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오우...커. >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한 방이 달려들던 골루크의 관자놀이를 박살내는 게 보였다.
“와우...”
탄성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신입의 솜씨라니.”
기존의 저격조라면 당연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지금 이 방향에서 날아드는 저격은 새로 들어온 신입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였다.
그렇기에 놀라움도 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저격실력이라니.”
“총기류 각성자라지만, 이렇게까지 정확할 수 있나?”
“기본 밑바탕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야. 각성 이전 실력도 만만찮았다는 거겠지.”
감마조는 연달아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원래는 D급 B형이랬나?”
“비각성자로 그 등급이면 최고지.”
“경력도 15년이랬던가. 와우! 나보다도 선배네.”
“조장급 아니면 경력으로 비비긴 어려울 걸, 나도 짭밥으로 치면 밀리는데. 이 바닥에서 그만큼 버텼으면 인정해야지.”
그들이 이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조금 전 저격을 끝으로 주변 골루크 사냥이 마무리 된 까닭이었다.
잡담으로 한숨 돌리던 것도 잠시였다. 짧은 휴식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그들은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이미 기존 포인트나 포지션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선, 최대한 열심히 뛰어다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이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이렇게 난리인데. 저격 포인트 쪽에서 불상사가 있진 않겠지?”
“재수 없는 소리 마.”
“멀쩡히 저격 들어오잖아. 문제없다는 거겠지.”
말이 씨가 된다고 해야 할까?
새로운 골루크 무리와 마주치고, 조금씩 호흡이 거칠어질 즈음, 그들은 더 이상 지원사격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돌발 특수 1급. 던전 승급.]
그 와중에 날아든 최악의 무전까지.
상황은 급격히 암울함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
알파조는 특수 1팀 내에서도 가장 저돌적인 실력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 이들이 작정하고 움직였다.
“오늘은 죽었다 생각하고 뛰어!”
이소희가 강한 어조로 먼저 내달리며 스킬을 난사했고, 조원들도 아낌없이 스킬을 터트리며 그 뒤를 따랐다.
기존의 일정은 이미 취소된 상황이 아니던가.
한 번의 전투에 전력을 쏟아내며, 여력 따윈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 시작부터 화끈하게 판을 벌이니, 대문을 나서던 골루크들은 급히 문을 걸어 잠그며 방어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김연희가 빠지면서 3명밖에 없었지만, A급 절정의 실력자 셋이 내비치는 전력이었다.
격차가 확실한 골루크들이 감당하긴 어려운 면이 있었다.
허나, 이소희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기존에 조사했던 것보다 규모가 커.’
특수 개체와 관련해서 차이가 심했다.
‘어째서?’
혜성길드의 수색조가 실수를 한 걸까?
[돌발 특수 1급. 던전 승급.]
그 답이 무전으로 날아들었다.
“젠장!”
다급함에 욕지거리가 튀었다.
**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이라 해야 할까?
‘장단이 있나.’
김연희는 자신들의 현 위치가 저격 포인트라는 점에 일단은 안도해야 했다.
불행인 점은 그녀로 인해, 꾸준해야 할 포인트 이동이 불가능하단 점이었는데, 그래도 지형 및 주변 생태계의 특성에 의해 당장 급할 건 없을 터였다.
그녀는 현재 시야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흐린 탓에 전투력이 상실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만약 이곳이 돌발 상황의 ‘현장’이었더라면?
‘짐 덩이가 따로 없었겠네.’
반대로 원거리의 저격 포인트였기에, 그런 골칫거리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만약 눈이 멀쩡하고 전력도 확실했다면? 현장 출동이 어려운 거리라는 점을 불행으로 여겼으리라.
‘일단, 다행인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한편, 쉴 새 없이 마루를 훔쳐보기에 바빴는데, 이는 그녀의 흐릿한 시야에 비친 광경 때문이었다.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스킬은 강제 중단되었건만, 그 여운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일까?
어렴풋한 색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화려한 무지개 빛을 발하며 자꾸만 그녀를 유혹하는 광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게 마루였다.
알 수 없는 어떤 거대한 무언가를 훔쳐본 여파로 미지를 엿볼 수 있게 된 걸까?
그토록 보고 싶던 무지개가 떴다.
무색으로만 남아, 저격을 할 때만 백광을 내던 마루의 아우라였건만, 다시금 오색찬란한 광채를 내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뭔가, 막고 있어.’
희뿌연 무언가가 광채들을 에워싸고 있던 것이다.
투웅...퉁...투우우웅...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백광이 크게 번뜩이며 희뿌연 막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것도 확인했다.
그로 인해 깨달았다.
‘위장막인가?’
희뿌연 막이 아우라를 감추고 있단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가설.
‘설마, 언니 말처럼...’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멀티 능력자?’
저 다양한 아우라는 스킬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가도 고개를 저어버렸다.
‘말도 안 되지.’
아우라의 숫자를 보라.
‘그 말 대로면 스킬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거잖아.’
더블도 황당한 판국에?
‘말도 안 돼.’
간혹, 스킬이 변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결국 같은 계열의 스킬로 발전하는 거였다.
대표적인 예로 지원조의 엡실론을 들 수 있었다.
스킬 [공명]이 성장하여 진동계의 이중주 스킬인 [공명정진]으로 진화하지 않았던가.
현재까지 언급되는 ‘더블’능력자는 바로 이런 ‘진화’계열의 각성자를 의미했고, 이들이 ‘가능’으로 분류되는 더블 능력자였다.
김연희 역시 오라를 보는 [오라오라]에, 오라 변형의 [오호라]가 더해진, 진화계열 더블 능력자가 아니던가.
언뜻 2개 같지만, 그 실상은 결국 하나였다.
‘아저씨는 아우라 색깔이 변했었지.’
하늘색에서 짙은 파란색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단색이었다.
극단적 변화는 아니었다.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 각국의 길드들은 ‘스킬 진화’를 확인했고, 그런 이유로 여전히 ‘진짜’ 두 가지 능력의 더블은 ‘불가능’하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응?’
상념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그녀는 묘한 변화를 인지했다.
‘총성이...멎었어?’
의문을 느낄 즈음, 무지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뭔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루의 말에 그제야 김연희도 주변을 돌아보는데, 여전히 흐릿한 시야에는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다.
오직 단 하나, 무지개빛 찬란한 아우라만이 시야를 어지럽힐 뿐이었다.
감각을 키워 확인하고 싶지만, 현재 그녀의 상태는 여러모로 엉망에 먹통인지라, 그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골치 아프게 됐네.’
짐 덩이가 되어버린 전투원과 저격수의 조합이었다. 몬스터가 접근하는 거라면 쉬이 상대하기 어려울 터였다.
마루는 결국 C급 A형의 헌터였고, 이곳은 B급 던전이었다.
‘아직 외곽 지대에 걸쳐 있으니까. 위험종이 아닐지도 몰라.’
긴장감이 고조되는 와중이었다.
[돌발 특수 1급. 던전 승급.]
갑작스레 날아든 무전 하나가 뒤통수를 두드렸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크워어어어~!
그 와중에 날아든 괴성 한 줄기.
이를 통해서 접근하는 몬스터가 어떤 종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오우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묵직한 울림과 전율적인 감각, 이는 분명 상위종들 특유의 [피어]가 분명했다.
기존의 등급이 B급이었던 걸 상기한다면, 상위종은 던전의 보스와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며 저 안쪽에 있어야 할 터였다.
혹여, 승급여부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런 외곽의 경계에서 등장할 놈이 아닌 것이다.
마루 역시 피어로 정체를 알아챘다.
‘현실에선 처음이지만.’
게임 속, PP에서 수차례 마주한 바 있는 녀석이 아니던가. 새로운 캐릭터인 ‘장관장’으로는 아직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급한 대로 이전 캐릭터의 기억을 열심히 뒤적였다.
‘A등급 몬스터...꿀꺽!’
현실의 몬스터를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 놓은 PP이기에, 그 기억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일부 털어낼 수 있었다.
쿠웅...쿵...쿠우우웅...
점차적으로 가까워지는 땅울림에, 전에 없는 만전의 자세로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아끼고 감춰뒀던 스킬까지, 전부 풀어내야 할 타이밍이었다. 때문에 그의 시선이 한 차례 김연희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가.’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번 한 번에 한해서는 전력을 내비쳐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디까지 감출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여유 및 여력을 남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변명거리는 생각해 둬야겠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어지는 스킬 발동.
[태세전환]
숙련도 노다가의 결과물인 세 가지 전환기를 기반에 두고, 그 위로 각종 스킬들을 이리저리 덧씌워가며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가 각오를 다지며 스킬을 준비할 때, 뒤편에서 이를 바라보던 김연희의 두 눈이 몽롱함에 젖어들었다.
‘막이...아우라가...’
희뿌연 무언가에 막혀있던 광채들이, 하나 둘 이를 찢어발기며 세계를 향해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고흐가 바라보는 세상이 이러할까?
흐릿하게 혹은 몽롱하게, 오직 색감만으로 이를 마주하기에, 더더욱 아름답고 찬란한 느낌이었다.
**
제타 박건!
그는 저격조의 조장으로써, 무려 A등급 자격증을 지닌 헌터였다.
[스킬 : 반동제어]
총기의 반동만이 아니라, 사념의 반동까지 제어하는 스킬로써, 그는 이 스킬을 가지고 저격이 아닌 근접전을 즐겨했었다.
저격보단 근접 총격전에 더 특화된 스킬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 방면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젊을 적, 겁 없던 치기도 일부 작용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의 황혼기도 빠르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올해 나이 마흔둘!
헌터들의 전성기라 할 만한 시기였지만, 그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뒤늦게 저격총을 쥐고 거리를 둔 채, 본연의 전투 스타일을 바꿔봤지만, 이미 사념폐해로 인한 오염이 심각했다.
게다가 저격으로 갈아탔다고는 하나, 일반 각성자보다 사념의 폐해가 큰 건 변함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총기계열 각성자 다음으로 수명이 짧은 게 궁수 계열이지 않던가.
물론, 그들이야 일반 각성과 겹쳐있긴 했다.
게다가 총기계열보다 저격 횟수도 적고, 오버클럭을 하기도 쉽지 않은 만큼, 적당한 거리유지로 황혼기의 조절이 좀 더 자유로운 편이었다.
어쨌든 저격도 총기류의 연장선이었다.
‘호흡기만 겨우 붙여놓은 수준인가.’
박건은 쓰게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우응...
유독 잡념이 많아지는 건, 뜻밖의 변수가 작용하며, 평소 이상으로 탄환의 소비량이 늘어버린 까닭이리라. 황혼이 등 뒤로 달라붙는 느낌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애써 상념을 털어내며, 바삐 주변으로 시야를 넓혀보는데, 문득 머리 한 편에 물음표가 떴다.
‘그러고 보니, 신입의 총성이...?’
어느 시점부터 그 방면이 조용했다.
‘부 팀장이 함께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성이 멎었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었다.
**
수풀을 헤집고 짓밟으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거!
평균적으로 3~4미터는 되는 놈들인데, 마루의 앞에 나타난 오우거는 3미터 중간의 덩치로써, 그나마 작은 편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놈들은 크기로 일반 대형종과 상위종이 구분된다.
상위종은 레이드 클래스로 분류되는데, 이는 4미터 이상의 성체들이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피어를 쓴 걸 봐선, 상위종으로 넘어가는 중인가.’
굳이 비유하자면 인간의 청소년기 정도?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꿀꺽!’
농담으로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그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는 큼지막한 눈동자가 마루와 김연희를 훑고 지나갔다. 그 이후 그려지는 미소 한 줄기가 섬뜩했다.
“크워어어어어-!”
눈앞에서 터진 포효가 심령을 흔들었다.
꿀꺽!
긴장감에 자꾸만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모발도발]
풍성한 머리스타일을 위한 ‘발모’ 스킬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체는 정신계열의 숨겨진 꿀 스킬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우거가 성큼성큼 다가들었다. 바르르 떠는 먹잇감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뭘 먹을까 고민하는 눈빛으로 둘을 번갈아보면서 걸어왔다.
그렇게 만찬장에 가까워질 즈음, 먹잇감 하나가 펄떡였다.
‘간격 좋고!’
마루가 안광을 번뜩이며 나섰다.
이미 널뛰던 마음은 가라앉혔고, 흔들리던 육신도 바로잡았다. 요란한 떨림은 저 덩치를 방심시키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었다.
파악!
거짓말처럼 기세가 돌변하고, 그의 신형이 내달렸다.
‘선빵필승!’
마치 한 줄기 화살이 된 듯, 쏘아지듯 날았다.
“크워?”
갑작스런 반전에 오우거의 그 큰 눈이 한층 더 크게 확장되는 찰나, 이미 마루는 놈의 몸뚱이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태세전환 - 울프]
붉은 빛 아우라를 휘감으며,
[동력]
잠재된 기운을 모으고 모아,
[순살 - 급소검색]
치명적 일격을 내질렀다.
[철권]
단말마의 비명성과 함께 무너지는 거구가 보였다.
“크워어어억-!”
마루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같은 남자로써, 미안하다.”
정말, 정말로 아픈 부위였다.
그래서일까?
최악의 손맛이었다.
알알, 아니 얼얼했다.
< #24. 오우...커.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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