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009)

“크크크크크크!! 매직 아이템 다 뒤졌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고의 행복이었다. 기운을 차려서 좋아 죽는 나를 보고 프랑이 흐뭇하게 박수를 쳤다.

“잘 됐다, 노르. 이제 나한테 ‘인상 미채’의 가면을 만들어 줄 수 있겠네?”

그게 그렇게 되나?

웃는 얼굴인데 눈빛은 개쌉진지 그 자체인 프랑의 미소에 나는 몸이 굳어버렸지만, 아무튼 이게 기뻐할 일이 맞기는 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저 신나 하기로 했다.

“마, 맞아!! 까짓거 잔뜩 만들어 줄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축하드려요, 선배~♡!”

라리루라도 축하를 해 줬다. ─짝짝짝! 나는 박수를 치는 라리루라를 보고 씹정색을 했다.

“너 이 쉑 어디서 밑장빼기냐. 책 도로 내놔라?”

“쳇. 장난이에요~ 장♥난.”

가슴 골짜기에서 책을 꺼내서 돌려주는 라리루라. 시발 그건 또 어느새 거따 넣어놨대.

으으, 하여간 크라운 산도 오타크쉑. 욕심은 드럽게 많네.

─메다다다닥!!

그렇게 책자를 돌려받고 챙기자 발소리가 들렸다. 갑옷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경비대였다. 나는 춤추다가 제정신을 차렸다.

“프, 프랑! 내가 입는 코스튬 혹시 없어?!”

“아, 혹시 몰라서 로브를 몇 개 받아오긴 했어. 링링이 3호 안에 잘 개서 넣어놨는데. 라리루라?”

“네에~♡ 여기 잘 있답니다!”

라리루라가 옷을 꺼냈다. 저 꼭두각시의 배 안은 이동형 창고 같은 건가.

아무튼 살았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타뷸라의 가면까지 썼다. 프랑도 가면을 쓰고 신분을 감췄다.

“……앗. 망했다.”

라리루라만이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크기의 링링이 3호를 보며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게 있어서는 얼굴이나 몸을 가려도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간에, 다 끝난 뒤의 뒤처리를 하는 게 제일 귀찮고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경비대는 난장판이 된 서커스단에서 불법 거래의 장부를 찾아냈다고 한다.

“저희가 진입하니 동물들이 갑자기 얌전해지더군요.”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아재가 말했다.

“그래서 내부를 수색하고 범인을 찾으려는데, 저주받은… 실례. 몸에 장애가 있으신 분들이 동물들을 지키면서 사정을 설명하더군요.”

“그 분들이 말입니까?”

“예. 조련사들이 죽고 실세를 휘어잡던 마법사나 단장까지 도망치자 기회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납득이 갔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평생을 서커스단에서 시달렸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세상에서 차별받는 프릭쇼의 피해자들이 스스로 탈출하길 바랄 정도라니. 그 새끼들의 가혹한 학대는 동물과 어린애들에게 그치지 않았는가 보다.

“말씀하신 내용과 납치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일치했습니다. 의심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요.”

그렇게 말한 경비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말은 저렇게 해 놓고 나한테 수갑이라도 채우려고 저러나?

나는 어깨가 떡 벌어진 아재가 갑자기 일어나자 쫄아서 그리 생각했는데, 경비대장은 길에 모여있던 경비대원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기리이이이이이입!!!!”

“기리이이이이이입!!!!!”

─척!! 경비병들은 익숙한 것처럼 발을 맞췄다. 솔직히 좀 발도 안 맞고 어설픈 면도 있었는데, 표정만큼은 독립투사님들에게 버금가는 진지한 것이었다.

경비병들을 차렷 시킨 경비대장은 척 소리가 나도록 군기가 든 움직임으로 내게 경례를 했다.

“전원──!!! 경례!!!!!!”

─척! 처척!!

서른 명을 넘는 경비병들이 각을 맞춰서 내게 경례자세를 보였다.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이는 나에게 경비대장이 말했다.

“저희 헤이스벤트 경비대 일동. 아서 웨인 님 및 세 분의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 예, 예…….”

나는 이렇게 인사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조금 반응이 곤란했다. 그런데 경비대장은 대표로 인사를 하고서 내게 허리까지 숙이는 것이 아닌가?

“저도 경비병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할애비입니다. 모든 시민 분들을 대표하여……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아뇨, 어엄…. 으음…. 괘, 괜찮습니다.”

감사 말고 돈으로 주면 안 되나.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들킨 것은 아니겠지만 경비대장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

“크뤼소스 서커스단의 재산은 절반이 피해자들의 구조나 고향으로 돌아갈 뱃삯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웨인 님께 기증되겠지요.”

“예? 아, 크흠. 흠. 그렇군요.”

신나서 되물으려다가 참았다. 존나 저런 감사인사까지 받아놓고 속물적인 느낌이 드는 행동은 자제한 것이었다.

그래도 내 기분을 이해한 것인지 경비대장이 피식 웃었다.

“금액을 산정한 뒤에 다시 찾아뵙고자 합니다만, 그때까진 헤이스벤트에 묵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여관비가 문제라면 저희 경비대에서 금액을 모금해서 내 드리겠습니다.”

“어험. 그건 듣던 중에 기쁜 소식이군요.”

나는 헛기침을 하며 아닌 척 호의를 받았다. 꽁돈에 무료 여관비라니? 이걸 사양하기에는 내가 벌인 일이 쬐끔 영웅스럽기는 했다.

여기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 드립을 치면서 쿨하게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영웅은 보수를 바라지 않는다’는 개소리를 하면서 그때 힘낸 사람들에게 보수가 지급되지 않으면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이것은 옳은 판례를 남기기 위한 행위다. 결코 내 사적인 욕심이 아니다. 아무튼 아님.

“이 어리석은 녀석!!”

─찰싹!

나는 대화하는 도중에 들려온 호통소리에 경비대 구석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서는 에리카가 신부복을 입은 노인에게 크게 혼나고 있었다.

“몰래 빠져나가서 서커스단 분들을 귀찮게 만든 걸로 모자라,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폐를 끼치다니! 네가 네 잘못을 알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에리카는 노인─아마도 고아원장─에게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그걸 아동폭력이라고 생각하고 말리기는 힘들었다. 노인의 눈가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랑 경비대장은 약간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라리루라?”

“네!!! 단장님!!!”

무릎을 꿇고 앉은 라리루라는 알렉산드라 씨의 말에 허리를 쫙 펴고 대답했다. 시발 내가 신병 때 상꺾 부대장한테 털릴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알렉산드라 씨는 분노를 감추며 말했다.

“제가 말했죠? 위험한 일이나 남의 사정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된다고.”

“네!!! 늘 말씀하셨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저희들의 일은 손님들에게 미소를 주는 것이지, 골목에서 우는 아이를 찾아가서 웃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네, 네.”

“대답은 1번만. 그리고 목소리가 작습니다.”

“……네!!!”

“후우우우……. 그런데도 당신은 도시의 일에 머리를 들이밀고, 하물며 그 사건의 피해자들을 서커스단에게 맡기고 또 뛰쳐나가기까지…….”

알렉산드라 씨는 골치가 아프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쪽으로 다가왔다. 경비대장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

“알렉산드라 레오반테스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중간에 프랑이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서 같이 갔으니까.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해주는 것은 배려심일까.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 일은──”

“사죄라면 받지 않겠습니다. 저희야말로 라리루라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나는 사과하려는 알렉산드라 씨를 말렸다.

저 사람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라리루라 없이는 일이 이렇게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우리가 감사인사를 한다면 몰라도 사죄를 받는 것은 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배려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라 씨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리고는 시무룩해져 있는 라리루라를 흘겨봤다.

“저 아이는 고아들을 지나치질 못하더군요.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서커스단원에게 있어서는 큰 단점이죠.”

“서커스단장이신 알렉산드라씨한테는 그렇겠지만, 저는 꽤 호감이 갑니다. 남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도 알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 아이도…… 고아였으니까요.”

나는 훅 들어온 말에 잠깐 놀랐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라리루라는 알렉산드라 씨를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없었고, 고아원의 생활을 잘 아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자기 나이가 확실하지 않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나. 알렉산드라 씨는 한숨을 참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저 제멋대로인 아이의 고집에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사죄가 아니라 저로부터의 감삿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알렉산드라 씨는 그렇게만 말하고 라리루라를 데리고 돌아갔다.

아마 제대로 된 훈육은 여관에서 시작될 것이었다. 내게 몰래 손인사를 하는 라리루라의 죽상이 그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웨인 씨. 돌아가시는 길을 호위하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경비대장이 다시 다가와서 말했다. 그는 수염으로 덮힌 얼굴로 자신 있게 웃었다.

“헤이스벤트 제일의 여관으로 안내해 드리죠.”

나랑 프랑은 그렇게 일박 15쿠퍼의 초대형 고급 여관으로 안내를 받았다.

아무래도 며칠은 더 이 도시에 묵게 될 듯 했다.

일박 15쿠퍼의 가격은 장식이 아니었다.

“와 시발 개쩌네.”

나는 안내받은 특실에서 가면을 벗으면서 감탄했다. 구석탱이 시골 영지라고 얕봤었는데, 정말 똥송합니다. 하루 15만원 값은 하는 모양이네용.

─푹신푹신.

“오옵오옵.”

침대에 누워보니 존나 부드럽고 편안하다. 이건 오늘밤은 개꿀잠 각이군. 프랑도 외투를 벗고는 감탄했다.

“멋지다. 무슨 저택 같아.”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이런 곳에서 살자, 우리.”

“푸흐흐. 그러러면 우리 둘 다 무지 힘내야겠네.”

프랑은 그렇게 웃고서는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자, 노르. 이제 옷 벗어.”

“네휑?”

머라고요? 나는 눈을 꺼벙하게 떴다. 머지? 빠구리 한 번 뜨자는 뜻인가?

씁. 지금은 쫌 피곤한데. 성욕이 넘치는 내가 프랑의 권유에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꽤 힘들 것 같았다.

“프랑. 내일, 아니 오늘밤에 한숨 자고 하면 안 될까? 나 오늘은 피곤해서 발기 못 하겠는데.”

“헛소리 말구, 윗옷 벗으라구. 상처 보게.”

“앗 네.”

우리 여친님이 넘모 거침없어지셨다.

아니, 말투나 눈빛에서는 여전히 사랑이 느껴지지만 모성애의 단계가 레벨업한 느낌.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던 갓난애가 이제 다 커서 제발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 어머니의 시선이었다. 잘못을 엄하게 다스리려는 듯한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오우 쒯.

상의를 벗고 펌핑된 근육을 드러냈다. 프랑은 내 등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이건 아무래도 흉터가 남겠다. 노르, 아까 싸우다가 독에 중독되지 않았어? 그건 괜찮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해독 포션도 마셨고.”

“잠깐 쉬었다가 신전에 가자. 무슨 일 나면 어떡해.”

“그래, 그래. 갔다 오지 뭐.”

나중에 프랑을 병원에 데려가려면 여기서 싫다느니 괜찮다느니 하는 소리는 엄금이었다. 나는 옷을 다시 갈아입고 프랑이랑 같이 신전에 갔다.

“이상 없습니다.”

젊은 사제는 10분으로 진료를 땡치고 10쿠퍼짜리 해독약 하나를 강매했다.

효과가 느리고 재료가 싸서 저렴한 물건이다. 마비독을 분해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맛은 씨발 정액이 이런 맛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리고 썼다.

“그웨에에엑.”

“노르, 밥 먹을 수 있겠어?”

“어. 뭐라도 먹어서 이 맛을 잊어버릴련다…….”

내친 김에 먹을 거리도 적당히 사왔다.

15쿠퍼 여관에서는 아서 웨인의 가면을 써야 되니까 식당에서 밥을 못 먹는단 점이 유일한 오산이었다.

“자네 들었나? 납치범들의 정체가 서커스단이었다더군!”

“당연히 들었지. 어디 무서워서 서커스 보러 가겠나.”

식료품점에서 조금 비싼 햄을 사고 있는데 그런 대화가 들렸다. 점주가 한가한 아재들과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진 몰라도 플랑궁쿨라 서커스단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떠난다더군. 납치범이 잡힌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의 공연은 무료라나 뭐라나!”

“그건 듣던 중 다행이군. 눈치껏 떠나준다니 안심이 되는구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공짜 서커스나 보러 가 볼까? 돈이 아까워서 안 갔으니 마지막 정도는 좋지 않겠나.”

“흐흐. 생각해 보겠네.”

떠드는 소리를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왔다. 프랑은 가면을 쓴 고개를 모로 꼬았다.

“들었어? 라리루라네 서커스단,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고 내일이면 헤이스벤트를 떠난대.”

“그래. 다음 목적지가 사르가디스인 게 아니라면 이제 작별이겠네.”

내가 대답했다. 많이 아쉽지만 세상이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우리가 그들을 붙잡는 것도 일방적인 민폐였다.

“프랑. 오늘 밤에 인사라도 하러 갈까? 그 망할 프릭쇼를 보느라 썩은 눈도 정화하고, 작별 인사도 하게.”

“그럴까? 라리루라라면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오겠지만 우리가 가는 편이 빠르긴 하겠다.”

그렇게 오늘밤에도 서커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본 서커스가 최악의 학대쇼여서는 뒷맛이 영 더럽지 않겠는가. 라리루라가 아침 일찍부터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오게 만드는 것도 미안하고 말이다.

─와구와구.

우리는 여관에 돌아가서 식사를 했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 뭘 먹은 것 같지도 않았기에 거의 하루치 분량의 식사가 몽땅 다 위장으로 들어갔다.

프랑도 빵 2개에 훈제 햄을 가득 먹고서 엎어졌다.

“노르. 나 있지, 한 끼에 이렇게 많이 먹은 거 처음이야.”

“나도 역대급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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