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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사실은 제가 설정충입니다. ㅎ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첫 방송 걸그룹 4차 대전!
강전기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나만의 천사 대전」 사전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자신만의 천사를 만들어서 RPG를 즐긴다?
언뜻 보면 양산형 같아 보이는 게임이었지만, 나만의 천사가 아이돌이라는 게 특징이었다. 「걸그룹 4차 대전」에 나오는 멤버 전원을 정밀하고 예쁘게 렌더링한 캐릭터가 주르륵 로딩되기 시작했다.
현질할수록 늘어나는 액세서리와 코스튬! 아이돌을 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외모도 바꾸고, 패션도 바꾸고, 능력치도 바꾸는 게임이었다.
1차 경연 방송이 끝난 후, 각 캐릭터에 맞는 능력치와 직업군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출연 관련 계약을 할 때 2차 게임 저작물에 서명하는 난이 있었는데, 이거였네. 이 카오스 게임즈 오덕후 새끼들! 허접하기만 해봐라. 응? 어라? 뭐야, 온라인 투표를 이 게임으로 하는 거였어? 헐…….’
이쯤 되니 KM 미디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며, 수익 배분에서도 사전 협의가 다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강전기는 계약서의 내용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아마도 제목만 봤는지 세부 사항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일 기민이 형한테 물어봐야겠네. 각 소속사는 어떤 이익을 얻는지 말이야.’
굳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소파에 내려놓고 다시 TV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퓨리틴 멤버 소개가 이미 끝났는지 화면에는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정의 작업실 겸 녹음실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작업 공간에는 레코딩룸 말고도 각종 피규어, 게임기, 레이싱 게임 장비, VR 등 첨단 기기들이 즐비했다. 브라이언 정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들인 모양!
강전기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빌보드 1위 작곡가인데, 개인 공간은 자신의 빈궁하기 그지없는 투룸뿐이었으니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강전기, 정신 차려!’
막 레이싱 게임을 하던 브라이언 정이 등장하며 각종 정보가 화면으로 날아들었다. 케이팝 최고의 걸그룹인 마이하트의 곡을 연달아 히트시킨 작곡가라는 정보가 강조되었다.
조용하던 덕후들의 서식처 로리웹에 갑자기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 내가 꾸며놓고 싶은 공간이다. 내 이상향!
―브라이언 정이 노는 곳 맞나? 생긴 건 덕후처럼 안 보이는데…….
―나 방금 카오스 게임즈 「나만의 천사 대전」 사전 예약하고 옴. 일반 양산형 게임은 아닌 듯.
―어라? 이 게임에서 투표하나 보네?
―ㅋㅋ 미친 카오스 게임즈. 아무래도 거하게 개발하고 있는 게임이었는데 스킨만 쓰윽 바꾼 느낌이 난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전 출연자 캐릭터를 싹 다 박아 넣었냐. ㅋㅋㅋ
―개발진들을 갈아 넣었겠네. 눈물 나네.
―위에 게임 개발하시는 분임?
―나 카오스 다닌다. 저거 두 달 만에 콘셉트 바꾼다고 뒤지는 줄… 치질까지 옴.
―얼른 이야기 썰 좀 풀어주세요, 형님. 굽신굽신…….
―길게는 말 못 한다. 혈맹 모바일을 잡으려고 만들던 초거대작이다. 갑자기 대표가 이상한 짓을 해서 직원들 다 동요했는데 지금 보니 뭔가 사고를 칠 것 같다. 이거 뜨면 우리 보너스 오지게 준다고 했거든.
―와우… 형님 정보 계속 공유 좀요. 카오스 게임즈 주식 사야 함?
―카오스 게임즈 대표가 그 이정후라는 IT 천재죠?
―맞아요, 그 사람. 카오스 커뮤니케이션즈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게임 개발만 한다고 함.
―뭔가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경연하고 캐릭터와 직업군 발표한다는 거로 봐서는 보컬, 댄스, 기타 분야로 나누고 스펙에 클래스까지 설정해서 공개한다는 거 아님?
―아마도…….
로리웹에서는 프로그램보다는 게임에 관련된 코멘트가 훨씬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브라이언 정의 인터뷰가 끝난 후, 다른 회사의 건물이 바로 나타났다. 정말 쉴 새 없는 화면 전환이었다.
[다인기획]
강전기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곳이었다.
역시나 다른 기획사와 같은 방식으로 다인기획의 글로리아 멤버들에게 경연 참여 소식이 전해지고 녹음실로 프로듀서를 찾아가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녹음실에는 꽤 수려하게 생긴 헨리 프로듀서가 키보드를 치면서 한껏 폼을 잡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면서 화면이 멈추고 다인기획 이사, 대표 대행, 줄리어드 음대 출신, 작곡 전공, 제로쿨 프로듀서라는 설명이 자막으로 날아들었다.
[줄리어드 음대 출신이시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다인기획의 프로듀서 헨리라고 합니다.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현재 다인기획의 임시 대표를 맡고 있고요. 대표이신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강전기는 ‘이끈다’라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망치고 있는 거 아니고? 흐흐…….’
[금수저시네요.]
[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제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당히 노력해서 줄리어드 음대에도 합격하고…….]
헨리 피디의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녹음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본인의 커리어를 하나씩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극혐! 비호감이네.”
“좀 그러네요.”
“나이는 젊은 것 같은데 틀딱 컨셉충 같은데요? 제가 94년도에 LA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강전기의 말에 핑크엔진 멤버들이 하나둘씩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헨리는 천성적으로 비호감 캐릭터인 것 같았다.
역시나 커뮤니티의 반응도 비슷했다. 비호감상이라는 의견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곧바로 장면이 바뀌었다.
[대원기획]
전에 나왔던 기획사 건물들이 상당히 웅장하고 규모가 좀 있어 보였다면, 대원기획은 그냥 평범한 빌딩에 입주한 사무실 같은 느낌의 기획사였다.
같은 방식으로 회의실에 나인테일 멤버들이 모이고 있었다. 사복을 입은 그녀들의 모습은 아주 늘씬하기 그지없었다.
‘와! 아홉 명이 다 장신이네. 역시 텐뮤지스 동생 그룹답다. 저런 게 진짜 모델 군단이지.’
뭔가 흐뭇한 걸 본 사람처럼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려는 강전기였다. 이다미가 뭔가 생각났는지 강전기의 표정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둘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크흐흠.”
“…….”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한 그가 헛기침을 크게 한번 했더니, 다른 멤버들도 다들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피디님 취향?”
“에? 피디님 왜 그러세여. 안 어울리세여. 우리 아빠나 좋아할 것 같은 언니들인데…….”
“참… 일관적이시네.”
멤버들의 코멘트가 하나씩 이어졌다.
“그런 거 아니니까 화면 봐라, 얘들아. 집중!”
나인테일의 늘씬한 모습이 화면을 지나간 후 한수호 프로듀서의 녹음실, 그러니까 대원기획의 녹음실이 공개되었다. 그냥 가성비 위주로 구성된 곳이었고 평범한 녹음실로 보였다.
녹음실에서 작업하는 푸근한 몸매의 청년 한수호가 등장했다.
[왔니?]
헤벌레한 얼굴로 나인테일 멤버들을 돌아보는데 그 표정이 약간 개그맨 같아 보였다. 화면이 멈추고 그의 약력이 자막으로 송출되었다.
[지금은 해체한 히트곡 제조 작곡가들의 길드 ‘디튠’ 출신]
열심히 음악 작업을 하는 한수호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프로듀서와 안 어울리는 듯한 인상과 몸매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고 있었다. 옆에는 먹다가 만 컵라면과 과자들이 보여 왠지 리포트를 쓰는 대학생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녹음실을 구경시켜 준다며 한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의 뱃살이 출렁거리는 장면까지 나오고 있었다.
‘허어… 영상 잘 좀 찍지. 너무 적나라하게 나오잖아.’
강전기의 미간이 좁혀져서 펴질 줄 모르고 있었다. 나름 친절하게 대해준 프로듀서라 잘 좀 홍보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나오는 영상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팬이었던 텐뮤지스 음반 작업도 잠깐 참여했던 사람이 바로 한수호였다. 그에게는 약간 측은지심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뭔가 안쓰럽다.’
핑크엔진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20~30대 남성층이 주요 회원인 에프엠꼬레아 게시판에 글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흙수저 프로듀서 출연!
―특이한 캐릭터다. 동정표는 이쪽으로 다 몰빵될…….
―어라? 몸매가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다. 하루에 한 번씩…….
―응, 맞아. 네 몸매.
―뭔가 알바하면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몰래 공부하는 대학생이 떠오른다.
―아푸니까 촌충이다. 구충제 복용 필수.
―복용하지 마, 인마. 청춘이라면 반드시 감염되어야 하는, 인격을 성숙시키는 기생충이야. ㅋㅋ
―구충제 소용없음. 유일한 치료법은 탈조선!
―죽지 않게 기생충을 억제하는 게 한 달에 한 번씩 있지. 바로 알바비 입금!
―씨X.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 얼른 병원 가라. 병들어 뒤짐.
―아프니까 노년이다.
―알바 뛰느라 에프(F)니까 청춘이다.
―왠지 안타깝다. 왠지 맨날 멤버들한테 왕따 당할 것 같은 로드 매니저?
―저 프로듀서 대원기획에 노예로 팔려 간 거 아니냐? 섬마을 노예처럼…….
―설마… 뭔가 사육당하는 느낌 말하는 거냐?
―뭐야, 그래도 헤벌레하네. 그저 좋단다.
―저런 기럭지들이 아홉 명이나 되는데 넌 이 새끼야, 말 한마디도 못 꺼낸다는 것에 내 손목을 건다.
―하루라도 나인테일 로드 매니저라도 되고 싶드아.
―묘하게 아까 앞에 나온 헨리라는 놈하고 비교되지 않냐?
―흙수저 VS 금수저 / 호감 VS 비호감
―디튠 출신 설거지 담당 VS 눈 떠보니 아버지가 대표인 줄리아드 음대 출신
―난 이 녀석 응원한다. 흙수저의 반란을 보여주자.
―응, 흙이나 퍼먹어.
20~30대의 청년 남성들의 음울한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코멘트들이 주르륵 이어졌다. 댓글들이 자조적인 내용이 많아 얼마나 이 사람들이 패배감에 시달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의외로 헨리 피디와 수저 전쟁을 응원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곧바로 화면이 바뀌었다. 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딘지 모를 낡은 놀이터였다.
한 꼬마가 을씨년스럽게 끼익거리면서 그네를 타고 있는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애들이 소꿉장난하는 모래밭에서 다섯 명의 소녀가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쭈쭈바를 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풋!”
강전기는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와… 한정수 피디 미쳤네. 어째 점점 시궁창으로 들어가냐. 대형 기획사 SSJ부터 한수호 피디랑, 클로버즈 놀이터 뭐야. 큭큭…….’
[잠시만요, 클로버즈 여러분 맞으신가요?]
[네, 네. 저희를 어떻게 아시죠?]
[뮤직넷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경연 프로그램에서 데뷔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에에? 그게 무슨…….]
멤버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쳐다보며 의혹 어린 눈으로 뮤직넷 관계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기꾼하고 대화 안 합니다. 가자, 얘들아.]
클로버즈 이태리가 손으로 카메라를 치우며 띠꺼운 표정으로 애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을 급하게 쫓는 뮤직넷의 카메라. 거기에는 하늘기획이라고 써진 낡아 빠진 봉고차 한 대가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 사기꾼 아님!]
[왜 자꾸 쫓아오세요? 신고합니다.]
[대표님 만나러 왔어요. 이러지 마세요.]
2층 사무실 문에 ‘하늘기획’이라는 명패가 걸려있었다. 이전에는 개척교회가 이곳을 쓰고 있었는지 커다란 십자가 자국이 방화문에 지저분하게 붙어있었고, 왼쪽에는 ‘신장머니’라는 낡은 명패가 있는 같이 걸려있는 거로 봐서는 사채업자들 사무실로 쓰이던 곳인 듯했다.
그리고 지금, 클로버즈와 제작진이 사무실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시끄러운 소리에 방화문이 열리며 장준일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화면이 멈추지 않고 그냥 추가 자막만 나오고 있었다.
[하늘기획 장준일 대표 영상 제작 쪽 근무, 클로버즈를 육성함.]
그리고 오해를 푸는 장면이 송출됐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아이돌 전사 파워업 클로버즈」에 출연 중인 클로버즈입니다.]
클로버즈 멤버들이 인사하자, 클로버즈의 기획에 대한 실체가 드러났다. 클로버즈의 기획 의도라든지 일이 잘 안 풀렸던 사실들, 예전에 만들었던 똥 같은 전대물 영상이 1초 정도 스쳐 지나가고, 지금은 모 기업에 인수돼서 사무실 이전을 준비 중이라는 인터뷰가 나왔다.
[저, 전대물이라고요? 그런데 왜 아이돌 데뷔 경연에 참가하죠?]
[사실 저희가 찍고 있는 작품이 외계 괴생명체와 싸우는 흙수저 걸그룹을 다룬 전대물을 표방하고 있어서 멤버들이 1년 반 동안 아이돌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두둥… 충격과 공포가 엄습해 온다.]
[노래도 받았고, 도와주시는 프로듀서님도 계십니다.]
[정말인가요? 그러면 프로듀서님은 어디 계신지?]
갑자기 화면이 깜빡이며 텅 빈 흰색의 공간이 나타나고 등만 보이는 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빙글 돌자 카메라가 줌을 쭉 당기며 그 인물을 클로즈업했으나, 보이는 것은 하얀 가운과 상체뿐!
그의 손에는 잠자는 흰색 고양이가 들려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클로버즈의 프로듀서 강 박사입니다.]
묘한 기계음으로 튜닝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뭐죠? 강 박사라니요?]
[저는 클로버즈의 후견인이자 프로듀서입니다. 클로버즈가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나아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암중에서 힘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
1차전 경연 녹화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클로버즈의 병맛 콘셉트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핑크엔진 멤버들은 같이 경연했고, 그 장면을 다 같이 봤기 때문에 이런 연출 자체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피식피식 웃고 있는 상황! 저 강 박사를 연기했던 성기호는 입을 가리며 킥킥거리고 좋아 죽으려고 했다.
‘정말 충격적인 데뷔네. 한정석 피디 진짜 이 양반, 물건이네. 연출 뭐야. 약 빨았네. 나중에 경연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뒤집어질까?’
실제 프로듀서인 강전기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모든 커뮤니티에서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화르르 불타오르며 게시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