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화 (2/325)

< #1. 일변단심(一便丹心)? >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이 속담에서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나?

바로 ’변(便)’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

예리하게 날선 칼날이 매섭게 살을 바르고 근육마저 가른 뒤 뼈마디를 쏘옥 뽑아냈다.

달인의 칼솜씨가 펼쳐지자, 순식간에 몬스터 한 마리가 해체되더니, 그 깊숙한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휘유...”

“대단하네.”

“역시는 역시인가.”

멀찍이서 지켜보던 몇몇 동료들이 나직한 탄성을 내지르는 게 들려왔다.

[사체처리 전문 업체 바이트!]

그곳 제 3처리반의 에이스, 마루의 해체작업에 휴식을 취하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엄지를 세웠다.

그 사이를 헤치며 날아드는 음성 하나.

“아재요. 마루 아재요. 쉬엄쉬엄 하소. 그러다 몸 상합니다.”

작업반장 김태식의 외침에도 마루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할당량 끝내려면 쉴 틈이 어딨냐.”

“그래도 휴식 시간에는 좀 쉬고 그래야죠. 그리고 할당량 이래봤자 아재 솜씨면 반나절이면 뚝딱이잖우.”

“한 살 차이에 자꾸 아재라고 할래?”

“나도 아재요. 그럼 당연히 형님도 아재 아니요. 자꾸 부정할라 하지 마소.”

김태식의 주장에 마루가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더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남은 반나절을 알차게 써먹으려면, 쉴 시간 없다.”

“또 그 짓거리 할라고 그럽니까?”

“복귀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빠듯해.”

이에 김태식이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그래도 여기서는 좀 쉬어도 되잖우? 요새 한동안은 그냥 쉬기에, 더는 그 꼴 안 보려나 싶었더니만. 어휴!”

“더 높이 뛰려는 개구리의 움츠림이었지. 흐흐!”

“어후! 마굴이란 마수지대에서도 그 짓거릴 할 줄이야. 이런 데서는 딱 정해진 동선에 맞춰서 움직여야지. 괜히 루트 벗어났다가는 대가리 빠개진다고요.”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거 참, 오히려 이런 데니까 더 열심히 움직여야지. 우리 사정에 언제 이런 퀄리티 높은 마굴을 들어와 보겠냐.”

“기회가 왔을 때 뽕을 뽑으시겠다?”

“당연하지. 게다가 말이 마굴이지, 여긴 겨우 외곽의 경계 구역일 뿐이야.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게 있는데, 이 정도도 감당 못하면 이 짓거리도 때려 쳐야지.”

“끄응...”

김태식이 앓는 소리와 함께 물었다.

“그래도...굳이 그...똥을 헤집는 건 아니지 않수?”

입에 담기도 민망했던 걸까?

혓바닥에 짧은 버퍼링이 걸리는데, 그 떨떠름한 음성에 마루가 잠시 칼질을 멈추고 숨을 고르더니, 준비된 레퍼토리를 풀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커피가 뭐냐?”

그 모습에 김태식이 ‘또 시작했네’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루왁이죠.”

“그게 어디서 나냐?”

“고양이 똥이죠.”

“최고급 향수의 재료인 용연향은 어디서 구할까?”

“고래 똥구멍...”

“그렇지. 게다가 누에똥은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한방 약재고, 코끼리 똥은 종이 제조에도 쓰인다 이거야. 게다가 루히피똥은...”

“에헤이! 그건 아니지. 어디서 약을 팔려고.”

김태식의 제지에 마루가 히쭉 웃었다. 그리고는 헛기침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크흠! 어쨌든 똥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이거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하는데, 이런 마수지대는 지천에 널린 게 몬스터 똥이다. 혹시 아냐? 그 속에서 루왁이나 용연향을 뽑아낼지.”

몇 년째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잔소리를 넘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라, 김태식은 손을 휘휘 저으며 다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어어...그래 알았수. 알았으니까. 쉬엄쉬엄하고. 무리하지 말고. 아재가 알아서 잘 하겠지. 말해 뭐 해. 그러니까 수고하쇼.”

걸음아 나 살리라며, 김태식이 황급히 멀어졌다. 이에 마루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작업에 돌입했다.

쉬는 시간까지 죄다 반납하고, 종일 작업에만 몰두한 덕분일까?

점심이 지나고 식사를 마친 인원들이 복귀할 즈음, 기어이 할당량을 마무리하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제 3처리반의 에이스다운 속도였다.

“푸후우우우우...”

길게 내뱉는 숨결 속에, 지난 노동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기어이 끝냈네.”

일찌감치 점심을 마친 김태식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왔냐?”

고된 노동에 어깨를 두드리며, 잠시 숨을 돌리던 마루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확인해 봐. 오늘 할당량 맞는지.”

“뭐, 안 봐도 확실하겠지. 그래서 이번에 노리는 놈은 뭐요?”

“짐작할 것 같은데.”

“...역시 와이번이요?”

무려 레이드 클래스로 분류되는 던전 상위종이었다.

“당연하지. 그만한 녀석이 이런 밑바닥 경계 구역에 등장했다잖아. 어떻게 그 흔적이라도 구경을 해 봐야지. 냄새라도 맡기 전에는 만족 못한다.”

그 순간 김태식은 마루의 기행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냄새 정도로 만족할 양반이 아니지.’

과거에 마루의 찍먹을 관람했던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똥인가 된장인가.]

상상만으로도 점심이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와이번쯤 되는 녀석이 이런 외곽지대까지 내려오다니. 어째 신기하긴 하네요.”

“왜? 가끔씩 있잖아. 영역 다툼에 밀려서 바깥까지 도망쳐 오는 놈들. 이번에도 그런 경우겠지. 빤한 거 아니겠어?”

“아하! 확실히 그렇겠네요.”

당연하게도 그들 같은 하청업자는 쉬이 구경하기 어려운 몬스터였다. 그런 와이번이 그들 영역까지 내려와서 잡힌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엔 똥오줌까지 지리면서 뒈졌다잖냐.”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나를 부르는 거야. 에~오!”

“에호...또 개소리한다. 어휴!”

마루가 고개를 젓는 김태식을 짧게 흘겨본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김태식이 물었다.

“가시게?”

“어. 벌써 엿새나 지났으니. 시기도 딱이잖아.”

최소 반나절에서 최대 이틀!

사냥이 끝나고, 관련한 모든 사체가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거기서 나흘이 더 지났다. 이젠 흔적만 남은 빈 공터가 되어있을 터였다.

‘관심도가 뚝 떨어질 타이밍이지.’

특히, 지금처럼 마수지대 축소화로 바쁜 시기엔, 하루 만에 모든 정리가 끝나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보기 힘든 상위종이지. 저 위쪽 천상계 고위 헌터님들께는 흔한 레이드종일 테니, 지금쯤이면 볼짱 다 봤겠네요.”

“레이드 클래스 중에서는 가장 하급이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엿새나 버텼지.’

상위종과 관련된 만큼, 길게 보고 기다렸다.

‘수거할 것도 죄다 수거했다고 하고.’

움직이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드레이크쯤 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안 그렇수?”

“같은 용종이라도 계급 차이는 확실하잖냐.”

던전에서도 최상위종으로 꼽히는 드레이크였다. 와이번과는 확연한 격차가 존재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김태식이 물었다.

“위치는?”

“당연히 파악 끝났지. 요 며칠간 내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 하냐?”

“어째, 한동안 잠잠하더라니.”

“구역이 달라서 정보료까지 써가면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놨다. 남은 건 찾아가서 물건을 확인하는 것뿐이지.”

“...고생하슈.”

김태식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간의 휴식으로 체력을 회복한 듯, 마루는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고해라.”

짤막한 인사와 함께 마루가 작업장을 나섰다. 김태식은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포기할 때도 된 것을...”

묘한 안타까움이 두 눈 가득 묻어나왔다.

**

마루는 완전무장을 한 채 이동했다.

비록 이곳이 외곽지대고, 정리 작업도 끝난 구역이라고는 하나, 마수지대라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총기 사용에 문제될 건 없었다.

하청의 처리업체에서 일을 한다지만, 그들도 몬스터와 어울리는 직업이다 보니, 헌터 자격 취득은 기본이었다.

마루 역시 헌터였다.

그것도 무려 D급의 헌터로써, 비각성 헌터 중에서는 최상위 등급이었다.

“그래봤자 무능력자일 뿐이지.”

픽 하니 실소가 나왔다.

군부대 자체를 이 방면으로 입대한 뒤, 전역과 동시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공식 13년, 비공식 15년!]

그의 경력이었다. 나름 베테랑인 것이다.

‘어차피 하급 헌터.’

15년간 절감한 비각성자의 한계였다.

‘족 같은 신분제, 계급제, 등급제!’

때문에 더더욱 이 ‘미친 짓’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쯤인가?”

마루는 슬슬 목적지가 가까웠음을 직감했다. 코끝을 자극하던 냄새가 사라진 까닭이었다.

“킁...킁킁...”

썩어도 준치라고 해야 할까?

“중심부에서 밀려났다지만, 그래도 상위종은 상위종이지.”

와이번이 웅크린 구역이었다.

외곽지대의 하위종은 접근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영역표시’를 할 만한 장소도 아니었다.

‘겁먹고 싸지르는 건 제외.’

그 역시도 영역 주변까지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마수지대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 몬스터들의 배설물이 한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

“냄새도 없고.”

물론, 마수지대 축소작업의 일환으로, 근방이 정리된 여파일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최소 흔적은 남아 있어야지. 이 정도로 깨끗하다는 건, 멀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렇지!”

저 멀리, 조금씩 드러나는 전장의 풍경이 그를 흥분시켰다.

부러지고 박살난 나무와 바위, 패이고 뒤집힌 흙더미와 대지 등등, 조금씩 선명해지는 파괴의 흔적들이 보였다.

‘휘유...이만한 파괴력이면 빼박이네.’

15년 경력의 눈썰미가 단번에 견적을 냈다.

“고위 헌터, 상위종!”

관련한 흔적들을 다방면에 걸쳐서 접해봤고, 덕분에 그의 음성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멀지 않았구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오싹!

등허리가 쭈뼛 서며, 발목이 붙잡혔다.

‘여기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젠장! 일주일이 다 됐는데, 여태 기운이 남아있나 보네.’

집주인은 거죽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지만, 상위종이 남긴 숨결은 아직 머물고 있었다.

‘역시 레이드 클래스!’

입술을 짓씹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끄응...이 정도쯤이야.”

가방에서 몇 종류의 알약을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는 마약성 환각제의 일종으로써, 비각성자가 몬스터의 기운에 저항하는 방법이었다.

장기간 복용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결국 효과가 약해지는데, 이럴 땐 약의 종류와 숫자를 늘림으로써, 효과를 끌어올리고는 했다.

마루는 약기운이 돌기를 기다렸다.

“젠장! 나도 약쟁이 다 됐네.”

목적지에 다다른 뒤에야 약을 먹은 이유?

‘환기가 끝났더라면.’

약기운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태식이 놈 말처럼, 나도 아재가 다 됐나보네. 쯧!’

젊을 적과 달리 약기운이 부담됐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오래지 않아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지고, 발목도 가벼워졌다.

“푸후우우우...”

호흡을 한껏 늘어트리며, 마지막 여운까지 떨쳐냈다.

그와 동시에 밀려드는 아찔한 냄새.

“킁...킁카킁카!”

환각제로 나른해지던 눈에 불이 들어오고, 입 꼬리가 살살 올라가기 시작했다.

킁킁킁킁...

오래지 않아 도착한 전장.

“노다지구나!”

사방팔방 널려있는 물건들, 누렇고 검은 덩어리들이 그를 반겼다.

“이런, 변이 있나!”

시일이 지나 물기가 빠졌을 텐데도, 이런 농도 짙은 냄새와 선명도라니.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이만큼 향이 진한데, 막 싸질렀을 땐 얼마나 지독했을까.’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체 처리반이 급하게 마무리했다더라.]

[똥오줌을 싸갈기며 뒈졌잖아.]

[그 냄새가, 완전 지옥이래.]

농도 짙은 구린내를 맡고 있노라니, 처리반의 심경도 이해가 됐다.

“아마추어가 감당할 향기가 아니지. 음~스멜!”

실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으...덩치가 어마어마한 놈이라서 그런가? 싸지른 것도 어마어마하네.’

다양한 몬스터들의 ‘물건’을 접해봤지만, 개중에서도 단연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걸물이 사방 가득 펼쳐져 있었다.

7~8미터 가량의 덩치를 지닌 만큼, 속에 든 것도 많았던 걸까?

전장 주변이 전부 누랬다.

‘일단, 여길 시작으로, 쭈~욱 훑어보면 되겠네.’

와이번의 활동 예상지점을 하나씩, 차례차례 짚어나갈 생각이었다.

“흐흥...작업을 시작해 볼까나.”

가방에서 시뻘건 고무장갑을 꺼내든 뒤, 마치 집도의가 된 것처럼 신중히 손과 팔에 끼웠다.

꽈악. 꽈악.

그 팽팽한 긴장감을 손끝 가득 만끽했다.

“흐흥~흥~흐흐흥~!”

사방 가득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흥겨운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그 참담한 현장을 이리저리 휘저어갔다.

‘이번에는 꼭, 반드시!’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사냥터를 찾고 또 찾으며 보물찾기에 전념했다.

그리고 일주일.

마굴 파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시...심-봤-다-!”

뜻밖의 ‘기적’이 그를 찾아왔다.

< #1. 일변단심(一便丹心)? > 끝

ⓒ 주작(朱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