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24화 (24/130)

#23

다음날 연습실의 분위기는 냉동고 같았다.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있었고, 분위기가 싸늘했다.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사장님은 정말 뜬금없이도 성원이 형이 아닌 나를 호출했고,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스페이스, 지구 네가 들어가자.”

“네?”

데뷔하라는 말이었다. 성원이 형이 들어갈 예정이었던 그 자리에.

꿈에 그리던 데뷔가 손을 내밀었는데도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죄책감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그 자리를 어떻게 들어가.

머릿속으로는 계속 안 된다, 못한다를 외치고 있었지만, 끝까지 입은 열리지 않았다. 사장님은 너에게는 좋은 기회라며 막내 이미지를 잘 잡아보자고 하셨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을 때 성원이 형은 다른 형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들고 있었다. 데뷔 조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는 것만 빼면 꿈을 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한 건 없었다. 물론 나머지 형들과 완전히 대화가 단절됐다는 사실은 빼야 했다.

결국, 데뷔가 반쯤 확정된 상황에서 나는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부쩍 줄었다. 이 상태로 데뷔를 한다면 은퇴할 때까지 이런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살아야 하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일에만 집중하면 괜찮지 않을까.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 속에서 울컥울컥 터져 나와 불안한 머리를 적셨다. 자꾸 합리화를 하려는 머리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만둘까. 원래 내 자리가 아니니까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이름이 올라간 상태라, 그만두고 싶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때려치우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연습생 위약금도 있다고 들어서 차마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수 없었다. 어머니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손 벌리지 않기로, 소속사를 들어가서 생기는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로 약속했다.

“카페모카 나왔습니다.”

학교 앞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한 달에 거의 스무 번 정도 오는 단골 카페인데 데뷔 조에 이름이 올라간 뒤로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받아든 카페모카에 평소처럼 시럽을 잔뜩 넣고 한 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또 속이 울렁였다.

결국, 좋아하는 커피를 달랑 한 모금 마시고 버리는 낭비를 저지르며 소속사 건물로 향했다. 오늘은 회의가 있었다.

“보컬 자리가 꽉 찼는데…… 지구가 랩 한 번 해볼래?”

“랩이요?”

“원래 성원이가 랩도 하니까 맡기려고 했는데 구멍이 났잖아.”

“저 랩 할 줄 모르는데요. 노래만….”

“원래 노래 잘하는 애들이 랩도 잘해. 트레이닝 받으면 금방 할 거야.”

이사님은 결국 래퍼에 내 이름을 적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랩을 과제로 던져주는 바람에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져 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연습을 시작했다. 발음 연습을 위해서 입에 펜부터 물었고, 마카롱을 한 박스씩 사다 주면서 예준이 형에게 1대 1로 개인 강습까지 받았다.

그렇게 컨셉이 잡혀가던 와중에 성원이 형은 회사를 나갔다. 나머지 형들은 꾸준하게 연락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와는 이미 남보다 못한 사이였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악물고 잘 버텨가는 것 같았다. 이사님이 갑자기 술집으로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갑작스러운 술집 방문이 당황스러워서 이사님께 미성년자라고 세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전부 묵살 당했다. 들어간 방 안에는 테이블과 처음 보는 낯선 여자가 있었다.

“안녕.”

인사를 건네는 얼굴이 평온했다. 자세부터 표정, 손짓까지 여유가 흘러넘쳤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편안하게 기댄 여자는 마흔에 가까워 보였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급히 피하는 동안 이사님이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옆에 있는 소파로 밀었다. 천장의 화려한 조명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나머지 형들도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마네킹에 피팅된 옷들을 살펴보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가볍게 훑어본 여자가 이사님을 툭툭 쳤다. 그리고 시선이 향한 곳은 정확히 나였다. 눈이 마주치고 절로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역시 실물도 얘가 딱 내 취향인데, 너무 애기다.”

“고등학생인데.”

“이사님, 얘 섹스는 할 줄 알아?”

“정 신경 쓰이면 다른 애들도 괜찮고.”

웃음 섞인 물음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지간한 신인 그룹들은 다 권유받는다던 스폰이구나.

깨닫자마자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양옆이 막혀 있었다. 나머지 형들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눈이 불안하게 좌우를 오갔고 형들은 필사적으로 뭔가를 떠벌리고 있었다. 정신이 멍하고 귀가 먹먹해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저희 막내가 진짜 잘생겼거든요.”

“얘가 저희 비주얼 담당이라.”

정신을 차렸을 때 들리는 소리는, 본인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 떠드는 형들의 목소리였다.

다 같이 안 하겠다, 도 아니고 대놓고 한 명 몰아주기라니. 그리고 그 대상이 나인 것도. 소리가 또렷이 들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성원이 형이 나간 후에, 아니, 그전에도 계속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역겨울 정도의 태세 전환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으로 바싹 다가와 물었다.

“어때, 나랑 스폰할래? 좋은 거 많이 꽂아줄게. 그룹도 뜨고 너는 더 뜨고.”

원래 스폰이 이렇게 자리에 끌려온 다음에 선택하는 거였던가. 사전에 한마디 말도 듣지 못한 상태로? 짙은 화장이 된 눈이 잡아먹을 것처럼 번뜩였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그대로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여자와 팔이 부딪히고 소파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몸은 어떻게든 나아갔다.

이사님이 부르든, 이제는 이름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형이 팔을 잡아 오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당당히 들어갔던 술집에서 나와 헛구역질을 몇 번 반복했다. 와중에도 사장님이 잡으러 오지 않을까 싶어 바로 옆 골목길에 들어가 벽에 몸을 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할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결국, 수신인은 형으로 정해졌다. 주소록에서 형의 이름을 찾는데도 손이 떨려서 몇 번이고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형, 스케줄 중이야?”

-아니? 숙소지.

“나 여기, 아니다. 잠깐만 도와줘. 여기, 아니.”

-왜 그래. 어딘데?

“내가 숙소 앞으로 갈게.”

-어? 지금 온다고?

형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작정 전화를 끊고 골목길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어마어마한 택시 요금을 결제하고 내린 노블의 숙소가 있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야, 숙소 앞으로 온다고만 하면 어떡해. 어디라고 정확히 말을 해줘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벼운 차림으로 형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어릴 적부터 체육대회만 했다 하면 계주에 출전했던 선수답게, 달려오는 폼이 빨랐다.

“사람들 보니까 일단 일어나 봐.”

제대로 된 상황도 모르는 형이 무작정 나를 일으켜 아파트 단지 안쪽 놀이터로 데려갔다. 캄캄하고 음침한 게 이 시간에 아이들이 나와 놀 것 같지는 않았다.

“너 갑자기 왜 그러는데. 여기까지 다 오고.”

“형, 나, 그만두고 싶어.”

“어딜 그만둬? 야, 야. 너 숨 똑바로 안 쉴래?”

절대 손 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말했다. 잔뜩 당황한 형이 내 몸을 붙잡으며 물었고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형을 만나면 바로 울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 대신 말을 꺼내는 입술이 잔뜩 일그러졌다. 숨을 쉬기가 버거워졌다.

“소속사 나가고 싶어.”

“왜. 무슨 일 있어? 야, 말을 하라니깐!”

걱정스러운 얼굴과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이상한 상황이 됐다. 형은 내가 진정이 될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다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 길지 않은 스폰 얘기를 들은 형이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단 하룻밤 자고 생각하자.”

형은 아무 말 없이, 그룹 멤버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나를 숙소로 끌고 올라갔다. 무작정 누워 자라며 본인의 침대를 내준 형이,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옷을 보며 옆 침대에 누워있던 멤버가 벌떡 일어나서 화를 냈다.

“야, 뒤질래? 바닥에 놓지 말라니까. 옷걸이 장식이야?”

“우리 동생 왔다.”

“뭔 동생…… 어, 안녕하세요.”

익숙한 듯 화를 내던 멤버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금방 인사를 건넸고, 다른 방에 있던 멤버들도 한 명씩 찾아왔다. 이 밤에 갑자기 같이 생활하는 숙소에 들어왔는데도 불편한 기색 없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줘서 금방 긴장이 풀렸다.

“태양이 형으로서 몇 점이에요?”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노블은 정말 몇 년을 함께 할 그룹 같았다.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숨막히는 연습실에서 버티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무식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포기하고 나왔으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그렇게 밤새워 뒤척이다가 일어나자마자 형은 나를 데리고 내 소속사로 향했다. 사장실 앞에 도달하기까지의 형의 걸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형은 담백하게 계약 해지를 원한다며 본인 할 말만 했다. 사장님은 데뷔 직전에 계약을 해지하면 위약금에 더해서 손해배상 청구까지 들어간다며 압박을 줬지만, 형은 그것도 법대로 처리하라며 밀어붙이고 나왔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버린 약 2년의 연습생 생활에 느리게 눈을 깜빡이자 건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형은 내 팔을 잡아 이끌어 소속사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카페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커피 향이 좋았다. 내 취향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형이 바로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거기에 시럽 많이 뿌려달라는 말도 추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커피를 조심히 손에 쥐고 밖으로 나왔다. 더운 공기를 타고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형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나 혼자서 변명을 했다. 시럽이 잔뜩 들어간 카페모카가 입안에 느리게 퍼졌다.

너무 많이 넣었나? 원래 이만큼씩 넣어 먹었는데, 오늘따라 더 달았다. 혀끝까지 전부 단맛에 지배당한 것처럼 얼얼했다.

“알아. 너 원래 그러니까.”

“하아…….”

“앞으로도 이렇게 말 좀 해.”

둥글게 살면 작은 찔림 하나에도 너무 쉽게 터져버린다는 걸 몰랐다. 너무 둥글면 찔러보고 싶어진다는 것도. 꼭 나만 둥글게 살 필요는 없었는데. 쓸데없는 신조였다는 생각을 하며 카페모카 한 잔을 다 비웠다.

짧지 않았던 연습생 생활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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