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열심히 모아온 마나 적금통장을 깨거나 말이다.
“그러게 팔이 아니라 대가리를 2배로 늘렸어야지!!”
나는 공격을 계속하며 외쳤다.
위치 추적을 당했다는 걸 알았으면 아예 잠복하면서 때를 노렸어야 했다.
지 힘을 과신하고 마법진의 사용을 서둘렀기 때문에, 놈은 지금 궁지에 몰렸다!
우리 파티원들은 위치를 이동하며 다시 MP 가성비가 좋은 공격 마법을 발사했다. 냉기 화살이 안면에 적중하자 오우거 새끼의 분노가 이성을 웃도는 것이 느껴졌다.
“WWuuuuuuuu!!!!”
오우거가 미친 것처럼 포효하면서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나는 그것을 피하며 몽둥이를 쥔 손을 팔꿈치로 찍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녹색 피부의 우락부락한 손이 몽둥이를 놓쳤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마무리를 준비하려고 했다.
─희번뜩!
누런 눈을 빛났다. 오우거의 팔이 움직였다. 몽둥이를 놓친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짐작한대로 이 새끼에게는 전사의 기질이 있었다. 오우거의 그렇게 나의 움직임을 멈추고, 모아뒀던 불꽃을 지근거리에서 ᚺ(Hagalaz)의 폭산시켰다.
─퍼어엉!!
눈앞이 불꽃으로 물들었다. 오우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납게 룬 마법을 작렬시켰다.
“ᚺ(Hagalaz)!! ᚺ(Hagalaz)!! ᚺ(Hagalaz)──!!”
─콰과과과과광!!
6발의 불구슬이 꼬리를 이으며 내게 작렬했다.
화염방사기가 장난감처럼 보이는 고화력의 연쇄는 화재가 일어난 수류탄 창고를 방불케 했다. 1방은 내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과 비슷한 위력이었지만 연사력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연히 이 가까운 위치에서 불꽃을 작렬시키면 자기도 폭발에 휘말리고 말 것이었는데, 오우거는 자신의 마법 내성을 믿었던 듯 했다.
공격과 방어에 2배나 되는 마나를 써서라도, 전위인 나를 조져놓으려고 한 판단이었다.
“나약한 열등종 주제에 짐을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 나름 훌륭했다.”
─쿠웅. 오우거는 촛불을 수천 배로 부풀린 것처럼 불타는 나를 놓아버리며 말했다.
“네놈의 고기는 먹을 가치가 있겠노라. 실로 몇십 년 만의 만찬이 되겠……”
우쭐해서 지껄이던 오우거가 말을 멈췄다.
그건 내가 불에 활활 타면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느샌가 손에 회수한 창 때문일 수도 있겠지.
오우거가 멍청하게 입을 벌리는 것을 보며, 나는 기습의 성공을 직감했다.
“파이어 펀치.”
─촤아악!! 불을 꼬리처럼 흩뿌리며 창을 일자로 휘둘렀다.
“ᚹ(Wunjo)──!!”
오우거는 룬을 발동하며 팔을 몽땅 모아서 가드를 올렸다.
굵은 팔이 네 개나 나란히 서자 마치 근육으로 된 방패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미스릴 창날이 세로로 번뜩이자 녹색 피부는 보라색의 피를 뿜어내야만 했다.
“끄으하아악……!!”
“말했잖아. 맞딜로 개길 거면 장비 좋은 거 쓰라고.”
나는 오우거 새끼의 팔다리를 썰어놓고자 창을 들었다.
라리루라가 <꼭두극(Puppetry)>을 부여해 준 창대를 말이다.
부여마법.
그것이 내가 불꽃에 활활 타면서도 멀쩡하게 창을 회수해 반격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니새끼만 마법 걸린 템 갖고 다니는 게 아니거든.’
저번 싸움 이후에 승급 시험을 치기까지의 남는 시간 동안, 나는 라리루라에게 내 창에 <꼭두극>을 걸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계에서 싸울 때, 돈 들여서 만든 창을 던지고 맨손으로 끼요욧 할 뻔 했던 경험을 살린 것이었다.
그것이 창을 회수한 비결이었으며, 불에 맞아도 멀쩡했던 것은 베로니카 덕분이었다.
베로니카가 ᚦ(Thurisaz)의 룬을 새겨준 나무 부적!
여기 오기 전부터 우리는 전원 그것을 장비한 상태였다.
부여 마법을 모르던 시절에도 내가 인상미채의 가면을 만들었던 것처럼, ‘새겨서’ 발동하는 룬은 남에게 그 효과를 나눠 주는 것도 간단했다.
부여 마법의 재료가 없었기에 베로니카한테서 떨어지면 효과는 뚝 끊기고 말 것이지만, 주술사를 상대로 이런 대비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존나 대놓고 티를 냈다면 오우거도 마법을 파훼했겠지.
그렇기에 나는 불구슬을 경계하는 척을 하며 정면에서 기습할 틈을 노렸다.
“자자, 손님. 팔다리 잘라드릴 테니까 가만히 계십셔? 제가 수의대생이긴 한데 애완 오우거 수술은 처음이라서요.”
육손인 사람들은 손가락을 하나 자르는 수술을 하니까, 이 새끼도 팔다리 3~4개 정도는 오차 범위가 아닐까?
나는 그리 말하며 창을 들었는데,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오우거는 터프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부웅!! 오우거는 두 팔을 방패처럼 세워서 몸통을 지키며 주먹을 날렸다.
창을 내려서 막으려던 나는 그 새끼의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ᚹ(Wunjo)의 룬과, 주먹에서 느껴지는 파괴력에 생각을 바꿨다.
냉정한 머리로 스텝을 밟고 공격의 범위에서 피하는 나.
오우거는 충혈된 눈으로 그런 나를 쫓으면서 오른편의 2개 달린 주먹을 연사했다.
─부웅!! 부웅!! 부웅!!
연사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복싱 선수가 팔을 2개 달고 잽을 번갈아가며 날리는 것처럼, 내 허리랑 비슷한 굵기의 주먹이 노쿨로 쏟아졌다.
위력도 얕볼 수 없었다. 헛방질을 친 공격이 숲의 바위를 두들기자 바위가 다이너마이트를 채워서 터트린 것처럼 폭발하여 흩날렸다.
‘시발, 존나 무섭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거리를 벌렸다.
저 오우거 새끼, 마법전이 MP량 싸움으로 이전됐다는 걸 눈치까고 육탄공격으로 지 패턴를 바꾼 것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관두고 오우거의 좌측으로 횡단했다.
베로니카는 미리 짰던 작전대로 움직이며 외쳤다.
【그대여!! 신체를 강화하는 ᚹ(Wunjo)의 룬이다!! 정면에서 싸울 생각은 말아라!!】
【저게 니가 빼앗겼다는 그거지!!】
【그렇다!! 놈이 ᛃ(Jēra)의 룬으로 앗아간 나의 룬이다!!】
오우거가 발동한 것은 베로니카가 빼앗긴 룬이었다.
저 양심 터진 마나 도둑놈은 나한테서 ᚲ(Kenaz)와ᚨ(Ansuz)의 룬을 쌔벼간 것처럼, 이번에는 베로니카한테 훔친 룬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씨발 R4칩 같은 새끼이이─잇!!”
나는 공방일체의 전차처럼 달려드는 오우거 새끼에게 눈을 부라렸다.
부모도 잡아먹을 식인 몬스터 놈의 얼굴에 어릴 시절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생일선물로 포켓몬 플라티나를 받고 학교에 가져간 날!
요즘 누가 그딴 걸 하냐며 R4칩에 다운받아 온 기라티나 팩을 자랑하던, 곰보빵 안경잽이의 얼굴이 말이다!
“평소에 쇠질도 안 하던 새끼가 마법빨로 힘만 높여서 전사 흉내를 내다니!! 네놈은 양심도 없느냐!!”
눈이 돌아가서 소리를 쳐댄 나였지만, 그래도 빡친 건 빡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능력치 차이가 도로 역전되고 말았다. 베로니카에게 빼앗긴 룬이 대충 어떤 효과인지는 설명을 들었는데, 우리 예상보다 출력이 높았다.
원 주인인 베로니카의 말로는 내 야수회귀처럼 적성을 존나 따지는 기술이 아니라서 기본 위력이 낮은데다가, 무리하면 부작용까지 온다는 얘기였다.
‘부작용은 우리가 신경쓸 바가 아니지만, 이 출력은……!!’
드디어 쓴 것인가?
그리 생각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진 탓이었을까. 오우거의 주먹을 못 피할 타이밍이 찾아왔다. 나는 눈에 마나를 집중하고 펀치 연격을 창으로 받아냈다.
“끄윽……!!”
펀치의 충격을 흘려내고 오우거 놈의 팔을 회피했다.
저기 붙잡히면 이번에는 서브미션이나 마운트를 당하고 말 것이었다. 우리 아내들도 아니고 땀내 나는 초록 피부 깍두기 새끼랑 몸을 부대끼라고? 좆까라 그래라.
그래도 고생한 만큼 봄이 온다고, 티르시가 뒤에서 마법을 쏴대며 외치는 것이 들렸다.
【노르드! 오른쪽 허리!! 거기에 매단 악세서리에요!!】
‘──저건가!’
내 눈이 찰나의 순간에 오우거 놈의 옆구리에 감춰진 둥근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리는 작전을 세우며 생각했다.
기습으로 목을 딸 수 없다면, 오우거 새끼는 궁지에 몰린 뒤로는 모아둔 마나를 전투에 쓸 것이라고 말이다. 뒤져버린 뒤에는 적금이고 좆부랄이고 쓸모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문제다.
오우거 새끼가 모아둔 마나를 쓰기 시작하면 우리 승산은 없어질까?
‘아니, 그럴 리가.’
마법의 위력은 마나 소모량과 숙련도의 곱연산이었다.
내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이 처음에는 장작을 태우는 것도 힘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좋다. 놈이 마나 낭비를 각오해도 우리가 순식간에 전멸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기에 작전 상의 내 역할은 딱 하나였다.
─슈팟!!
창을 들고 진각을 밟았다. 오우거는 가드를 세우며 반격하려는 스탠스를 취했다. 아주 좋다. 얻어맞을 걱정은 없겠다. 나는 입가를 비틀며 속삭였다.
푸화아아아아악──!!
내 비전절기 마마무(魔磨霧)가 엄청난 기세로 오우거 주변 3미터를 메꾸었다.
“Woooooo──!!”
오우거가 짐슴처럼 포효하며 움직였다.
잘난 머리로다가 내 목적을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이 타이밍이라면 내가 더 빨랐다. 저 새끼도 지가 튈 때 썼던 바꿔치기 술을 돌려받을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상상도 못한 연막 작전 카운터였다.
육탄전 중에도 이 마법을 아끼려고 뭉게뭉게 총을 쓰지 못 했다.
왜냐하면 나는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 새끼에게 완벽한 기습을 성공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내 작전 상의 역할.
그것은 ‘마나를 모아둔 아이템’을 빼앗는 것이었다.
“적금 깨, 새꺄. 니 장례식비는 니가 내야지.”
땅바닥을 기는 것처럼 몸을 낮추고 창을 휘둘렀다.
─서걱! 창날이 소매치기처럼 은밀하게 오우거의 허리를 베어갈랐다.
나는 손을 뻗어서 오우거가 허리춤에 숨겨 놓았던 고대문명의 유물을 챙기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도둑놈 새끼에게는 도둑질로 보복하는 것이 도리였다.
“──내놓아라아아아아아!!!”
내 손이 허리에 찬 보물을 가져간 순간의 일이었다. 오우거는 지축을 흔들며 내게 달려들었다. 두 눈에서 번개를 튀기는 그 새끼의 손을 피하며 유물을 확인했다.
어딘가 옥새처럼도 보이는 룬 스톤!
그것이 오우거가 가진 ‘마나를 모으는 유물’이었다. 나는 그 물건을 챙기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우거 왕이라. 골계로군. 영토도 백성도 없을 텐데.”
“우매한 소리를!! 브리타니아는 짐의 땅이다!!!”
가드를 내린 오우거는 옥새를 빼앗고자 손을 휘저었다. 난 빡집중을 하며 회피에 전념했다. 직선거리 잽도 피해냈던 나였다. 마구잡이인 훅에 잡힐 리가 없었다.
“짐이야말로 이 땅의 주인이다!! 열등종들로부터 옛 왕가의 땅을 되찾고, 짐이 계승하였어야 할 왕조를 재건할 오그헤스의 패왕!!”
분개한 오우거가 궤변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나는 그런 오우거의 고함에 인상을 썼다.
‘말을 하는 오우거 종족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저 놈은 그 상위종의 일원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기억해 둬야 할 정보였다.
“<얼음의 화살>.”
나에게서 어떻게든 원반을 되찾으려고 맹진해 오던 오우거의 몸에 티르시의 마법이 날아들어와서 꽂혔다. 오우거 새끼의 광분이 거세졌다.
“열등종에 낙오종이 한데 모여서는!!”
오우거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창을 무기로 삼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얼굴에 저 새끼의 침을 한 바가지 뒤집어 썼을 것이었다.
아마도 지성은 남아 있는 모양인데, 유창한 발음과 괴리되는 몬스터 그 자체인 얼굴이었다.
“저열한 인간 주제에!! 네놈들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짐의 패도를 방해하느냐!!”
“이거 존나 미친 새끼네. 니가 먼저 도둑질 했잖아 씨발아.”
나는 침을 튀겨대는 오우거에게 일침을 놓아 주었다.
범죄자를 상대로 로지컬한 대화를 바라는 것이 사치겠지만 암만 그래도 저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오우거는 적반하장으로 내게 살기를 쏘아붙였다.
“치기 어린 소동(小童)도 아니고, 고작 그딴 이유로 이 몸의 보배를 훔치겠다는 것이냐!!”
“이, 이 건방진 열등종 놈이!!!!”
“응애1미.”
내가 지식인으로서 품위 있게 반박해도 말이 안 통했다. 역시 오우거 새끼한테는 내 말에 공감할 양심이 없었는가 보다.
내가 티르시한테 말한대로 양심=지능이라면 저 놈은 사실 별로 똑똑한 것도 아닐 듯 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지구도 이세계에도 지식인들은 모두 양식 있는 문명인이었겠지.
그때였다. 한 가지의 깨달음이 내 뇌리를 스친 것은.
나는 뇌수에 탄산수를 들이부은 것처럼 상쾌한 느낌으로 저 오우거 새끼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늦은 감조차 있었다.
‘그런가…… 그랬던 건가.’
나는 최근에, 많은 목표가 생겨나며 다양한 사태를 맞닥뜨렸기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서였을지도 몰랐다. 내가 나의 가장 원초적인 목표를 잊을 뻔 했던 것은 말이다.
나랑 베로니카가 노력해서 일궈낸 성과를 훔쳐가서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악독한 에고이즘.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조차 않는 정신구조.
그딴 생물은 이세계를 전부 뒤져도 ‘그들’ 뿐이었다.
“네놈도.”
공격을 시작하는 오우거가 느리게 보일 만큼 가속된 체내시간 속.
나의 중얼거림은 무의식의 발로처럼 흘러나왔다.
“네놈도── 교수였나.”
깨달음 뒤에 찾아온 것은 자책이었다.
최근 프랑과 다나와 셋이서 행복하게 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석사를 탈출한지 이제 1달도 더 넘어서, 군바리가 사회에 적응하듯이 트라우마를 잊어갔던 것일까.
남에게서 원하는 것을 갈취하여 자기 좆대로 쓰는 악독한 작자를 보고서도, 그만 저 오우거가 교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았다.
아니, 나는 그렇다고 치자.
룬의 마나를 빼앗긴 것은 분한 일이지만, 내가 룬을 얻는데 들인 노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복구하는 것도 훨씬 쉬운 일이라고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