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스터의 반(反)-유교 정서적인 엎어치기의 끝에, 우리는 일단 오두막 안으로 안내받았다.
오두막 안은 생활감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거실과 안방으로 보이는 곳이 있고 담벼락에는 약초 같은 걸 말리는 중이었다. 부엌은 바깥에 있었는데, 거실에 테이블이나 의자는 없었다. 아마 좌식 문화권인 걸까.
다행히 신발은 벗고 들어가는 곳이었기에, 우리는 바닥에 깔린 짐승의 가죽 카펫에 앉았다.
[……다나야. 밥은 먹었니?]
[아, 응. 아침에 대충 건량으로 주워먹고 왔어.]
[건량? 육포 쪼가리가 어디 먹은 거냐? 사냥 나가는 날이 아니면 국물을 먹어야 밥을 먹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아마 브리타니아 어가 밝지는 못한지 장인 어른은 얼스터 말로 말하면서 식사를 차리셨다.
도와드리려는 듯 움찔 거리던 프랑이 다시 앉았다. 아직은 그렇게 급격하게 사이를 좁힐 만한 관계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 아내들이 생각이 깊다니까.
─파바박!
장인어른께서는 솜씨는 빠르셨지만 마법은 쓰지 않으셨다.
단지 마른 나무끼리 순식간에 비벼서 불을 켜 버리는 걸 보니까, 왜 얼스터가 마법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맨손으로 디아블 잠브가 되는데 라이터가 뭔 의미겠어.
“한 술 뜨지.”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침 메뉴는 스프와 말린 고기의 통구이였다.
스프는 빨간 뭇국이다. 고춧가루가 아니고 토마토, 양배추 같은 채소를 낸 양식이었다.
─슥.
우선은 스프부터 한 술 크게 떴다.
처음 오는 동네이니만큼 맛이 걱정되는 게 본심이긴 했지만 께작거리며 먹을 순 없었다.
‘그 뭐냐, 이런 식사 자리에서 가정교육을 보는 건 상견례의 국룰이니까.’
시부랄. 진짜 왜 이렇게 될 거란 생각을 못 했지? 얼스터 방계의 예의범절을 속성 교육으로 배워왔어야 했는데.
준비 미흡이 후회됐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닥쳐온 시련부터 견뎌내는 수밖에.
나는 ‘후룹’이나 ‘쩝쩝’, ‘달그락’ 같은 효과음이 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며 스프를 마셨다.
얼스터 방계 지방의 예의를 모르는 상황이니, 되도록 우리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정교육의 규범을 준수하자.
장인어른께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엣흠.”
프랑도 비슷하게 눈치를 보며 식사를 했다.
무 스프는 생각보다 깊은 맛이 썩 훌륭한 요리였다.
‘근데 토마토는 추위에 약한 거 아니었나?’
지구에 살 때 친가의 사촌이 ‘토마토 농사 조졌음’이라면서 카톡을 보내왔던 적이 있는데, 분명 텃밭에서 가볍게 기르던 토마토 일가족이 느닷없는 한파에 일가실각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세계에서도 북쪽으로 갈수록 추운 건 똑같았다. 브리타니아에도 지방에 따른 온도 차이 정도는 있다.
북부 지방인 픽트 인 마을에서 토마토가 자랄 수 있나?
‘아니, 뭐 마법이나 그런 걸 썼겠지.’
사르가디스의 변발 귀농 엘프 호툴루실도 구름을 만드는 마법으로 지력을 회복시키는 비를 뿌려대지 않았던가.
부담 없는 사이였다면 화제로 던질 만한 호기심인데, 숨이 막혀서 도저히 얘길 꺼낼 수가 없군 그래.
“……그래. 다나랑 결혼할 생각이라고?”
그때 장인 어른이 먼저 수저를 내려놓고 말씀하셨다.
잘생긴 분이 분위기를 잡으니까 프레셔가 있네요. 사위놈 허리는 다나의 섹시 댄스를 구경한 쥬지처럼 절로 바짝 선다.
“예. 식은 아직입니다만, 결혼할 생각입니다.”
“……뿌득.”
실례지만 이빨 갈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으래애……? 부인은 다나 말고도 셋이 더 있고, 다나는 두 번째로 들인 아내시다……?”
“……아내들에게 순번을 매길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 그렇습니다.”
“뿌드득…! 빠드드득…!!”
와우. 살벌하신 것 봐.
장인어른 댁에 이가탄이라도 놔 드려야겠어요.
‘그러다 노후에 이빨이라도 시리면 어쩔라고 그러십니까.’
이세계엔 임플란트도 없는 거에요.
“그래…… 능력 있는 남자라면 그럴 수 있지. 아암……!!! 그럴 수 있고 말고……!!! 뿌드드득……!!!”
네. 숟가락이 철로 만든 거라 다행이네요. 그렇게 윤겔라가 독전파를 갈긴 것처럼 구겨져도 다시 펼 수 있을 것 같아서.
“후우우……. 하고 싶은 질문은 많지만…… 딸내미 눈치도 보이고 우리 아내도 자리를 비웠으니, 나중에 하지.”
장인어른은 휘핑을 추가한 아이스 마그마를 원샷한 것처럼 흰자에 핏발을 세우시고서, 짐승 울음 소리처럼 뇌까리셨다.
─딱!
“크흡, 케흑…!”
그렇게 말을 멈춘 장인어른께서 탁자에 수저를 내려놓자, 프랑이 살짝 사레에 들렸다. 숨 죽이고 있다가 놀란 모양.
나는 서부 영화처럼 장인 어른의 눈빛에 겨냥된 상태라서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눈치 빠르게 다나가 사레 들린 프랑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 프랑. 여기 물 마셔.”
“케흑, 에흑…! 으, 응. 고마워….”
─꼴깍, 꼴깍. 급하게 물을 마시는 프랑을 달래고서, 우리 눈나는 도끼눈으로 19년만에 만난 아버지를 째려봤다.
“아 진짜, 아까부터 왜 자꾸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면 뭐 잘들 지냈냐, 어떻게 지냈냐 하는 얘기가 먼저 아냐? 아무리 19년 동안 제대로 연락 한 번 못 주고 받았어도 그렇지.”
“……크흠.”
완전히 어른이 된 딸의 매정한 태도에 장인어른은 눈물을 찔끔 흘리셨다.
픽트 인은 모계사회라고 한다. 10살 때의 다나라면 사제장이시라는 어머니께 된통 혼나면 장인어른께 달려가서 위로를 받고 그랬을 것이다.
다나에 관한 기억이라곤 그것 밖에 없으실 텐데, 오랜만에 만난 딸이 완전히 어른이 돼서 잔소리를 하니 몸둘 바를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내가 공감이 가지. 괜히 짠해지네.
“……아내들끼리 사이는 좋아 보이는구나.”
“같은 사람에게 반했는걸. 마음이 맞을 만도 하지.”
다나의 새초롬한 대답에 장인어른은 헛웃음을 지으셨다.
“잘 지냈나 보구나. 나도 그러길 바랐다만, 연락이 없길래 고생이 심한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거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내가 선빵을 얻어맞은 덕분에 어색함이 사라진 걸까. 우리 눈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마치 고작 몇 달 쯤 유학갔다 온 딸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러냐? 으음. 며칠 정도는 묵다가 갈 거지?”
그리고 장인어른께서는 그런 딸의 태도가 기쁘신 듯 했다.
하긴, 어색하게 낯선 아저씨 취급을 받는 편이 더 가슴이 찢어지긴 하겠다.
“응. 일단은 그…… 어머니랑도 만나볼 생각이라서.”
“이제는 엄마라곤 안 부르는 거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내가 뭐라고 부르던지 신경 쓰진 않을 걸? 아니다. 이 나이 먹고 엄마~ 엄마~ 거리면 가출하고 나가서는 철도 안 들었냐고 뭐라고 하겠네.”
“다나야. 그건 말이다.”
신랄한 평가에 장인 어른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뭔가를 말하시려고 운을 뗐는데, 우리가 그 말을 듣는 일은 없었다.
“책임자 나오라고 하잖아!! 우리 말이 말 같지 않냐!!”
그런 빼액 거리는 소란이 귀를 따갑게 했기 때문이었다.
저 먼 곳에서부터 뒤지게 울려퍼지는 듯한 소리였다.
“……무슨 소란이지?”
성량을 보면 아마 뭔가 매직 아이템을 쓴 모양이었는데, 다나가 귀가 간지럽다는 듯이 누르며 말하자 장인어른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저 빌어먹을 잡놈들 같으니라고! 이 좋은 날에까지 남의 마을에서 소란을 피워!!”
마치 몬스터의 울음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신 그는 거실에 있던 칼을 집어드셨다.
“다나야! 잠깐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거라!”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기다려. 같이 갈게.”
무릎을 털며 일어나는 다나. 장인어른은 잠시 눈을 헤엄치셨다가 떨떠름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마을을 떠난지 오래이긴 했지만, 너도 우리 마을 사람이지. 같이 오거라.”
“저도 돕겠습니다.”
나랑 프랑도 일어나자 장인어른은 계속 뭐라고 하는 대신 앞장 서서 집을 뛰쳐나가셨다.
우리는 그렇게 소란이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곳까지 달려갔는데, 벌써 마을 사람들 중 흉흉한 무기를 찬 사람들만 입구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너희는 예로부터 이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 이 비옥한 땅은 그대들이 더럽혀도 되는 곳이 아니니, 정당한 주인에게 반납하고 북부로부터 꺼지도록!!”
달동네를 밀어버리러 온 용역처럼 빼액대는 작자는 머리에 마법사 같은 모자를 쓴 남자였다.
모험가는 아니었다. 야비해 보이는 참모 같은 얼굴이 어째 핸드폰 대리점 같은 곳에서 만나면 바로 다른 대리점으로 도망치는 게 현명할 것처럼 생겨먹은 새끼였다.
아무튼 그의 외침에 사제 계층으로 보이는 여인이 갑갑한 듯 대꾸했다.
“이 마을은 우리 조상님께서 수백 년도 전부터 살아오셨던 토지입니다! 그대들 브리타니아 귀족과도 완만한 관계를 맺어왔는데, 어째서 이런 폭거에 나서는 것입니까!”
항변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본 시궁쥐 상의 남자는 우습단 것처럼 비웃음을 띄웠다.
“우리 숭고한 브리타니아의 국법에서, 실효권 만으로 땅의 소유를 주장할 수는 없다! 브리타니의 모든 국토는 왕가에게 충성하는 영주들의 것이다! 불법점거자는 떠나라!”
“부, 불법점거자는 떠나라!!”
“불법점거자는 떠나라!! 불법점거자는 떠나라!!”
마법사가 확성기에 대고 외치자 뒤쪽에서 다른 이들도 그 말을 복창했다.
일부는 떨떠름한 듯이 어색해 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뭔 시위대처럼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상황이었다.
“허어.”
그리고 나는 그 인파 틈에서 떠받들리며 우쭐대는 옷차림 좋은 중년인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설명을 들은 것도 없는데, 돌아가는 꼴을 봐도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만 같은 추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