게 팔짱을 꼈다. 둘은 구석진 곳에서 벗어나 다시 개방된 백화점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게임이요?"

층 전체가 여성복을 취급했기에, 미라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 깨알같이 아이쇼핑을 하면서 지우와 대화했다. 그는 미라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간단해. 홀짝 알지? 홀수인지 짝수인지만 맞추는 거야."

"홀짝? 어떤 걸로요?"

지우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 상단에는 반쯤 잘린 미라의 누드 사진이 있었고, 중앙에는 큼지막하게 게시물의 추천 수가 있었다.

"10분마다  사진을 라이브로 찍어서 서비스 사진이랑 같이 올릴 거야. 다음 게시물 업로드 때 이전 게시물의 추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네가 맞추는 거야."

"못 맞추면요?"

"아까 여섯 개… 너도 대충 짐작하고 있겠지?"

갑자기 건네받은 비니, 상하의, 위아래 속옷, 스타킹. 미라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떠오른 질문을 건넸다.


"뭐, 그야 벌칙으로 벗는 거겠죠. 그럼 벗을건 제가 정하는 건가요?"

"아니. 내가 내 글에 댓글로 각각 달아놓고, 추천을 제일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이 된 부분을 벗을 거야."

"으음…."

추천 수가 가장 많은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 된다. 헤라넷엔 투표 기능이 따로 없었고, 게시물 작성자는 댓글에 작성자라고 표시가 됐기에 지우는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 추천 제도를 활용한 투표인 셈이다.

"시작하자마자 팬티를 벗을 수도 있겠네요."

"맨몸에 비니만 딸랑 입게될 수도 있지."

"그럴 지도…. 아, 근데 패딩이랑 부츠도 입고 있잖아요. 그건 왜 빼요? 특히 패딩은…."

"일단 맨발로 다니는건 너무 눈에 띌 뿐더러 너도 불편할 테고. 롱패딩은, 그것만 입고 있으면 안쪽을 벗든 말든 들킬 일이 없으니까."

그 말에 미라가 끼부리듯 귀엽게 눈을 흘긴다.

"흐응. 자기, 처음부터 노리고 입고 나오라 한거죠?"

"흐흐흐."

어쩐지.

미라는 은근히 기대되는 건지 눈이 반짝거렸다.

"자, 이게 첫 게시물이야. 방금 찍었던 거랑 서비스샷  장. 이제 10분 지나면 네가 홀수 짝수를 맞추면 돼."

지우가 자기 핸드폰을 다시 보여줬다. 아까 미라가 엘리베이터 쪽에서 롱패딩을 활짝 벌린 사진과  안에 정액을 담고 있는 서비스 사진이 있었다. 올린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추천 수가 무섭게 오르는게 보였다. 미라는 관심을 잔뜩 받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으음, 근데  걱정되네요."

"뭐가?"

"제가  맞추면 어떡하죠? 그럼 재미없잖아요."

"뭐, 게임은 게임이니까. 결과에 승복해야지. 맞추고 싶다고 맞출 수도, 틀리고 싶다고 틀릴 수도 없잖아. 복불복이니까."

그의 말대로였다. 댓글을 보니 이미 유저끼리 그런 식의 논의를 한게 나와있었다. 미라도 유저들의 반응을 보고 쉽게 수긍했다.


"자, 10분 될 때까지 돌아다니자."

"네."

한시간을 기획한 '게임'. 여섯 번의 홀짝. 헤라넷 유저들의 이목이 잔뜩 집중된 미라의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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