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곳에 온 게 우연이 아니라고?
사티스는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질문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지? 설마 ‘심해의 군주’가 네게 접촉했어?
“말씀드렸잖습니까? 나우넷의 일부를 잡았다고.”
나는 메달에서 꺼낸 진흙을 보여줬고, 사티스는 바로 이해했다.
─과거를 본 거구나.
“네. 저쪽에도 저희 가족들이 남아 있어서요. 그 앞으로 편지라도 보낼까 했죠. 얘기가 나온 김에 묻는 겁니다만, 그 정도는 괜찮죠?”
─질량과 존재밀도가 낮은 물질이라면. 편지를 보내면 차원이동 중의 압력에 훼손될 테니, 강철 상자 따위에 넣어둬.
“제가 물어놓고 웃긴 질문이긴 한데, 진짜 괜찮습니까?”
─너희가 해준 일이 몇 개인데 그런 것마저 안 된다고 할까. 그런 놈이 나오면 내가 시위를 당겨줄 테니 안심해.
“혹시 여신님 말고 다른 신님이 저를 잡겠다고 내려오거나 하면 그 양반들 몇 대 줘패도 될깝쇼?”
─그렇게 해. 염치와 윤리조차 잊는다면 최후의 옛 지배자를 물리치고 세상을 지킨다는 대의조차 희석되니까. 망집만 남은 패잔병으로 남을 바에는 죽는 게 나아.
조언은 했지만 그녀의 의식은 영 다른 데 팔려 있는 듯 보였다.
─……네 이야기는 기억해둘게. 위에 남은 놈들과도 상의할 게 생겼네.
“저는 솔직히 좀 염려됩니다.”
4년 전 시점의 ‘심해의 군주’는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거의 아시아 대륙만큼 떨어진 곳까지 힘을 뻗을 수 있었잖은가. 그년이 남은 힘으로 내 고향 푸른별에 지랄을 안 하리란 보장도 없다고.
“저도 노르의 말에 동의해요, 수렵신님.”
그러자 프랑이 용기를 낸 것처럼 말했다.
“노르는 그녀가 자기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한 것 같다고 했어요. 미래예지로 노르가 예언의 울프헤딘이라는 걸 알고 손을 쓰려고 했던 걸 거에요.”
─거의 확실히 네 생각대로겠지. 하지만 그년은 아니꼽긴 해도 별의 바다에서 태어난 신. 운명과 예언을 비틀지는 못했을 터……
뒤로 갈수록 혼잣말처럼 말하던 사티스는 다시 카리스마 있는 여신을 연기할 때처럼 눈이 냉막해졌다. 아니, 진짜 살기였으니 연기보다 박력 있다.
─널 놓친 게 단순한 실패일 리는 없어. 그렇게 멍청한 문어는 아니니.
“예. 자화자찬이 되겠지만 생각이 짧은 바보는 예언의 권능을 얻지 못합니다. 어떤 수작을 부릴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
나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프랑이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였다.
“프랑?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어?”
“으, 응? 나, 나 말야? 아냐, 암것두 없어.”
보통 저런 대사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아하, 이런 건 등장인물들이 대충 흘려들었다가 나중에 복선으로 활용되는 대사에요. 추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묻자 프랑은 목을 움츠렸다.
“그게, 노르는 ‘심해의 군주’가 그렇게 어리석진 않을 거라고 그랬지만.”
프랑은 정말 싫은 가정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는 법이잖아.”
“……뎃?”
나는 예상 못 한 가정에 눈을 깜빡였다.
“그게 있지? 난 이렇게 생각해. ‘심해의 군주’가 노르가 과거를 보는 것도 감지할 만큼 먼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면.”
프랑은 희귀하게도 정말 싫은 것처럼 사랑스럽게 인상을 쓰며 논변했다.
“그 괴물은 어쩌면 우리보다── 나나 다나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구 말야.”
“……알아차리다니, 뭘?”
질문한 건 네페르티티였지만 그 말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느꼈던 의구심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프랑은 마치 카레에는 카레 가루가 들어간다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노르의 멋진 점을.”
부끄러워질 법도 했지만 나는 그저 벙쪄버렸다.
그리고 사티스도 ‘얘를?’ 하는 눈으로 날 봤다.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그, 프랑 언니? 조금 심하게 콩깍지가 쓰이신 게 아닐까요……?”
“그, 그래, 프랑. 그 괴물딱지가 무슨 이유로 저 옛날부터 노르 자식의 미래를 관음하겠냐? 할 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계기가 없잖아.”
“울프헤딘은 오딘님의 후계자인걸. 그렇다면 그 오딘님께 패배하고 도망친 ‘심해의 군주’는 그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그분의 후계자로 선정될 사람에 대해서도.”
다른 아내님들까지 말을 더듬거리며 반론했는데, 프랑은 끝까지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논변했다.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논리정연하게 말이다.
“【이르기를, 짐승으로 영락하지 않는 광전사】. 즉, 예언의 울프헤딘은 ‘야수회귀의 부작용을 받지 않는 용맹한 전사’를 의미해. 그 부작용은 심해의 군주의 영향이기도 했구.
이 부분에서 ‘심해의 군주’는 오딘님의 후계자가 야수성을 극복한 노르의 고향 사람일 거라고 예상했을 게 틀림없어.”
말이 없던 티르시가 입을 손으로 덮었다.
“……그다음에는, 물론 예지의 권능을 사용했을 거고요.”
─미래를 봐서 누가 울프헤딘인지 특정했다?
조금씩 설득되기 시작하는 사티스.
설득되지 마라 좀. 자기 여신이 팔랑귀라는 걸 알면 오프툼도 슬퍼할 거라고.
“예언자의 시간감각은 잘 모르지만, 나우넷으로 과거를 보던 4년 후의 노르를 감지했다면 ‘심해의 군주’의 예지력은 최소한으로 잡아서 4년인걸요.
그렇다면 오늘로부터 8년쯤 전, 노르가 고향의 수의학과? 란 곳에 막 진학할 무렵엔 ‘4년 후에 【중간 가지】에 떨어진 노르’의 모습을 예지했을 거구요.”
─그건…… 그렇겠지. 조건에 들어맞는 인간은 드물 테니.
악신의 예지력을 수학적인 계산으로 끌어내린다.
프랑의 저런 감각은 드워프의 특유의 혈통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편에게 들러붙는 추잡한 손길을 쳐내려는 부인의 직감이었을까.
“미래를 봤을 거야.”
프랑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줄곧 바닷속에 가라앉아서 노르의 미래를 훔쳐본 거야. 장차 자길 위협할지도 모르는 오딘님의 후계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려고.
……아직 아무도 모르던 ‘미래의 노르’를, 다른 누구보다 먼저.”
이제까지 없을 만큼 가라앉은 프랑의 목소리가 그렇게 뚝 그쳤다.
그저 가설일 뿐이었지만, 설득력은 우리가 말을 잃을 만큼 넘쳐났다.
‘근데 씹, 프랑의 생각이 맞으면 좀 소름 돋네.’
에이션트-자이언트 문어대가리가 내 미래를 쫙 훑어보고 원작을 바꾸는 2차 창작 작가처럼 초반 전개부터 수작을 부리려 했다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실현적인 예언을 성취시켜서, 그년 자신이 나를 이세계까지 보내버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
─으, 으음. 그 문어대가리의 집착을 설명하기엔 충분한 추측이긴 해.
사티스는 프랑에게 살짝 압도된 것처럼 어조를 어지럽혔다.
─어,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그 문어괴물이 울프헤딘에게 강한 관심을 가진 건 확실해. 정말 사실인지는 몰라도 이 점만은 경계해 둬야겠네.
“경계라니, 뭘 어쩌시게요?”
─그년의 위치라곤 애매하게 감지하고 있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행동에 나서면 바로 알 수 있어. 나처럼 눈이 좋은 신들이 감시하고 있지.
말하자면 대공 용의점처럼 ‘이 새끼 수상하다?’ 싶은 행동의 후보군을 늘려둔다는 걸까. 나는 좀 못 미더운 기분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밖에 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 용건은 끝났어. 그래도 1달에 1번쯤은 나의 아이들…… 교주를 통해서 소식을 전해줄게. 매번 찾아오라고 할 만큼 뻔뻔하진 못해서.
“그러시다면야.”
내가 물러날 자세를 보이자 사티스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에 말했지? 넌 충분히 많은 과업을 수행해 주었어. 감사 인사는 시기상조일 테니 삼가겠지만, 남은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삶을 영위해도 좋아.
“말씀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말뿐인 축복이라서 미안하지만, 행운을 빌게.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길.
이상한 복선 깔지 말고 꺼져주면 좋겠는데요.
내 진심이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티스는 샥 하고 없어졌다.
“……후우.”
이제 남은 일은 없다. 출장 온 용건은 끝났다.
알아낸 건 있었지만, 사실 바뀐 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좆 빠지도록 고생한 만큼 무상의 행복을 누리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 가자, 얘들아.”
배편을 잡을 때가 왔다.
***
배는 휴스로이트에서 암무나 호를 가져왔다.
“세레브한 크루즈 여행 레후.”
“대포 달린 고대문명의 함선이…… 크루즈?”
“배틀크루즈 오퍼레이션.”
암튼 크루즈임. 반박 시 야마토 포를 먹여주겠다.
일부러 자동항해가 되는 배를 가져온 건 안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난교 특화 자가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선원은 1명도 없고, 골렘들만 대충 일 시켜두면 배가 알아서 움직이고 항해해 주는 대형 범선!
이건 존나 갑판 위부터 선실 침대 밑까지 전부 예스 키즈존─자가용 범선이 없는 땅개들은 아기 제조실이라고도 한다─이라는 뜻 아닌가?
“프로페서! 섹스촌이에요, 섹스촌!”
뭐? 로키랑 잠깐 헤어지고 만 것에 대한 이별의 눈물?
그딴 건 대충 쥬지에서 흘리도록 할게요. 짜피 10년 뒤면 다시 만남. 10년 뒤에 다시 만나도 어 왔어? 하고 냉수 한 잔 내줄 듯한 거리감이에요.
“반면 섹스는 바람과 같지. 늘 내 곁에 있으니.”
딸랑딸랑─!
섹시한 빨간 빤스를 입은 나는 침대에 누워갖고 핸드벨을 울렸다.
이 감촉, 초딩 때 배우던 핸드벨 실습이 떠오르는군. 그러나 떡국을 20살이나 더 먹은 오늘날의 강북호는 코흘리개 잼민이 시절과는 다르다.
끼익…. 방문이 열리며 키 작은 메이드가 고갤 내밀었다.
“……시착할 때까진 괜찮았는데, 보여주려니까 왠지 부끄럽네. 에헤헤.”
사티스 앞에서 보여준 예리한 추리력은 어디로 갔는지, 메이드복을 입고 빨개진 프랑이었다. 이런 시발! 흰 스타킹이라니? 뭘 좀 아는군.
─또각, 또각.
프랑의 뒤를 이어서 집안일을 하긴 어려울 듯한 하이힐을 신은 메이드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야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코스튬이니 당연하다.
“……이 6명이 오늘 주인님의 곁잠을 도와드릴 좆집입니다.”
아내님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치마를 걷으면서 인사했다.
“부디……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 주시기를♡”
7P의 현장에서 난, 피어오른다.
붉은 빤스에 피어나는…… 좇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