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 (235/1,009)

그마저도 프랑이랑 다나가 있으니 3시간이지, 나 홀로 물장구 놀이를 했었다면 1시간이면 질렸겠지. 수영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나였다.

‘아니, 이건 상인들한테 미안할 건 아닌가?’

만약 바다에서만 놀아도 계속 즐겁다면 상인들은 다 굶어 죽을 테니 말이다.

물에서 놀고 체력이 빨피가 된 관광객들이 바닷가 가게를 돌면서 즐겨야만 상인들도 먹고 살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러한 인프라가 전혀 없는 무인도다.

“하아아암…….”

나는 바다를 향해 돌출된 바위에 앉아서 하품을 했다.

존나 심심하다. 7천원짜리 닭 2마리에 버섯 넣고 14만원에 파는 불법 계곡 상인들조차 그리울 정도였다.

사실 돈도 없이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 오면 2~3시간 놀고 남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게 되지 않던가.

예전에 부랄 친구들이랑 방학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근처 계곡에서 놀다가 고삐리 지갑으로는 맞설 수 없는 계곡 장사치들 싯가에 좌절했던 적이 있었다.

포기하고 계곡에서 30분 떨어진 편의점에 들어가서 삼각김밥이나 쳐먹었었는데, 정작 부자가 되니까 돈을 쓸 기회가 없어지고 만 것이었다.

우리 파티는 놀 만큼 놀고 각자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프랑은 해안의 모래가 잘 뭉쳐진다는 걸 알고는 저쪽에서 존나 까리하게 생긴 남자를 조각하고 있었다.

미친 손재주가 있어서 가능한 작업인 모양인데, 저거 설마 나는 아니겠지? 자기애가 강한 나지만 저렇게 잘 생겼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하겠다.

다나는 독서하고 있다. 내가 근처에서 야자수를 베어다가 내츄럴 파라솔을 만들어줬다. 환경파괴? 우리 눈나가 햇볕이 따갑다는데 그딴 거 알 바냐.

라리루라는 잠깐 배로 가버렸고, 나는 상기했다시피 하품 중.

“입질이 안 오는구나.”

그리고 베로니카는 내 옆에서 낚시 중이었다.

─쫑긋쫑긋.

─두리번두리번.

머리에 난 고양이 귀를 세우며 입질을 기다리는 베로니카. 저렇게 오감을 업그레이드해서 낚싯대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왜 말 귀가 아니고 고양이 귀냐고 물으니, 말 귀는 질려서 그렇댄다.

나는 그걸 구경하다가 물었다.

“그 귀도 ᛒ(Berkanan)의 룬의 변신 마법이지? 응용하기가 쉬운가 봐?”

“음? 아, 그렇느니라. ‘나’라고 하는 객체의 종족과 외형을 손보는 것이니.”

낚싯대를 안력(眼力)으로 부러트릴 듯이 쏘아보던 베로니카는 그리 대답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주인님이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봐라’ 같은 명령을 해도 지금 당장은 들어줄 수 없겠구나. 내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마.”

“그딴 명령 안 했어 시종년아.”

“후후후.”

비키니 팬티 위의 꼬리뼈에서 고양이 꼬리가 살랑거렸다.

존나 꼬리는 낚시에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것보다 낚시고 뭐고 너 정도면 직접 들어가서 잡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

베로니카는 콜롬버스가 달걀을 세운 걸 본 것처럼 입을 딱 벌렸다.

낚싯대는 배 위에서 쓰려고 갖고 왔다 했는데, 이런 정적인 바다에서라면 해녀처럼 작살로 잡아도 됐다. 베로니카라면 그런 것 쯤 누워서 떡 먹기일 거고.

하지만 그런 내 말에 항의하는 베로니카.

“인간들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법을 모르는군. 이것도 다 여흥이니라.”

“보낼 줄 아니까 미식 문화를 만든 거 아니냐?”

“그렇군. 지금 한 말은 취소하마. 요리는 좋다. 인간이 만든 문화의 극치다.”

─콰르릉. 노빠꾸로 발사한 ᚺ(Hagalaz)의 룬이 번개가 되어 해안에 작렬했다.

이세계판 밧데리 쇼크에 수면에 부상하는 불쌍한 물고기들.

“월척이군.”

“뒤지게 속물적인 년.”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몰살당한 생선떼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섬 안에는 동물 한 마리 없더니 바다에는 존나 우글거리네.

“야, 전기 타입 날쌩마. 말해두는데 전기로 물고기 잡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위법이다?”

“흐흥. 그따위 것은 인간의 법도 아니더냐. 나랑은 무관한 일이다.”

내가 턱을 괴며 말하자 베로니카는 의기양양하게 브이자를 만들었다. 존나 저건 또 어디서 배웠대. 라리루라가 알려줬나.

“신들께서도 침묵하시는 지금, 나를 복종시킬 수 있는 건 그대 뿐이니라!”

“풀떼기 먹기 싫다고 생선 잡아온 게 언년인데 그딴 소릴 하는 것이지?”

비건 건강식에서 도망치지 마라. 이 시종년이 주인님께서 건초만 멕인다고 대놓고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찍고 앉았네.

하긴 따지자면 이 섬은 바이콘 족의 사유지이지 않은가.

생선을 지지던 볶던 베로니카의 자유이긴 하겠다.

“저 생선들은 알아서 건져. 아, 나는 안 도울 거다? 그래도 맛은 볼 거임.”

“변함없이 지독하군. 알겠느니라. 허리가 빠지도록 어획해 오마. 이것도 다 못난 주인을 섬기는 내 업보겠지.”

“우리 베로니카 왤케 까불지? 니 생선 건질 때 마법 금지.”

“…………네?”

얼른 가. 생선 다 떠내려갈라. 베로니카는 꺼벙하게 있다가 바다로 입수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생선을 건져서 해변에 던지는 베로니카.

하지만 대자연께서는 생태계 파괴를 윤허하지 않으셨다.

─쏴아아

몰아치는 파도! 위대한 대자연이 펼친 밀물썰물 콤보 한 방에 베로니카가 모래사장에 쌓아둔 물고기는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버렸다.

“흐아아앙…….”

결국 울상이 되서 다시 물고기를 모아오는 베로니카였다.

그렇게 10분 뒤.

─철퍽!

30마리의 물고기를 통에 담아온 베로니카는 바위에 누워서 낄낄대던 나를 보며 입술을 삐쭉댔다.

“……그대여. 내 몸이란 몸에서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어, 그러게. 오지 마, 비늘 묻어.”

“프랑에게 이르겠다.”

“<정화>.”

“…………히잉….”

오늘 저녁은 생선 파티겠군.

자고로 물놀이를 한 날에는 바베큐가 국룰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해 본 적 없지만 말이지.’

근데 그래서 더 기대된다. 나 같은 21세기 문명인은 수련회에서 유사 패드립 감성팔이나 할 때 빼고는 장작에 불을 붙여볼 기회가 없어요.

우리가 파티원들한테 돌아가자 다나는 우리가 잡아온 생선 통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졸라 많네. 뭔 랍스터까지 있냐?”

“베로니카가 손을 더럽혀가며 잡은 월척이야. 알아서 모셔.”

다나가 감탄한대로 통에는 내 팔뚝만한 랍스터가 3마리나 있었다. 위법 어부인 베로니카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흐음? 그 벌레 같은 생물이라면 생긴 게 신기해서 건져와 봤느니라. 겉보기로는 심히 징그럽다만, 설마 먹을 수 있는 것이더냐?”

“바이콘의 성지에는 갯가재 같은 거 없었어? 이거 무지 맛 없기로 유명해.”

“맛없어? 랍스터가?”

프랑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세계 랍스터는 맛이 없나?

“응. 불에 넣으면 안 익거나 타 버려서 삶아먹는대. 그런데 맛은 별로야.”

“쪄서 먹어도 맛 없어?”

“찜으로? 으음, 들어본 적 없네.”

요리의 달인인 프랑도 모르는 레시피라니! 이게 그 현대인 천재론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이세계에 김치를 전파할 순 없어도 랍스터 요리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랍스터 말고 이런 것도 있느니라.”

베로니카는 그리 말하며 통에서 다족류 생물을 꺼냈다.

“노르드는 문어라고 하더구나.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느냐?”

“히얏?!”

“흐얏?!”

“뺘앗?!”

좀비 문어의 엔트리에 우리 파티원들은 전부 기겁을 했다. 비명을 지른 순서대로 프랑, 다나, 라리루라였다.

“음? 다들 왜 그러느냐?”

“아, 아니…… 문어는 뭔가 생리적으로 좀 그래…….”

“와. 니 그걸 어케 맨손으로 잡고 있냐? 안 징그러?”

“으에에…….”

그녀들은 베로니카한테 머리끄댕이를 잡힌 문어한테서 도망을 쳤다. 그러고 보면 일부 서양인들은 문어를 싫어하던가? 이세계인들도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싫다는데 츄라이 츄라이 하는 먹부심 충이 아니었다.

“베로니카. 그건 우리 둘이서 먹자. 걔도 구우면 맛있어.”

“정말이더냐? 그거 기대되는구나.”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불판을 지폈다.

랍스터는 향이 좋은 이파리로 감싸서 그릴에 올렸다. 문어는 구워지는 모습이 징그럽다길래 따로 불판을 마련했는데, 어느 쪽이든 익을 때까지는 기다려야겠지.

“노르, 노르. 나 그거 해 줘.”

오랜만에 애교를 부리며 내 양반다리 안에 앉는 프랑.

나 강북호가 프랑의 애교를 무시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이거 말이지? <얼어붙는 손길>.”

마법을 발동해서 손바닥을 차갑게 식히자 프랑은 기쁜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대섬에서 불판까지 지폈으니까 더울 수밖에. 시원해지게 목덜미를 주물러줬다. 더운 날에 목에 대는 아이스팩처럼 짜릿할 것이었다.

“……흐응. 둘이서만 시원해 보이네?”

그때 다나가 눈치를 주며 곁에 앉았다.

프랑은 말없이 웃으며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렇게 귀여운 아내들은 내 오른손과 왼손을 하나씩 나눠가졌다. 영화관 팔걸이를 혼자 독점하는 씹새끼처럼 양손에 아내를 안는 나.

존나 열대섬이라서 그런가. 약간 필리핀 갱단 보스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아내들을 식혀주며 생선과 일부 소세지─게르마니아의 특산품이랜다─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식사를 시작했다.

“그대여, 그대여. 내 감자가 모닥불에 빠져버렸다. 꺼내다오.”

“포기하고 생선이나 먹어. 랍스터랑 문어 다 익었다.”

베로니카는 처음 하는 바베큐가 어색한지 포크만 핥아대고 있었는데, 내가 문어와 랍스터를 앞에 주자 눈을 빛냈다. 랍스터는 대충 버터를 바른 거였고 문어는 씻어서 소금만 쳤다.

─냠. 랍스터 살을 발라서 먹어보는 베로니카.

“호오……. 호오?”

랍스타가 맘에 들었는지 베로니카는 자기 몫으로 준 살을 우물거리면서 맛봤다.

“이건 맛있구나! 쿠드세스에서 먹었던 선원 요리의 새우와 비슷하군. 아니, 그것보다 더 고급진 맛이로다.”

“랍스터가 맛있다구? 노르, 나도 한 입 먹어볼래.”

“어. 잠만 기댕겨.”

─뚝! 프랑이 관심을 보여서 꼬리 부분을 떼서 나눠주었다.

<타오르는 손길>이 있기에 존나 인도인 차력쑈처럼 불에 손을 넣거나 맨손으로 뜯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는 김에 베로니카가 떨군 감자도 줍고 불 위치도 조정했다.

‘불꽃 간지 오졌다.’

그야말로 불판의 지배자 노르드다.

원래 상남자는 고기 굽는 거랑 불 조절에 부심을 갖게 되는 법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여자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푸흐흐. 새끼 땀 흘리는 것 봐.”

불에 붙어 있어서 땀이 왕창 났기 때문에, 우리 눈나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고마워서 다나한테도 랍스터를 한 덩이 줬다.

프랑도 포크로 랍스터 살을 맛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 왜 그렇지? 찜으로 하면 뭐가 다른가?”

“잘 모르겠는레후.”

랍스터를 삶아본 적이 있어야지. 꽃게는 라면에 넣어먹고 그랬는데.

아마 삶으면 육수가 빠져나가서 맛이 없어진다든가, 대충 그런 거겠지. 나도 모르는 것 정도는 있다.

“우와? 뭔가요 이거? 랍스터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요?”

다른 파티원들도 랍스터를 맛보더니 놀라워했다.

“후회되네요☆! 항구에서 공연할 때는 바위에 우글거리던 랍스터를 대충 쫓아내고 그랬는데,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잡아와서 단원들이랑 나눠먹을 걸 그랬어요!”

“글게. 존나 맛있네. 거의 논문감인데?”

“우리 눈나 또 오버한다. 어디 가서 소문내지나 마. 랍스터 비싸질라.”

이세계인들에게 실컷 당했던 정보 독과점의 폐해를 역으로 돌려줄 때다. 씨부럴 티어충 새끼들. 니들이 게맛을 알어?

우리는 그렇게 시크릿 푸드를 이기적으로 즐기며 배 불리 식사를 했다. 짜기만 한 보존식만 쳐먹다가 싱싱한 해산물을 먹으니까 기분 째지네.

랍스터 1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베로니카는 문어 다리를 잘라서 포크로 찍었다.

“이것도 맛있느니라. 다나. 너도 한 번 맛보거라.”

“아니!! 베로니카 니 많이 먹어!! 난 됐어!!”

“으음……. 아쉽구나. 이리도 맛있거늘.”

사이 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파티원들이었다.

나는 배를 문지르며 바베큐를 계속 구웠다. 그러고보면 이세계에 와서 해산물을 배 터지게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이군.

“언니들, 이 과일 드셔 보세요~♡! 달고 맛있다구요?”

“아, 고마워.”

라리루나는 아까 따 놓은 과일을 한입 크기로 잘라서 다른 세 사람한테 먹여줬다.

그러고서 나한테도 포크를 내밀었다.

“자, 선배도요♥. 아~ 하세요!”

“걍 줘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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