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94화 (892/1,009)

“【엘든 링】.”

형광색의 벼락불이 내게서 피어올랐다.

수르트의 불꽃이 이뤄낸 용접 효과는 무예부터 마법까지 어떤 것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파쿠리한 성뢰신의 권능은 만물을 태운다.

그러니까, 이제 내 기술은 모든 것에 물리적인 접촉이 가능해졌다.

─파지직!! 전류가 염동결계처럼 확장했다.

그 조합은 말하자면 럭키 매그니토!

어떤 대상에게도 접촉 가능한 뇌전은 달인처럼 헤니르의 수도를 흘려냈다. 그렇게 빈틈을 만들고 발사하는 건 붉은 벼락불이다.

“수르트하살법 흉내내기!!”

진· 혈수마공(眞· 血手魔功)

캘러미티 혼(Calamity Horn)

─꽈릉!!!!

두 주먹을 혈수마공의 자세로 잡고, 【게르튀르 푸타르크】처럼 체술로 마법을 펼쳤다. 룬 마법에 한정됐던 기술이 레벨 업을 한 것이었다.

“큭……!!”

─파츳! 벼락이 옷을 불태우자, 헤니르 시팔럼은 겉옷 한 꺼풀을 매미 허물처럼 해제하고 튀었다. 벼락불의 침범을 막는 반응장갑인 듯 했다.

좋은 발상이지만, 수르트의 불꽃을 흉내낸 벼락불은 상성 무시 하르마게돈.

타격을 받은 후퇴는 느려터졌을 따름!!

“천마 문워크의 깨달음이 모자라군, 중뽕 나치 새끼여!!!!”

─휘릭, 착!

브류나크를 잡은 나는 거기에 벼락을 불러냈다. 혈수마공 오의, 파이어 토네이도(Fire Tornado)를 브류나크에 두르고 불과 번개가 섞인 폭풍을 붙잡았다.

“화류일섬(火柳一閃)!”

“웃기지도 않는 기술을 억지로 조합할 줄이야!! 그러고도 오딘의 후계자인가!!”

“몰라 씹놈아!! 로키는 아무튼 닮았대!!”

수르트의 마나 빨로 용접해버린 나에 비해, 별 깨달음을 다 동원해서 신좌의 힘을 흡수한 헤니르 새끼는 깔끔한 콤보로 권능의 저력을 펼쳤다.

인세의 달인들이 보면, 전사도 마법사도 호흡을 잊고 지켜보고 말 듯한 오의들!

─퉁!!

하지만, 그래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공격은 날 강하게 만들 뿐.

로키의 대대적인 방해와 견제를 받고 공방에서 불리점을 얻은 헤니르는 내 예지와 분석을 파훼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

그걸 저 놈의 무능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나를 죽이려면 진짜 피할 방법 없는 광범위의 공격을, 내가 데미지를 입을 정도로 계속 퍼붓는 것밖엔 답이 없다고 보니까.

당연히 그만한 출력을 그토록 넓게 흩뿌릴 수는 없다.

공격을 읽고, 맞아도 다치지 않는 절대적 방어 능력을 갖춘 나다. 그럴 능력이 됐다면 세계수의 에너지를 뽑을 것도 없이 그냥 쳐부쉈을 것이다.

─쿠과과과광!!

사나운 기합성을 외친 헤니르는 신좌와 마법을 병행하며 날뛰었다.

꽃이 피듯 인간의 일생을 바쳐도 완성하지 못할 기술들이 피고, 다시 졌다.

“【무정의 광응】.”

권능을 모아서 체력과 마나를 소모하지 않고서 나를 압박하는 기술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거의 맞지 않고 단단하더라도 자신도 지치지 않으면 될 거라는 듯이.

“때려부술 만한 표적을 늘린 게 다네.”

─콰직!!

파괴의 구체들을 구성하는 중심점, 로물루스의 권능을 때려부숴서 파훼했다.

“……【망무구주】!”

로키를 견제하며 분신을 늘리고, 내 처리능력과 예지력의 한계를 재려는 시도가 있었다. 번영신의 권능까지 섞자 나는 막지도 해치우지도 못 하는 불화살의 폭풍에 노출됐다.

“이 정도 위력으론 백날 맞아봤자 안 뒤진다.”

─터엉!!

끝까지 쳐내면서 로키가 제압하길 기다렸다. 【엘든 링】의 완전한 패링과 방어력이 더해지자 내 마나 소비는 〈정화의 벼락불〉 0.5개 정도에 그쳤다.

“……【흑암의 역병(Myrkan Stórr)】!!!”

차원을 가두고 테미스의 방어무시 권능을 먹인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공격이 있었다. 도망가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침식 세포가 덮쳐왔다.

“바이러스 살포? 스파이 영화 빌런이냐?”

─키이이잉!!!

당연히 차원벽이 선 시점에 짧은 예지를 연발한 나는 【미래 퇴적】으로 체감시간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벼락을 몸에 휘감고 로키 주변까지 뻗었다. 역병은 전부 불타 사라졌다.

공기 중에 불꽃이 타닥거리는 몽환적인 광경을 헤집으며 나는 창술로 공격했다.

“아직 보여줄 게 남았나? 볼거리는 풍족하지만 서커스 치곤 서비스 정신이 모자라군.”

뿌드득……!!

6개의 권능과 마법을 남발해대던 헤니르는 이를 갈고 공방을 이어갔다.

예지와 깨달음. 두 권능의 절대적인 격차.

우리의 강함이 비슷한 걸 넘어서 내 쪽에 훨씬 저울이 기울어버렸을 때부터, 헤니르에게 승산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이 새끼가 수르트보다 강했다면 나한테 그 붉은 별을 떨구고 자기도 튀어나왔겠지. 그리하면 협공하든 막타를 먹든 손해볼 건 없었을 것이다.

‘근데 그렇지는 않았잖아?’

그게 쫄렸다는 뜻이 아니면 뭐겠는가.

나는 지하공간을 종횡하는 헤니르의 비행궤도를 예지하고 마법을 발동했다.

“【엘든 링】.”

─콰아앙!!!!

육체 강화로 3배는 빨라진 스피드를 발휘하며, 몸에 닿는 차원을 갈아버리면서 비행하던 헤니르 새끼를 창대로 가뿐하게 후려쳤다.

“크, 헉……!!”

배를 맞은 충격에 회전하며 바닥에 메다꽂히는 장신의 태초신.

접촉하면 즉사. 어떻게 공격을 성사시켜도 전부 회복해버리는 기요틴 같은 비행이었다.

하지만 그 핵심을 이루는 리베르타스의 권능을 파훼하면 공격 못 할 이유가 없다.

최고로 성가신 리베르타스의 권능을 분석 끝낸 지금, 에너지에 간섭하는 【엘든 링】은 헤니르의 차원 조작을 통째로 역류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가볍게 쳤지만, 상처는 가볍지 않을 거다.”

수르트의 마나로 용접한 【게르튀르】의 공격기 제 6품새. 마나 폭발에 더불어서 심폐정지술까지 체내에 때려박아준 참이다.

거기다가 권능의 역류까지. 무협이었으면 이거 주화입마였음.

나는 어깨에 튄 피를 털며 말했다.

“궁색맞은 아이디어 공모전이로군. 아, 저작권은 주식회사 노르드에 귀속되니까 참고해라.”

대주주 아내님들과 공유해도 불만은 없겠지?

첫 대면에서 처맞고 물러나서 나름대로 강해진 모양이지만,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나의 차이는 몇 주 정도의 시간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100번 이상을 뒤졌다가 살아나기는 했지만, 수르트와의 싸움은 그만한 것이었다.

“전사에게 있어 실전은 로이더들에게 있어서의 스테로이드와 같지.”

나를 죽이려고 드는 외신급 옛 지배자와의 일백혈전.

그런 싸움까지 겪었는데, 이제 와서 무투파조차 아니었다는 새끼한테 질 리가 있겠냐고.

“후욱, 후우…! 벌써부터, 결론을 내는 건, 꽤나 시기상조, 로군…!”

타격으로 부러진 팔을 고치며 일어난 헤니르는 거친 숨과 살기를 갈무리했다.

“체력과 마나 정도는 회복하면 그만이다. 네가 가진, 그리고 늘려나갈 패의 숫자가 나를 웃돌지 못하게 됐을 때…… 그때가 네 패배다, 울프헤딘.”

무한한 듯한 저력으로 헤니르는 다시 나를 죽일 기술을 구현했다.

나는 그 궤변 같은 정론을 긍정했다.

“맞는 말이네. 이번엔 내가 수르트의 입장이 된 셈인가.”

내가 100번을 죽어서 수르트를 이긴 것처럼, 저 새끼도 목숨 원 코인에 HP 지속 회복을 달고 끊임없이 내게 헤딩하다 보면 이길 가능성은 있다.

나도 수르트를 상대로 10판까지는 즉사를 거듭하지 않았는가.

지금 같은 교환이 20번, 30번이 되면 나도 큰 부상을 입을 때가 올지도 모르지.

“싸우기 전에 한 정답 맞추기 말인데, 한 가지 빼먹은 게 있었어.”

하지만 나는 숨을 헐떡이는 로키를 보고 나서, 헤니르에게 담담하게 질문했다.

“네가 데려갔던 로마니아의 왕자 말이다. 어딜 봐도 그 새끼는 보이질 않더라?”

“인간의 피를 이은 자를 결전의 자리에 세울까. 신자를 내치지는 않았다만, 그에게는 메르키스의 호위를 맡겼다.”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공격할 들 틈을 노리면서 헤니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네 매정함은 꽤 의외였다. 메르키스를 찾으려 들지조차 않을 줄이야. 잘못하면 네가 정을 준 인간들은 전부 이 섬에서 폭사할 텐데.”

“네가 여기 있잖아?”

“어설픈 생각이군. 내 존재로 예지가 변동될 듯 싶으냐? 신은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내가 이곳에 있어도, 메르키스는 여차할 때 부족한 마나로나마 이 섬을 날려버릴 터.”

그럴 만 했다. 저 정도의 광기도 없다면 예지를 폭발 엔딩으로 가로막진 못했을 거고.

“아니, 그거 말고 병신아. 널 여기 묶어둬야 그 황자놈이 세계수를 못 불태울 거 아냐.”

물론 그것은 저 예지가, 정말로 ‘내 미래예지를 막기 위한 속임수’일 때의 얘기다.

“──────.”

초월자의 간합으로 찌르고 들어간 기습은, 마찬가지로 초월자인 헤니르에게 통했다.

뛰어난 지능과 간계가 무색하게 무표정해져버린 헤니르의 얼굴은, 내가 내뱉은 말이 그의 마지막 거짓말과 작전을 간파했다는 걸 의미했다.

“이 섬이 터져나가는 예지는 내 예지를 저지할 버림패가 아냐. 네 계획의 전부지.”

섬이 폭발하는 예지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즉, 아직까지도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메르키스라는 년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떠들던 말이 진실이라면, 마나량도 상황적으로 절대 실현 불가능할 텐데 말이다.

“그년 앞에서는 말을 맞춰주는 척 했지만, 나는 그렇게 병신이 아니야.”

혹시나 로키 앞에서 구라를 들키지 않고자, 저 새끼는 싸움 전에 진실만 입에 담았다.

그런데, 내가 이미 로키를 속여먹으며 증명한 게 있지 않던가.

“진실은 때때로 구라보다 더 뛰어난 거짓말이지.”

거짓말의 신조차 진실 앞에는 속으니 말이다.

헤니르는 말했다. 세계수의 뿌리를 전부 태우는 데 필요한 신좌는 7개라고.

7개의 신좌.

풍요신 포모나. 생구신 팔레스. 정의신 테미스.

지평신 로물루스. 번영신 포르투나. 자재신 리베르타스.

성뢰신 베스타를 뺀 로마니아의 7대신.

“로마니아에서 흡수한 6개의 인공신좌들.”

거기에, 남은 하나.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너까지 포함하면 딱 7개네?”

──총혜신 헤니르.

세계수의 뿌리를 타고 공간을 오가는 헤니르는 굵은 뿌리 하나만 잡으면, 이 차원에 뒤엉켜 있는 세계수의 뿌리를 싹 불태우러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게 이번 결전의 진실. 그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우리가 이기건 지건, 헤니르가 제물이 되겠다고 각오하면 이 차원은 끝장난다.

진실을 동원해서 더 큰 진실을 감추고, 내가 감 잡는 ‘승리 조건’을 착각하게 했다.

지혜의 신에게 그저 힘만으로 이겼다면, 싸움은 이겨도 패배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 왔다.”

스릉─.

브류나크를 들어서, 나는 빌어먹도록 대가리가 잘 돌아가는 망할 인텔리를 겨눴다.

이미 인공신좌 중 하나인 성뢰신의 신좌를, 저 새끼로부터 빼앗았던 무기로 말이다.

“새로운 세계는, 반드시 신의 죽음으로만 만들어지니까.”

우리를 죽일 수 없다면, 스스로를 희생하면 된다.

헤니르가 원하는 세상은 그렇게 완성된다. 세계수가 그랬고 지구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가 해 줄 말도 하나밖에 없었다.

“똥혜신 씨는 이제 작작 깝치고 포기하는데스.”

이세계인 여러분. 항상 감사하십시오.

나만한 엘리트 꼴마초, 지구에도 얼마 없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