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01화 (401/1,009)

오른쪽(Right)이냐, 왼쪽이냐(Left).

이것은 태고로부터 이어진 중대한 문제였다. 언뜻 홀짝이나 다를 바 없는 5대 5의 확률 분산에 불과한 듯도 보이지만, 결국 인생이란 이러한 가능성과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 아니던가.

오른쪽 or 왼쪽. R or L.

왼쪽 가슴 or 오른쪽 가슴.

짜장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오른팔에 안긴 라리루라냐, 왼팔에 안긴 다나냐.

이런 무수한 선택지에서 더 옳은 걸 고를 수 있는 행운과 지혜가 그 사람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우리 집 창고에 돌격해 들어간 나는 그런 삶의 지혜에 기반하여, 사려 깊은 고민과 엘리트 대갈통의 초인적인 추리력을 발휘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지었다.

“왼쪽이닷……!!”

─덜컹! 내가 창고를 열어젖히고 들어가자, 내게서 도망을 치던 시궁쥐 새끼가 화들짝 놀랐다.

“찾았다 이 씨펄롬! 백만 볼트!!”

“찍쬑. (씨발.)”

─파지지직!!

감히 우리 가족이 출장을 간 사이에 우리 집에 숨어들었던 시궁쥐는, 그렇게 내가 뿜어낸 언리미티드한 파워에 절명하고 말았다. 손끝에서 튄 푸른 전류가 주먹만한 쥐새끼를 튀겨버린 것이었다.

“찌이이읶…….”

피카츄 생돈까스가 된 시궁쥐가 원망의 시선을 보냈지만, 지가 그런들 어쩌리요?

“뭐지? 포켓몬이 되지 못한 자여?”

─후우. 손끝에 입김을 분 나는 바싹하게 튀겨진 시궁쥐를 쓰레받이로 쓸어담았다.

2월이 가까워지는 겨울.

이세계온난화라도 진행 중인 것인지, 나날이 추워져만 가는 날씨를 뚫고 우리는 브리타니아의 사르가디스로 돌아왔다. 근 1달 이상의 길고 긴 출장 끝에 기러기 일가족이 둥지로 복귀한 것이었다.

촌동네 주제에 존나 동네 사람들 엄마 아빠 묘지에 부지를 싸그리 낭비하기라도 했는지, 대책 없이 비싼 부동산 가격을 자랑하는 마이 스위트 홈.

그 아늑한 2층집에 어떻게 돌아온 것까진 좋았는데, 무려 1달 이상을 사실상 관리도 않고 방치했던 탓일까.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현관 문을 연 순간, 수학여행 밤에 여자 방에 숨어 들어간 수컷들이 교사의 등장에 일가실각하듯 흩어지는 꼬리 긴 햄스터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었다.

“애1미. 쥐새끼 한 마리 없던 헤븐 조선이 다 그립네.”

나는 한숨을 쉬며 이미 유해조수의 시체가 바글대는 고독(蠱毒)이 돼 버린 구덩이에 쥐새끼를 묻어버렸다.

수의대를 다니던 나는 지가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뻗대는 선배들이나 당시의 교수로부터 외국의 쥐새끼 사정을 들었던 바가 있었다. 무려 영국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지하철 역에 쥐가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라던가.

그런데 설마 그게 우리 집에도 적용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가정부라도 불렀으면 인기척 때문에 덜 했겠지만, 우리 집 창고 같은 곳엔 남들에게 보여주면 곤란한 것들이 있었기에 함부러 부르는 것도 저어되는 형편이었다.

클린한 21세기 지구인에게는 컬쳐 쇼크였지만, 이게 이세계에선 일상적인 풍경일지도 모른다.

“히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밀가루 통에도 쥐 잔뜩 있어어어어어어엇──!!!!!”

“언니 포대 내던지지 마세여어어어엇──!!!! 쟤네들 여기저기로 막 도망치잖아요오오오옷──!!!!”

응. 아니, 그렇지만도 않은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프랑과 라리루라의 합주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프랑의 비명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군.

물론 하수도에서 선풍기 만한 쥐새끼를 잡고, 이계에서도 사람만한 이족보행 털벌레를 해치우던 우리가 뭘 이 정도로 유난이냐고 어이없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집 밖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가면라이더랑 맞다이를 뜨는 것과, 카레를 만들고 나서 밥이 없다는 걸 깨닫고 쌀통 뚜껑을 열었는데 거기에 메뚜기가 득시글거리는 것. 이 2개는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공간이동〉으로 잠깐 들렀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우리 집 고양이는 뭐하는겨?”

여태까지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주인님들이 돌아와도 코빼기도 안 보이다니. 나는 투덜거리면서 집 안의 기척을 쫓아서 움직였다.

저렇게 지능이 딸리는 쥐새끼들은 드루이드식 회화법으로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폭력을 쓰는 수밖에 없다.

나가달라고 부탁하면 우리가 웨 그래야 하는뒈?? 라며 같이 오순도순 살자고 하는 놈들이다.

머리가 멍해지는 종간나식 발상과 근본없는 아리랑치기 화법에 이종족교류의 어려움을 새삼 깨달아버린 나였다. 내가 보기엔 몬스터박이고 동물박이고 다 뒤지는 게 맞는 거 같애.

“아무리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남의 집에 기어들어와서 식량까지 쳐먹는 건 선 넘었지.”

내가 천하의 대인배 드루이드라도 이건 좌시할 수가 없는 안건이었다. 뭣보다 영역 다툼은 자연의 섭리 아닌가.

“보이는 족족 생쥐썬더를 먹여주겠다.”

나는 고독한 생쥐 사냥꾼처럼 뇌까리며 집안으로 돌격했다.

***

“식료품을 조금 사 와야 될 것 같애.”

집 곳곳에서 주먹만한 불청객들을 일소한 뒤의 일이었다. 난장판이 된 부엌을 수습한 프랑이 피곤한 것처럼 말했다.

“원래부터 보존식 말구 다른 식재료는 정리해 뒀었는데, 저 쥐들 때문에 밀가루니 물이니 하는 것도 못 쓰겠어.”

“글쿠만. 돈 필요해?”

“응? 아, 응.”

외투를 입는 프랑의 말에 나는 지갑에서 동화 몇 닢과, 좀 고민하다가 은화도 꺼냈다.

화폐 단위가 대가리 깨진 듯한 이세계에선 은화로 물건을 결재하면 편의점에 수표를 내는 듯한 반응을 받기 십상이긴 한데, 혹시 모를 일이니까.

나는 지갑에서 꺼낸 돈을 프랑의 손에 쥐여주었다.

“헤헤. 고마워.”

프랑은 내가 준 돈을 두 손으로 받으면서 웃었다. 순박한 시골 처녀 같은 웃음이랑 거기에 안 어울리는 예쁜 얼굴이다. 왠지 딸내미한테 용돈을 주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흐흐. 우리 먹을 거 사러 가는데 뭐가 고마워. 인사는 내가 해야지.”

나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아내의 미소에 흐뭇하게 대답하고서, 근처의 베로니카를 집어들었다.

“프랑. 밖은 위험하니 이 바이콘을 데려가렴.”

“갸르릉.”

베로니카는 손톱과 이를 세우면서 프랑에게 다부짐을 어필했다. 얘도 은근 티키타카가 늘었어.

근데 마법사 주제에 갸르릉이고 베로롱이고 이빨을 세워서 어쩌겠다는 것이지. 야수회귀 같은 걸 끼얹나?

“아, 그럼 나도 갈련다. 연구소에 들러야지.”

한가해 보이던 다나도 따라서 일어섰다.

라리루라? 도라에몽처럼 쥐들을 피해다니다가 녹초가 되서, 소파에 몸을 뉘이다 못해 내 허리에도 앵기고 있다. 거치적거리긴 한데 귀여우니까 특별히 봐 준다.

“응. 그럼 다녀올게!”

그렇게 아내들은 식료품을 사러 떠났다.

나는 그녀들을 배웅해주고 라리루라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쉬도록 시켰다. 그러면서 나도 나대로 할 일을 정리했다.

티르시는 이미 마법사 길드로 복귀했다.

브리타니아의 항구에 내릴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아지다가 사르가디스에 도착한 뒤로는 수전증까지 일어났는데, 물어보니 따로 아픈 건 아니라더라. 왜 그런 죽상을 지었는지 이유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휴가를 내기는 했어도 그녀는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일정의 절반 이상을 디아볼로에게 억류되거나, 얼음에 갇혀 있었다.

그렇다면 휴가 기간의 연장 신청이나 그밖의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겠지.

직장인, 아니 하다못해 장기 알바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사태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랩실 대학원생인 티르시가 상부에 말도 없이 1달 이상을 탈주했던 거나 마찬가지니까.’

와, 씨발. 생각만 해도 나까지 등골이 오싹하네.

만약에 그 동안 업무나 프로젝트가 밀려 있기라도 했다면 위아래로 쪼인트를 까이며 당분간 숨 쉬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좆 같은 직장에서 눈치까지 봐야 한다면 인생무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헨네시스 영애한테 어떻게 허가증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모를까, 티르시 성격 상 그렇게 할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부외자인 내가 뭐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안건도 아니라서, 걱정은 되도 어떻게 잘 지내고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헨네시스 영애가 조만간 얼굴 좀 보쟀으니까 그때 얘기라도 꺼내볼까.

‘흠……. 역시 최우선 사항은 사르가디스에 뭔가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건데.’

역시 가장 걱정되는 건 디아볼로와 그 대빵이다.

복수하겠다고 사르가디스에 몰래 잠입해서 우리를 노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세계의 검문이 꽤 빡세다는 것쯤은 내 노예 경력이 증명한다. 그렇게 아무나 들여보내진 않겠지.

하지만 그만큼 흑마법사 새끼들도 사회의 뒷면에 은밀하게 잠임해 있지 않았던가. 우리 베로니카도─고대의 룬 마법의 도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도시의 검문을 돌파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장 보러 간다는 프랑에게 굳이 아내들까지 붙인 것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직접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베로니카가 있으면 도망치는 것도 쉬울 테니까.’

〈공간이동〉은 후퇴할 때도 든든하다. 프랑의 골렘이라면 피하는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주겠지.

“……베로니카의 신분증도 만들어 줘야 하고, 헨네시스 영애랑 후원 얘기도 해야 하고, 캐서린한테 편지도 보내고….”

“선배~? 고민 거리 있으시면 가슴이라도 만지실래요~?”

“넹.”

나는 0.1초만에 대답하면서 라리루라를 한 팔로 안고 브래지어를 찬 가슴을 주물렀다. 집중에 큰 도움이 된다.

“으응…… 얍♡”

─틱!

라리루라는 한손으로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서 상의 밑으로 빼 버렸다.

그런데도 전혀 쳐지지 않는 커다란 산봉우리에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프랑이나 베로니카도 비슷하지만, 혹시 쿠퍼 인대도 마나로 강화되나? 나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끄덕였다.

하긴, 무릎도 강화되는데 안 될 건 뭐겠어. 마나가 전신에 흐르기 시작하면 그 정도는 저절로 되겠지.

─말캉말캉.

그렇게 쓸데없는 호기심을 버리고, 어린 막내 아내의 빅-찌찌를 주무르는 나.

세상에나 씨발, 막내 아내라니. 내가 쓴 표현이지만 어감이 장난 아니군.

라리루라는 이제 막 민증을 발급받고 좋아할 나이다. 10살 가량 연하인 미모의 소녀에게 직접 브라를 벗게 하고서 마음 내키는대로 젖을 탐닉하다니?

지구인 강북호라면 지 혼자 방에서 딸치면서 망상한 내용이었어도 자괴감이 들 만큼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다.

역시 이세계도 살 만 한 곳 같다. 생쥐 새끼들처럼 일부의 좆 같은 부분을 눈 감아줄 만큼. 존나 찌찌 매직이다.

‘이렇게 품에 안고 보면 얘도 상당히 쪼끄맣네.’

물론 프랑 정도는 아니지만, 라리루라도 몸매가 늘씬한데 비해서 키는 좀 작은 편이었다. 아니, 내가 큰 건가?

나이 차까지 감안하면 마치 자기 학급 여고생이랑 결혼한 고등학교 교사가 된 듯한 기분이라서 배덕감이 장난 아니다. 물론 그게 내 손가락을 멈출 이유는 되지 않았지만.

─쪼물럭.

나는 물 흐르듯이 상의에 넣은 손으로 라리루라의 젖꼭지를 만지려다가, 인내심을 발휘했다.

유두가 민감한 라리루라다. 발정 스위치가 들어갔다간 나 역시 유혹에 못 버틸 것이다. 100% 이 녀석의 손목을 잡고 안방까지 데려가서 밤까지 물고 빨면서 시간을 보내겠지.

분명 행복한 시간이긴 하겠지만, 아직 할 일도 남아있는데 그럴 순 없었다.

“선배~. 어쩐지 집에 돌아왔는데 밖에 계실 때보다 더 바빠 보이시네요~?”

하는 것도 없이 가슴을 만져지던 라리루라가 말했다. 나를 보는 눈이 뚱하다.

“잘 나가는 남자일 수록 가정에 소홀해지기 쉽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밀려 있던 일부터 처리하려고. 기분 나빴냐?”

“아뇨~ 그렇지는 않은데요? 예전에는 돌 보듯 무시하던 후배의 가슴인데 이제는 변태처럼 손을 놀려대시네요~?”

“왜? 싫냐?”

─톡. 나는 빳빳하게 선 유두를 건드리며 물었다. 젖꼭지가 자극에 단단해지는 건 생리현상이라지만, 정말로 싫은 거면 가슴만 만졌는데 이렇게 흥분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흐윽, 흑…….”

그러자 라리루라는 보란 듯이 눈물 연기를 했다. 연기인 게 딱 보이는 웃음과 입술 밖으로 살짝 나온 혀가 앙증맞다.

“귀여운 후배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딴 생각이나 하시다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이제 제 가슴은 만져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질려버렸다는 건가요? 저 무지 쇼크에요.”

“웃기고 있네. 그런 소릴 할 만큼 만져본 기억도 없는데?”

“그~러~니~까! 더 집중해서 만지시라는 거에요!”

혹시 이건 이세계식 ‘일이야? 나야?’ 인가? 나는 낄낄대면서 웃었다.

은근하게 전해지는 질투심과 독점욕은 라리루라의 삐진 듯한 표정과 합쳐져서 딱 귀여울 정도였다.

사랑받는 실감이란 건 이성이 질투심을 보여줄 때 느껴지기 쉽다더니,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건 어느 세상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라리루라를 세게 끌어안으며 소파에 눕혔다.

“꺄앗~♡”

좋댄다. 나는 상의를 아예 걷어서 라리루라의 가슴을 훤히 드러냈다. 걷어올라간 상의에 얼굴이 가려지자 라리루라는 긴 속눈썹을 좁히며 요망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까 이 녀석 이거, 속옷도 집에서 편하게 입을 법 한 팬티가 아니네?

아주 집에 소파나 침대가 마를 틈이 없어요.

“이 발랑 까진 녀석이 남편이 일하는데 도발이나 해대?”

─번쩍! 나는 헤실 거리며 상의에 얼굴을 감춘 라리루라를 어깨에 들춰 멨다.

‘그래 뭐. 1~2시간 정도라면 괜찮겠지.’

간만에 홈 타운으로 돌아온만큼 사르가디스 인맥들 얼굴을 보러 가긴 해야겠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찾아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긴 했다. 땀을 흘렸으니 씻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자신에게 핑계를 대며 샤워실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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