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6화
천영은 슬슬 시간감각을 느끼지 못 하게 되었다. 시간상으로는 고작 일 주일쯤 지났을 뿐이지만 잠을 한숨 도 자지 않다보니 그 일주일이 거의 한 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천영은 미스터리 박스의 해석을 멈추지 않았다. 드래곤 특유 의 강철 체력으로 어떻게든 버터가 며 자신의 책상 주변에 캔 커피를 한가득 쌓아두고 두꺼운 필기용 노
트를 10권째 써가며 해석에 매진했 다.
“정말 대단한 집중력입니다.”
“과연……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집 착력에 집중력이라니. 그래서 천재 라는 건가……
사실 천영이 마법에 대해 이렇게까 지 집착을 한 기억은 없었다. 오히 려 공부를 하기 싫은 바람에 꼼수로 공식과 주문을 익히고 다녔을 정도 이다. 하지만 드래곤이 된 이후 마 법이라는 학문은 천영에게 있어서 산소와 마찬가지인 존재가 되었다.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 고 닿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올라
용언을 해석하는 동안 레벨이 몇이 나 올랐던가. 레벨 100을 달성한 이 후로도 최소한 10 이상은 올랐던 것 같지만 천영은 더 이상 상태창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니야 Crossing 을 대입해봤는데도 꽝이었어. 그렇 지만 이 이상으로 숨겨둘만한 뭔가 는 없을 텐데…… Rih주문 관련 서 적을 좀 부탁해봐야겠어.’
상당히 골치가 아픈 암호문이었다. 아니,이제 와서는 슬슬 정말로 암 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정말 연관이 하나도 없는 무의미한
문자의 나열. 천영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순서대로 해석하면 무슨 단어가 나오는 거지?’
가자,그,뭐,허익,훽,만족,저 기,그아악,무슨,희,규짙,헉.
이 무의미한 단어가 이어지고 있자 천영은 그것들을 선으로 직직 그어 버렸다. 분명히 마법진에 뭔가가 연 관되어 있을 것이 뻔 한데도 그걸 알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간혹 가다 아카메쉬를 포함해서 젊 은 마법사들이 천영에게 다가오긴 했다.
“조금 쉬엄쉬엄 하시는 게 어떻습 니까?”
“어릴 땐 생활리듬을 잘 맞춰야 키 가 큰답니다.”
“그러다 정말 쓰러지면 어떻게 해
요.”
하지만 천영은 무심하게 한손으로 턱을 괴인 채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면서 미스터리 박스에 시선 을 두었다.
“안 죽어요.”
“키 안 큰다니까요.”
“……괜찮아요.”
키는 레벨 업을 하면 얼마든지 큰 다. 물론 솔직히 성체가 될 때까지 얼마나 키가 클지도 의심스러울 지 경이긴 했지만. 분명히 레벨 업을 하면서 나이가 조금씩 드는 느낌이 들면서 신체적으로 선이 뚜렷해지고 있는데 유독 키가 자라질 않는다. 고작해야 1센티에서 3센티 정도로.
‘설마 진짜로 잠을 안자서?’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레벨 업과 수면에 큰 상관관계는 없을 듯싶었 다.
마법사들은 퀭한 눈으로 멍하니 허 공을 쳐다보는 천영을 안절부절못하
며 바라보더니 여자 마법사들은 그 의 머리카락을 빗어주거나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주는 등으로 챙겨줬고 남자들은 요 며칠 사이에 천영이 쉴 새 없이 뭔가 먹는 것을 좋아한단 사실을 깨닫고 간식을 잔뜩 사다주 었다. 샤워를 할 공간도 주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준다. 그들의 이유 없 는 호의에 천영은 부담스러워하길 잠시 이내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것 들을 받아들였다.
천영이 따끈따끈한 빵을 복스럽게 먹으며 머리카락 손질하는 것을 맘 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멍하니 미스 터리 박스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자
여자 마법사들이 수군거렸다.
“근데 메이지 천영,이 브릿지는 염색한 건가요?”
“에이,아닐 걸. 완전 새하얀데?”
“새하얀 수준이 아니라 막 빛나는 걸 보면 은발인 거 같은데?”
“이런 염색약이 있나? 얼마에 파는 거지?”
“네?”
천영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들이 잡고 있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 다. 새까맣지만 은은한 남색을 띄고 있는 흑발의 사이에 새하얀 브릿지
가 나있었다. 천영 본인도 처음 보 는 거라서 당황하며 그것을 쭉쭉 잡 아당기자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윽,이게 뭐야.”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듯 반응 을 하자 다른 마법사들 또한 의문을 품었다. 천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새 하얀 머리카락 부분을 매만졌다.
‘이건…… 드래곤 폼 상태일 때의 하얀 줄무늬 부분인 건가?’
천영의 드래곤 폼은 금색 눈동자와 금색의 뿔,남색을 띄고 있는 밤하 늘 같은 검은색의 피부가 주된 색상 이었다. 그러한 점 덕분에 휴먼 폼
역시 드래곤 상태일 때의 색을 상당 히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레벨 100 이 넘고 성장을 더 하게 되자 흰색 줄무늬가 강해져서 결국 머리카락 색에까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으,거슬려.”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면 검은색 부분에 가려지긴 하지만 말총머리로 묶을 경우 브릿지 부분이 뒤로 홀러 내리는 것을 감출 수 없게 된다. 평 소 말총머리를 즐겨하던 천영에게 있어서 상당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요? 엄청 예쁜데.”
“생각이랑은 다르게 염색돼서 그런 건가?”
“나도 저런 머리 해보고 싶은 데…… 안 어울려서 원.”
사실 뭔들 안 어울리겠냐만은 천영 이 그런 머리를 하고 있으니 상당히 신비로운 분위기가 은은하게 나타났 다. 하지만 천영은 한숨을 푹푹 내 쉬었다.
“이런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유치 찬란한 머리카락 누가 좋아한다 고……
그 말에 마법사들이 저들끼리 소곤 거렸다.
“조금은 애다운 면이 있으면 더 귀 여울 텐데.”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동그랗게 말 아서 예쁘게 닿아놓은 여자 마법사 가 말하자 다른 마법사들 역시 고개 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영은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27세인 자신이 애처럼 구는 것은 귀여운 게 아니라 꼴사나 울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또다시 사흘째
가 되는 날 초췌해진 얼굴로 멍하니 미스터리 박스를 바라보는 천영에게 예런이 찾아왔다.
“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후.”
“……커피가 먹고 싶은데.”
“크후후후후.”
“없네…… 커피맛 사탕이라도 먹을 까.”
“으흐흐흐흐.”
예런은 천영의 주변을 맴돌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뭔가
를 자랑하고 싶어서 죽겠다는 표정 이었다.
천영은 근처에서 사둔 커피가 있는 지 없는지 찾다가 간신히 캔 커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칙 소리를 내며 딴 다음 벌컥벌컥 마시는데 바로 앞까지 와서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려 짜증이 솟구쳐 올 랐다.
결국 천영은 포기하고 말았다.
“……후. 무슨 일이시죠?”
“크크크. 이번에 8강 진출에 성공 했습니다. 하하,넥스트 출신 마법사 들도 대단하긴 하더군요. 엘프 종족
마법사도 만나봤고 얼음의 수호자라 는 종족도 만나봤습니다. 4클래스 마법사도 있긴 했는데. 뭐,제 상대 는 아니더군요.”
결국 자기자랑이었다.
“예……
별 관심이 없던 천영은 깔끔하게 신경을 꺼버렸다. 예런은 자랑할 거 리가 끝나자마자 뒤돌아 나가면서 말했다.
“내일은 결승전이 있을 예정이니 꼭 와주시기 바랍니다. 크흐흐.”
예런이 부탁하지 않아도 마법전이
라는 것이 궁금하긴 했던 터라 나갈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말없이 고개 만 끄덕였다. 예런이 사라지자 다른 마법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뭐라고 지적하고는 싶지만 앞으 로 10년만 지나도 자신들 따위는 거들떠도 볼 수 없는 높은 직급의 마법사가 될 것이 뻔했기에 잘 보이 면 잘 보였지 절대 립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메이지 천영,저희는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쉬도록 하세요.”
벌써 열흘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
고 미스터리 박스를 연구하는 천영 에게 마법사들이 걱정 어린 말을 해 주고 떠나갔다. 밤 m시만 되면 최 소한의 연구자들이 전부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조명 역시 미스터리 박스 와 천영이 앉아있는 의자만을 비춰 주기 때문에 분위기가 상당히 삭막 하게 변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천영은 말없이 미 스터리 박스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보고 있으니 꼭 대화라도 나누는 느낌인걸.’
벌써 열흘이다. 저 미스터리 박스 를 구석구석 읽고 매만지고 살펴보 고 심지어는 할아보기까지 했다. 그
럼에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스터리 박스 바로 근처에 다가갔다. 마법진 으로 이루어진 발판이 형성되어 있 어 위쪽으로 올라가 미스터리 박스 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 있었다. 천영은 그 자리를 제일 선 호했다. 여김 없이 제일 위쪽 자리 를 차지한 천영은 묵묵히 미스터리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기묘한 마법진이었다. 기본 적으로 원의 형태를 가진 마법진은 정육면체의 각 벽마다 새겨져 있었 는데 그 원이 서로 이어지지 않고 타원을 그리거나 도중에 잘려있거나
혹은 새로운 도형을 만들기도 했다. 아카메쉬는 그것을 보고 ‘기존의 써 클 방식을 벗어난 다른 차원의 마 법’이라고 말하곤 했다.
‘대체 저 마법진은 뭘 의미하는 거 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선이 연결되지 않은 마 법진이라든가 쓸모없는 글자가 나열 되어있는 용언이라든가. 천영은 미 스터리 박스의 바로 근처에 다가가 마법진이 파여져 있는 홈을 매만졌 다. 깔끔하고 흉터가 없었다. 천영은 그것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아래 쪽으로 살살 쓸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기 형적인 마법진. 그것을 이해하기 위 해선 인간의 머리가 아닌 오리지널 드래곤이 와야 가능하단 말인가? 천 영은 그런 기분이 들자 침울해졌다.
‘나는 정말로 드래곤인 걸까?’
다른 드래곤들이 모조리 사라졌으 니 직접 만나서 물어볼 수도 없다.
천영은 어디까지나 탈태를 통해 인 간에서 드래곤이 되었을 뿐 제대로 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레드,화이트, 블루 등의 색을 가지 게 되어 상세 구분이 가능한 다른 드래곤들과는 다르게 천영은 여러
가지의 색이 섞여있는 드래곤이었 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말로 드래 곤인지 의심스러운 그런.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홈에다가 끼 워 넣은 손가락을 빼지 않고 정육면 체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깐 이거 끊어지지가 않잖아?’
그는 손가락을 떼지 않고 상체를 낮췄다. 오른쪽 옆면에서 이어지던 마법진이 아래쪽까지 이어지고 있었 다. 마법진들이 전부 끊어지고 합쳐 지고 도형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생 겨서 설마 이어지는 부분이 아래쪽 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천영은 그 손가락을 그대로 이어서 반대쪽으로 한 바퀴 돌자 이번에는 왼쪽 벽면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한 바퀴,두 바퀴 몇 번이고 회전을 해서 정육면체를 쓰다듬자 천영은 새로운 사실을 알 아낼 수 있었다.
‘……이 마법진이 6개로 나뉜 것들 이 아니라 하나였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법진이 란 기본적으로 평면에 하나의 써클 을 완성시킴으로써 발현되는 기술. 이렇게 정확한 형태의 원도 그려지 지 않은 상태에서 입체적으로 이어 진 마법진이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걸 만들어낸 종족이 드 래곤이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없으려나. 마법의 종족,드래곤은 이 기술에 대해서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까지 도 달했을 테니까.
‘어쩌면 이 마법진은 특별하지 않 을 수도 있어. ……그냥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입체 형태의 마법진을 다뤘던 것일 수도.’
입체 마법진. 말로만 설명하면 쉬 워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원의 형태를 가지는 2차원 마법진만
해도 머리가 썩어 들어갈 정도로 수 많은 공식과 주문,법칙이 섞여 들 어간다. X축과 Y축을 이용한 마법 조차 오랜 시간에 걸쳐 연산을 해야 만 하는데 거기에 Z축이 하나 더 추가된다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 로 억 소리나는 계산이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드래곤이라면 이걸 해석할 수 있겠지.’
천영은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다. 더 이상 인간의 관점에서,인간의 상식으로,인간의 능력으로 드래곤 을 이해하려고 해선 안 됐다. 드래 곤의 관점에서,드래곤의 생각으로,
드래곤의 계산력으로 이 마법에 대 해 이해한다.
천영은 노트를 여러 장 찢어서 늘 어놓았다. 그것들에 각 면에 있는 마법진을 그려 넣고 염력을 이용해 주사위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윽고 종이에 그려진 마법진을 자신의 마 나로 똑같이 만들어낸 다음 그것을 허공에 응집시켰다.
“원자처럼 생겼네.”
원이 아닌 ‘구’의 형태를 떤 마법 진에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위와 아래를,왼쪽과 오른쪽을,48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선을 연결하고 있었다. 천영은 거기에 용언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새겨 넣는 과정에 천영은 이해하고 말았다. 이 용언은 평범하게 평면을 읽는 방식 으로 해석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벽 과 벽을 관통하면서 이어지는 마법 진의 순서대로 글자를 나열하면서 원의 형태를 따라 선회하면서.
위이이잉!!
천영이 만들어낸 입체 마법진에 용 언이 전부 새겨지자 갑작스레 허공 의 마나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이 용언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 어떤 의미도 내 포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하나의 마법만을 위해 만
들어진 단 하나의 주문이었다.
조심스럽게 마법진을 손으로 쥐어 바스라트린 천영은 미스터리 박스라 고 불리는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것 에 손을 가져다 대어 마나를 주입했 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서로가 이어져 있는 마법진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니 마나의 분배는 너무나도 쉬웠다. 검 은색이던 미스터리 박스의 표면에 새겨져 있는 용언이 붉게 빛나기 시 작했다. 그리고 표면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이 환한 빛을 띠자 천영은 바 싹 마른 입술을 열었다.
“……마지막 드래곤의 약속을 지금
이행하겠다.”
그 순간 천영은 박스가 덜컥거린다 는 생각을 했다. 새하얀 빛이 흘러 나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미스터리 박스는 공간의 개념조차 무시하며 벽면이 접히고 둥그렇게 말아 올려 한 가운데가 뻥 뚫리더니 천영의 정신을 빨아들여버렸다.
낯선 장소였다.
우거진 숲,구름조차 뚫고 솟아오 른 거대한 나무들. 허공에는 초록빛 을 뿜는 요정들이 날아다녔다. 넝쿨 같은 것들이 끝없는 하늘 위에서부 터 내려와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들어오는 빛줄기 사이로 천
영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인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묶여서 눈을 감고 있는 배꼽 아래에 용 문신이 새겨져 있는 기묘 한 분위기의 여인. 그녀는 눈썹을 파르르 멸더니 눈을 서서히 떴다. 천영과 똑같은 금색의 눈동자가 그 를 마주했다.
“마지막 드래곤…… 당신을 지키는 것이…… 저의,의무……
이윽고 여인은 다시 눈을 감고 고 개를 멸어트렸다. 그 순간 여인의 금색 머리카락이 마치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천영을 덮쳐버렸다.
“헉!”
털썩,쿵,과당!
“크윽……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던 천영은 밟고 있던 마법진에서 떨어져 내렸 다.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알싸한 고통이 몰려왔다. 눈물을 찔끔 홀린 천영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스터 리 박스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웅웅 거리며 마법진을 허공 에 흩뿌리더니 마치 큐브처럼 변해 벽면 이리저리 구르며 좌락좌락 소 리를 내며 재조합되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광경에 천영은 넋 놓고
그것만 바라봤다. 잠시 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해버린 미스터리 박스 가 서서히 내려와 그의 앞에 멈췄 다. 침을 꿀꺽 삼키고 그것을 잡아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명!
[‘마지막 드래곤의 약속’을 획득하 였습니다!]
[마지막 드래곤의 약속]
등급 : 레전드
설명 : 마지막 드래곤의 약속이 담 겨있는 상자이다.
상자의 설명을 읽은 천영은 헛웃음 을 치고 말았다.
“뭐야 이게……
허탈한 표정으로 그것을 멍하니 쳐 다보고 있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 다.
흠칫 몸을 떤 천영이 고개를 돌리 자 아카메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결국…… 뭔가를 저지르신 모양이 군요.”
“……네.,,
아카메쉬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 자였지만,이상하게도 저것에 대해 묻는 것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 르는 공포,경외감,존경심 등의 감 정이 혼합된,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메쉬는 그것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당신의…… 정체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것이 마지막까지 용기를 쥐어짜 낸 아카메쉬의 질문이었으나 천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영물이라고 해두죠. 마지막 남은.”
“그렇습니까……
아카메쉬가 뭔가 해탈한 표정으로 천영의 손에 들려있는 미스터리 박 스를 쳐다보고 있는데 연구실의 문 이 열리며 마법사 무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아무래도 또다시 하룻밤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천영은 당황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카 메쉬가 손을 척 들었다.
“오늘부로 이 연구실은 폐쇄한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예에?”
“자,잠깐만요!”
“연구는 그럼……
마법사들은 아카메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들을 전부 내보냈다. 또다시 공간 이 잠잠해지자 아카메쉬는 깊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은 메이지 천영에게 드리겠습 니다. 이런 저라도 6클래스 마법사 다보니 알 수는 있습니다. 당신의 정체는……. 제가 상상하기도 힘든 존재라는 것과 그것 또한 제 손에 머물러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란 사 실을.”
“……감사합니다.”
천영이 묘하게 불편한 표정으로 대 답을 하자 아카메쉬는 시원한 미소 를 지어보였다.
“뭐 공짜로 준다는 말씀은 안 했습 니다. 제 부탁을 두 개 정도 언젠가 들어주셔 야겠습니 다.”
“그 정도라면……
“그리고 첫 번째 부탁을 지금 하겠 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카메쉬의 표정이 어쩐지 너무 능글맞아서 천영은 뭔 가 불안한 낌새를 느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녔으므 로 천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
었다.
“제 첫 번째 부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