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77화 (477/1,009)

나는 티르시가 한 말에 잠깐 어안이 벙벙해졌다.

“진료…… 요?”

지금 내 설명을 듣고도 진료를 해 주겠다니?

나란 새끼도 꼴에 남자였다. 한순간 야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만 것이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착한 시발 생각…….’

마초이즘을 풀로 발동해서 엄한 망상을 억눌렀지만, 미녀 간호사─연금술사─가 발기부전을 진찰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쪽으로 생각이 빠지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반대로 그 본능을 참아내는 자가 진짜 사나이인 것이지.’

못 참으면 시발 그냥 짐승인 거고.

내 업적 타이틀 중에 ‘짐승의 왕’이라는 칭호가 있다는 건 지금 논외로 두자. 얘기가 복잡해진다.

“네. 로마니아에도 흑마법사에게 당한 사람── 노르드의 용태와 유사한 환자는 비교적 많거든요.”

“그렇군요. 흑마법사들의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까?”

“잘 아시네요. 맞아요. 저 같은 7성급 마법사가 해결법을 아는 것도 그래서구요. 일감이 들어오거든요.”

“아하.”

나는 그만 혀를 내둘렀다.

흑마법사라는 건 애초에 테러리스트랑 비슷한 놈들이다.

목적이 제각기 다르고 하나의 분류로 엮긴 어렵지만, 하나같이 지들 좆대로 살 수 있다면 뭐든 하는 씹새들!

‘〈임모르탈리스〉는 그중에서도 흑마법사 직종의 환영여단이나 아란칼 같은 놈들이지.’

그래서 씹새들의 주요 피해자인 나르메르-나일이 제일 유명한데, 테러리스트라는 놈들은 나라를 가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같은 흑마법사끼리 싸우는 일도 잦다.

테러리스트보다는 조폭이라고 하는 게 더 알기 쉬울까. 이 업종 최고 아웃풋인 〈임모르탈리스〉부터가 최근까지는 같은 멤버가 뒤지건 말건 알 바 아니던 콩가루였으니 말 다 했다.

아무튼 굳이 국제급 테러 단체가 아니어도 스스로 킹왕짱을 자칭하며 강대국의 정치인들을 몰살하려는 미친 놈들은 있는 법.

로마니아가 그 새끼들의 똥을 치우는 것에 익숙할 만 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흐흐. 요금은 무료죠?”

“후후. 돈 받으려고 하는 짓이었으면 오지도 않았어요.”

티르시는 쿡쿡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행이다. 이번에도 쿨하고 펀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주 예전에 파티 가입을 부탁받았을 때처럼 혼자 김칫국으로 뭔 샤워를 하듯 깨방정을 떨지 않고 끝냈다.

데레레렌~♬! 여심의 이해도가 1 올랐다!

성장했구나, 노르드야.

“시술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 올게요. 포션까지 마셨으니 상처가 덧날 걱정은 없겠지만, 쓸데없이 기력 낭비하시면 안 되요?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죄송했슴다. 처음부터 부탁드릴 걸 그랬네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면 됐죠. 그럼.”

티르시는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무슨 진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빠르게 달려가는 걸 보면 마음이 급한 모양이군. 라리루라는 그런 티르시를 반개한 눈으로 보다가 말했다.

“……선배?”

“무슨 말을 하려는진 알겠는데, 쓸데없는 걱정일 걸.”

나는 내 말에 입술을 삘죽거리는 라리루라에게 안심하라는 뜻의 웃음을 지어주었다.

“티르시도 전직 귀족 아가씨 아니냐. 진찰 받는 부위가 좀 엄해서 그렇지, 진료라고 해 봤자 별 것 없을 거야.”

“……아닐 것 같은데.”

라리루라는 미심쩍다는 것처럼 중얼거렸고, 나는 잔걱정이 많다며 낄낄댔다.

하지만 20분 쯤 뒤에, 나는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라리루라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말이다.

일이 왜 그렇게 됐냐고?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이세계 토종 로마니아 인과 지구 출신 옐로 사이어인 사이에는 미처 메꾸지 못한 인식의 괴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귀족’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감의 차이였다.

Z-전사이자 지구용사인 나 강북호가 아는 ‘귀족’들이란, 즉 유교와 성리학에 근간한 엣헴엣헴 틀딱 탈레반이다.

아니면 혼전순결 갖고 전쟁까지 일으키는 판타지 처녀충들이거나.

하지만 로마니아에서 나고 자랐던 라리루라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듯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세계에서도 처녀성에 대한 존중은 있지만, 정말로 품행 방정한 청교도 탈레반들이 ‘이세계 귀족’의 평균이라면──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같은 게 횡행할 리 없지 않은가.

“시작하죠.”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온 티르시가 말했다.

추운 날씨인데도 목에 난 땀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었다. 엄청 서둘러서 준비를 해온 모양이다.

─찰랑.

그리고 그런 티르시의 손은 위생 장갑을 끼고, 누가 봐도 러브젤 같은 투명한 액체를 담은 병을 들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책도 한 권 끼고 있다.

“……시작해요? 뭘요?”

당연히 나는 복장까지 포함해서 완전히 간호사 AV물 도입부처럼 보이는 티르시의 차림새에 넋이 나가버렸다. 같이 쳐다보던 라리루라도 거의 똑같은 표정이었다.

티르시는 마스크로 얼굴을 눈 밑까지 싹 가러셔 얼굴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간 머뭇거렸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주세요.”

그러다가 마음을 다진 듯, 진짜 의료계 종사자처럼 유무를 묻지 않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 속옷은 중간까지는 안 벗으셔도 되고요. 마사지를 할 거에요.”

“옷을 벗어요?! 마사지라는 게 뭐길래요?!”

그 바보 같은 질문은 내가 아니라 라리루라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귀에나 저렇게 번역되는 거지, 이세계에선 흔하지 않은 행위라 라리루라는 브리타니아 어로 해석을 못 한 모양.

티르시는 가져온 병을 내려놓았다.

“오는 길에 성수를 사 왔어요. 이걸 노르드의 몸 곳곳에 펴 바를 거에요. 꾹꾹 누르면서 체내에 있는 어둠과 음의 마나를 억제하는 거죠. 그걸로도 임시처방 정도는 될 거구요.”

“몸을 주무른다구요?! 옷을 벗기고?!”

“로마니아에선 흔한 대처법 중 하나인걸요?”

티르시는 병 안에서 점성 높게 움직이는 액체를 가리켰다.

“점성을 높인 성수를 바르고 마사지를 할 거에요. 완쾌는 어렵지만 몸 상태는 호전되겠죠.”

“……허미 씹.”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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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애미 씨부랄, 이런 건 보통 남자가 여자한테 해주는 거 아님?’

왜 내가 당하는 측인 것이지?

시발 이게 TS물이었으면 암컷 타락의 전조라고 보고 진작 하차했다. 야동이었으면 고확률로 펨돔물이니 애시당초 표지만 보고도 걸렀을 거고 말이다.

“자, 잠깐만요! 그거 티르시 언니가 할 필요 없지 않아요?!”

─벌떡! 라리루라는 당황해서 일어났다.

어버버 거리는 우리 막내 아내님께 티르시는 수술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간호사처럼 조리 있게 설명했다.

“고순도의 마나가 들어간 성수는 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평범한 성수를 뿌리고 마나를 퍼부어야 하는데, 다행히 제가 노르드 덕에 마나량이 많이 늘어난 상태잖아요?”

“그, 그러면…… 그러면 저도 같이 할게요! 그건 괜찮죠?!”

“네, 같이 도와주세요. 제가 만지기 곤란한 곳은 라리루라 양이 대신 주물러 주시면 되겠네요.”

라리루라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외쳤다. 티르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락했고 말이다.

여전히 작은 얼굴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눈매만은 침착했지만, 그걸로는 알 수 없었다.

“네! 그럴게요! 당연히 그래야죠!”

─붕붕! 완전히 마음을 정해버린 라리루라였다. 헤드뱅잉이 인상 깊군.

‘그런데 왜 내 의견은 아무도 안 묻는겨.’

나는 하겠다고 한 마디도 안 했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입을 열어본들, 세상에는 고개 숙인 가장 1마리로는 바꿀 수 없는 대세의 흐름이란 게 있다는 걸 배울 뿐이겠지. 내 엘리트 대갈통은 그렇게 예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존나 남은 돈으로 밥을 살지 술을 살지 고민하는 부랑자처럼 빡세게 번뇌하다가 물었다.

“……씻고 와도 될까요?”

꼴마초 맙소사. 허니문 여행에서 아다를 뚫릴 거라 직감한 숫처녀 같은 질문이네.

정말 개좆 같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물론 상관없어요. 아, 곳곳까지 깨끗하게 씻어 주시면 더 좋구요.”

“……예.”

나는 그렇게 방에 딸린 욕실에서 돼지 막창 세척 알바처럼 개깔끔을 떨며 몸을 청결하게 닦았다.

독 마법으로 위생용품을 살균하듯 지랄을 떤 건 덤이다.

그 뭐냐, ‘귀두에 자위하느라 붙은 휴지 달고 병원 간 썰’ 같은 것도 있잖은가.

속옷도 벗게 될 것 같은데, 엉덩이도 인도인들처럼 왼손을 갖고 밥을 쳐먹어도 병에 안 걸릴 만큼 깨끗이 닦았다. 참지 못할 현자타임에 습격당하면서 말이다.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느끼는 현자타임이지.”

걍 발기부전에 걸린 겸 뒤져버렸어야 하지 않을까.

쥬지가 없는 내게 얼마나 가치가 있지? 팔도 없고 쥬지도 없으면 진짜 번역기 아냐.

─호달달달.

자괴감에 하나 뿐인 손을 떨면서 밖으로 기어나왔다. 이미 침대 시트도 걷고 나만 도마에 올라가는 생선처럼 올려두면 끝날 상황이었다. 뭐가 이렇게 빨러 시발.

“씁…….”

나는 도와주려는 라리루라를 멈추고 한 팔로 옷을 벗었다.

─스륵.

상체를 벗자 자랑스러운 복근이 드러났다. 티르시가 슬쩍 눈길을 줬다가 라리루라의 뚱한 눈빛에 고개를 돌렸다.

“누웠슴다.”

“잘 하셨어요. 준비 됐죠, 라리루라 양?”

“다, 당연하죠!”

반바지 같은 빤스만 입고 벌러덩 자빠지자, 그렇게 관짝에 들어간 드라큘라처럼 차렷 자세를 한 내게 두 사람의 미녀가 달라붙었다.

성스러운 러브젤의 감촉이 차갑다.

‘사바이타이 태국 마사지 24시간 영업 중…….’

왠지 그런 말이 떠올랐다. 마사지라고 하면 퇴폐적인 이미지가 더 강한, 성욕 충만한 수컷의 한심한 사고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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