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프레이야 님을 모르시나? 아가씨만큼 아름다운 게르마니아 신화의 여신님이랍니다! 그 분의 마차는 고양이들이 끌고 다닌다는데, 우리 쿠드세스에도 전설이 내려오죠!】
아줌마는 그렇게 장황한 민간설화를 얘기하면서 고양이 조각상의 상품 가치를 설명했다.
【가지고만 있어도 운수가 대통해서 온갖 일이 잘 풀리는 조각상! 이 고양이가 누굽니까? 미의 여신님의 마차를 끌던 고양이 아니겠습니까! 그 가호만 있다면 여행길의 안전부터 신경 쓰이는 이성의 관심까지 못 얻을 게 없죠!】
베로니카는 아줌마의 설명에 혹한 것처럼 귀를 기울이다가 헛기침을 했다.
【……어흠. 신경 쓰이는 이성의 관심은 어쨌든, 여행길의 안전에는 흥미가 돋는구나. 얼마지?】
【원래는 하나에 8쿠퍼씩 받지만, 내가 선심 썼다! 우리 아가씨의 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7쿠퍼에 줄게요!】
【사, 사랑이랑은 관계 없댔잖느냐! 8쿠퍼랬지? 기다려라.】
아니 씨발, 7쿠퍼요? 존나 가만히 듣던 나는 깜짝 놀라서 지갑을 꺼내는 베로니카를 말렸다.
【잠깐만요. 이 조각상이 하나에 8쿠퍼나 한다고요?】
【그래서 1쿠퍼 깎아줬잖습니까?】
저저 아줌마 눈깔 뜨는 꼬라지 봐라.
뭐 문제 있냐는 듯이 쳐다보는 게 존나 시골 본가 도떼기 시장에서 나물이나 은행을 주워다가 파는 표독스런 할매들 같았다.
【청년, 이런 기념품을 사는데 돈이 문제야? 이걸 사는 건 여행지에 들렀다는 추억을 구매하는 거란 말이지.】
내 리액션이 처참하자 노점 아지매는 조목조목 개소리를 읊기 시작했다.
“추억?”
베로니카가 고양이 조각상을 보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아마 눈에 보이는 형태로 추억을 남기는 인간의 문화가 낯선 듯 했는데, 지금 시팔 그게 문제냐. 이 아지매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눈이 혈안이 됐는데.
【나도 한철 벌어서 먹고 살어. 입은 걸 보니 돈도 많아 뵈는데, 그렇게 우리 같은 서민을 쥐 잡듯이 잡아야겠어?】
【않이요. 왜 저희 추억을 아줌마가 웃돈 받고 파는데요.】
【싫으면 사지 말어. 내가 어쩌겠어? 억지로 파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자린고비면 여자 친구 앞에서도 돈 좀 애낄 수도 있고 그러는 거지.】
【씨팔 닥치고 내 돈을 가져가!! 5개 35쿠퍼 현찰 박치기 간다!!】
“존나 진정 좀 해 미친 남편놈아.”
마초이즘을 살살 자극당한 내가 지갑을 벌리자 다나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씨이발! 저 아지매가 나더러 돈 없는 거지쉑이라잖아!!
그렇게 다나는 빼액대는 나를 말리고 대타로 나섰다.
【하나에 7쿠퍼는 조금 많이 비싼데요? 반값인 4쿠퍼면 딱 맞아 뵈는데.】
【이 아가씨가 갑자기 반값으로 후려치네. 남편이 댁한테 돈 쓰는 거 아까워 하남?】
“야, 노르드!! 지갑 벌려!! 내가 씨발 몸으로라도 갚는다!!”
“아니 우리 눈나가 도르셨나. 왜 도발에 원콤 당하고 있어.”
미친 년 같으니까 몸으로 갚는다고 하지 마. 사랑으로 갚는다는 말은 쪽팔려서 못 하는 거 이해하는데. 말투가 그러면 남들이 듣기에 안 좋잖아.
나는 이성이 끊긴 다나를 달래주며 일시 후퇴를 했다. 와 씨발 동네 잡상인 같이 생겨먹은 아줌마가 화술에만 스킬 포인트를 몰빵했나. 우리 석박사 부부가 나란히 구매의욕에 불이 붙어버렸네.
라리루라는 게르마니아 어로 쇼부를 못 보니까 아웃. 이제 믿을 건 프랑밖에 없었다.
─쪼르르.
내 그런 생각을 눈치챈 듯이 프랑은 노점에 달라붙었다.
【아주머니. 이 고양이 조각상, 젠브닐 원목 아니죠?】
【으, 응?】
프랑은 눈썰미로 조각상의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그렇게 지적했는데, 우리 논리를 개무시하던 아줌마가 처음으로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뭔가 들키면 안 될 부분을 찌른 걸까? 프랑은 아줌마가 뭔 핑계를 대기 전에 가게에 붙은 푯말을 가리켰다.
【저기 물건표에 적으신대로 젠브닐 원목이면 5~6쿠퍼를 받으셔도 이해해요. 그치만 이 고양이들을 조각한 나무는 저렴한 잡목(雜木) 같은데요?】
【즈, 증거 있어? 증거도 없이 이러면 곤란해!】
【경비병을 부를까요? 게르마니아 법에서 상품 정보로 거짓말하면 큰일 나는 거 모르시진 않잖아요? 그리구 저, 보시다시피 드워프에요.】
【끄으응…….】
뭔가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아줌마는 테이블을 내려쳤다.
【에잉. 텄군, 텄어! 3쿠퍼로 주려니까 어디 가서 얘기하고 다니지만 말아!】
【2쿠퍼로 안 되나요?】
【……쯧! 가져가!!】
그렇게 원산지 표시를 들킨 상인은 원가의 3분의 1로 물건을 급처했다.
관광지 물가 후려치기 실화냐? 8쿠퍼가 3쿠퍼가 되는 기적이다. 존나 내 안의 분노 바이러스가 웅장해진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 아니었으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원가가 2쿠퍼도 안 되는 조각을 10쿠퍼에 올려 팔다니! 씨발 노량진 수산시장도 아니고 모르면 당해야 하네.
“고양이 와꾸 봐. 존나 하찮게 생겼네.”
“그게 매력인듯.”
“귀여우면 됐죠 뭐.”
그리고 우리 호갱 트리오는 쪼그리고 앉아서 패배의 쓴 잔을 나누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 라리루라는 부전패다.
시팔 좆냥이 새끼 표정 띠꺼운 것 좀 봐라. 존나 딱밤 마렵게 생겨 쳐먹었네 아주.
“울 서방님 닮았는데?”
아니다 이 랩실의 망령아.
【앗, 경비병 씨? 저기 상인 아주머니가 조각상 재질로 사기를 치고 계셔요.】
【예? 상품 정보를 말입니까?】
하는 김에 프랑은 마무리까지 철저하게 끝냈다. 경비병이 감정 실력이 있는 동료를 불러서 검증을 하더니 3분 만에 아줌마를 끌고 갔다.
【아아악!! 동네 사람들 보세요!! 경비병이 사람 잡네!!】
【닥치고 따라오십쇼. 상품 정보 사기죄로 현장에서 구금합니다.】
【저거 내가 만든 거 아니야!! 납품 받은 거라고!!】
【조각 길드에서 만든 상품인 건 보면 압니다. 당신 죄목은 상품표 사기라니까요.】
【시민한테 이래도 돼?! 당신네 월급도 내 세금에서 나와!!】
【댁이 감옥에서 먹을 밥도 그렇고요.】
난동을 피우며 사기꾼은 장사를 접고 끌려갔다. 이쪽 동네 일처리 존나 깔끔하군.
“……인간 세상은 복잡하구나.”
베로니카는 사기꾼 아줌마가 정의구현을 당하는 꼴을 뭔가 신기한 자연현상이라도 보듯 구경했다. 고양이 조각상을 쓰다듬다가 프랑에게 목례를 하는 베로니카.
“고맙다, 프랑. 내 소중히 간직하마.”
“헤헤, 뭘. 기념품을 볼 때마다 여행지에서 바가지 쓴 게 생각나면 싫잖아.”
프랑은 웃으며 말하고서 자기 머리카락을 만졌다.
“다음엔 옷감 가게에 들리자. 나 머리 묶을 끈을 새로 사야 할 것 같아.”
“게르마니아의 옷감이군요☆! 재밌겠네요! 가죠!”
─폴짝! 라리루라까지 찬성하자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 길로 찾아간 옷감 가게에서 프랑은 머리끈을 몇 개 골랐다.
“프랑. 일로 와. 묶어줄게.”
“응!”
내 말에 별 것도 아닌데 행복해 하는 프랑이었다.
나는 언제 만져도 부드러워서 기분 좋은 프랑의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어줬다. 그윽한 촉감에 나까지 황홀하다. 프랑은 머리카락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노르. 어때? 어울려?”
“뭘 물어, 당연히 예쁘지. 우리 프랑 미치도록 귀엽네.”
나는 프랑을 끌어안았다. 언제 안아도 푹신푹신해서 놓기 싫어지는 부드러움이었다.
“근데 너무 귀엽고 그러지 마라. 딴 놈들이 눈독 들이면 나 짜증날라.”
느끼한 칭찬이 발달하지 않은 이세계라서 그런지, 이과충 새끼의 빈곤한 표현에도 프랑은 마냥 기뻐했다. 나도 존나 실없이 헤실댔고 말이다.
세상 커플들이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선배, 선배! 저는 어때요♡?”
그때 라리루라도 밀짚모자를 벗고 양갈래 머리를 했다.
밝은 성격에 딱 맞아서 그런지 잘 어울리는 한데…… 핑크 머리 양갈래라.
“……야, 라리루라. 쉣- 이라고 해 봐.”
“쉣-!”
“어. 잘 어울리기는 한데. 관두자, 그거.”
“쳇-.”
라임을 살리며 머리 모양을 되돌리는 라리루라. 나는 존나 피식대며 숨을 골랐는데, 뒤에서 어색하게 내 옷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양갈래 머리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와우.”
“……와우는 지랄이.”
짧은 머리를 힘겹게 양갈래로 묶은 다나. 쿨한 표정이 어울리는 얼굴 근육이 자유분방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머리 모양이 자기답지 않다는 생각은 있는 모양.
나는 반년 만에 퇴원한 위궤양 환자가 첫 외식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심사숙고해서 대답했다.
“……누나. 솔직한 평가랑 아부 중에 어느 쪽이 좋아?”
“……배려해 줘서 존나 고맙다 개새끼야.”
재빠르게 머리를 풀러버리는 다나였다. 존나 왜 이세계엔 사진기가 없는 것이지. 방금 걸 사진으로 찍어서 대대손손 남겼어야 했는데.
‘솔직히 양갈래 머리 다나는 딸감이라고 봐도 될 듯.’
거의 음란유해매체다. 내가 좋게 봐 주길 바라면서 얼굴 빨개지는 걸 참고 꾸미는 눈나라니! 사랑에 맹목적인 아내님의 철딱서니에 쥬지드라가 간만에 불 뿜게 생겼다.
【이것과 이것, 그리고 이것도 다오.】
내가 해면체를 컨트롤하고 있는 동안 베로니카도 끈을 사고 있었다. 이 가게는 주인이 양심적이어서 가격 협상을 하지는 않아도 됐다.
“베로니카 너도 머리 묶게?”
“그래. 가끔 연구를 할 때는 말총머리로 묶는다. 그밖에도 우리 일족은 뿔에 끈이나 장식을 달곤 하니까 말이다.”
바이콘의 풍습인가. 종족이 다르니까 의외성이 있군.
뿔에 묶는 건 어쨌든 머리에 묶는 건 상상하기 쉽긴 했다.
“……그대여. 지금 내가 머리를 묶으면 말 꼬랑지 같겠다고 생각했구나?”
“아니 존나 오또케 알았지.”
내 포커페이스는 어디로 간 걸까. 아내들은 어쨌든 라리루라나 베로니카한테도 생각하는 게 다 들키는 기분이라 뭔가 기분이 개 신기했다.
내가 감탄하자 베로니카는 눈을 반개하며 팔짱을 꼈다.
“그대는 무례한 생각을 할 때 동공이 흐려지더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 아느니라.”
“왜 존나 남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지?”
“………………살 것도 다 산 듯 하니 이만 가자꾸나.”
대답을 해 요년아.
지구도 아닌데 묵비권을 고수하며 도망치는 베로니카. 결국 대답은 못 들고 말았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서 넘어가기로 했다.
존나 이제부터 할 일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수영복……. 수영복만이 있을 뿐…….’
절세미녀 신부들과 남극의 섬에서 해수욕!
우리 아내님들 수영복 구경은 못 참지!
“남편은 이제 집에 가. 여기는 여자들끼리만 간다.”
그리 생각한 나는 프랑이랑 다나의 섹시도발 패션쇼를 관람하고자 수영복 매장에 따라가려 했는데, 수영복 얘기가 나온 순간 다나가 선을 그어버렸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떼써도 안 돼. 돌아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손가락 빨면서 기대나 하고 있어.”
“않이 외않되는대!! 나는 누나 찌찌가 작아도 신경 안 써!!”
“씹새가 아까부터 자꾸 선 넘는다 진짜?!”
나대다가 빡친 다나에게 쳐맞았고 말았지만, 남자에게는 마누라한테 등짝 스매시를 맞아도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 있었다. 내가 항의하듯 눈을 부라리자 다나는 혀를 찼다.
“아, 됐어. 헛걸음 할 거면 따라와 보던지.”
헛걸음이라니, 우리 아내님들 수영복을 보러 가는데 뭐가 헛걸음이란 말인가! 나는 다나의 말에 단호하게 수긍하며 매장까지 따라갔다.
【죄송합니다. 저희 매장은 남성 분은 출입 금지입니다.】
그러다가 입구 컷을 당했다.
남성 출입 금지라니! 씨발 세상에, 브리타니아에서는 여성 속옷을 파는 길드 매장에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꼴마초가 들어가도 되는데!
【왜죠? 왜에요? 왜입니까? 왜? 출입 금지 왜?】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거라서 그리 말씀하셔도…….】
이 나라는 존나 야만족의 국가가 맞다. 반박 안 받음.
‘염병할 남녀칠세부동석.’
이세계에서 성별 차이로 이렇게까지 엿을 먹어본 건 게르마니아가 처음이었다. 청교도 사상도 발생하지 않은 세상에서 왜 남녀차별을 벌인다는 말인가!
“밉다……. 이 세상의 모든 바이킹이 밉다…….”
─풀썩. 나는 아내들의 수영복과 나를 가르는 벽에 절망하며 무릎꿇었다. 다나는 자기 꼬리를 쫓아서 뱅글뱅글 도는 애완견을 보는 것처럼 나를 딱하게 쳐다봤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이 모질아. 존나 가랄 때 갈 것이지.”
“쓰벌. 미리 말해주지…….”
“미리 말해줬으면 니가 존나 잘도 믿었겠다.”
그러네. 안 믿었겠네. 내가 시무룩해하자 베로니카는 그런 나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최소 2인 1조로 다니기로 했으니 내가 노르드와 돌아가마. 내 컨디션 문제도 있고, 원래 나는 해수욕에는 따로 관심도 없었으니.”
“그래줄래? 고마워. 노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도 옷 고르면서 조급해질 게 뻔해서.”
프랑은 참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르. 얌전히 기다리기야? 실망시킨 만큼 예쁜 수영복으로 놀래켜 줄게.”
“넹…….”
저렇게까지 말하면 떼를 쓸 수도 없었다. 것보다 떼 써봤자 방법도 없고 말이다.
라리루라는 아쉽다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다가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요~? 선배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렇게 나는 일행과 헤어져서 베로니카랑 길을 돌아갔다.
축제를 대비해서 맥주를 홍보하는 아다 군단─베로니카 판정─을 피해서 사람이 없는 길로 가게 됐다. 베로니카는 아까 산 고양이 조각상을 꺼내서 구경하고 있었다.
“너, 몸 상태는 괜찮냐? 처음 봤을 때보다는 많이 버틸 수 있게 된 것 같던데.”
멘탈을 회복한 내가 묻자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