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009)

─츄릅.

입술을 혀로 훔치며 말하는 루시. 나는 머리가 독뱀과 마주친 것만 같은 감각에 등허리가 축축해졌다.

“그건 그만둬 주셨으면 하네요. 당신도 남이 당신의 몸을 본떠서 뭔가를 만들겠다고 하면 소름돋지 않겠습니까?”

“에이, 아깝게.”

내가 거부했더니 루시는 선뜻 물러났다. 그러고는 물감이 덜 마른 내 쥬지 스캔본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당신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이 그림은 어쩔 거야? 가져갈래? 아니면 내가 처분해 줄까?”

“제가 직접 폐기할 테니까 이리 주시죠.”

“쳇.”

나는 쥬지 스캔본을 받아서 북북 찢었다. 이딴 거 가져가서 어따 쓰겠는가. 나무한테 미안하니 빨리 없애서 거름으로 써 주는 것이 예의였다.

부욱─ 부욱─.

찢고 구겨서 뭉친 다음에 품안에 넣었다. 나중에 어디 화로에라도 던져서 태워버려야지. 나는 그러고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걱정되는군요.”

“뭐가요?”

“야수회귀 마법 말입니다.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큰 파장이 일어나겠어요.”

야수회귀는 쥬지 확대수술 같은 마법이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거근 변이!

세상 어느 남자가 그걸 그냥 지나치겠는가. 내가 몇 번인가 짐작했던 것처럼 너도 나도 야수회귀를 패시브 스킬처럼 배우려 들 것이었다.

어째선지 지금은 나한테밖에 효과가 없지만, 연구를 거듭해서 원인을 규명하면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겠지.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이세계 남자들의 평균 쥬지 길이가 30cm를 찍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시발 너무 무섭다.

“아니~?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루시가 말했다. 꽤나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져서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제가 말하는 것도 우습습니다만, 야수회귀의 부작용을 노리고 배우려 드는 사람들은 많을 듯 한데요.”

“으음~ 그걸 설명했다가는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고개를 꼬던 루시는 기지개를 펴면서 대뜸 무책임한 소리를 내뱉었다.

“좋~ 아! 나는 지루한 얘기는 취향이 아니니까 패스!”

“푸흐흐. 따분한 이야기는 티르시한테 물어봐~. 나보다는 저 애가 더 잘 알 거야.

다리를 요염하게 움직이며 일어난 루시는 손을 저으며 내 앞을 슥 지나갔다. 향수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멈춰서서 나를 고혹적으로 쳐다본다.

“그게 아니면… 내 방에 와서 재미있는 애기라도 할래?”

루시의 손가락이 다가와서 내 턱선을 슥 훑었다. 그 익숙한 무빙에 나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아뇨, 제안은 기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프랑도 있는데 바람을 피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물론 나는 일부다처제를 꿈꾸는 놈이었지만, 그거랑 이건 다른 얘기였다. 프랑이 모르는 곳에서 딴 여자랑 몸을 섞고서 ‘얘가 2번째 아내야! 잘 지내줘!’ 하고 사후보고를 때리는 것은 문제소지가 많은 일이었다.

‘만약 그랬다가 프랑이 상처라도 받았다간 어떡하라고.’

새 아내를 들을 때는 프랑과 제대로 상의를 마친 뒤에 들이는 것. 그게 이세계인들의 문화를 받아들인 내가 프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매너였다.

뭣보다 아직 프랑이랑도 제대로 결혼하지 않았잖은가. 첫 아내랑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여자한테 홀라당 넘어가겠는가.

“꺄하하! 그럴 줄 알았어.”

나한테 단박에 까였지만 루시는 개의치 않고 웃었다.

이런 자잘한 실패를 신경쓰지 않는 것도 참 대단했다. 나는 여자한테 작업을 걸었다가 까이면 1주일은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럼 나는 가 볼게! 둘이서 일 봐~!”

그렇게 금발 머리 인싸녀는 폭탄을 던져놓고 휙 가버렸다. 나랑 티르시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허수아비처럼 남아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느 세상에서도 인싸의 페이스에 아싸들이 못 따라가는 것은 똑같나 보다.

나와 티르시는 어스레이트가 쓰던 집무실로 돌아왔다.

“일단 가장 걱정되던 부작용 건은 문제가 없다고 하니 안심이 되네요.”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티르시도 맞은 편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저도 검진하고 좋은 대답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약간 어색한 미소였다. 하긴 자랑스럽게 말하기에는 꽤나 부끄러운 내용이기는 했지.

─당신 꼬츄는 건강해요! 잘 됐네요! 짝짝짝!

젊은 여성이 내뱉기에는 영 낯뜨거운 얘기였다. 나는 티르시의 기분을 생각하고 다른 말을 꺼냈다.

“아무튼 아까 했던 질문을 마저 여쭤보고 싶습니다만… 어째서 루시 씨는 야수회귀를 노리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중요한 얘기였기에 물어보면서 자세를 똑바로 했다.

쥬지를 확대하는 마법은 누가 들어도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 세상 대부분의 남자들, 남편의 사이즈에 불만을 가진 부인, 그리고 이 마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까지!

그런 온갖 인간군상이 야수회귀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에 매료될 것이라고 나는 내심 생각했었다.

내가 마법을 공표하지 않았다가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세파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감당 못 할 스케일의 문제가 생겨나기 전에 야수회귀의 주문은 마법사 길드한테 기증해 버릴 생각이었다.

쥬지 업그레이드 패치 마법이란 존나 누구든 쓸 수 있는 복권 같은 것이다. 간수할 능력도 없이 가지고 있어봤자 나랑 프랑의 신변에 좆도 보탬이 안 된다.

이딴 트러블 소재는 빨리 남한테 줘 버려서 아예 나한테 책임이나 피해가 안 오게 하는 편이 낫다. 만인에게 공개된 마법을 얻겠다고 나를 찾는 머저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혹시 있더라도 마법서를 살 돈도 없는 병신이겠지.

‘나야 시발거 쥬지 문제만 치료받고 나면 나 몰라라 하고 튀어버려도 만사 OK고.’

그런 생각으로 부작용에 대해서도 솔직히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다른 사람들은 이 마법에 대해서는 시큰둥했다. 하물며 양심이라곤 없어 보이던 인종차별자 어스레이트 새끼마저 말이다.

그 이기적인 병신놈이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깐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야수회귀가 돈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나를 어떻게든 구슬려서 마법을 독점하려 들었겠지.

고로 이것은 마법사들한테 야수회귀의 부작용─쥬지 확대수술─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켰다.

나는 그 이유가 못내 궁금했다.

“으음. 결론부터 말해서, 웨인 씨와 같은 ‘부작용’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겪으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티르시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꺼냈다.

“변이마법의 부작용은 사람마다 달라요. 변이마법은 개인의 자질과 유전적 형질에 연관된 마법이니까요.”

“…조금 이해하기 힘들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배운 게 많은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자 티르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 설명이 길어질 텐데 괜찮으세요?”

“예. 부디 부탁드립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티르시가 선반에서 백지와 펜을 가져왔다. 티르시는 그걸로 사람 형태의 그림을 2개 그렸다. 프랑보다는 못하지만 꽤 섬세한 펜터치였다.

“변이마법의 오리진은 ‘신체를 원하는 방면의 적성에 맞게 바꾸는’ 마법이었어요. 흑마법사의 도달점인 리치도 그 일례라고 하죠.”

사람 그림의 옆에 화살표가 붙었다. 티르시는 그 화살표의 끝에 해골바가지 그림을 그렸다.

“흑마법은 위력이 강력한 대신에 사용자도 대가를 치뤄야 하잖아요? 그런 페널티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육체가 사악한 마나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흑마법사는 마법을 쓸 때마다 산채로 피가 썩거나 몸에 벌레가 들끓거나 한댄다. 황산을 담은 나무 용기처럼 몸이 흑마법의 마나에 걸레짝이 되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몸에 벌레가 들끓는다니, 존나 그로테스크해서 상상하기도 싫은 모습이다. 그런 끔찍한 대가를 치루는만큼 이세계의 흑마법은 무협지에 나오는 마공처럼 미친 성능을 보였다.

던전의 대표격이 흑마법사의 은신처인 것은 그래서였다.

자기 몸이 씹창나는 마법을 쓰는 새끼가 숨어서 뭘 꾸며대는데 그게 시발 어디 멀쩡한 일이겠냐. 당연히 바퀴벌레 소굴처럼 찾아내자마자 박멸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몸을 리치나 악마족으로 변이 시킬 수 있다면 그 흑마법사는 사악한 마나에 ‘적성’을 얻을 수 있게 돼요.”

티르시의 펜이 몇 번 움직였다. 해골바가지는 검은 오오라를 풀풀 흘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리치는 흑마법의 대가를 치루지 않죠. 마법학에 있어서 해골과 시체는 죽음의 상징. 죽은 자이기도 한 리치에게 어둠과 음(陰)의 마나는 힘을 돋구는 자원일 따름이니까요.”

“…야수회귀도 그런 종류의 마법이라는 뜻이십니까?”

“아뇨. 그런 불온한 마법은 아니에요. 단지… 야수회귀의 부작용은 여기서 말하는 ‘적성’에 좌우되는 걸로 보여요. 마나 파형의 형태가 학계에 보고된 BSK형(形)의 변이 패턴을 띄기 때문이에요.”

BSK형은 또 뭐야.

아니, 아까 루시랑 얘기할 때 들었던 것도 같은데? 빠르게 내 의문을 알아차린 티르시가 추가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BSK형이란 ‘베르세르크’ 형의 약자입니다. 베르세르크들이 사용하는 ‘짐승화’ 마법과 동일한 마나 파형을 그렇게 부르죠.”

티르시는 그리 말하면서 그림 속 사람에게 고양이의 귀와 꼬리를 달아주었다.

베르세르크.

그것은 얼스터, 바이킹과 함께 3대 야만족의 일각인 어떤 인종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얘들은 야만족 중에서는 유독 존재감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2대 야만족이라고 부르자니 어감이 나빠서 하나 더 꼽사리 껴 준 게 아닐까 생각 중이다. 역사에 무슨 발자취를 남겼다는 기록이 전무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강함은 얼스터인한테 밀리고, 포악함이나 기술력은 바이킹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떨어진다.

내가 아는 베르세르크는 커다란 대검을 들고 날뛰는 미친 인간이거나 프렌지를 켜고 칼질을 해대는 귀검사인데, 이세계의 베르세르크들은 ‘미쳐 날뛰다’라는 이름의 어원이 무색하게 참으로 온화한 놈들이었다.

그런 온화한 사람들이 야만족이라 불리는 이유.

그것은 베르세르크가 동물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소위 말하는 수인(獸人)이기 때문이었다.

수인(獸人).

그것은 털박이 새끼들이 헉헉대는 그 역겨운 2족보행 털뭉치들이 아닌, 동물의 귀나 꼬리 등이 자라난 사람들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지구의 역사 속 베르세르크들이 가죽을 뒤집어 쓰고 날뛰는 전사였다면, 이세계의 베르세르크들은 진짜로 동물의 귀나 꼬리가 자라난 인간+동물 반반무마니인 인종이다.

존나 피부색 가지고도 차별하는 인간들이 동물귀 달린 사람들을 야만족 취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행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진화론이나 백인우월주의가 발족하지 않은 세상이라서 격한 차별은 없다. 베르세르크들에게는 그것이 그나마의 구제일 것이다.

“짐승화 마법은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신체에 동물의 특성을 재현하는 변이마법이에요.”

티르시가 종이에 그려진 고양이 수인의 그림에 펜을 놀리면서 말했다.

“주된 부작용으로는 신체에 동물의 특색이 나타난다는 점이 있고… 또….”

한참을 막힘없이 설명하다가 머뭇거리는 티르시.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눈치 채고 대신 말해 주었다.

“음경의 확대 증상도 발견된 거군요?”

“…네. 개인차에 따라서는요.”

내 배려심에 티르시는 입을 달싹대다가 자신의 두 뺨을 가볍게 쳤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은 티르시의 얼굴은 백발이 잘 어울리는 냉정한 표정이 되었다.

“웨인 씨가 뭘 걱정하시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음경이 확대되는 효과를 노리고 누군가가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아닐까 하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방금 전까지의 머뭇거림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거침없는 질문이었다. 의식을 업무 모드로 전환한 걸까. 음경을 언급할 때마다 일일히 머뭇거리지 않도록 티르시도 애쓰는 모양이었다.

“저나 루시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야수회귀의 부작용은 음경의 확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수회귀의 부작용이 쥬지 확대가 아니라고? 내가 놀라자 티르시는 덤덤하게 말을 계속했다.

“이 마법의 부작용은 어디까지나 ‘신체 일부의 변화’에요.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는 개인의 유전형질에 의해서 정해지는 거라서 거의 랜덤이라고 볼 수 있죠. 음경의 변화는 변이현상의 일례일 따름이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야수회귀를 써도 음경에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확증은 없다는 겁니까?”

“네. BSK형의 변이 마법은 모두 부작용에 개인차가 있습니다. 혹자는 베르세르크들처럼 동물귀가 발현할지도 모르죠. 웨인 씨는 그저 우연히 부작용이 음경 쪽에 드러난 것으로 보이고요.”

시발.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 쥬지가 커진 것이 마법의 효과가 아니라 내 유전적인 문제였다니.

‘다시 말해서, 야수회귀의 부작용으로 쥬지가 커지기는 커녕 되려 작아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인가.’

부작용이 유전형질에 따라 정해진다면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오이 냄새를 극혐하는 사람이나 멀미를 하는 사람이 태생적으로 그렇게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다들 관심이 없을 만 하네. 이것은 자기 몸뚱이로 가챠를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이킹 상남자가 쥬지가 커질 확률을 믿고 배웠다가 고양이 귀가 자라나서 네코미미 근육마초가 될지도 모르는 마법!

이러는 나도 끽하면 냥냥풍풍권이나 쓰는 이세계 마초냥이 노르드가 될 뻔 했었던 거다. 쥬지 업그레이드 효과가 나타난 나는 운이 존나게 좋았던 거였구나.

“음… 그래도 연구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의도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눈을 굴리다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희대의 발명이라는 것들은 보통 예상치 못한 우연에서 시작되는 법이었다.

생물학자 플레밍이 우연히 발견한 푸른 곰팡이가 기적의 항생제 페니실린으로 진화한 것처럼, 야수회귀도 좀 이렇게저렇게 연구해서 쥬지 강화 마법으로 개조하려 드는 사람이 나올 만 하지 않을까?

“아뇨. 그건 힘들 거에요. 벌써 많은 마법사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짐승화’의 변이 현상은 컨트롤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티르시는 교과서에서 배운 글을 읊는 것처럼 대답했다.

“변이마법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마법이에요. 제대로 변이를 조절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신체부위의 재생, 병의 치료, 병사의 강화 등 온갖 방면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겠죠.”

“그건… 그렇겠군요.”

“네. 그래서 변이마법의 연구에 도전한 사람은 많았어요. 하지만 모두들 실패했죠. 로마니아에 있는 저희 마법사 길드의 총본산에서도요.”

마법사 길드도 이미 변이마법 연구는 했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특이할 것 없는 얘기였다. 학자란 밥 먹을 때마저도 어디 연구거리 없나 생각하며 사는 인종이다. 내가 떠올릴 법한 연구 쯤은 진작에 다 해 봤겠지.

‘근데 전부 실패했다고?’

곰곰히 생각해 보고 남득이 갔다.

지구에서도 스테로이드는 개발했지만 부작용까지는 없애지 못했다. 비슷한 이유로 변이마법의 컨트롤이란 완성이 지난한 연구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변이마법을 통제하는 기술은 확립하지 못했어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티르시는 그림 옆에 플라스크를 그리고 ×자 표시를 했다.

“그래서 야수회귀의 부작용은 굳이 연구할 의미가 없어요. ‘짐승화’의 연구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야수회귀는 부작용의 발생 원리가 짐승화와 동일하기 때문이죠. 연구해 봤자 지난 실패의 답습에 불과할 테니까요.”

“따라서 야수회귀를 노리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거군요.”

정확한 이유를 알고 나니까 안심이 됐다.

야수회귀는 사람의 적성에 따라서 부작용이 랜덤으로 나타나는 마법이다. 이런 마법을 노리려고 드는 사람은 없겠지. 혹시 있더라도 나한테까지 찾아와서 땡깡을 부리지는 않을 거고 말이다.

“하지만… 저한테만 마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아직 모르겠군요.”

나는 나 외에도 야수회귀를 사용했던 사람들을 손으로 꼽으면서 말했다.

야수회귀는 나한테밖에 효과가 없었다. 어스레이트 새끼도 이 마법은 미신에 불과한 거라고 일축하지 않았던가. 그 새끼 말을 지나치게 믿는 것도 어떨까 싶기는 하다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그리 묻자 티르시는 약간 말하기 거북한 듯한 얼굴이 되어서 설명했다.

“죄송해요. 그건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서… 얼스터의 마법은 거의 연구가 되지 않거든요.”

“아아, 그랬죠. 압니다. 저도 고고학자인걸요.”

얼스터인들은 역사를 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문명 수준도 낮은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알몸뚱이로 살 정도니까.

남겨진 유적이나 유물이 없으니 고고학자가 연구를 해 봤자 돈이 될 여지가 적다. 그래서 얼스터의 역사나 마법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뭐, 모른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작용만 없음 됐죠.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심코 유적의 문구를 떠올렸다.

─석비에 글을 남긴 브란웬 뭐시기 씨는 야수회귀 마법을 ‘벗’에게 받았다고 표현했다.

석비에서 지워진 ■■■■라는 문자는 야수회귀를 전해준 ‘벗’의 이름일 것이다. 이건 나라의 이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나 신의 이름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벗’에게 야수회귀를 받은 에린 사람들은 나처럼 야수회귀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러다가 어느날 부작용으로 인해 신체에 변이가 일어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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