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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특이점에 온 케이팝입니다. 그 정점에 선 자들 클로버즈!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첫번째 경연
날렵한 쌍검, 거대한 도, 시커먼 단검, 무식해 보이는 망치, 빛나는 활까지… 영상 속 아이돌 전사 클로버즈는 말 그대로 거대 좀비를 도륙 내고 있었다.
그냥 장난으로 투닥거리는 게 아니라 스피디하게 박진감 넘치고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화려한 전투 신이었다. 아마도 전문 스턴트맨이 찍은 것 같았다.
건물이 와장창 부서지고 살점이 튀고 피가 흐르는 약 15초간의 짧은 영상이었다.
“우와아아아…….”
괴물 좀비의 등장으로 깜짝 놀랐던 관객들이 전투 형태로 변신한 클로버즈가 전용 무기를 들고 괴물을 찢어발기기 시작하자 그 장면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하고 있었다.
‘와, X발… 욕 나올 정도로 잘 만들었다. 기민이 형이 아주 작정하고 돈을 쏟아부었구나. CG를 장인처럼 한 땀씩 갈아 넣었어. 와… 미쳤따리……. 적자가 나든 말든 명작을 만들어 보겠다는 장인 정신. 아주 칭찬해! 뭐, 이 정도는 기민이 형한테는 껌값이겠지.’
거대 좀비 괴물이 쓰러지자 다시금 전투 형태를 풀고 처음 댄스 포지션으로 위치를 잡으며 무대에 섰다.
노래가 시간에 맞춰서 딱 끝나고 무대와 관객석에 다시 조명이 비치자, 팔짱을 끼고 관객들을 오만하게 노려보는 클로버즈가 카메라에 잡혔다. 그야말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듯한 강력한 포스였다.
“우와아아…….”
관객들의 함성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안 들리고 공개홀이 흔들흔들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들도 마지막 후렴구 노래를 부르면서 화면에 나오는 영상을 곁눈질로 본 뒤 그제야 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리더인 성다솜과 멤버들은 해냈다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하악… 하악… 재, 재밌어. 너무 재밌어. 더, 더 하고 싶어.”
그야말로 연기, 노래, 영상, 댄스, 관객 호응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무대였고 클로버즈는 그 무대를 통해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신개념 레전드 무대였던 셈!
음악이 끝났음에도 관객석에서는 아직도 함성과 휘파람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대기실의 프로듀서와 다른 신인 걸그룹들은 그만 침묵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오직 단 한 명만 주먹을 꽉 쥐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이빨을 꽉 깨물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클로버즈의 흑막 프로듀서 강 박사이자 모든 걸 다 가진 이기주의자 섹스 토이 강전기였다.
‘크흐흐흐…….’
몰래 얼굴을 숙이고 낄낄대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악해 보였다.
‘어차피 도우미 연예인들만 출연하지 않으면 되고 무대에 어떤 것이라도 다 허용된다고 했으니 항의도 못 할 거고. 표정들 봐라. 아주 황당하지? 큭큭큭… 이러다 클로버즈가 일등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큰일이네! 이거…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지.’
클로버즈의 무대가 끝나고 MC들이 박수를 치면서 무대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와우! 도대체 이거 뭐죠? 케이팝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거 미친 거 아닌가요?”
“케이팝이 아니라 「걸그룹 4차 대전」이 미쳤습니다, 여러분!”
“소리 질러…….”
“우와아아…….”
“자자… 여러분들, 흥분을 조금만 가라앉히시고요. 저희도 인터뷰해야 할 거 아닙니까? 네?”
“클로버즈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하나, 둘, 셋.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안녕하세요. 아이돌 전사 파워업 클로버즈입니다.”
“하하하… 소개 멘트가……. 리더인 성다솜 씨, 무대를 마치니까 어떠세요?”
“안녕하십니까? 클로버즈의 리더 블루 클로버 성다솜입니다. 오늘 데뷔 무대인데요. 관객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고 무대도 실수 없이 해서 그런지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그리고 잘 따라온 멤버들 모두 고맙구요.”
“네, 역시나 모범 답안이네요. 우리가 이런 거 들으려고 올라온 건 아니잖아요? 클로버즈! 도대체 무슨 그룹입니까? 정체가 뭐예요? 그 옆의 레드 클로버 이태리 씨가 좀 말해주세요. 오늘 춤에서 아주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셨죠?”
“하하하… 네, 저희는 아이돌 전사 파워업 클로버즈에 출연 중인 연기자들입니다.”
“네에? 연기자라고요? 에이… 농담이죠?”
정상균이 기겁하며 거짓말 그만하라는 듯 재차 묻고 있었다.
“아… 사실은 저희가 아이돌로 출연하다 보니 1년 반 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상태긴 합니다.”
“일, 일 년 반… 실, 실화입니까? 일 년 반 만에 이 정도 퍼포먼스가 가능하다구욧?”
심해철도 클로버즈의 대답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더듬고 있었다.
“물, 물론 저희가 열심히 연습하긴 했습니다.”
“네… 그렇군요. 연습이라고요? 자… 신디 씨, 신디 씨는 이번 클로버즈의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하… 이걸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케이팝이 세계의 음악계를 선도한다고 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요. 이 무대는 뭔가 한 단계를 뛰어넘어 버린 퍼포먼스같이 느껴집니다.”
“뛰어넘었다?”
“네, 그야말로 퍼포먼스의 신세계랄까요? 음악과 영상이 절묘하게 결합했어요. 다른 분들이 영상만 주의 깊게 본 것 같은데 노래만 들어도 정말 신나고 잘 만들어졌어요. 얼핏 들어보면 복고풍인 디스코 스타일인 것 같지만 사운드에는 최신 트렌드가 녹아있습니다.”
역시나 소리에 민감한 신디였다. 강전기가 안배한 음악적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캐치한 것이다.
“저는 영상하고 퍼포먼스만 홀린 듯 쳐다보고 있어서 잘 못 느꼈는데 역시 관계자라 그러신지 판단하는 게 다르시네요.”
“잠시만요.”
심해철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정상균의 멘트를 중간에 끊었다.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요. 이걸 기획한 미친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핑크 클로버 김주리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녀는 마이크를 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원래 클로버즈가 이렇지는 않았고요. 이번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전면적으로 대폭 수정해서 참가했습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아… 빨리 대답 좀…….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 그게… 일… 흐업… 강, 강 박사님요.”
김주리가 무심결에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 일렉케이 프로듀서를 언급하려다 실수를 깨닫고 급히 단어를 수정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클로버즈 멤버들만 김주리의 실수를 눈치채고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지만, 나름 잘 수습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휴… 큰일 날 뻔했다. 초장부터 노잼 될 뻔?’
“예에? 강 박사라고요? 아까 영상에 나왔던 강 박사가 이 모든 연출과 노래까지 만든 장본인 맞습니까?”
“네에…….”
심해철의 질문에 클로버즈의 멤버들이 단체로 대답했다.
“허허… 미치겠네, 이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영상을 찍고 춤을 연습한 게 한 달도 안 됐어요.”
“점점 이해가 안 가는 발언을 하는 클로버즈 여러분들입니다.”
“이제 첫 경연입니다. 「걸그룹 4차 대전」을 계속 보시면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요?”
정상균이 중간에 개입해서 흥분한 심해철을 제지했다. 심해철은 케이팝과 엔터업계 그리고 나름 자타가 인정하는 걸그룹 전문가였다. 새로운 형태의 그룹에 흥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심해철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이 클로버즈 시리즈가 방송이나 영화로 나올 예정인가요?”
“그, 글쎄요. 그건 비밀이라 지금 섣불리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모두를 충격 속에 빠트린 클로버즈의 놀라운 무대였습니다.”
“이거 반칙 아냐? 영상 뭐냐고?”
대기실에서는 다음 순서인 G파워의 프로듀서인 간지 피디가 볼멘소리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주위가 조용한 걸 보니 제작진이 이미 공지한 내용을 다들 숙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우리 좀 쉬었다 안 해요? 어떻게 이렇게 계속 찍나?”
어이가 없는 건 없는 거고 바로 뒤에 경연하는 G파워가 걱정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뜬금없는 작전 타임까지 동원하는 그녀였다.
조정실에 있던 책임 피디인 한정석도 아직까지 술렁이고 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뒤에 나오는 경연 팀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 판단했는지 약 10분 동안 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옆에 앉아있던 김찬기 프로듀서가 헛기침하며 조용하게 말했다.
“허, 참 이거야 원…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강 박사인가 닥터 강인가한테 다들 한 방 먹었는데? 본방송 나가면 어떤 기사가 뜰지 훤하다, 훤해.”
“선배님, 어떤 기사요?”
“어떤 기사긴, 최정상급 프로듀서들 한 방 먹다! 빌보드 1위 작곡가 패하다! 이렇게 자극적으로 뜰 거 아냐.”
“패했다고요? 핑크엔진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요?”
“일단 내가 만든 팀은 진 것 같고, 으음. 후배님이 프로듀싱한 첫 번째 그룹도 아까 나온 이상한 애들한테는 안 될 거 같은데… 혹시 핑크엔진에 비장의 무기라도 있는 거야?”
“뭐… 크흠…….”
강전기는 말하다 말았다. 사실 있다면 있긴 한데 과연 클로버즈처럼 압도적인 임팩트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핑크엔진은 정말 춤과 노래가 끝내줬다. 영상 같은 부수적인 효과 말고 본연의 실력으로 경쟁한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봤다.
“하늘기획에서 작정하고 나온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부터 하늘기획 대표님 표정을 보고 있었는데 저희하고 같은 얼굴이었어요. 마치 이거 뭐지? 하는 표정 있잖아요.”
퓨리틴의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장준일 대표는 클로버즈를 보기 위해 이미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에이… 설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그냥 그렇다고요. 이거 뭔가 이상해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거대한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브라이언 정의 분석을 들은 강전기는 속으로 뜨끔해하고 있었다. 거대한 음모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강전기의 원맨쇼에 이기민의 만수르급 돈 지랄이었던 거였다.
“그리고 클로버즈의 곡 말인데요. 복고풍이라서 그렇지 엄청 잘 만든 곡이지 않나요? 프로듀서가 누군지 분명 범상치 않은 사람일 거 같습니다.”
역시 전 마이하트 작곡가다운 분석력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대략 추정만 할 따름이었다.
“일렉케이 피디님.”
“네, 네?”
강전기는 마치 지목받은 범인처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같이 바람이나 쐬고 오시죠? 좁은데 오래 있었더니 답답하네요.”
“그, 그러시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경연이 재개되었다. 이제 남은 팀은 단 두 팀이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SSJ의 G파워와 빌보드 1, 2위를 동시 석권한 최초의 한국인 작곡가가 프로듀싱한 핑크엔진만 남은 상태였다.
“자! 이제는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기획사 SSJ에서 오랜만에 야심 차게 내놓은 걸그룹입니다. 체리스노우 이후 무려 6년 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해철 씨. 같은 기획사 선배로서?”
“사실 제가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SSJ에서 이 정도로 오랜 기간 살아남았다는 것은 실력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자리는 그런 의심은 접어두시고 어떤 노래로 데뷔하는지 기존 걸그룹들과 경쟁이 가능할지 판단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군요. 신디 씨, 만약에 더블케이에서도 출전했더라면 G파워라는 그룹이 상당히 신경이 쓰일 만한 존재라는 건 확실하겠죠?”
“맞습니다. 사실 많은 분께서 3대 기획사라고들 하시잖아요. 회사 내부에서도 이 3대 기획사의 신인들은 전부 다 세세하게 분석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경쟁하는 사이니까요.”
“아! 그리고 이번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인인 간지(GAN-ZI) 프로듀서가 직접 출전한다고 하죠?”
“뭐, 저하고도 잘 아는데요. 정말 언론에 나오지 않으시려고 하시거든요. 그런 분께서 후배 작곡가와 함께 팀을 결성해서 직접 출연까지 하시고 계십니다.”
“네! 이제 무대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십 년 이상을 업계 최정상에서 버티고 있는 초일류 프로듀서가 팔을 걷어붙이고 제작한 결과물을 감상할 차례입니다. G파워가 부릅니다. 「바꾸지 않아」.”
무대 위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5인조가 자세를 잡고 고개를 서서히 쳐들기 시작했다. 멜로디가 없는 비트가 묵직하게 깔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