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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24화 (124/342)

Chapter 124 - 진실에 대하여.(6)

돼지처럼 꽥꽥거리던 귀족의 모가지가 몸과 분리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핏자국조차 남지 않은 성검을 털어낸 용사가 하늘 위에 떠오른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건진 정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파편 뿐인 정보라도 다음 행선지가 있는 편이 나았다.

눈앞이 깜깜해져, 다음 발을 어디로 뻗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훨씬 나았다.

"배신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군."

지도에 찍힌 붉은색 점들을 바라보며 낮게 읊조린다.

겨우 말단으로 보이는 자의 입을 열었음에도, 꽤나 많은 수가 튀어나왔다.

의심가는 자. 확실한 자.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

순서대로 점을 찍어누르고는 머릿속으로 최적의 동선을 그려낸다.

'...점점 왕도에 가까워지고 있어.'

그것이 과연 우연일까.

녀석이 알려준 배신자들의 위치가 점점 왕도로 향하고 있는 건, 그저 지독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르는 것들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게 있었다.

그들은 죽어야 한다는 것.

"불이야! 불이 났어! 남작의 저택에 불이 났다!!"

저택의 지하실은 말 그대로 끔찍한 곳이었다.

피와 시체.

돼지의 머리와 닭의 날개.

그리고 마족의 뿔까지.

뿔 옆에 놓여져 있는 고깃덩어리가 마족이라는 것 정도는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더 죽여야 끝나는 걸까."

돌고 돌아 결국 같은 인간을 죽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

매일마다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엘리는 할리벨을 간호하고, 린은 아이들을 돌본다.

미코가 손을 빌려주기는 했지만 그건 돌본다기보다는 휘둘린다는 쪽이 맞을 터였다.

"마마~"

"마마아~"

아이들이 있다면 최대한 잊을 수 있었다.

있을 수 있나?

조금 더 커진 몸뚱이를 부여잡으며 미련을 이어나갔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기억을 되찾게 될까?'

린의 경우가 떠올랐다.

어쩌면 린 쪽이 특별해서 기억을 되찾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억을 되찾는 것이 보통이라면?

그리고, 이 아이들이 언젠가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또 어떨까.

단지 그 사실 하나가 그렇게도 두려웠다.

끼익.

"...아가."

그리고 내가 사무치도록 두려워하는 아이.

품에 안긴 쌍둥이 전에 낳았던 인간 아이는 가끔씩 날 뚫어져라 쳐다볼 때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한참이고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방을 나서고는 했지.

어쩌면 그저 내 얼굴을 보러 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아차릴 수 없을 리가 없잖아.

"...아ㅡ"

무미건조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그 눈.

살의로 가득찬 그 두 눈.

어쩌면 상황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 곁에 그 누구도 붙어있지 않는 순간을.

단 둘만 있게 되는 그 순간, 내 목숨을 노려올게 분명했다.

그건 과연 내 착각이 불러온 강박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용사."

이제는 모르겠어.

나를 떠나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결국 사랑한다는 단어로도 너를 붙잡지는 못했구나.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었지만, 그것조차 용사의 복수를 막아낼 수는 없었더랬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잠은, 잘 자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원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희미한 흐느낌이 방을 채웠다.

내게 필요한 것이 복수가 아니라는 것 쯤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왜 나를 핑계로 네 복수를 하러 떠나버린 건데?

결국 거기까지였던 거다.

너나, 나나.

'아니, 생각하지 말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우울해질 뿐이니까.

그러니까ㅡ

"아리엘 씨! 할리벨 씨가!!!"

ㅡ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

마족들은 전부 죽이는게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몇몇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것들이 이유였다.

이를테면, 인간들은 자신보다 강한 개체를 노예로 부리는 것을 좋아한다던지 그런 것들.

"자자, 여기 마족 노예가 있습니다! 사람도 많이 죽인 년이라, 죄책감 없이 가지고 놀수도 있지요!"

지하의 노예 거래소에는 특히나 더 마족들이 많았다.

전투에 패배한 마족들을 사로잡은 이들이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

그건 바로 사로잡은 마족들을 노예상들에게 팔아치우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마족들을, 노예상들이 가공하여 다른 인간들에게 팔아낸다.

겨우 그런 이야기였다.

"큭, 차라리 죽여라! 이 빌어먹을 인간ㅡ"

입을 여는 순간 구타가 이어진다.

복부를 얻어맞은 마족이 거칠게 숨을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때리고 짓밟고, 침을 뱉는다.

다른 노예를 팔 때외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들은 최대한 멀쩡한 모양새로 노예를 내놓는 것보다는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를 더 우선으로 여기는 듯 싶었다.

"자 보십시오, 이렇게 때려도 멀쩡합니다!"

표독스러운 눈길로 노예상을 노려보던 마족이 옆에 떨어져 있던 돌맹이를 집어드는 것이 보였다.

노예상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는 마족 노예가 무슨 짓을 하던지 상관 없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흑, 캭?! 크르르르륵?!?!!?!"

지독한 냄새가 났다.

목여 둘러진 개목걸이는 노예가 주인을 헤치려는 행동 따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몸을 경련시킨 마족이 샛노란 오줌을 질질 흘려내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 광경조차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10골드!"

"12골드!"

"15골드!"

광기에 젖은 눈빛이었다.

귀족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그 중 대다수는 평범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었다.

미쳤다는 수준을 넘어선 그 눈동자에는 진한 집착이 검은 형상을 이루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저건 내꺼야! 저 녀석이랑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내 아내를 죽였다고!"

"아이들을, 아이들을 산채로 먹어치웠어! 나도 저 년을 산 채로 먹어치울 거야!"

"죽여버리고 말겠어."

"평생을 고통받게 해줄거라고!"

마족애게 소중한 것들을 잃은 이들은 마족에게 미쳐버린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은 마족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었기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인간들의 광기를 마주한 마족이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비쩍 마른 그 몸뚱이에 진한 살의가 마치 폭포처럼 쏟아내렸다.

"사, 살려줘... 자, 잘못했어... 흐, 흐으..."

별안간 정적이 일었다.

노예상은 이것마저도 익숙한 일이라는 것 마냥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횡재했군.' 같은 소리를 하며 제 허리춤에 달린 돈주머니를 쓸어내릴 뿐이었다.

"100골드!"

"이것 참, 그렇게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100골드 나왔습니다! 더 입찰하실 분 없으십니까?"

정적이 일었다.

그 누구도 손을 드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번들거리는 광기는 그리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참아낸다.

100골드라면, 마족 다섯을 살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마족 하나를 죽이는 것보다는 다섯을 죽이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자, 그러면 100골드로 낙찰되었습니다!"

마족을 사들인 남자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마족의 목에 달린 개목걸이의 줄을 넘겨받은 남자가 허허로이 웃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아무도 없는 공간과 단 한 가지의 도구 뿐이었다.

"자, 이리오려무나."

줄톱을 든 남자가 마족에게로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던 마족은 제 뿔에 덧대어지는 길다란 무언가에 덜덜 떨어댔다.

슥삭.

슥삭슥삭슥삭슥삭.

"아, 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끼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장 윗부분에 있던 뿔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온몸을 경련하며 비명을 내지른 마족이 바닥에 엎어서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잃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졔발, 졔발 그만더... 흐, 쥭일거면, 그냥 쥭여져..."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발음이 전부 뭉개질 정도였다.

코에서 피를 질질 흘려내는 마족을 본 남자가 쯧쯧 혀를 차댔다.

"그러게 사람은 왜 죽였느냐."

죽였다면 죽임 당한다.

당연한 이치였다.

그 어느 누가 마족이 인간에게 이토록 처참히 다뤄질거라 생각했을까.

안타깝게도 남자에게는 마족을 죽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마 평생 고통받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겠지.

끄트머리를 자른 건 어디까지가 마족의 한계인지 알아보려고 한게 틀림 없었다.

"자, 그러면 다음 노예를 선보이겠습니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지나치며, 용사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선택해야 할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곳에 마족들이 들어오게 되는 경위를 조사하고, 그 발자취를 쫒는다.

"사려, 사려져.. 사려..."

"..."

하지만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눈이 마주쳐버렸다.

고통으로 버무려진 그 눈동자를 바라보난 순간, 용사의 숨 또한 멈춰서고 말았다.

아리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을 지워내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이봐."

용사가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것이 지독한 저주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마족 따위는 분명 죽어야 할 텐데,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에도, 용사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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