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6. 미라의 여행 (20) (145/162)



〈 145화 〉#6. 미라의 여행 (20)

10분 경과.

코트 쪽을 둘러보던 미라와 지우가 다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석진 곳으로 갔다. 주변에 적당히 놓인 벤치에 앉은 지우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전원을 켰다.

"10분 됐어."

뭐하나 구경하던 미라가 그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어려울 것 없이 홀수냐 짝수냐만 말하면 된다.


"말하면 돼요?"

"아니. 잠깐만."

지우가 옆자리에 부팅 중인 노트북을  채로한손엔 카메라를, 한손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응?"

"우리끼리 짠 거라고 수도 있잖아. 모든 과정을 촬영해서 투명하게 공개하는거지. 으음, 이거면 되겠지? 나도 이런건 처음이라서."

"뭐, 상관없겠죠. 굳이 짜고 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지. 귀찮은 사태를 대비하는  뿐이니까 이 정도면 되겠다."

지우가 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했다. 옆에 앉은 미라를 촬영하면서 그녀에게 지시한다.

"자, 내 앞에 서."

"네."

평소에도 말을  듣는 편이지만, 카메라 앞에선 더 순종적으로 행동하는 미라가 군말없이 자리에서일어나 지우의 앞에 섰다.

"자, 실시간 추천 수 확인 들어갑니다."

지우가 여전히 카메라를 미라 쪽으로 한 채, 화면 아래쪽에 나오도록 핸드폰을 들었다. 미라 쪽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헤라넷의 게시물에 접속하여 추천 수를 확인한다. 그리고 미라에게 묻는다.

"자. 이제 맞춰 봐. 홀수? 짝수?"

"흐음, 홀수!"

그녀의 말에 지우가 카메라 뒤에서 씨익 웃었다.

"틀렸어. 짝수."

"흐으…."

"미라야…. 아까 뭐라고? 재미없게 다 맞추면 어떡하죠? 큭큭큭…. 아이고 재밌다~."

"윽. 놀리지 마요?"

놀림 받은 미라가 주먹을  쥐며 앙탈을 부렸다. 지우는 여전히 놀리듯이 큭큭거리며 댓글을 작성했다.

"자…. 비니, 상의, 하의, 브라, 팬티, 스타킹. 여러분의 선택은?"

지우가 촬영하면서 실시간으로 댓글을 작성했다.

"그래서, 추천 수가 몇인데요?"

미라의 질문에 대답 대신 핸드폰이 내밀어졌다. 추천 수는 1362였다.


"으음…."

"엄청나지?"

천 하고도 수백을 더한 숫자. 그냥 봐도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리 광고도 하고 공약도 걸었다지만 이건 엄청난 거야. 10분 전에 올린 글이 추천 수만 천 개가 넘어. 나도 몇 년을 여기서 놀았는데 이런건 처음 본다. 실시간 이용자 중에서 추천까지 한 적극적인 사람이 최소 이만큼이란 거잖아. 게다가 댓글 터져나오는 거 보면 그것도 엄청나. 지금 네가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상상이 가니?"

"어… 그, 그러네요."

지우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 미라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별로 와닿지 않고 딴 세상 얘기 같았는데, 듣고보니 꽤나 크게 다가왔다. 얼떨떨하면서도 좋아하는 미라의 분위기를 물끄러미 보던 지우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봐."

지우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헤라넷의 메인 페이지가 나와 있었다. 헤라넷은 투데이 베스트, 위클리 베스트, 먼슬리 베스트가 1위부터 5위까지 메인 페이지에 뜨는데, 투데이 베스트에 이미 10분 전 올렸던  게시물이 들어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먼슬리 베스트 1위에 미라의 데뷔작(?)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엄청 야한 것도 아니고 고작 인사글인데 말이다.

"너 지금 장난 아냐. 사이트 하나를 그냥 통째로 잡아먹었다고. 이쪽 분야에선 나름 덩치 큰 사이트를 말이야."

"으음…."

10분 전 게시물에 들어가보니 1분 남짓한 사이에 추천이 200개가 넘게 더 추가가 된 상태였다.


"미쳤지?"

"…바람직하네요."

"흐흐."

덤덤하고 쿨한 척하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려서 전혀 쿨해보이지 않는 미라. 지우는  모습이 귀여운지 껄껄 웃고는 화면을 터치해 아래로 내렸다. 추천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들이 있었다.


[미라 여신님 진짜 존나게 사랑합니다]

[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스타킹!]

[아니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투베, 위베, 먼베까지 베스트란 베스트는 다 혼자 해쳐먹네 ㅡㅡ....... 미라 여신님 제발 평생 혼자 해먹어 주세요 제발제발제발]

[헤라넷 말고 미라넷 어떰?]

생생한 반응에 미라가 눈에 띄게 흥미를 보이며 좋아했다. 특히 세번째, 네번째 댓글이 마음에 드는지 웃음을 빵 터뜨렸다.


"푸하핫! 하하하… 아아, 악플인줄 알았는데. 미라넷은 또 뭐야아."

"어때? 재밌지? 막 의욕이 나지 않아?"

"푸흐흐, 그러게요. 재밌네요.  더 봐도 돼요?"

미라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지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이제 슬슬 돌아다녀야지. 아, 맞다. 너 혼자 헤라넷 들어가지 마."

"왜요?"

"…내 경험상 그게 더 좋더라고. 싫어?"

논리 대신 신뢰라는 무기를 꺼내든 지우. 미라는  박자의 여백을 두고 대답했다.

"아뇨. 그렇게 할게요."

"좋아. 그럼 두 번째 홀짝까지 다시 돌아다닐까?"

"네, 가요."





10분이 지났고, 다시 미라가 홀짝을 할 시간이 왔다. 지우가 아까처럼 증거 자료를 겸해서 카메라로 촬영했고, 미라는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홀!"

"그래?"

지우가 요상한 표정을 짓자 나름 자신있게 말했던 미라가 은근슬쩍 눈치를 봤다.


"왜, 왜요?"

"헤."

오묘한 웃음기에 미라의 목소리에서 확신이 없어졌다. 핸드폰 화면에 나온 추천 수는….

"149…2. 짝수. 크흐흐, 미라 너 아까 분명 다 맞추면 재미없어서 어떡하냐고…."

"아! 아아아아!"

지우가 다시 한번 놀리려 들자 미라가 앙탈을 부리며 지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놀리지 말라는 귀여운 행동에 지우가 헤벌쭉 웃으면서 미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튼, 이제 베스트 댓글을 보실까…."

 홀짝에서 미라가 틀렸으니 베스트 댓글을 확인하여 그걸 벗어야 했다.

"뭔데요?"

잠시 흥분했던 미라가 다소 새침해진 얼굴로 자기 두 팔을 모아 가슴 밑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지우가 화면을 내려 확인했다.


"에이."

"에이 거리지 말고, 뭔데요오."

미라의 재촉에 지우가 쯥,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헤라넷 분들이 이번엔 봐주셨다. 고맙게 생각해."

"흠?"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즉 벗어야 할 미라의 옷은….


"비니."

"예~."

"자, 찍는다. 벗어."

미라는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자 애처럼 해맑게 웃으며 과장된 동작으로 머리에서 비니를  빼냈다. 그리고는 카메라 쪽으로  더 다가가 인증샷을 찍듯이 비니를 들어보이며 한손으로 얼굴 옆에 브이를 그렸다.

"자세 좋네.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

"차라리 잘된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난방 따뜻한 곳에서 쓰지도 않던 비니를 쓰고 있자니 좀 답답했는데, 이제  홀가분한 느낌?"

"그래? 흐, 계속 더 홀가분해질테니 기대해.두 번째 홀짝도 틀렸으니 이제부터가 진짜야."

"흥, 앞으로 다 맞추면 되죠."

"과연 그럴  있을까?"

둘은 마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눈싸움을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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