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레이시즘이 좆 같긴 했지만, 옐로 몽키 노르드는 우애를 존중하는 유교국가의 원숭이다.
나는 분기탱천한 전사들을 달래고 셈무스와 마법사를 아는 사이라며 입을 털었다.
“저 사람들한테 쳐맞기 싫으면 이리로 오세요.”
당연히 그렇다고 대기실에서 사이 좋게 떠들기도 뭣해서, 정원 구석에 방치된 텐트로 데려갔다.
그렇게 텐트 앞 돗자리처럼 깔린 곳에 아내들이랑 앉아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차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침 먹고 나서 아무 것도 못 먹었네. 어째 내 기분이 저기압이더라.
“차린 건 없지만 드시죠.”
“……물밖에 없는데.”
“저는 육포가 있어요.”
배고파? 느그 사장님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하세요.
나는 메이드가 준 보급 건조식을 뜯었다. 먹을 만 하네.
“근데 대가리를 굴렸더니 단 게 땡기네. 건과일이라도 뭐 없나? 건포도 빼고 모조리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르. 또 몰래 짱구 굴리느라 지쳤구나.”
프랑이 건빵을 갉아먹다가 툭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날벼락에라도 맞은 듯 기함했다. 세상에 이런 씨발. 설마 지금 우리 프랑이 ‘짱구 굴린다’ 따위의 쌈마이한 표현을 썼단 말인가?
“갸아아아아악!! 다나!! 니가 평소에 말을 고따구로 하니까 순진한 프랑한테까지 옮았잖아!! 이제 이거 어쩔 거야!! 어!!”
“혹시 모친의 태내에 양심 전반을 두고 오진 않으셨나요?”
다나가 경멸하는 눈초리로 말린 과일을 던졌다. 정당하게 항의해도 바가지나 긁히는 내 인생. 마음이 아프다.
“크흑.”
“어흠.”
두 남남 커플은 염장의 도가니에 빠져서 표정이 썩창났다.
“……나는 아내를 구하러 출가했는데 아직도 여자가 없다. 그런데 너는 벌써 둘이나 있는가 보군. 이건 불공평해.”
“둘? 상상력이 빈곤하시군요. 넷입니다.”
“실화냐? 이런 현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게 현실인 거에요. 나는 낄낄대며 쪼갰다.
“여성 분께 인기를 얻으려고 마기마기에 가입하셨나 보죠? 딱히 좋은 선택 같지는 않은데요.”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해 보고 조졌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알지.”
야만인답게 현명하군. 너무 팩트라서 할 말이 없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저 분은 또 누구고요?”
“말하자면 무척 길다. 그 일은 대략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지 마시고. 요점만 짧게.”
“얘는 스트라우스다. 모험가지. 나처럼 마기마기에 흑심을 갖고 들어왔다가 분위기가 심상찮아서 야반도주하려고 왔다.”
알기 존나 쉬운 설명이군. 나는 그 스트라이트 씨에게 질문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뭘 해도 여유롭던 대표가 조바심과 짜증을 부려대더군. 좀 알아보니까 영주 앞에서 뭔가 큰 실수를 저질러서 마기마기가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고, 그래서 공적에 집착하고 있어.”
새끼들이 아주 쌍으로 반말이네. 나도 이제 말 놓음.
다나는 건과일을 씹다가 말했다.
“알 만 하네. 근데 왜 우리 남편한테 오셨대?”
“대표가 저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항아리를 부숴대길래 뭔 일인가 했지. 그런데 여기 이 친구가 댁이랑 잘 아는 사이라면서 같이 튀자더라고.”
“그렇다. 나, 노랭이 친구 기억한다. 에린의 말을 잘 아는 전사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존나 성장했다.”
“그리고 닌 실력도 옆구리가 휑한 것도 그때 그대로고?”
“심한 모욕이다. 노랭이 친구 나빴다.”
“지랄 깝싸지 말고.”
그 와중에 욕은 찰지게 배워온 게 웃겼다.
외국인이 제일 빨리 배우는 게 욕이긴 하지.
스푸라이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기마기로 싸잡혀서 문제가 생기는 건 사양이니까. 나를 따라오는 팀원도 있고, 저 놈들에게 따로 받은 것도 없어. 내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마도서를 잔뜩 받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것저것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 가지고 나왔다.”
“자랑스럽게 말할 얘긴 아닌 것 같애 띨빡아.”
다나의 말이 정확했다. 이거 브리타니아 맛에 오염됐나. 애 꼴이 말이 아니네.
으쓱거리며 자랑하는 장비들은 대충 봐도 의류수거함에서 건진 물건에 마법을 몇 개 바른 잡템이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행복을 얻은 것이다.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흠. 뭐 도와주긴 힘들 것 같고…… 금지옥엽 같은 조언을 해 줄 순 있지.”
“수식하는 표현이 거창하군. 듣고 싶은걸.”
나는 픽 웃고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해서, 대충 알겠지? 돌아가면 너희랑 비슷한 처지인 놈들부터 설득해서 같이 튀어. 욕심에 눈이 멀어봤자 깽값도 안 나온다. 너희 사장놈이 지랄 떠는 거 쫓아가다가는 진짜 싹 다 뒤지는 수가 있어.”
“……그 몬스터들이 그 정도인가?”
“이것도 많이 순화한 건데.”
나도 솔직하게 조언한 거다.
내가 부추겨서 이 놈들처럼 별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대거 죽는다면 잠자리가 찝찝하지 않은가. 마침 잘 찾아와 줬다고 감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노랭이 드립도 악의를 갖고 하는 건 아닌 모양이고.
결국 따지고 보면 다 똑같은 레이시스트지만, 넓은 아량을 가지고 넘어가 주도록 하자.
못 배워서 야만한 걸 누굴 탓하겠어.
“좀 더 강하게 만류하고 싶은데, 사업이랑 주식이라는 게 말린다고 듣는 게 아니거든. 인생 걸고 배팅하고 싶은 놈은 어쩔 수 없지. 너희나 우리가 위험한 걸 모르고 사는 직업도 아니고.”
“노랭이. 주식이 뭐냐?”
“니가 좆망한 거요.”
“연애사업?”
“응. 운하고 정보하고 타이밍이 중요한 일이야.”
“꿀팁이군. 메모한다. 아내 다섯 만든다.”
그래. 니 좆대로 살렴.
“……도망치려면 대표가 전투에 나설 때 도주해야겠군. 그 서류에 싸움에 필참하라는 내용은 없었으니까.”
“그래. 글고 튀었다가 마기마기가 상장폐지하면 거기서 뭐 건져 둬. 장부까진 못 구해도 비리의 증거 같은 걸 찾아두면 잡혔을 때 야부리 털 거라도 생길 것 아녀.”
“조언 고맙다. 같은 모험가로써 감사하지.”
스트레이트는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이건 조언의 정보료지만, 대표는 어떻게든 독보적인 성과를 내려고 드는 중이다. 마법사 길드의 참전을 방해하고 있더군. 성벽을 지키는 것 이상의 일은 하지 않도록 말이야.”
“뭘 어떻게? 지부장 약점이라도 잡았나?”
“거기까진 모르지. 하지만 통한 건 맞는가 보더군.”
“허. 지랄 염병도 삼중주셔.”
나는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투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건 아닌갑다. 마법사는 자기 이득에 철저하니까 튈 사람은 튀었겠고, 후방에서 마법이라도 많이 날려주면 충분할 것이었다.
“이만 가지.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그 트롤 킹의 군대는 얼마 쯤 뒤에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모르는레후.”
막 며칠 씩 존버를 타진 않겠지만, 이렇게 쉬면서 마나의 회복에 몰두하고 있는데 쳐들어오는 것도 힘들 것이었다.
“알겠다. 일부러 미안했다.”
스트레이초는 그렇게 말하고 떠나가려 했는데, 셈무스는 그 전에 나한테 뭔가를 주섬거리며 건넸다.
“선물이다. 빛을 내는 매직 아이템이지. 일회용이다.”
“존나 고맙게 받을게. 두고 가.”
“그래. 만나서 즐거웠다.”
인종의 벽도 넘어선 사이 좋은 남남 커플은 그렇게 우리를 떠나갔다.
결과적으로 마기마기의 전력─금전으로 고용된 용병들─을 깎아낸 셈이 됐는데, 어떻게 될려나 모르겠군.
프랑은 얌전히 물을 마시다가 말했다.
“노르 친구는 이상한 사람이 많네.”
“아내가 아니었으면 고소했을 발언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눕혔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두려는 생각이었다.
“프랑. 이거 우리 엄── 사제장님이 준 약이야. 너도 마셔. 내상에 좋대.”
“아, 고마워. 다나. ……으에에엑. 무지 쓰다….”
사이 좋게 씁쓸한 약을 마시고 얼굴을 찌푸리는 아내들.
나는 다나에게 코난드 놈의 죄를 말해주려다, 일단 상황을 보기로 했다. 지금 말하면 영화에 나오는 사망 복선 같잖아.
─후루룩.
나도 나대로 마나 포션을 빨면서 대기했는데, 얼마 안 가 집사가 사제장님을 데리고 올라갔다.
척후가 어쩌구 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했는데, 집사의 표정이 구겨진 건 아니었기에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돌아온 장모님에게 물어보려는 마음을 먹으며, 점점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뎅─!! 뎅─!! 뎅─!!
경비병이 높은 탑에 매인 종을 난폭하게 쳤다.
원래 경보용 종이 아닌 걸까. 무겁게 울리는 낮은 소리가 밤이 늦어 어둠에 가라앉은 도시를 떨리게 하는 듯 했다. 픽트 인이나 윙글링 인들은 쉬다가 후딱 일어났다.
당연히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왔군.”
나는 팔찌를 만지며 일어났다.
성벽을 올려보자 경비병들이 올라가는 길을 오가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도 급하게 뛰어올라가는 걸 보면 잘못된 경보는 아니었다.
“하, 개새끼들. 밤이 오길 기다렸나.”
“트롤도 오우거도 밤눈이 좋잖아.”
프랑과 다나가 일어나면서 한 마디씩 주워섬겼다. 장비를 점검하고 있자 장인어른께서 빠른 발로 달려오셨다.
“상황을 보러 간다. 성벽으로 올라갈 생각이지만, 편제에서 뺄 수 있는 인원은 너희가 최적이다. 같이 와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