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29화 (429/1,009)

“예? 토, 토지 소유서요? 아!”

내가 다시 말을 걸자, 넋이 나가 있던 그는 아니나 다를까 온갖 요란을 떨며 병신 같은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 어, 아니 그게 말입니다? 혹시 분쟁 중에 분실했다간 ‘증거가 어딨냐’ 하는 식의 공갈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 자리에는 지참해 오지 않았습니다. 이, 이해해 주십시오.”

“……허어, 이거 알만 하신 분이 왜 이러실까?”

나는 친한 척을 하며 셀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요요 통나무 오두막에 창궐하는 흰개미 같은 새끼들.’

흰개미는 개미인 척 하는 바퀴목 생물이다. 개씨발 개미의 형상을 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놈들은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라고 취급해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이렇게 증빙 서류도 없이 삶의 터전에서 물러나라고 하면 누군들 납득이 가겠습니까? 대충 보니까 머리도 좋으신 분 같은데, 서로 입장을 좀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그것이…… 말씀드렸다시피 파손의 위험이 있어서요.”

나는 은근슬쩍 눈을 빛냈다. 이 새끼, 갑자기 앵무새로 변해버린 걸 보면 저 멘트가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인가 뭔가 같은데?

아마 누가 팩트를 따지며 뭐라고 하면 저렇게 변명하라고 명령한 모양이다.

“그러면 합의를 보고 대표에게 증거를 보여드리는 자리를 만들던가 해야지. 안 그래요? 깽값 벌려고 나온 양아치도 아니고, 대뜸 찾아와서 목청껏 윽박을 지르면 저 분들도 감정이 상하겠습니까, 안 상하겠습니까?”

나는 도발의 목적으로 반 존대를 사용했다.

반존대란 ‘포모스 선정 가장 킹받는 말투 부동의 탑 5’에 들어가는 저주의 어법이었다.

뺀질대면서 지껄이면 얼굴을 강판에 갈아버리고 싶어지는 희대의 도발 커맨드!

새나라의 착한 어른이로서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면 사용을 자제해야 할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엄중한 봉인을 풀어 젖혀도 될 것이리라.

“왜 대답이 없으시지? 내 말이 잘 안 들려요?”

나는 웃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쌍으로 잡고 주물렀다.

당연하지만 프랑을 안마해 줄 때처럼 스윗한 악력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꽈아아악…!!

“으크악…!!”

“아이고, 우리 법사님 어깨가 많이 뭉치셨네? 이렇게 고생 많으신 분이라서 잠깐 깜빡하셨나 봅니다. 그렇죠?”

낮게 비명을 지르는 참모. 절대로 선빵이 되지 않도록 딱 눌리면 존나 아픈 부위만 적당히 쥐어짜는 게 포인트다.

“……예, 예! 인정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저희들의 일처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군요! 다음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내가 점혈하듯 쇄골을 눌러주자, 그는 철조망 난간에 쌍불알이 걸린 다람쥐처럼 부들거리며 내 손아귀에서 도망쳤다.

─메다닥!

어깨가 축 쳐져서 도망치는 셀틱.

나도 목적을 이뤘기에 놔 줬다. 이 새끼가 더 악을 쓰다가 원한만 깊어져도 내가 얻을 게 없었으니까.

“너!! 누구 마음대로 물러가냐 마냐 정하는 거냐!! 감히 날 빼놓고 일을 정해?!”

그렇게 일단락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벤자민이라는 귀족이 풀발을 하며 끼어들었다.

‘이 씹새가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어?’

물론 나이는 저 새끼가 제일 많아 보였지만, 세월을 똥꼬의 삼투압으로 흡수한 병신은 사실상 애새끼나 다름이 없다.

새해에 떡국을 두 그릇 쳐먹어봤자 2살 먹은 걸로는 안 쳐주는 거랑 같다. 나잇값 못하는 븅딱이라니 가엾구만. 액면가로는 자기 정액도 몇 명쯤 세포분열 시켰을 와꾸인데.

태어났는데 애비가 저 인간이었을 자식들에게 잠시 묵념.

‘조만간 정체를 숨기고 몰래 쳐들어가서 줘패든가 할까?’

좀 끌리는 생각이었지만 일단은 보류다.

좆 같고 아니꼽다고 죄다 패버리고 다니면 깡패랑 다를 게 없잖은가. 깡패가 되더라도 후환 없는 정의로운 깡패가 되도록 도이치 짝눈신에게 기도하고 해야지.

“베, 벤자민님!!!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무튼 그의 지랄염병에 참모도 경악했다. 스탭이 좌우로 꼬이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무용은 눈여겨 볼 데가 있었다.

마치 가정교육을 1달에 3만원 받는 유치원에 일임해놓은 애비가 에쿠스 범퍼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자기 애새끼를 발견한 것처럼, 보는 내가 감탄이 나올 만큼 찰진 리액션이었다.

“뭐냐! 설마 네놈, 내 명령에 거스르려는 건 아니겠지?!”

“그, 그게 아니옵고…… 저희 마기마기가 차차 로마니아에 활동의 근간을 둘 계획인 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게 뭐!!!”

속닥대는 참모의 마음도 모르고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소리치는 븅딱. 참모도 얼척이 없었는지 입을 벌렸다.

“뭐, 뭐라뇨? 워, 원로나 되는 분이 계신 대귀족의 가문과 척을 지자구요? 이건 미친 짓입니다!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쫓겨나게 생겼다고요!”

작게 속삭이는 고함소리에 븅딱 귀족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건 또 무슨 멍청한 소리냐? 저 놈이 귀족이라도 돼?”

“그렇지는 않사온데…… 저 모험가, 아르마알스 가문의 문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븅딱의 말에 참모는 조바심이 난 듯 설명했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븅딱 귀족은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였다.

새끼 존나 깜찍한 것 봐. 구렛나룻을 뜯어버리고 싶네.

“……아르마알스?”

“초대 원로원 가문입니다! 그것도 가문의 문양을 내줬다는 건 보통 수혜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네, 네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나도 그쯤은 알고 있다!!”

나는 애새끼처럼 발을 구르는 븅딱을 뜨듯미지근하게 쳐다봤다. 퍽도 알고 있었겠구만.

“원로원. 당연히 들어봤다. 로마니아의 황제에게 말꼬리나 잡아댄다는 탐욕스러운 늙은이들 아니냐!”

그는 입을 헤 벌린 셀틱도 못 알아보고 팔짱을 꼈다.

“지배자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그게 대체 얼마나 무엄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고리타분한 국가답게 천박한 제도로군.”

지가 한 말에 만족한 듯 턱수염을 쓰다듬는 븅딱. 참모는 돌아버릴 것 같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던가. 나는 사기꾼조차 엿 먹이는 극한의 병신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븅딱과 사기꾼의 하모니라니. 어디 가서 돈 내고도 못 볼 진귀한 구경이다.

“벤자민 님, 제발, 제발 목소리 좀 낮춰주십시오!! 저 키타이 인이 지금 하신 얘기를 듣고 전했다간 외교적으로 벤자민 님이 계신 영지에도 타격이 갈 겁니다!! 아르마알스는 은원의 처분에 민감하기로 유명하단 말입니다!!”

“……아르마알스가 그렇게 대단한 가문이냐?”

참모는 0.1초 정도 ‘이 개씨발 빡대가리 새끼가 진짜’ 하는 표정을 띄웠다가 지웠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표정변화다. 내가 아니면 놓쳤겠군.

“예! 아무튼 제발 부탁드립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습니까! 제 얼굴을 봐서라도!! 예?!”

“……킁. 뭐, 좋다. 못난 부하의 청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뛰어난 위정자의 품격이지.”

내 눈에는 셀틱 놈이 뒤돌아서는 븅딱의 뒤통수를 돌멩이로 찍어버릴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븅딱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첨예한 병신미를 뿜어내며 일갈했다.

“오늘은 물러가 주마!! 하지만 다음 번에도 이렇게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도록!!”

자기가 물러난다는 사실이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지, 븅딱 새끼는 땅을 밟아대며 뒤돌아갔다.

참 잘 하는 짓이다. 존나 인중을 고무망치로 앞니 박살날 때까지 때리고 싶네.

하지만 그런 권위적인 븅딱조차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돌아가는 걸 보니까, 내 마음에도 잔잔한 해-피함이 퍼졌다.

‘씨발, 이거지.’

대체 내가 왜 귀족들에게 그렇게 굽신거리며 살았는가.

그건 싸움의 양상이 쫄리는 놈이 먼저 뒤지는 배팅 싸움이 되면, 내가 가진 힘으로 1판을 따내더라도 그 뒤로부터는 좆 같은 일의 연속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

내가 한결 같이 귀족을 적대하는 걸 피하던 이유다.

‘그런데 그건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

위대하신 선학들께서 이르기를, 호랑이가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하필 여우일까? 한국의 산골짜기에는 문 크리스탈 파워를 가슴에 품은 반달곰도 있고, 하물며 중2병의 상징이자 밤의 제왕인 늑대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오직 여우만이 호랑이의 이름값을 팔아먹을 줄 알기 때문이다.

이 문양을 써먹을 때의 나는 산악의 왕 호랑이의 네임밸류를 내려 받은 여우 인신.

아니, 호랑이의 위세를 짊어진 여우다. 구미호 노르드다. 존나 지혜의 아이콘 그 자체. 아이폰 뒷면에다가 사과 대신 박아넣어도 될 듯.

─슥슥. 나는 아르마알스 가문의 문양을 잘 닦아서 챙겼다.

‘아무튼 이걸로 저 앰뒤 새끼들이 정면에서 대놓고 지랄을 떠는 건 막았군.’

저 새끼들이 마법사 길드의 발치라도 따라갈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확실했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문양을 팔아먹을 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그래서였지.’

대기업을 꿈꾸는 중소기업이 자기 제품을 구매해줄 나라에 찍힐 수 있겠는가.

‘시골 사람들한테 사기치고 계약서로 깽판치는 자칭 인텔리 새끼들 같으니라고.’

권력이랑 대굴빡을 자랑으로 삼는 병신 같은 능력우월주의 새끼들한테는 똑같은 장르에서 찍어 누르는 게 제일이었다.

[오오! 사제장님의 방문객이 무뢰배들을 쫓아냈다!]

[도시에 가신 우리 족장님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다른 전사들도 피 볼 일 없이 일이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했는지─물론 불만스러워 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기운차게 가가대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빽의 힘으로 건전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가자, 아까까지만 해도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는 분위기던 사제 계급의 얼굴에도 꽃이 피어 있었다.

“세상에나! 정말 쫓아내셨군요! 뭐라고 하셨길래 저 징글징글한 놈들이 물러간 건가요?!”

“철이 안 든 것 같길래, 사회의 쓴맛을 좀 알려줬습니다.”

빽이나 추종자가 없는 사기꾼은 논리나 권위로 밀어붙이면 쉽게 무너지는 법 아니던가. 지혜로운 대처가 아니라서 조금 멋쩍기는 했지만 말이죠.

나는 진상 놈의 어깨를 쥐어짜던 손을 깨끗히 닦고 말했다.

“장인어른, 돌아가시죠. 식사하던 도중이지 않았습니까.”

장인어른은 나를 줘패던 게 조금 무안하셨던 듯,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나저나 쓰벌 이거, 대충 봐도 나눌 얘기가 많아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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