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1008화 (1,007/1,009)

“돌아가야 한다구요? 벌써?”

가슴은 세상 커다란데 키는 작은 미녀가 놀라서 물었다.

시선을 내게 못 박고 불안해하는 그녀들.

하긴, 그녀들이 보기에는 나는 이세계의 기억이 없는 남편이다.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점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혼자서라도 지구에 남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겠지.

나는 일부러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흐레. 그동안 저는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죠?”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네 아내들이 있다면 더 그렇지. 하지만 돌아오길 바랄게. 그러는 편이 세상 간을 왕복하는 기술을 완성하고 운신의 폭이 넓어질 테니.”

“그럼 그렇게 하는 게 제일이겠네요.”

“시원시원하네. 나라도 좋다면 뭐든 말해. 너희 부탁이라면 내 힘이 닿는 한 들어줄 테니까.”

“옙, 기억해 둘게요.”

내가 대답하자 아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몰래몰래 한다고 했지만 예민한 오감에는 잡힐 듯 느껴진다. 쏘머스가 된 기분이에용.

“나도 일시적으로 귀환하길 추천해! 우리 중에 아아주 믿음직한 의신이 있거든! 울프헤딘, 너도 나처럼 수술만 좀 받으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거야! 부작용도 없어!”

“참고하죠.”

좋아, 잼민이는 구라핑이군. 명심해야지.

─휙.

아티스 씨는 전언을 끝내고 크리스토프를 봤다. 그는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서 대답했다.

“……함구하겠습니다, 수렵신님. 만언신님. 사실 제가 들은대로 말해봤자 윗선은 믿어주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현명한 아이를 아낀다. 받도록.”

아티스 씨가 황금 화살촉과 금괴를 크리스토프 손에 넘겨줬다.

“출신 덕에 네 단체에서 권한이 있는 편이라고 들었다. 금괴는 울프헤딘이 힘 자랑하며 구겨놓은 식기 값과 숙박비다. 평범한 금이니 의심받을 일 없겠지.”

들켰네 씨바. 귀도 좋으셔.

“……화살촉은요?”

“너희가 태평양에서 감지한 마나의 원인으로써 제출하도록 해라. 내가 쓰는 화살촉이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나려다가, 잠깐 망설였다.

그러자 퇴폐한 매력이 느껴지는 슬랜더 미녀가 말했다.

“아셰라드 님과 델타사 씨는 건강해요. 언젠가 재회하게 될 테고요.”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크리스토프는 눈이 찢어질 듯 커지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제 호기심을 풀어주심과 동시에 고삐까지 잡아버리시는군요. 예에, 전부 저한테 맡겨만 두시길.”

모르긴 몰라도 그는 믿을 만한 인물인 듯 했다. 물러난 크리스토프와 교대하듯 얼굴을 비춘 빨간 머리의 남자 신이 다친 팔뚝을 내밀었다.

“……나랑 소베크가 옛 지배자들과 벌인 치열한 사투와 영광의 상처에 관심 있는 사람?”

대답은 없었고, 아티스 씨는 쪽팔린 것처럼 눈두덩이를 덮었다.

“없나 본데? 자자, 곁다리 신들은 꺼져주자고.”

로키는 폴짝 뛰어서 물러나다가, 날 보며 손을 흔들었다.

“맞다, 기억을 되찾기 전에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십쇼. 듣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로키는 시시덕대며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역시 넌 최고야, 노르드! 오딘 언니의 30%만큼 사랑해!”

─쪽.

쓸데없이 요염하게 손 키스를 날린 꼬맹이가 그 일행을 데리고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애미 씨팔, 내가 저런 걸 보고도 의심을 하게 생겼냐고요.

눈을 깜빡이던 무뚝뚝한 사차원 아가씨가 눈을 반개했다.

“오딘의 30%……. 조금 많은 듯, 적은 듯.”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로키라는 잼민이에게는 저게 최고의 찬사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방에는 그다지 가족 같지 않은 가족만 남았다. 나는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

“조용해졌네.”

“음. 그러나 금세 시끌벅적해질 것이니라. 좋아, 잠깐 일어나자꾸나. 그대를 데려가 줄 곳이 있다.”

“어디인가요?”

이세계인가? 솔직히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하지만 뿔 달린 초면의 마누라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정반대의 장소니라. 로키님의 가호가 좀 필요하겠다만은.”

정반대?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지만, 어째서였을까.

그녀의 웃는 얼굴을 아늑하다고 느끼는 마음과 별개로, 심장이 쿵쿵대며 거칠게 뛰는 듯 했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꼭 내가 하릴없이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처럼.

***

─이번 역은 수원. 수원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This stop is Suwon, Suwon. The doors are on your right.

지하철 안내 멘트가 유독 낯설다.

어색하게 들리는 건 왜일까 하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4년 동안 다른 세상에 살던 게 맞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4년이나 지하철을 타지도, 신용카드로 개찰구를 지나보지도 않았으니 일거수일투족이 어색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언니, 언니! 저 그 주황색 카드 없어졌어요!”

“그 가슴주머니에 꽂은 건 뭔데. 나한테 건네는 도전장?”

“오…… 이런 건 처음 타 봐.”

“우리 모두 그러하니라. 이동할 때도 주인님이 태워주지 않았으니.”

아마 내가 느끼는 어색함은 저기 눈에 띄는 게 전부 신기하다는 듯 구는 미녀들 못지 않을 거다. 세상 눈에 띄는 컬러링인데 주목은 거의 안 끄는 모양이었다.

‘아마 무슨 마법이나 그런 거겠지.’

그 마법으로도 미녀 6인조가 남자 하나를 두고 앵왈앵왈 거리고 있으니 약간 빛이 바랜 듯, 가끔 무슨 외국 배우들인가 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깐 비켜 줄래? 사진 찍지 말게 하게.”

“그럴 것 없느니라. 심령사진으로 나올 테니.”

소곤거리는 대답이 사실이라는 건 우리가 수원 역에 내린 뒤에 사실로 밝혀졌다. 뒤에서 째지는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괴담 하나 뚝딱이네.

슈이이이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지하철은 떠났다.

역을 빠져나와서 아파트 단지로 갔다. 4년이나 지났는데 다행히 위치를 잊어먹지는 않았다. 하긴 독립하기 전까지 10년도 더 살았던 집이니까.

문의 모양과 도어락은 그대로였다.

그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아는 그들인지는 모를 뿐.

나는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무심코 일행을 힐끔거렸다.

“크리스토프 씨가 다 확인해 주셨어요. 노르드, 틀림없이 그곳은 당신의 집이에요.”

하얀 머리카락의 마법사 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 어느 세상에서든 돌아갈 수 있는 장소.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진 당신이 쭉 떠올리면서, 목적지로 삼았던 곳.”

내가 살던 집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내 가족이 있는 곳이라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옙.”

나는 몸에서 여분의 긴장을 뺐다.

집으로 돌아가는 데 긴장하는 놈이 어디 있어, 시발. 오히려 그렇게 억지를 쓰자 의식하기보다 더 먼저 내 손가락이 문에 달린 벨을 누른 상태였다.

─……네, 누구세요?

그립다.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4년 내내 못 들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어느 짝눈깔 신이 그녀의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났었지.

─누구세요? 택배라면 그냥 두고……

인터폰을 타고 들려오는 전자음이 멈췄다. 그야 카메라에 내 얼굴이 비쳐서겠지. 귀신이라도 보는 기분이시거나 악질적인 장난인 줄 알고 화를 내면 어쩌나 모르겠다.

“저에요, 강북호.”

그런데 내 주둥아리는 지 혼자 말을 싸질렀다.

인터폰 카메라에서 전원이 꺼졌다.

…쿠당탕탕!!!

현관 복도에 쌓인 물건을 걷어차고 쏟아버리며, 어머니는 문을 열었다.

“……아들?”

머리는 4년 전보다 조금 희었다.

고왔던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늘어서 내 가슴이 다 아팠다. 주름이 얼굴에 난 흉터라면 내가 우리 어머니 가슴에 칼질을 좀 많이 했나 보다.

“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나는 어째서 내가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또 생각해 보고, 이번에는 눈치채는 대신 떠올렸다.

그야 싱숭생숭해지는 게 당연하지.

그만큼 개고생을 하다가, 4년만에 돌아온 우리 집이니까.

“친구네에서 하룻밤 묵는다는 게 많이 늦었죠?”

그렇게 내뱉자마자, 내 기억은 전부 되살아났다.

먹물이 석유가 돼서 불탔다.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추억의 앨범은 불사조처럼 재에서 부활했다. 강북호 이 새끼 이거 부활에 맛 들렸네.

“북호야!”

외치는 목소리가 하도 급했기에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도 않았다. 내 얼굴과 목을 더듬거리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집에 대고 외치셨다.

“여보, 여보! 이리 좀 나와 보세요!! 우리 아들 북호가 돌아왔어요!!”

그리고 또다시 쿠당탕탕.

질리지도 않고 걷어차인 내 군화는 4년도 전에 벗어놓고 간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아들아!!!!”

“옙. 아버지 아들입니다.”

아버지도 조금 나이를 잡수셨다.

아마 올해로 딱 쉰이실 텐데, 누가 보면 60대인 줄 알겠다. 이 세상에서는 4년이 아니라, 한 8년 정도 시간이 더 흐른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게 된 건, 나를 끌어안는 아버지의 힘이 엄청나게 강하다고 느낀 후였다.

“이놈아, 이놈 자식아!! 대체 어딜 그렇게 말도 없이 쏘다니다가 이제 와!! 왜 이제야 오냐고!!”

“……마음고생이 심하셨나 보네요. 저만 신수가 훤해서 죄송할 지경이네.”

“흐흐, 으하하하하하!! 이 자식이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이거 이 자식, 나불대는 걸 보니까 굶고 지내진 않았네!! 거 봐, 여보!! 내가 뭐랬어! 이놈이 어디 가서 배 곪지는 않을 거랬지!!”

처음 몇 달은 뒤지기 직전까지 곪았는데. 니미,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으면 했던 노예 시절의 추억까지 생생하네.

아줌마처럼 구는 게 죽는 것보다 싫다던 어머니께서 계속 아이고 아이고 하며 대성통곡을 하시니 하나하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유구무언의 예시로 교과서에 실으면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산가족 상봉처럼 아파트에 층간소음을 냈다. 주말이어서 사람들이 집에 있는지 기척이 나길래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떨어졌다.

“일단 들어가요. 동네 사람들 다 오겠네.”

“까짓거 오라 그래라. 죽은 줄 알았던 아들놈이 살아 돌아왔는데.”

“저어가 쪽팔리는데용.”

이거 감정 절제가 안 되시네. 놀랍게도 나까지 그랬다. 이거 진짜 이웃들이 갑자기 발리우드처럼 춤을 추면서 나와도 같이 출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딱 거기까지였다.

“흐끅, 흑…… 그런데 저 분들은 누구니?”

주름만 조금 줄어도 30대로 보일 미모를 쪼글쪼글하게 만들며, 어머니는 복도에 멈춰 있던 우리 아내님들을 가리켰다.

눈물을 닦던 프랑 이하 4명(네페르티티 제외)의 움직임이 딱 굳었다.

‘……좆 됐다.’

여기까지는 감격스러운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게 뭐시냐, 그렇게 멀리 헤어진 가족들이 따로 가정을 꾸리게 되니까 정말로 감동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혈관에 김치가 흐르는 한국인 아들이 이세계에서 며느리를 잔뜩 데려온 게 그렇게까지 흉 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으요.’

이제 이 개소리를 최대한 논리정연하게, 그리고 등짝과 뺨에 여래신장이 꽃히지 않게 설명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냐고? 그건 나도 모르는데?

‘……씨이이이발!! 미래예지 켜둘걸!!’

아내들마저 눈치를 보는 그 순간, 우는 모습을 내게 들켜서 크게 당황한 다나가 저도 모르게 한 것처럼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했다.

예의범절은 다를지라도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가짐이 전해지는 예절 바른 자세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노르…… 아니, 북호의 아내인 다나 베르베이아라고 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려요. 훌쩍.”

“세상에, 아내?! 어머나,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깜짝 놀라는 어머니. 방금 전까지 그렇게 울며 몸을 못 겨누시더니, 이제는 활짝 하고 웃음꽃을 피우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신다.

“우리 북호가 실종된 사이에 가정을 꾸렸어요?! 다나 양이라고 했죠?! 우리 북호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집에 돌아왔는가 했더니, 아가씨들 덕분이었구나!”

“네, 넷? 네엣?”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참하신 아가씨가 우리 못난 아들한테……! 아이는? 아이는 있고?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들어와서 설명 좀 해 줄래요?”

이 빠른 이해도와 냉정한 판단력은 내 DNA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나랑 싸운 적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퇴로가 없어져부렀어야.

“네, 넵! 그게, 아이는 아직 없는데요, 제가 곧 서른이라 최대한 빨리 아들딸로 1명씩은 낳는 게 어떨까 하고……”

그리고 ‘첫인상은 중요’, ‘노르네 부모님’, ‘세미 상견례’ 같은 워드가 얼굴에 떠오르는 듯한 우리 눈나는 IQ에 디버프가 걸린 듯 있지도 않은 살인 함정을 밟아버렸다.

“앗! 물론 다른 애들도 저처럼 2명씩 낳고 싶다 그러면 너무 많아지긴 해서, 그건 조율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애들?”

단란한 가정집에 던져진 끔찍한 폭탄 테러였다.

우리 부모님의 눈이 점이 되었다.

“그게, 어, 저희가 한 명씩만 낳아도 아이들끼리 나쁜 경쟁 같은 걸 할 수도 있어서…… 처첩끼리 나뉘어 있질 않다 보니까 더 어려운 문제거든요!”

내가 숨도 못 쉬고 떨고 있는 동안, 내가 처음 장모님들 앞에 갔을 때보다 돌이 돼 버린 다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의 여신처럼 진두지휘를 맡았다.

“……다, 다음! 다음, 프랑! 먼저 소개해버려서 미안한데, 뒤는 부탁해!”

“……아, 아냐! 다나가 먼저 나서주지 않았으면 나는 쭉 아무 말 못 했을지두 몰라!”

─속닥속닥. 작전 회의를 종료하는 프랑&다나.

프랑은 손에 흐른 땀을 처음 입는 지구의 옷에 닦으려다가, 첫인상을 나쁘게 주기 싫었는지 꾸욱 참고 경련마저 느껴질 정도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였을까. 제 2의 폭탄은 아주 거침없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는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이라고 해요! 다나랑 똑같이 아드님의 아내구요!”

“……다나 양이랑 똑같이?”

“……아내?”

“네! 아직 1년 차니까 신혼이에요! 저희 모두가 그렇지만요!”

프랑은 영양제를 투여한 해바라기처럼 밝았고, 우리 부모님들은 석상처럼 미동이 없었다.

끼익….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녹슨 관절 인형도 보고 배울 뻣뻣한 동작으로 다른 여인들을 보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신 듯 했다.

베로니카는 이거 망했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인제 와서 뭐라고 말해봤자 늦었다고 생각한 듯, 바이콘의 예절을 따라서 드레스 자락을 집었다.

“주인ㄴ…… 으흠 크흠, 아드님과 혼약을 맺은 베로니카 에클립시스라 합니다. 아직 한없이 부족한 몸이지만, 있는 힘껏 두 분을 모시겠사옵니다.”

“……아가씨, 지금 주인님이라고 하셨죠?”

“……개의치 마시길. 종교적인 문제이옵니다.”

“사이비……?”

“아드님을 신처럼 떠받들 뿐이지, 따로 사이비 같은 건…… 음.”

할수록 무의미해지는 변호에 베로니카는 침묵을 선택했다.

나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당연히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 자기소개만 10분은 걸릴 기세다. 부모님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뿅 뛰쳐나간 핑크핑크 서커스 걸이 꺄르륵 거렸다.

“시어머님, 시아버님♡! 저는 프리실라에요! 선배한테는 매일 신세를 지고 있답니다! 제가 얼마나 두 분과 만나 뵙고 싶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그, 그래요……? 저희를 왜……? 그, 그보다 꽤 어려 보이는데, 혹시 나이가 어떻게……?”

“열아홉이요♡!”

“……우리 아들이랑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어요!”

“……18살 때네요?”

나랑 만난 날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듯 해맑게 대답하던 라리루라는 3초만에 얼굴을 굳혀야 했다.

“……아, 안심하세요! 선배는 제가 미성년일 땐 손 안 대셨어요! 그리고 만났다는 건 사귀었다는 뜻이 아니고, 그냥 알고만 지내다가 제가 19살이 되고 나서……”

“……1년 전에는 신혼이었는데?”

“에으, 에, 우으에…… 그, 그게요……?”

라리루라는 말문이 막혔지만, 충격에서 더 먼저 빠져나온 건 어머니였다.

“……다른 분은요?”

너도니? 하는 시선에 티르시는 내 안색을 조금 살폈다. 하지만 남편이 언데드가 돼 있어도 일단 인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티르시도 기품 있게 인사를 올렸다.

“경망스럽게도 첫 인사와 함께 문안 아뢰어요. 티르시 리터 아르마슈나스, 사뭇 기이하게 들리는 이름인 줄 알면서도 서방님의 춘훤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 춘훤이 뭔가요?”

“두 분을 높여 부르는 호칭인데…… 죄송해요. 제가 예의 관련해서는 조금 세상 물정을 모르니, 적당한 인사말을 고르기가 어려워서요. 그렇다고 실례를 저지를 수도 없어서 그만……”

“……무례한 건 알지만, 티르시 양의 춘원께선 직업이?”

“어…… 국회부의장?”

로키가 준 번역 권능은 로마니아의 상원의원을 가장 비슷한 한국어 단어로 대체했다. 소통할 수 있게 인터넷 밈까지 번역하는 권능은 명불허전의 성능을 피로한 것이었다.

“사, 살아계셨을 적에는요! 지금은 아니에요!”

이 정도의 무호흡 연타면 외신도 뒤진다. 일단 나는 뒤질 것 같으니 울프헤딘을 죽인 자 타이틀 정도는 아내님들 머리 위에 칭호로 뜨고도 남겠지.

아니, 우리 아내님들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의 머리 위에 뜨려나.

“네페르티티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달인답게 완벽한 결정타를 날렸다.

“저까지 더해서 이렇게 6명이, 아드님의 아내로 다같이 살고 있습니다.”

“……………….”

“……행복하니까 괜찮아요.”

쁘이. 귀여운 제스쳐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하하하하 웃으며 현실도피를 했으나, 열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내가 현실에서 도피하자 그 빈 자리에는 현실로 돌아온 부모님들이 내려왔다.

“……6명?”

어머니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황태로 쓰려다 썩어버린 대구처럼 눈이 시커멓게 물드셨다.

“6명? 며느리가? 외가가 여섯 곳? 상견례 가면 12대 2? 고부갈등은 6대 1? 손주 학비도 6배?”

“강북호, 이 염치도 모르는 자식아! 6명? 6명?! 얼마나 염치가 없으면 남의 집 귀한 딸내미를 6명이나 손을 대!!”

─덥썩!! 나는 아버지께 멱살을 붙잡혔다.

“대답을 해 봐라, 새끼야!! 대체 어디서 뭘 하며 굴러다녔길래 이런 참한 아가씨들이 일렬로 서서 저희가 댁들 아드님한테 코가 꿰였노라는 비참한 말을 하게 했냐고, 강씨 가문의 수치 놈아아악!!!!”

“6명? 6명? 며느리 왜? 6명 왜? 삼처삼첩 왜? 우리 아들 왕후장상이었니? 엄마가 왕후로서 사약 내려줄까?”

“갸아아아아아아악!!!”

아버지가 내 멱살을 잡고 상하좌우로 흔드시고, 어머니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시던 나머지 멀쩡한 새 귀를 가지시려는 듯 아들의 귀를 잡아뜯으셨다.

20년 이상 합을 맞췄던 부부의 컴비네이션!

물론 우리 부모님이 창세신도 아니므로 사실은 내 피부의 방어력을 뚫고 아픔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몸에 힘을 주고 금강불괴 모드로 버틴다? 그럼 우리 부모님의 손이 아작날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나 자신을 좆밥으로 만들었다.

몸에 마나를 최대한 빼고, 오히려 평범한 일반인들보다 줄인다!

와바랏! 사실 나는 한 대만 맞아도 죽는닷!

“아아아아악──!! 방어력 너무 낮췄어!! 귀, 귀, 귀!! 엄마아아악!! 아들 귀 뜯어져요오옷!!”

“며느리가!! 6명!! 며느리가──!!!! 6명──!!!!!!”

“아들아아!! 애비가 좋은 말로 할 때 6등분으로 쪼개지렴!! 내가 저 아가씨들 친가를 찾아가서 네 뼛가루를 내밀고 석고대죄를 해야 할 것 아니냐!!”

“어, 어머님!! 어머님, 아버님!! 그러지 마셔요!! 노르 귀 뜯어지겠어요, 어머니!!”

비명을 지르며 아비규환.

4년 동안 응어리진 불효의 대가는 참혹했다.

효자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