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메이드는 3초 정도 시간을 줬다가 F4 레이싱 걸처럼 깃발을 펄럭였다.
【──시합 개시!】
우르실라는 몇 번 해 봤다는 말대로 얼 타지 않고 공격을 했다.
발로 진각을 밟으며 검을 휘두르자 마나가 요동쳤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는데, 아마 마법일 것이었다. …쐐애애액! 귀를 세우니 들려오는 작은 바람 소리!
【──바람의 상처인가!!】
그것도 효과 이펙트가 사라진 짱깨 핵 버전이다!
【비겁하다, 투명 치트!!】
【바람이 눈에 안 보이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우르실라는 대충 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당연히 날려댄 인비지블 바람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더럽군. 역시 마녀 더러워.
─슈와아악! 위기를 눈치깐 몸에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이 덮였다. 점심을 먹은 고삐리가 책상에 누워서 조는 것처럼 보편적인 생리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법의 발동을 해제했다. 결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람의 상처가 닿을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5초? 3초?
‘3초컷 쌉가능.’
야수회귀 대신에 내면세계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손바닥에 올린 태양을 뭉개는 것처럼 주먹을 쥐자 구신의 마나가 몸의 구석구석까지 돌았다.
구신의 마나가 나의 마나-카테터를 공구리질한 것이었다.
겉모습에 변화는 없었는데, 나는 확실한 스펙 강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몸은 생물 중에서는 약한 편이었다. 몬스터랑 비교하면 오우거랑은 비교도 안 되고 오크한테도 밀리는 수준! 하지만 이 구신의 마나로 공구리친 상태에서는 그 기초 스펙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야수회귀 모드의 내가 자전거에 자동차 엔진을 단 거라면.
【게르튀르】 모드의 나는 몸체도 엔진도 오토바이!
그것도 무한궤도를 붙인 전천후 전술 오토바이다.
핵전쟁 이후의 세기말에서 분노의 질주를 하고 다닐 고성능 머신 말이다. 오딘께서 나를 보셨어! 나를 발할라로 데려가 주실 거야!
─붕붕붕붕!! 나는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는 창!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2 품새였다.
존나 창을 회전시켜서 공격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무술 좀 해 봤다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이런 병신이 다 있냐면서 부랄과 이마를 마빡이처럼 번갈아가며 치겠지. 지구에서 이딴 무술은 세상 천지를 찾아봐도 없을 것이었다.
─칭칭칭탱탱탱!!
하지만 창은 바람의 칼날을 깔쌈하게 튕겨냈다.
다른 사람의 마나를 거부하는 창이 우렁차게 울면서 바람 칼날을 파훼한 것이었다.
창의 회전 사이로 빠져나온 공격에 맞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딴 허접한 기술이었다면 오딘이 쩐다고 이름까지 지어줬겠는가?
물리법칙 왕복 뺨싸다구는 마법사들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마나와 스펙이 받쳐주면 전사도 상식을 좆까는 무빙이 가능했다. 【게르튀르】는 그 예시였고 말이다.
【호오! 괜찮은 창술이군!】
우르실라가 질주해 오며 감탄했다.
동감이었다. 인간은 풍차를 이길 수 없다. 그것이 고전 명작 돈키호테가 나에게 준 교훈이다!
마법? 그딴 것보다 근육이다!
【충분히 발달한 이두박근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아앗!!】
나는 풍차 돌리기를 멈추고 우르실라에 맞서 대쉬를 했다.
반격기 제 2 품새는 반격기라서 뒤로 이어지는 동작도 있는데, 지금은 해 봤자 뻘짓이었다. 창을 던졌다가 회수하는 것도 빈틈을 크게 노출하기만 할 것이니까.
【벽력신창 팔연(八連)!!】
─피피피피피피피핑!
비천삼검류 귀두룡섬의 테크닉을 살려서 창을 찔러댔는데 한 방도 맞을 기색이 없었다. 마치 월면기지 사람인 것처럼 몸이 가벼운 우르실라였다.
바람 마법 버프인가? 예전에 티르시가 나한테 걸어줬던 마법이랑 비슷했다. 아니지. 그냥 그 마법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수면에 뜬 나뭇잎 같군.’
나뭇잎 부수기라면 숙달하며 마스터했다. 나는 야구 방망이처럼 창을 휘둘렀다.
피할 공간을 지배하며 날아드는 공격! 리치에서 뛰어난 이세계 창술의 진가(眞價)였다.
【이것도 제법──! 큭!!】
공격을 받아친 우르실라는 생각보다 내 힘이 강했는지 손을 저려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우르실라도 나처럼 물딜 마딜 하이브리드일 것이었다. 바다에서는 완력보다는 마법이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르실라는 나랑 다르게 마딜에 더 특화한, 검술을 배운 마법사다. 그런 그녀가 내 공격을 쳐냈으니 대단한 게 맞았다.
기회다. 나는 이대로 승기를 잡고자 이두박근에 힘을 불어넣었다.
창을 검처럼 잡고 좌우로 휘둘렀다. 스피드는 우르실라가 위였다. 그렇기에 피할 공간을 내 주지 않는 휘두르기로 공간을 선점한 것이었다.
우르실라는 한손검을 양손으로 들고 방어에 급급했다.
【하하하핫! 맛만 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매운걸!!】
【저희 고향에서는 차가운 음식도 매콤하답니다!】
【끔찍한 얘기네! 동방에 안 가 보길 다행이야!!】
키타이의 K-매콤함에 정신을 못 차리던 우르실라는 내가 공격의 수위를 올리려는 틈에 뒤로 뛰었다. 씨발, 놓쳤다! 갑자기 바람이 불길래 반격하는 줄 알고 쫄아서 방어 자세로 들어간 게 실수였다.
─탓! 타탓!
무영창 바람 마법을 써가며 연속 문 워크 백 점프를 하는 우르실라.
나도 그게 반격이 아닌 회피 동작이라는 걸 확신하고서 뭉게뭉게-순보로 추격하려고 했는데, 우르실라는 거기서 추가로 마법을 영창했다.
【물방울 흐르는 격자의 감옥에 감싸여라. <그물의 방패(Shield Of Net)>!】
푸른 실드가 펼쳐졌다. 보통 실드랑은 생겨먹은 게 달랐다. 촘촘한 그물코가 달린 실드라니! 바닷사람인 걸 티 내는 마법이로군.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뭣한 게, 실드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장난이 아니었다.
저 표면적만큼 실드가 응축됐다면 물리 방어에 특화한 실드일 듯 했다. 불꽃이나 번개라면 몰라도 무기로는 그물코의 틈새를 통과하지 못할 테니까.
‘마법전으로 승부를 걸 생각인가?’
위치를 바꿔도 실드는 잘만 쫓아왔다. 우르실라는 방어하며 마법을 영창했다.
이세계 마법사들의 국룰 전투법인 숨어서 마법 쏘기! 씨발 이 동네 마법사들은 맞다이에서 털리면 맨날 이렇다니까!
‘내가 마법으로 도전하면 아까 전이랑 전황이 역전되겠지.’
적의 주특기에 비벼보자니 내 실력이 너무 일천했다. 조금 전에 우르실라나 나한테 물딜로 덤볐다가 털릴 뻔 했잖은가. 그 180도 반대 상황이 될 가능성이 90%를 넘었다.
근데 솔직히 이건 나한테도 좋은 상황이기도 했다.
궁극기를 때려박는 전투라면── 전투력 대비 고화력의 절기를 많이 가진 내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우르실라의 마법전(물리)의 신청을 수락했다.
야수회귀를 발동했다. 구신의 마나와 야수회귀의 이중 버프! 마나 소모가 2배가 되고 그 중 절반을 야수회귀가 가져갔다.
씨발거 예상은 했었는데 역시 마나 소모가 존나 심했다. 이 상태에서는 공격을 할 때마다 공격 마법을 최대 출력으로 쏠 마나를 쓰게 될 듯 했다.
‘근데 그거, 다르게 보면 쿨타임 없이 고화력 마법 연발이 가능하단 뜻이잖아?’
내 버프 간의 상호작용이 어떤 효과를 낳을지.
지금이야말로 그걸 테스트해 볼 기회였다.
─붕붕붕붕!! 창을 풍차처럼 돌리며 아프리카 부족 전사가 춤을 추듯 풍차를 몸 우측으로 틀었다. 대형 선풍기에 달라붙은 것처럼 바람이 앞머리를 휘날렸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반격기 제 2품새로부터 공격기 제 1품새로의 연계기.
【회회난만(回懷爛漫).】
나는 회전으로 발생한 에너지를 담아 창을 휘둘렀다.
─카차차차창!!! 회전을 파괴력으로 바꾼 공격이 그물코 실드를 분쇄했다. 요철이 많은 바닥을 긁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며 개박살이 나는 실드!
우르실라는 깡따구 있게 끝까지 영창을 했다. 강한 공격을 뿜어낸 뒤니까 시간에 맞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그건 착각이다.
첫 공격은 실드를 박살내면서 운동 에너지가 0로 돌아갔다.
이 기술을 펼쳤을 때, 나는 작용반작용에 의한 후딜이 없다.
다시 말해서, 첫 공격과 다음 공격 사이의 시간차가 없다는 뜻이다.
─피잉!! 벽에다 고무 망치를 두들긴 것처럼 미스릴 창은 180도 튕겨나왔다. 창날이 우르실라의 턱 밑으로 찔러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피부에 닿기 전에 멈췄지만, 영창을 하겠다고 입을 벌렸다간 자기가 창에 목을 갖다 박는 꼴이 되고 말 것이었다.
약 10초 정도의 침묵.
턱을 움직일 수 있게 살짝 거리를 주자 우르실라는 한숨을 섞어서 말했다.
【……내가 졌어.】
──씨이발! 이겼다!
상쾌하게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기분이 째졌다. 쪼개다가 우르실라가 기분이 나빠져서 배를 안 내주면 좆 되니까 존나 표정 관리를 하면서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대련 감사합니다. 멋진 경험이 됐습니다.】
【겸손하기는. 나는 목 피부에 창이 날아들 때는 이러다 힘조절 실패해서 죽는 줄로만 알았다니까.】
【저도 찔리기 전에 멈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너! 자신이 없으면 목에다가 들이밀지를 마!!】
【농담입니다. 다음부터는 참고할게요.】
멈출 자신이 있었으니까 들이민 건데.
아무튼 그렇게 얘기하면서 파티원들이 있는 곳을 봤다. 쿨한 척 하면서 안심하는 개털머리 눈나랑 뿔 없는 바이콘은 그렇다고 쳐도, 물개박수를 치는 프랑이랑 치어리더처럼 춤을 춰대는 라리루라가 조금 웃겼다.
【너랑 네가 고른 사람이면 내 배에 올라탈 자격이 있지.】
연미복을 손으로 턴 우르실라는 검을 수납하며 물었다.
【출항은 언제로 할 거야?】
【이틀 뒤의 새벽입니다.】
새벽녘이면 항해가 가능한 시간이니까. 이틀의 유예를 둔 것은 그 사이에 수영복이나 그밖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존나 수영복이 제일로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다나 찌찌에 누워서 프랑 찌찌로 얼굴 덮고 싶다.’
존나 생크림 올린 쿠키 같은 달콤한 냄새가 나겠지.
다나의 찌찌가 쿠키고 프랑의 찌찌가 생크림이다.
내가 그러고 있자 우르실라는 셈을 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 좋아. 이 곶 아래에 있는 부두로 나와. 내 배는 거기 정착해 뒀으니까.】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해기간은 10일로 잡고 있습니다.】
정말 결투로 정한 건가. 나는 신기한 것 같기도 하고 납득이 가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그런 이상한 취향이랑은 달리 우르실라는 성실하게 조언했다.
【항해기간이 30일 밑이면 식량은 여유분으로 절반치를 더 챙겨와야 맞아. 15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갖고 와. 우리도 그렇게 준비할 거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그밖에 주의할 것을 몇 가지 듣고 노트에 적었다.
이제 다시 관광을 하다가 수영복을 사서 내일 모레 새벽에 바캉스를 떠나도록 하자.
바다. 그 공포의 소금물 웅덩이에 뜬 낙원의 섬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흥겹게 마녀의 저택을 떠났다.
방법은 조금 이상했지만 뱃편은 얻었다. 걱정거리는 덜어낸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관광 뿐이야!”
그리 외치며 쿠드세스로 복귀한 우리였는데, 점심이 지나서인지 길가에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진동하는 아다 냄새에 베로니카가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말딸 파이팅.
“한적한 길로 가자. 남은 시간은 이틀이나 되는걸. 서두를 거 없어.”
프랑이 베로니카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소매치기를 걱정하는 것처럼 품 속의 지갑을 건드리던 다나도 한숨을 지었다.
“그럴까? 교역도시라고 해도 사람이 조금 많은 것 같다.”
“얼마 있으면 비조페스트라서 그렇소이다.”
뜬금없이 끼어든 드워프 행인의 말이었다. 세상 짜리몽땅한 드워프라서 순간 투명인간인 줄 알았다. 순혈인지 프랑보다 더 키가 작았던 것이다.
“뷔페 뭐시기요?”
“비조페스트. 맥주 축제 말이오.”
“앗! 벌써 그 주간이에요?”
아는 축제였던 걸까. 우리 프랑이 눈을 빛내자 드워프 행인도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고래 종족 드워프답게 맥주 하나로 대동단결해 버린 모양.
“암. 나도 그 때문에 니다벨리르에서 예까지 왔소. 이번 축제는 전세계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소?”
“저는 얘기로만 들어봤는데…… 하긴 수확철도 다 끝난 가을이니까요.”
“그렇지. 전세계의 술 장인들이 맥주의 고향인 게르마니아에서 인정받으려고 맥주를 만들어 오니, 그 종류만 벌써 100가지가 넘는다더군!”
전학 온 곳에서 씹덕 친구를 만난 오타쿠처럼 청산유수인 드워프. 브리타니아 어로 소리친 그가 턱을 훔쳤다.
“크으! 벌써 침이 고이는구려. 거기 검은 머리 아가씨는 하프인 듯 한데, 비조페스트에는 관심이 없었나 보오?”
“아뇨! 있어요! 있는데…… 그게…….”
기쁘게 소리친 프랑이 내 안색을 살폈다. 뭐지. 이런 건 보통 남편이 좋아하면서 아내한테 허락을 받는 거 아닌가? 왜 우리 가족은 정 반대일까.
아무튼 프랑이 원한다는데 안 된다고 하기도 그렇다.
나는 다나랑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존나 다나도 눈을 빛내고 있더라. 이 술고래 여편네들. 내가 옆에서 눈 부릅뜨고 있어야겠구만.
“둘러보자. 축제 시작 전까지 일이 끝나면.”
“정말?!”
간식 봉다리 뜯는 소리를 들은 강아지 같군. 꼬리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대신에 취하면 끝이야. 혀 꼬이면 집으로 델꼬 갈 거임.”
“윽. 차, 참아 볼게.”
“아핫♡! 언니도 참, 취기가 참는 걸로 되나요?”
“라리루라 말이 맞네. 프랑 너도 적당히 마셔.”
다나가 의사가 건강검진 결과를 말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간의 알코올 분해 효소가 남들보다 곱절은 될 다나가 그렇게 말해도 설득력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계획까지 알뜰하게 세우며 걷던 차였다. 베로니카가 노점에서 파는 고양이 마스코트를 보고 멈춰섰다.
우리 파티가 그걸 따라서 멈추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기념품을 사 가는 건 이세계에서도 국룰인 듯 했으니까.
“저희 한 번 가 봐요!”
“아, 음. 그러자꾸나.”
천성이 밝은 라리루라가 앞장 서서 노점에 갔다. 고양이 모양의 조각에 색칠을 한 쬐끄만 인형이었다. 대충 인간 도장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어서 오십셔! 쿠드세스의 명물인 프레이야 님의 고양이 조각상입니다! 골라 보시죠!】
가게를 보던 아줌마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베로니카는 호객 멘트를 한 귀로 흘리려다가 프레이야라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프레이야 님의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