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회귀.
마나도 못 쓰던 척척석사 노르드를 지구용사로 만들어주는 마법. 모험가로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였고, 지금까지도 알차게 뽕을 뽑고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 마법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의문이 남은 상태였다.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마법인지는 안다.
야수회귀의 근본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오딘을 파쿠리치고자 하는 마법이다. 그래서 사용자에게 구신의 마나를 쌓게 만들고, 힘과 방어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왜 마법의 신을 흉내내는데 힘하고 방어력이 올라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오리진(Origin)에서 만들어진 마법일 거라고 베로니카와 상의하면서 결론을 지었었다.
의문점은 이 마법이 발견된 석비에서 출발한다.
──야수회귀는 주문 한 줄로 얻기에는 너무 고성능인 마법이다.
내가 오딘의 눈이나 되는 치트를 얻고도 저위 마법을 배우는데 얼마나 똥꼬쑈를 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이 누구든 좆밥으로 딸 수 있는 한자 8급 자격증 같은 거라면, 내가 만난 전사들은 병신이라서 그 개쉬운 스펙 업을 마다했겠는가?
쉽게 배울 수 있는 마법은 결국 한계가 명확하다.
내가 하는 것처럼 술식을 결합해서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로마니아로 가던 길에 만났던 얼스터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던 야수회귀랑 많이 닮은 강화 마법도 어릴 적부터 동물 심장을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 마법은 매지컬☆무지렁이였던 반자동 파파고 노르드가 어어- 하는 사이에 습득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의 근거가 있었다.
변이마법과 같은 부작용이나, 마법을 사용 가능한 적성을 찾는 게 힘들다는 점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낸 지금도 아직 의문이긴 했다.
얼스터의 오감 문자(Ogham script)로 적혀진 비석의 문구에서, 옛 얼스터의 왕이자 대신관 정도의 위치였던 인물은 이 마법을 ‘친우로부터 받았다’는 투로 말했었다.
그리고 그걸 얼마 못 가서 저주라고 착각해서, 그 친구를 원망했다고도 했었고 말이다.
나는 그 의문을 은근히 신경 쓰면서, 고민해 왔었다.
야수회귀를 발동 가능한 자질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것이며.
이 마법을 개발한 사람, 혹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길래── 이만한 힘을 가지고도 역사에 이름 한 줄 못 남기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역사의 미싱 링크에 삼켜진 채로 해소되지 못한 채로 오늘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의문의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새끼와 만났다.
***
[아니 씨발, 니가 그걸 왜 써?]
나는 눈을 훤히 뜨고 있다가 갑자기 뺨을 맞은 듯한 느낌에 상황도 잊고 중얼거렸다.
대체 말하는 트롤 새끼가 야수회귀를 쓸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해 봤자 룬 마법이나 쓰겠지 하고 생각하던 나는 놀라움보다는 황망함이 앞서서 말을 잃고 말았다.
[어째서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질문해 봐도 좋다. 내가 아는 한 성실하게 대답해 주지.]
─파삭. 대검을 뽑으며 트롤 킹이 말했다.
[단, 네놈에게 그럴 여유가 있다면 말이야.]
─부웅! 짧고 빠른 움직임으로 대검이 흐릿해졌다.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코르넬리우스 어르신네 기사단장한테 쳐맞아가며 예리해진 창술 덕분이었다.
우지끈……!!!
나는 반사적으로 창 위에 마나 코팅을 덮으면서 몸을 지켰는데, 그걸로도 힘이 모자라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어흑 마이깟……!!]
쥐좆만큼도 운동을 안 하며 살던 몸으로, 떨어져내린 간판이라도 받아낸 듯한 무게!!
[형아 나 죽어!!!!]
비명을 지르면서 바로 뛰었다. 내가 서 있던 공간을 무슨 단두대처럼 스쳐지나가는 대검!!
촤악─!!
씨발, 개빨라!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뚝을 살짝 베이고 말았다. 거인 가죽 갑옷이 아니었다면 깊게 베였을지도 모른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조용해졌군!! 입을 열 틈이 없나!!!]
[남자는 입이 묵직해야 해, 앰뒤 트롤년아!!!]
갑옷은 멀쩡했지만 스친 팔이 얼얼했다. 나는 숨을 삼키며 온 신경을 회피에 집중했다.
‘씨발!! 2배는 빨라진 것 같애!!’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덩치도 산만한 새끼가 붕쯔 붕쯔 거리면서 움직이니까, 무슨 믹서기 안에 던져진 사마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위력도 장난이 아니다. 가죽 갑옷의 방어력을 논했다는 건, 내가 두른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이 저 새끼의 칼에 썰리고 갑옷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갑옷이 없었으면 샹크스가 돼 버렸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딘의 눈으로도 동작을 예측할 수 없다!
‘이 새낀 기술 없이 깡 스펙으로 밀어버리는 타입이야!!’
그것 자체는 이미 몇 합 겨뤄보면서 눈치까고 있던 점이긴 한데, 최소한 조금 전까지는 파워가 비등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눈깔 치트로 공격을 예측할 수도 없는데, 파워부터 스피드까지 엄청나게 후달리는 상황!!
[이 로이더 새끼!! 덩치 큰 힘캐는 속도가 딸린다는 국룰을 거역하는 것이냐!!]
나는 뇌를 거치지 않고 나불대면서 석사탈주의 보법을 밟아댔다.
반격으로 전환할 새가 없다! 헤스왈드 자매의 보법을 파쿠리하지 않았다면 이미 팔다리가 날아가서 정육점 냉동창고에 걸린 돼지 몸통처럼 돼 버렸을 것이었다.
‘씨발! 가뜩이나 시간도 부족한데!’
질질 끌어서 틈을 보기에도 여의치 않았다.
도주하는 우릴 쫓아오던 적군은 어느샌가 지척에 있었고, 프랑이 만들었던 골렘들은 나이프가 싹 박살나서 나동구르는 상황이었다.
전선이 길어진 덕에 아직 유예가 있지만, 2~3분이면 나를 포위하고도 남는다!
‘다시 승부를 건다!’
쿠화아아아아악─!!!
나는 창을 세게 쥐면서 몸에 두른 마나 코팅을 부풀렸다. 버프는 강해지지 않지만, 두께가 두꺼워지면 그만큼 방어력 자체는 오른다!
[허장성세로군. 부숴주마!!!]
대검이 직선으로 내려쳐졌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 궤도에다가 창대를 찔렀다.
[뒤져!!]
[으음?!]
키잉─!!
【게르튀르】 반격기 제 4품새. 에너지를 상쇄하는 기술이 한순간의 시간 벌었다.
나는 그 1초도 되지 않을 순간에 백스핀 뒤구르기를 연발하면서, 몸에다가 다시 안개를 둘렀다.
졸렬잎식 미채은실술, 마마무의 한정발동이다.
[또 그 기술이냐!! 두 번은 안 당한다!!]
─쿠과과과!! 트롤 킹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놈은 이 짧은 전투에 숨이 차오르기라도 한 듯 거친 호흡을 뱉으면서 대검을 야구 빠따 치듯 어깨 뒤로 넘겼다. 아마도 안개 째로 나를 베어버릴 생각이겠지.
계획대로였다. 나는 유일하게 안개로 가리지 않은 안광을 빛내면서 오른팔에 불꽃을 피웠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카이저 피닉스(Kaiser Phoenix)
푸확─!!
마마무를 뚫고 파란 불꽃의 불사조가 뛰쳐나갔다. 각도는 우상우 45도.
대검을 쥔 손에 마나를 응집하던 트롤 킹이 이죽거렸다.
[어리석긴! 어딜 노리고 쏘는── 뭣이?!]
내 에임을 비웃다가 눈을 부릅뜨는 트롤 킹.
45도 각도로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피닉스의 주댕이에는 룬 스톤이 1개 물려 있었다.
마나를 저장해 둘 수 있는 룬 스톤. 오우거한테서 루팅한 옥새였다.
─파르르. 트롤 킹의 눈깔에 동공 지진이 발생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마무에 숨어서 하던 것은 반격의 준비가 아니었다.
인질 작전을 통해서 닷지 각을 만드는 것!
그게 내 목적이었다.
‘적전도주는 마초답지 않지만, 이건 승산 이전의 문제다.’
내가 남아서 전력을 다한다면, 치명상만 어떻게 피하면서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고화력의 필살기가 많은 타입의 마초니까. 싸워보는 것도 악수(惡手)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놈과 승패를 겨루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트롤 킹을 족쳐봤자, 뒤에서 몰려오는 오우거/트롤 혼성군에게 포위되면 좆도 의미가 없는데!’
그리고 이 새끼들에게 제네바 협약에 준수한 포로 대우를 바라는 건 미친 짓과도 동일!!
지금은 도망쳐서 태세를 정돈하는 게 먼저였다!
‘씹새끼야. 옥새보다 내 모가지를 따는 게 중요하냐?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아마 이 새끼는 애새끼일 적에 여의었던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권력에서 찾는 정신병자 트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옥새를 루팅한 것은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줄 스포츠카 키를 쌔벼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행히 저 새끼의 관점에서 옥새는 나를 족치고 되찾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옥새가 나를 상대하다간 화끈하게 웰던이 될 상황이라면 어떨까!
[오빠!!! 나야!!! 옥새야!!!]
[크윽……!! 나의 조국의 옥새다!! 소실되게 둘 쏘냐!!!]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트롤 킹은 처음으로 냉정을 잃으며, 나보다는 옥새를 선택했다. 옥새가 카이저 피닉스의 화끈함에 타올라버리기 전에 회수하기를 정한 것이었다.
─펄쩍!! 무식한 덩치가 하늘로 점프했다!!
[오빠는 나보다 일이 소중해!!!!]
낚였다! 나는 즉시 등을 돌리고 전속력으로 닷지했다.
[됐어!!!! 우리 헤어져!!!!]
[아니, 뭐얏?!]
트롤 킹이 경악했다. 공중에 체류 중일 때 내가 공격해 올 건 예상했겠지만, 설마 튈 거라곤 생각 못한 걸까.
나는 달리면서 뒤에도 눈을 향했다. 방어를 생각하던 놈은 경악하다가 일단 옥새의 회수에 들어갔다.
우리의 카이저 피닉스는 우악스런 손에 모가지를 붙잡히고 말았지만, 그 순간 나의 센세이션한 룬 마법이 발동했다.
[쿠으으읏, 이 불꽃은!!!]
화르르륵─!!
ᛒ(Berkanan)의 룬의 힘으로 카이저 피닉스는 커텐처럼 저 씹새의 팔에 달라붙었다!
대대손손 HP 회복형 몬스터의 약점은 불꽃 타입!! 트롤의 재생은 상처가 막히면 늦어진다!!
[크아아아아압──!!!]
트롤 킹은 야수회귀의 방어력으로 버티면서, 유압 프레스를 방불케 하는 압력으로 손을 조이던 불꽃을 뜯어냈다.
─척! 땅에 착지한 놈은 나를 쫓기보다 영롱한 룬 스톤의 광채에 넋이 나간 듯 몸을 떨었다.
[──드디어.]
트롤 킹은 옥새를 쥐며 환희에 찬 목소리를 외쳤다.
[패왕의 자격이, 나의 정당함을 증명할 옥새가 드디어 이 손에 돌아왔노라!! 이로써 우리 훌두폴크 군은──]
…퍼엉!
일장연설을 할 기세였던 트롤 킹의 손아귀에서, 손바닥에 비하면 존나 좆만했던 옥새가 수증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내 마나로 형태를 위장했던 분신이 효과를 다한 것이었다.
야수회귀의 마나로 질감만이라도 재현하려고 진땀 좀 뺐다. 나는 집게 손가락을 세우며 겸허하게 속삭였다.
[닌닌 니애미.]
훼이크다, 병신놈아.
동방의 분신 마법 맛 좀 쬐끔만 봐라.
[……속였구나, 열등종!!!!!!]
눈치 빠르게 원인과 결과를 추리한 트롤 킹은 이제 와서 달려와서 나를 쫓으려 하는 대신에, 가슴의 견장을 쥐었다.
[놓치지 않는다아아아아아아아!!!]
─파아앗!!
견장이 게이밍 키보드의 LED처럼 빛나며 암석의 창이 놈의 손에 뽑혀나왔다. 까만색 바위로 된 길고 예리한 투창!! 그 모양이 몹시 낯익었다.
염병!! 아까부터 사사건건 방해하던 그 창인가!!
[이 씨팔롬아!! 트롤 남캐가 찌찌 발도하지 마라!!]
[결투에서 도망치는 자에겐 죽음이 있을 뿐──!!]
[일당백으로 결투하는 미친 놈이 어딨냐 애미 뒤진 새꺄!!!]
쐐애애애액─!!!
엄습하는 돌창!! 나는 야수회귀의 마나로 삼각형의 실드를 펼쳤다.
[삼천결순!!! 나는 거절한다!!!]
파킨──!!! 보통 트롤의 3배 완력을 실은 투창은 삼각형의 실드를 박살내고 내 가슴에 적중했다.
[뚜엟흑……!!]
엄청난 충격이 내 몸을 흔들었지만, 핀 포인트의 추가 마나 코팅이 데미지를 막았다.
처음부터 100% 막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쐐애애액!!
나는 투창의 위력으로 더욱 빠르게 뒤로 날아가며, 후퇴의 속도를 높였다.
[보아라, 미개한 트롤 놈!! 이것이 나의 도주경로다!!]
[Rfd Du Ohku dos──!!! (비겁한 열등종이──!!!)]
나는 자기네 말로 포효하는 놈들에게 뻐큐를 날려주며, 이 틈에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벌써 포위진의 양쪽 날개가 1분 안에 내 엘리트 대갈통을 수박 쪼개듯 박살낼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이미 어느 정도 포위에서 벗어났는데도 그랬다.
더 이상은 도발이나 욕을 할 여유도 없었다.
‘놈들이 쫓아와봤자 우릴 따라오진 못하겠지.’
저 씨발럼은 야수회귀 상태에서라면 나보다 빨랐지만, 몇 분 싸우지도 않았는데 금방 숨이 차올랐다. 트롤 킹의 야수회귀는 지속력이 모자란 것이엇따.
지금까지는 나 말고 야수회귀의 사용자가 1명도 없었기에 상상도 못했는데, 이 원시의 주술은 사용자의 체력을 존나게 빨아먹는 마법이었나 보다.
저 트롤러가 처음부터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처음 사용했을 때는 마나 탈진에 체력 고갈로 힘이 쫙쫙 빠졌었지.’
아딱이 시절의 좆밥 노르드의 첫 의뢰 때의 일이었다.
덕분에 직접 움직이지 못해서 프랑한테 업혀다녔던가. 그 부끄러운 경험은 아직 기억에 새롭다.
물론 그때 이후로는 아무리 격렬하게 싸워도 내가 체력이 고갈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인류의 힘이었다. 영장류인 인간의 힘은 체력의 지속성에 있는 법 아니던가!
장거리 도주라면 우리가 유리했다.
─슈와아아악!!
그렇게 평야를 달리고 있자, 내 절대천공영역의 번개옥에 멀리까지 튀어나가서 뒤져 버렸던 오우거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힐끗 쳐다보고 지나치자 그 시체에서 마나가 흘러나와서는 나한테로 빨려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마나 계승(Mana Succession) 현상이다.
이 현상도 구신의 마나를 가진 적을 족쳤을 때 일어난다는 점을 빼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일단 나 외의 사람들한테도 가끔씩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나처럼 자주 겪는 새끼는 없겠지.
아무튼 마나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저 트롤 군대가 이걸로 물러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인신〉을 족쳤을 때 만큼 풍족하게 늘어나진 않아서 좀 아쉬웠지만,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저 새끼들이 쫓아오기 전에 어떻게든 대처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나는 멀리서 섬뜩하게 터져 나오는 트롤 킹의 포효를 들으면서, 겨울 바람을 뚫고 픽트 인의 마을까지 달려나갔다.
전투로 달아올랐던 몸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