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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3화 (3/342)

Chapter 3 - 해피 엔딩.(3)

'...뒤지게 아프네 진짜.'

속으로는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몸뚱이의 보정 덕분에 작은 신음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죽일 년이라고 마음대로 칼질이나 해대고... 쓰레기 같은 놈.

내가 이 몸뚱이로 지금까지 몇 번이나 딸딸이를 쳐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용사 녀석에게 욕짓거리를 쏟아붙던 말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이어진 상처는 이번이 기회라는 듯이 마음껏 피를 토해냈다.

뒤지게 아프네, 진짜.

"성검이..."

"...빛난다."

내 피가 묻은지 얼마 되지 않아 작게 발광하기 시작하는 성검의 모습에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이래서 직접 보여줘야 한다니까.

진즉 믿었다면 이런 상처가 생길 필요도 없었을 텐데.

얼얼함을 넘어서 칼로 베인 듯이 아파오는 상처에 잠시 호흡이 흐트러졌다.

아니, 칼로 베였으니까 당연히 칼로 베인 듯이 아픈게 맞구나?

여튼,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빛에 시선을 빼앗긴 용사 일행 녀석들을 바라보며 뒤에 이어질 상황을 떠올렸다.

"용사여, 드디어 마왕을 쓰러뜨리는데 성공ㅡ 어라?"

"...여신님?"

"어라라, 원래라면 이쯤에서 우리 야한 몸을 가진 귀염둥이 마왕이 쓰러져 있어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이걸 어쩌면 좋아."

저들에게는 신성한 등장이었겠지만, 마족의 몸뚱아리를 가진 나에게 있어서는 고역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 당장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고 싶어진달까, 아주 개 거지 같은 감각에 구역질이 치솟아 올랐다.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나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행동이 꽤나 역겨웠다.

네가 곤란할게 뭐가 있어? 평탄화 된 가슴 만큼이나 옹졸한 속내를 가진 주제에.

"아니, 아무튼 이게 아니라... 음. 그래요.

마왕이 쓰러지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녀의 피를 성검에 묻히는 것을 성공했으니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도록 하죠."

"...그러면. 지금, 지금까지."

쓰고 있던 가면이 반쯤 벗겨졌음에도 연기를 계속하는게 진심으로 우스웠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용사 파티는 무력 MAX인 대신 지능을 잃어버려서인지 여신의 대사에도 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휴, 이 답답이 새끼들아. 의미도 없는 소원 쳐 빌고 있을 시간에 저 쓰레기 여신의 모가지나 따라고!

"...지금까지 마왕의 손에 희생되었던 모든 이들을 되살려 주세요."

"음, 정말 그런 소원으로 괜찮으시겠어요?

신에 버금가는 힘이나, 바다와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의 금은보화, 그것도 아니라면 '패배해 육노예가 되는 마왕'이라던지... 큼, 아니, 이건 취소.

아무튼, 그런 소원이 아니라 '지금까지 마왕의 손에 희생되었던 모든 이들을 되살려 주는' 걸로 만족하실 수 있겠나요?"

"...그렇습니다."

정신 나간 대사를 읊어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용사는 아직까지 여신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이런 병신 머저리 같은 새끼. 그러니까 지 소꿉친구한테 차이고 마굿간에서 말 허벅지에 좆 비비면서 자위나 했지, 시팔 진짜.

이대로 가버리면 분명 이 몸뚱아리의 자궁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낳게 될게 분명했다.

최대한 맞는 선택지를 고른 것 같은데도 이딴 엔딩으로 흘러가다니... 대체 뭐가 해피 엔딩이냐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자, 내가 지금껏 플레이하며 보아왔던 게임의 엔딩 스크립트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지나갔다.

'이, 이제 그만... 그만 낳게 해다오. 이대로라면 배, 배가 망가져 버린다...'

'아기가, 나와, 나와버렷... 우읏...윽..."

'후후, 보이는가 용사? 지금 네 39 번째 아이를 낳았다. 이름은... 그래, 너를 똑 닮았으니 아서로 할까.'

'부디 자, 자지를 다오. 아랫배가 근질거려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내, 내가 셀 수 없이 죽여버린 인간 님의 자지로 임신해, 버려엇...'

이런 씨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위기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철봉 위에서 놀다가 발이 미끄러져 불알이 으깨질 뻔 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강도가 대가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듯한 싸늘함.

꼬리뼈를 타고 오르는 지독한 한기에 몸 전체가 덜덜 떨려왔다.

이,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좆, 아니 보지 된다.

그것도 아주 개 보지가 되어서 힘 없이 늘어진 바지 고무줄마냥 개 씹 걸레가 되어버린다고!

"요, 용사. 저 여신의 말을 믿는 건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했는가? 저건 전부 다 너를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ㅡ"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요, 우리 마왕님은.

누가 봐도 그쪽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 사악한 마왕이고, 이쪽은 용사에게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애로운 여신이잖아요?

...아니면, 뭐. 뭔가 따로 알고 계신게 있으신가?"

...이런, 개, 씹.

"흠, 아무튼! 마왕을 쓰러뜨... 리지는 못했지만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몰아세우신 용사님, 제가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정말, 입니까?"

"네, 물론이에요. 세계를 구해내신 용사님께 드리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란 보상인 것 같지만, 용사님이 그토록 원하니 바라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라는 감정이 담긴 시선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마족화 약을 먹고 몸 안의 신성력을 감당하지 못해 연속 절정 자위를 하다가 쇼크사 한 성녀.

고블린과 오크의 자지 케이스로 뾰족한 귀가 뭉툭해질 때까지 개처럼 박힌 엘프 궁수.

수인 마족에게 따먹히다가 스승이 물려준 지팡이를 아날에 박고 꼬리처럼 흔든 천재 마법사.

그리고 드 워프죽이는건누구보다잘해마족 해병... 큭.

어쨌든, 언제나 구멍이란 구멍에 정액을 쏟으며 능욕당한 녀석들이 나한테 저런 시선을 보내다니!

"네 녀석은 끝까지 역겨운 녀석이구나."

"역시 마왕은 마왕이네요. 설마 여신님을 불러내게 유도한 뒤에 직접 헤치우려는 속셈이었을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고.

조금 떨어져 있는 내 귀에까지 다 들리도록 수군거리는 엘프 궁수와 성녀의 대화에 정신이 절로 아득해졌다.

좆됐다, 진짜.

***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마왕이 더러운 입을 놀려서 자신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려고 한 것 쯤은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정말로 여신님께 비는 소원으로 지금까지 죽은 이들을 되살릴 수 없고, 마왕의 말이 옳았다면 한 번 정도는 더 믿어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봐라.

저 당황해 하는 모양새며, 천박한 몸뚱아리를 비비 꼬며 안절부절 못하는 꼴을!

지금까지 베어왔던 모든 마족들이 그랬다.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항복하는 척하며 동료들을 노리고, 곱게 죽지 않고 자폭하기까지.

더러운 종족들의 가장 위에 있는 존재여서 그런지 그들 중 가장 역겹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게요, 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송이의 들꽃과도 같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언제나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던 소꿉친구, 아리엘.

자신은 비록 이렇게 커져버렸지만 제 기억 속의 아리엘은 언제나 작고, 또 작았다.

네가 살아있었으면 분명 한 송이의 꽃과 같이 아름답게 피어났겠지.

그래, 그 한 송이의 들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고, 결국 이루어냈다.

"그러니까, 그래요. 흐음, 음?"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하지만 용사가 기대하던 강렬한 기적의 힘이 펼쳐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신의 모습에 불안감이 드는 건 왜일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다른 동료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마른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어라,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 데?"

"여신님? 여신님!"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여신의 모습에 성녀가 소리쳤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의 여신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봤다는 듯이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언제나 자애롭고, 그들이 가는 길을 일러주던 인도자의 휘청임에 자리의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달랐다.

용사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은, 단순히 여신의 연약한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용사님..."

"네, 네. 말씀하세요, 여신님."

주위에 무거운 침묵이 깔린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지금 당장에라도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사선을 뚫고 오며 생겨나고, 날카롭게 벼려진 육감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듣지 마라. 절대로 다음 말을 듣지 마라.

듣게 된다면,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듣게 된다면, 영원히 분노하게 될 것이다.

듣게 된다면, 모든 노력을 배신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죠?"

숙이고 있던 고개가 반사적으로 들어올려진다.

묘하게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어 용사의 뇌를 질펀하게 녹여내기 시작했다.

아니야.

갑작스럽게 떠오른 부정과 함께, 용사의 눈동자가 사정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방금 전까지 새하얗게 질린 얼굴 따위는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듯,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왕이 죽인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는걸요?

아아, 이래서는 '마왕의 손에 희생된 사람들'을 되살릴 수 없겠네요!

어머, 이거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용사님?"

하나 뿐인 소원을 이미 빌어버리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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