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92화 (890/1,009)

***

노르드와 로키가 사라지고, 전투를 계속하는 두 집단의 생각은 일치했다.

‘이 녀석들을 먼저 해치운다!’

〈영혼 수확〉으로 에인헤리의 숫자를 유지하며 다나는 빛의 무기를 흩뿌렸다.

‘노르 녀석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이 섬에서 물러난 헤니르는 뒤가 없어.’

그녀들도 적들도, 장차 위협이 될 적을 해치울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그렇기에 임전무퇴의 결전이다. 다나는 마나와 권능을 불살랐다.

파아아아아앗─!!!!

영혼의 광채를 퍼트리는 듯한 신성한 빛!

밝은 하늘을 더 밝게 충만시키는 축복과 가호. 100체의 발퀴리에들이 진을 갖췄다. 지상에서의 전투를 잠깐 경직시킬 정도로 필살의 돌격자세였다.

5천을 넘는 괴조의 무리가 즐비한 하늘을 뚫고, 여신의 군세가 날았다.

“승부를 서둘렀구나!!”

권능과 마나를 쥐어짠 특공에 두루마리 신족은 기존의 몇 배는 되는 괴조를 창조했다. 악몽에서 나온 듯한 알록달록한 괴조가 웅장하게 포효했다.

“Kirururururururururu──!!!”

무지개처럼 일그러진 불꽃이 다나에게 꽂혔다.

공격력만은 우신에게도 버금가는 브레스였지만 다나는 그대로 들이받았다.

마법과 브레스의 출력 겨루기였다. 이빨이 부서지도록 악물고, 몇 초간 길항하던 불꽃을 꿰뚫은 다나는 우신급 괴조와 두터운 육벽을 관통했다.

“잡았다, 삼류 화가!!”

고치처럼 둘러싸인 육벽 속에서 적의 목을 포착한 그녀가 검을 내던졌다.

“어설프다!!”

일갈한 두루마리 신족이 손바닥을 합장했다. 그 순간, 다나의 칼날은 그를 통과하고 지나갔다. 벤 자리에 상처는 없었다.

성공과 운을 관장하는 번영신 포르투나의 권능.

─쐐애액!! 다나의 칼날은 뒤에서 폭발했다.

“젠장.”

이번엔 그녀의 실수였다. 아멜리아를 상대할 때 봤던 권능을, 저들은 쓰지 못할 거라고 예단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동에 흠이 있는 건 분명하다.

진짜 신좌를 가진 것도 아닌 적이었다. 베로니카처럼 다른 형태로 발현했을 테니, 연속 발동이나 그밖의 단점이 있을 것이었다.

‘맞거나 방어하는 걸 보면 체력 소비가 크거나, 연속 발동이 힘들다는 것!’

접근전으로 해치우자. 결심한 다나가 순식간에 육박했지만 두루마리 신족도 부유하던 스크롤을 쭉 찢었다. 묵과 잉크가 폭포처럼 뿜어졌다.

정형화된 피조물의 모델을 단숨에 1만 마리 쯤 창조한다.

숫자와 질량으로 다나를 밀쳐낼 생각이었다.

─후두둑.

하지만 뿜어진 잉크는 생명을 낳는 늪이 못 된 채로 허망하게 낙하했다.

격양한 그는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구시대의 신족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다!!!!”

“훔쳐간 인간의 권능을 빌려쓰는 삼류가, 주둥이만은 어엿한 신이로구나!”

뿔을 노르드의 마나 색깔로 빛내는 베로니카가 이를 갈며 대꾸했다.

손바닥에서 뿜어지는 마나의 역장. 마법으로 팔레스의 권능마저 막아냈던 것이다.

‘창조’라는 행위를 봉쇄하는 마법이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막은 것처럼, 베로니카의 마법에 의해서 나약한 피조물은 잠시 동안 이 자리에서 태어날 수 없게 되었다.

뿌드드득…!

“큭……!!”

손바닥에서 급류처럼 눈에 띄는 농도의 마나를 뿜어내며, 베로니카는 압박을 견뎠다.

신족들이 연발하는 【윌리투스】를 전부 카운터하고, 창조를 봉쇄해서 권능을 막고 있는 그녀는 이 자리의 주역이나 다름없었다.

베로니카 혼자서 전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기적!

그녀 혼자의 몸으론 더 이상의 활약을 바랄 수 없었다. 최소한의 방어에마저 신경을 할애하자 더 이상은 공격에 나설 여력도 없어졌다.

“발이 멈췄구나, 바이콘 마법사!!”

그걸 빈틈으로 본 식물 신족이 돌격했다. 계속 재생하는 골렘 방패를 내민 프랑을 제치고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전력의 주축인 베로니카를 사살할 생각이었다.

“방해 금지.”

휘익─ 척!!

돌격해오는 그를 번개처럼 날아온 네페르티티가 가로막았다. 그녀의 몸 주변에서 희미하게 오러의 입자가 흐르듯이 춤췄다.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가호를 받았다고는 해도 상대는 고작 인간 전사 아닌가.

밧줄 같은 근육이 등에서 융기하며 그의 주먹에 깃들었다. 번영신의 권능을 공격적으로 변화시킨 힘! 절대 빗나가지 않는 필중의 주먹이었다.

생명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일격. 가호의 힘조차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약한 인간의 육체 따위!! 썩은 포도알처럼 터트려주마!!”

필중과 방어 관통의 주먹이 네페르티티의 얼굴 한복판에 꽂히려는 찰나였다.

─휘리릭!

얇은 채찍이 뱀처럼 그의 손목에 감겼다.

경이로운 동체시력을 발휘한 네페르티티는 채찍 중간을 잡고 몸을 회전시켰다. 달인이 펼친 힘의 작용은 마법처럼 적의 전신에 원심력과 회전력을 가미했다.

“끄아─?!”

─휘리리리리리릭!!

새총의 발사에 말려들어간 사슴벌레처럼, 식물 신족의 몸이 공중으로 튕겨났다.

채찍으로 펼친 엎어치기 한 판.

필중의 주먹도 휘두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외간 남자의 손찌검은, 싫어.”

오빠한테도 맞아본 적은 없으니, 그녀를 때려도 되는 건 세상에 오직 1명 뿐이다.

무방비하게 붕 뜬 적으로부터 채찍을 푼 그녀는 팽팽하게 당긴 채찍을 쌍절곤을 휘두르는 것처럼 당겼다. 그녀의 사지혈맥에 마나가 흘렀다.

오델리아에게는 기술의 숫자를 늘리라고 지적받았지만, 그녀는 그 지적에 불복했다.

흑마법사들을 쓰러트리며 얻은 그녀의 무예는 더 빠르고 강력한 힘만을 추구했다. 삭막한 내면 그 자체를 드러낸 것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전부 덜어내서 만든 예리한 무예다.

권능이니 하는, 잘 모르고 어려운 것들은 잠시 잊었다.

추구하는 건 더 강하고 빠른 힘이다.

우직하게 관철한 신념만이 전사의 훈장. 기술은 뻔해도 좋다. 진리는 늘 간결한 법.

이 말라붙은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기를 여력이 있다면, 그 감정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용하기도 모자라다. 적에게 베풀 건 냉엄한 살의면 된다.

그녀는 스승의 통렬한 지적을 구태여 무시했던 제자의 일검을 봤다. 불필요한 무게를 담은 검이 바람으로 차원을 베는 초월자에게 닿는 것을.

아르마알스 가문의 기사단장 가이우스의 일검.

그게 바로 네페르티티 역시 지향할 경지였다.

눈을 희번뜩 뜨는 그녀에게서, 지성이 없는 괴조들마저 흠칫할 살기가 터져나오고.

─쫘악!!

깨달음의 너머에서 그녀의 채찍은 모든 소리를 찢으며 작렬했다.

“끄학!!!”

채찍의 끝이 소리보다 빠르게 식물 신족의 몸을 후려치고, 옆으로 날아가는 것보다 빠르게 회수된 채찍이 다시 반대 방향에서 후려친다.

─투두두두두다다다다다!!!!!!!!

그 채찍은 반드시 명중하는 것도, 어떤 방어도 분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빠르다. 단지 무겁다. 채찍이 아니라 철로 된 사슬을 휘두르는 것처럼 그녀의 채찍은 냉혹한 철두철미함으로 날뛰었다.

바닥에 꽂아넣고, 위로 튕겨진 몸을 좌우에서 한순간에 두들겼다.

채찍의 타격이 터트린 파편이 소용돌이를 불러 일으키며 적을 찢어발겼다.

네페르티티가 싸움 속에서 보내고, 깨닫고, 얻은 모든 기술이 한순간에 펼쳐졌다.

폭발적인 속도로 펼쳐내는 그녀의 모든 절기는 삶의 궤적을 그리는 듯 찬란했다.

1초 만에 6종류의 기술을 퍼붓는 절기를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 아름다움과 참혹한 살기의 양면성에 전율하겠지.

《구리로 지은 문과 놋쇠로 된 못으로써(aAw m Hmt qAryt m Hsmn), 이는 영원을 위해 창조되고 유구한 생명을 위해 갖추어졌으니(ir n Dt Hryt HH Hr.s).》

한계를 뛰어넘은 연격을 발휘하며 네페르티티는 낡은 경전의 문구를 중얼거렸다.

《──나는 땅의 끝에서, 땅의 윤곽을 본다(aHa.kwi Hr Drw tA mA.ni qAb.f).》

쫘아아아아아악─!!!!

최후의 일격이 무자비하게 적의 허리를 상하로 나눴다.

“신군, 님!! 부디, 비원을 이루십시오──!!”

유언 같은 읊조림은 채찍의 포효에 파묻히듯이 사라지고, 2번째 사망자가 바닥에 선혈을 쏟았다. 파괴적인 일격에 남겨진 원형은 머리 뿐이었다.

“하, 하아, 하, 하, 하……!!”

온몸에서 엄청난 탈력감과 근육 파열의 통증을 느끼며 네페르티티는 무릎 꿇었다.

육체의 한계를 넘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잘도 비에구르스를!!!!”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쁜 짓을 못 하게 말렸어야지!!”

간신히 상처를 회복한 거미 신족이 달려들고, 그 앞을 프랑이 저지했다.

“가족이라도, 아니! 가족이니까!! 잘못하면 혼내주고 타일러야 하는 거야!!”

“시끄러워, 닥쳐!! 아무 것도 모르는 드워프가!!”

낫이 방어를 통과하는 걸 본 프랑은 큰 무기의 리치를 살려서 견제하고, 발바닥의 모래와 점토로 고속이동하며 적의 몸을 쳐냈다.

정작 좀 전까지 거미 신족과 싸우던 라리루라는 협력할 틈이 없었다.

말이 없는 광휘의 정령은 네페르티티의 채찍이 식물 신족을 맞춘 순간부터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베고자 공간을 난무하고 있어서였다.

빠르게 비행하는 그를 상대로 라리루라의 공간 지각력은 빛을 발했다.

“필살!!!! ‘오늘따라 손님이 가득한 투기장’!!!!”

─우수수수!!

창세의 권능으로 좌석을 전부 채운 투기장처럼 엄청난 숫자의 꼭두각시를 뽑아내는 라리루라. 저 두루마리 신족만한 솜씨는 없는 그녀다. 꼭두각시의 강도는 별 것 없다.

광휘의 정령은 꼬리와 양팔, 2개의 창을 종횡무애로 휘두르며 전진.

그러던 차에 그는 눈치챘다. 꼭두각시의 질감이 전과 다르다. 마치 금속 재질인 것처럼 위에 색이 입혀져 있긴 했지만, 이 질감은 틀림없이──

얼음.

“〈대소멸(Big Crunch)〉.”

─쩌저저정!!!

공간이 처참하게 찢어졌다.

초고위 마법을 무영창으로 뿜어낸 티르시는 그 결과에 눈을 크게 떴다. 공간을 찢는 대마법에도 광휘의 정령은 죽지 않고 빠져나왔던 것이다.

광휘의 정령이 창을 바닥에 꽂았다.

지면이 크게 갈라지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오싹한 직감으로 죽음의 위기를 느낀 티르시가 하늘로 뛰었다.

‘큰일났다. 베로니카의 눈에서 벗어나면 마법을 쓸 수……!!’

그녀는 생각을 미처 이어가지도 못했다. 눈이 멀 정도의 광채가 지면의 갈라진 틈새에서 뿜어지듯 새어나오며 섬의 하늘에까지 도달한다!

천지를 불문하는, 초월자의 격에 걸맞는 절기!

‘역시 이 정령, 마스터 클래스……!!’

순식간에 장비를 완전히 선조 아르마 슈나스의 아이템으로 바꾼 그녀가 마법을 장전했다. 라리루라가 만들어주고, 직접 펼쳤던 얼음을 전부 한 데 끌어모았다.

공간을 밟고 점프한 라리루라도 꼭두각시를 1체 대동하고 주포를 겨눴다.

링링이 6호가 입을 쩍 벌렸다. 입, 양손에 붙은 삼중포신에 권능과 오러가 맺혔다.

“티르시 언니! 선배한테 배웠던 신기술, 이 참에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새삼스럽지만 저희, 궁합이 딱 맞네요!”

발사 시퀸스까지 2초. 광휘의 정령은 그보다 한 발 빠르게 절기를 펼쳤다.

모든 소리를 날려버리고, 지면을 뚫는 섬광!

개미를 불태우는 돋보기의 집속 태양광을 행성 사이즈로 확대한 듯한 빛이 뿜어졌다. 티르시는 그 빛에서 눈을 지키며 마법을 펼쳤다.

“〈대소멸(Big Crunch)〉!!”

미스릴 클래스의 마법사도 1번 이상 쓰지 못할 초고위 마법을 9연속으로 발동한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얼음의 장막은 여배우를 감싸는 커텐처럼 티르시를 중심으로 펄럭거렸다. 그녀의 대마법사로서의 최대 공격기였다.

피이이잉─!!!!

그럼에도 빛의 마나는 커텐을 태우고 나아간다.

공간을 으깨는 얼음의 장막을 찢는 출력에 티르시는 완드를 힘껏 붙잡았다.

“각부 리미터 해제, 코어 전개! 〈노심 전환(Trans-Reactor)〉, 장전 완료!!”

라리루라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장비에 새로 얻은 힘, 【보천의 편자】의 파괴력을 실었다. 그 분홍색의 격류는 차원을 찢는 축퇴포였다.

“〈축퇴 방출(Emission of Degeneracy)〉!!!”

압축한 공간이 원형으로 돌아가는 힘은 권능의 힘으로 약화된 블랙홀의 대폭발과 같았다. 3개의 주포에 모인 차원 공간이 일렬로 해방되었다.

2개의 포격은 격돌 지점의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부딪혔다.

구름이 찢어지고 플라즈마화 한 전자기장이 땅, 하늘, 식물과 공간을 지졌다.

지진파에 직격한처럼 지면이 융기하며 퇴적층이 드러날 만큼 솟아올랐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출력 싸움이 섬 전체를 뒤흔들려는 듯 날뛰다가── 끝을 맞이했다.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날린 건 라리루라였다.

“흐읏……!!”

필사적인 회피로 처음의 10분의 1까지 좁아진 빛의 분류를 피해내는 라리루라.

초현실적인 신적 존재끼리의 포격전은, 광휘의 정령의 승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하아, 후으…… 저게 대체 무슨, 괴물이래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용암 바다처럼 변한 섬 바닥을 뚫고 나오는 광휘의 정령을 올려다보았다. 절기의 대가인지 창이 하나 없어졌지만 갑옷에는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똑같은 절기를 앞으로 1번은 더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 진짜. 선배도 참. 1명 해치워 주실 거면 저 사람부터 잡아주시지……?”

진심 반으로 중얼거리는 그녀였지만, 곧 표정이 이상해졌다.

뚝, 뚝….

적의 투구 밑에서 정령답지 않게 새빨간 혈액이 떨어지고 있어서였다.

광휘의 정령이 베로니카에게 얼굴을 향했다.

불꽃이 타오르는 가지를 잡고 무릎 꿇은 베로니카는 피눈물을 흘리며 미소지었다.

“바이콘의, 화염은…… 뜨거울, 테지…… 콜록.”

기침을 토한 그녀는 피눈물을 닦아냈다.

광휘의 정령이 라리루라의 포격을 받아치는 데 여념이 없을 때, 신족 2명이 사라지고 1명이 다나에게 발이 묶인 베로니카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다.

그렇기에 공간을 뛰어넘어서 로키 신의 혈통을 잇는 룬 마법의 불꽃을 퍼부었다.

정령이지만 육신을 가진 적의 갑옷 안은 지독한 불에 지져진 상태였던 것이다.

“……훌륭, 하다. 울프헤딘의 무녀.”

─쿵!

처음으로 입을 연 광휘의 정령은, 자신이 만든 용암 웅덩이에 잠기듯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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