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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형입니다-3화 (3/141)

<3화>

예지몽을 꾸고 깨어난 현시점의 내 나이는 열여섯 살이다. 꿈속에서 내가 우사에게 죽을 당시엔 스물 서너 살쯤이었다.

현재로선 우사가 있는 늪지대엔 작은 학당이 세워진 상태이고, 스승님은 그 학당을 마음에 들어 했다.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달려간 걸 보면 나와 지내는 여기 ‘학의전’보다, 늪지대의 ‘사[辭]학당’을 더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 음침하고 스산한 데가 뭐가 좋다고.

속으로 투덜대며 옆으로 빙글 몸을 돌렸다. 웅크리고 누운 채 색색 흘러나오는 내 입김에 집중했다.

잠기운은 달아난 지 오래다. 냉기에 몸이 차가워질수록 정신이 깨어나며, 아까 꾼 게 예지몽이 맞다는 확신만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잘 살아 내야겠단 다짐도 확고해진다. 꿈의 내용대로 답습하지 않으려면 초장부터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내 체온에 마루가 미지근하게 데워지는 걸 느끼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일단 내가 꾼 예지몽부터 되짚어 봤다.

내가 예지몽으로 꾼 건 ‘우사와의 재회’부분까지다. 사형제지연을 끊고 몇 년 뒤였다. 느낌상 재회하자마자 우사에 의해 죽은 것 같다.

‘느낌상’ 확실하다.

솔직히 살해당하지 않는 게 이상한 순간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의 마지막에서 난 큰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후회, 상실감, 고통, 분노…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왼손 약지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고개가 저절로 갸웃거려진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뭐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묘하게 허전하면서… 그냥 이상했다.

있어선 안 될 걸 보는 느낌인가?

아니, 아니면… 없어선 안 될 걸 보는 느낌인 건가?

뭔가 예지몽에서 이 손가락에 대한 기억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분명 꿈의 마지막까지 내 손은 멀쩡했다.

괜히 다른 손으로 왼손 약지를 주무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이 점점 가쁘게 쿵, 쿵, 쿵 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아-.”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내쉬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자꾸 두근거리는 거야? 설마 예지몽을 꾼 데에 대한 부작용 같은 건 아니겠지?

호흡을 길게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두근거림이 점차 가신다. 다시 명료해진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묘하게 싱숭생숭해진다.

맑아졌던 머릿속이 조금씩 침잠하며 우울해진다. 긴장감으로 꽉 조여졌던 마음은 축 늘어지며, 가슴의 일렁임 또한 가라앉았다.

내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게 뭔지 알고, 목표하는 게 새로 생겨났음에도 그렇다.

최대한 예지몽을 답습하지 않고, 예정된 미래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썩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이건 거의 떠먹여진 기회란 걸 알고 그에 만족한 게 방금 전이건만.

왜 내 인생에서 주인공급이 우사인 걸까. 왜 우사만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까. 왜 우사였을까.

새삼 의문점이 생기니 기분이 좀 가라앉는다.

애초에 내게 주어진 운명은 우사의 그늘 안인 건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거라면, 나는 우사의 그늘에 묻혀 그 자체가 그림자가 되어 버리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거잖아.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그저 그 그늘 안에서 발버둥 치다가 제풀에 죽어 버리는 역할.

멍하니 시선을 돌려 쾌청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내 예지몽 안에서조차 주인공이 아닌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도 되기 위해선 뭘 해야 할까.

우사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기연에는 손대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지향하는 사형의 모습이 아니다.

사제의 것을 빼앗기보단 이미 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을 덜어 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예지몽을 통해 본 정해진 내 인생에서 가장 놓아주고 싶은 건 두 개다.

첫 번째는 굴러들어 와서 박힌 돌이 된 우횡산 뱀, ‘우사’이고, 두 번째는 순정이다.

내가 우사에게 산삼을 준 건 잠깐의 변덕이 아니다. 애초에 아무한테나 스승님의 산삼을 내주지도 않는다.

우사를 처음 만난 그날은 안개비가 부슬부슬 날렸었다. 비가 막 그친 뒤의 안개비라 온 세상이 희뿌옇게 보였었다. 발아래 진흙은 물컹하고 길게 자란 풀들은 다리에 날카롭게 스쳤다.

그 고단한 진흙 길은 늪지대로 이어져 있었다. 늪지대에 도착할 무렵엔 안개비는 이미 멎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로 인해 세상은 온통 백색이었고, 그 백색 속에서 유독 선명히 보였던 게 청록색이었다.

청록색의 거대한 뱀이 늪에 절반쯤 걸쳐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던 거다.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바구니에서 약초를 꺼내 그 자리에서 바로 짓이겼었다. 손가락에 약초즙이 물들고, 안개에 젖은 옷이며 머리카락이 몸에 달라붙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그 느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다시 제대로 신었다. 그리고 일어서며 지난 긴 상념을 끊어 내려 했지만, 예지몽에서의 내가 그러지 못했듯이 지금의 나 또한 그러지 못할 거다.

순정은 순하기에 순정이고, 순수하기에 작은 지난함도 견뎌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순정은 내게 있어 용납할 수 없는 정[情]이 되었다. 나는 그 순정이 가진 문제점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감히 사형제에게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형제가 같은 동성이라는 것.

용납할 수 없는 정[情]은 독과 마찬가지다. 순정하기에 더욱 극악한 독이다.

그 정[情]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독심[毒心]이 생기고, 그 독심은 자연히 순정의 대상인 우사에게 향해졌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사도 해치는 마음이라면 버리는 게 마땅하다.

계속 속에 품고 있어 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제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깊이 호흡했다. 하늘의 어슴푸레한 기운이 점차 가시며 환해진다. 그래, 이 정도 밝기는 돼야 아침이라 말할 수 있지.

심란한 마음은 툭툭 털어 내고 쫙 기지개를 피며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 학의전은, 우횡산의 정사봉과 마주하는 자리에 있다. 정사봉은 우사가 있는 늪지대다.

우횡산은 오래 전부터 기이하고 사특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걸로 유명했다. 귀신과 요물이 득실거려서 웬만한 범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도사나 존자, 혹은 선사들만이 수행을 위해 찾았다.

간혹 이곳에서만 자라는 귀한 약초를 캐기 위해 들어오는 무모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산영[山影]’이라 부르며, 듣기론 무리 지어 움직이고 수렵 채집을 한다고 한다.

이제까지 산영과 마주친 적은 없다. 예지몽에서도 그랬듯이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은 없을 거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몸을 푼 뒤 한 손을 뒷짐 진 채 허공으로 훅- 뛰어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계단 밟듯 밟아 올라가 마침내 하늘에 섰다. 천상제였다.

허공을 오르내리는 천상제는 스승님이 알려 준 경공이었다. 이다음은 능공허도로, 하늘을 유유히 걷는 경지이다. 비슷하게 허공을 박차며 달리는 허공답보도 있다.

허공을 밟고 서서 앞을 장대하게 가로막고 있는 정사봉을 보았다. 짙은 운무에 감싸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저 봉우리 정상 부근에 그 늪지대가 있다.

아마 지금쯤 우사와 스승님은 서로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다. 이제 나도 그 둘 사이에 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불편하다.

그 둘에겐 내가 없어도 아무 상관 없겠지.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불필요한 존재니까.

예지몽을 통해 이미 확인받은 사실이기도 했다. 스승님은 임종 직전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우사만 따로 불렀고, 우사는 그 직후에 내게 절연을 통보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스승님과 나의 관계는 정말 뭐였는지 싶다. 임종도 지키지 못한 사제지연이라니. 얄팍함을 넘어 끊어지기 직전의 실이었다.

아니, 아슬아슬하게 끊어지지만 않았을 뿐 어쩌면 그 맞은편엔 이미 아무도 없었을지 모른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를 끝내 밀친 게 우사였다. 절연하자는 그 말에 떠밀려 나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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