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2화 (2/200)

< 준하야? >

“마지막 코너를 빠르게 돌파하는 르노의 테일러 엣 우드! 직선주로를 돌파하며 결승 지점으로 들어옵니다. (중략) 이것으로 2009시즌 모나코 그랑프리 중계를 마칩니다.”

[녹화 방송을 다시 시청하시겠습니까?]

띠유웅.

스타이라이프가 설치된 TV. 전원을 꺼버리자, 옆에 놓인 무언가가 번쩍하고 빛났다.

[개근상]

[제 4학년 2반]

[성명: 서준하]

[위 학생은 1개년간 개근하였으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서울 XX초등학교장 정세윤.]

서준하의 지난 1년간의 결실(?)이라 부를 만한 개근상. 그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상장 대신 F1 월드 챔피언 트로피가 아른거렸다.

‘후... 내 트로피.’

지난 1년간 준하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다.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녔고, 조금씩 달라진 삶에 적응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질주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밤 속도와 레이싱에 대한 욕망이 거세게 몰아닥쳤고, 서준하는 자연스럽게 F1 중계 방송에 빠져 살게 됐다.

‘나도 다시 레이스하고 싶다.’

유학길에 올라 F1 드라이버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생각은 애초에 접었다. 서준하의 집은 준형과 준하, 두 형제를 키우기에도 빠듯한 살림을 살았다.

“으아!!!”

화가 났다. 마치 커다란 벽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듯한 기분.

“오마, 오마. 우리 준하 또 에프 완인가, 뭐신가 보는 겨? 할미가 몇 번 말했자녀. 자동차는 지금 못 탄다구.”

“...”

“할미가 김치볶음밥 해놨응께. 가서 언능 묵자.”

맞벌이로 바쁜 준하의 부모님 대신 살림을 하시는 할머니. 준하를 지켜보다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곁으로 다가 오셨다.

탁.

준하는 무거운 걸음 옮겨 식탁 앞에 앉아 수저를 집었다.

“그래, 착하다 아가. 너 때는 잘 먹어야 혀. 느이 형 봐라, 밥은 저렇게 먹는겨. 하하”

준하의 눈엔 유쾌한 웃음을 짓는 할머니 옆에 준형이 보였다. 준형이 왼손을 들어 V자를 그렸다.

“맛있네, 한 그릇 먹고 또 먹어야지.”

준형은 먹는 걸 좀 밝혔지만, 그래도 준하는 밝고 순수한 형이 좋았다. 무엇보다 준형에게 호감이 간 건 그도 차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 때문.

“준하야, 너두 어째 참말로 너그 둘째 큰아부지랑 똑같으냐?”

“둘째 큰아버지요?”

“그래, 태학이 고놈아가 너처럼 바퀴 달린 것만 보면 아주 환장을 했다는 거 아니냐.”

옛기억을 주저리 주저리 꺼내놓기 시작하는 할머니. 처음 듣는 얘기에 준하는 귀를 기울였다.

“가가 너만 할적에 말이여. 우리 식구 양계리 살적에. 밤에 몰래 차 열쇠 훔쳐다가 지 아부지 트럭 몰구 읍내까지 갔다오구 그랬어.”

“저만 할 때요?”

10살짜리 아이가 수동 변속 차량을 조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생에 준하도 그 나이 때 트럭 같이 큰 차는 몰아본 적이 없다. 준하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려어. 즈그 아부지가 그날 후로 한 번만 더 차에 손대면 다리 몽둥이 뿌사부린다고 혀도, 갸는 뭐에 씨인 놈 마냥 또 몰래 타더라니께.”

“왜 운전을 하셨는데요?”

“나도 모르재. 쪼마난 놈이 뭔 차를 몰겠다고, 참내. 아부지한테는 뭐 그냥 달리는 게 좋다고 혔다는디. 시방 그게 말이 되냐고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뭔지 알 거 같은데. 레이서의 질주 본능? 뭐 그런 거 아니겠어.’

준하는 속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차만 보면 타고 싶고, 차에 올라 가속 페달을 밟아 질주하고픈 욕망.

“근데 지금은 뭐하세요? 저번 명절에 못 뵌 거 같은데.”

“시방, 무슨 자동차 학원 같은 거를 한다나 뭐라나. 젊을 때 서울 나가 가지고, 지 아부지 돌아가실 적에나 딱 한번 얼굴 비추고 사라진 놈이여.”

“아...”

“아이고, 내가 너한테 별소릴 다헌다. 그러니께 아가, 너도 다 클 때까진 아빠 차 몰래 타고 나간다거나 해서는 안된다이. 바퀴 달린 거는 위험혀, 알았재?”

“네...”

***

모든 스포츠 선수에게 재능은 필수다. 많은 스포츠 스타가 뛰어난 운동신경과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성실한 노력은 기본이다.

허나 F1은 한 가지를 더 필요로 한다. 그건 바로 자금력. F1에서는 돈도 실력이다.

대다수의 F1 드라이버는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부모를 곁에 뒀다. 드라이버들의 부모가 우연히 모두 돈이 많았던 게 아니라, 돈이 많은 부모가 있어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실제 한 선수의 부모는 아들이 F1 주전시트에 앉기까지 900억이라는 돈을 쏟아부었다.

게다가 상위권 팀을 제외한 디른 F1팀들은 서폰서나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드라이버를 시트에 앉히려고 한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자신의 새로운 환경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서준하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섰다.

띵동.

띠리리, 철컥.

“오 빨리 왔네.”

“말했잖아, 5분이면 온다고. 준비해놨지?”

“크큭, 응, 들어와!”

서준하가 벨을 누르자 까무잡잡한 피부의 장윤호가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Motor Sports game wRacing]

준하가 학교에 오고 처음으로 가까이 지낸 친구 장윤호. Racing 게임 중독자로 항상 레이싱에 대해 떠들어대는 녀석이다.

“이번에 레이싱휠도 새로 바꿨어!”

“오호?”

서준하는 그런 윤호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함께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아, 시댕 이 차는 브레이크가 너무 강하게 먹어.”

wRacing은 잘 만든 레이싱 게임이다. 레이싱휠 조이스틱과 함께 엑셀과 브레이크도 조작할 수 있다. 물론 실제 레이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차는 죄가 없을 텐데. 줘 봐, 내가 해볼게.”

과감하게 차를 몰아도 다칠 걱정 없다는 점이 준하의 마음에 들었다. 윤호가 레이싱 휠을 준하에게 넘겨주었다.

잠시 뒤 윤호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와, 준하야 쩐다 진짜. 이 코스 레벨 진짜 높은 건데.”

“그래? 저번보다 쉬운데?”

새로 시작한 레이스에서 서준하가 순식간에 1위로 올라왔다.

“와! 1등.”

1위로 달리던 준하의 포뮬러 카가 그대로 결승지점에 들어왔다. 윤호가 준하의 어깨를 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시해. 이런 건 레이스가 아니야.’

게임 캐릭터가 영혼 없는 표정과 함께 포디엄(시상대)에 올라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디테일이 굉장히 떨어지는 조잡한 시상식. 준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준하야, 한 판 더?”

“재미없다. 속도감이 안 느껴져.”

“속도감?”

금방 게임 레이스에 질린 듯한 친구의 모습에 윤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300km/h 이상을 달리는 데, 바람 한 점 안 느껴져. 레이싱은 그 바람 맞으려고 하는 건데...”

“크큭, 바람? 너 웃긴다. 게임에서 무슨 바람 타령이냐. 마치 300km/h로 달려본 사람처럼 말한다?”

준하의 말이 우스웠다. 게임에서 바람을 느낄 수 없어 재미없다는 건 분명 정신나간 소리였다.

‘넌 직접 타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준하는 윤호의 말에 대꾸도 없이 멍을 때렸다.

잠시 동안 흐르는 정적.

윤호가 무언가 생각난 듯, 준하의 어깨를 잡고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맞다, 맞다. 너 카트라이더스 알지?”

“카트라이더스? 그 물풍선 던지고, 부스터 쓰는 자동차 게임?”

“응, 나 그거 실제판 타러 간다.”

“실제판?”

“아빠가 그러는데 ‘고카트’라고 실제로 운전할 수 있는 카트가 있대. 다음주에 아빠랑 그거 타러 가기로 했어.”

고카트라는 말을 듣자, 서준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서준하도 전생에선 아주 어릴적부터 고카트를 탔었다. 머릿속에서 고카트를 탔던 과거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진짜 고카트가 있대?”

“으응, 엄청 재밌다는데.”

고카트(go-kart)는 작고 높이가 낮은 1인승 경주용 소형차다. 차의 구조적 특성상 오래 전부터 F1 레이서가 되기 위한 입문과정으로 여겨진다.

“윤호야, 그거 나도 같이 가자.”

새롭게 태어난 삶에서 F1 드라이버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던 서준하.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다시 꿈틀대는 걸 느꼈다.

***

강렬한 햇빛이 잠실 카트장의 아스팔트를 데웠다. 다리 밑 탄천을 타고 간간히 거센 바람이 불었다.

부우우웅.

끼익.

부우우웅.

“에이, 그렇게 안 빠르네.”

코너를 빠져나가는 카트 2대를 보고 장윤호가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철이 그런 아들을 귀엽게 바라보며 답했다.

“실제로 타면 다른 느낌일걸?”

장철은 한국에서 드문 모터스포츠 광팬이다. 특히나 일본까지 원정을 가 F1 경기를 관람할 정도로 열정적. 아들 윤호가 레이싱에 관심이 많은 건 다 아빠의 영향이 컸다.

“준하야, 어때? 넌 탈 수 있겠니?”

전생에 카트만 수년 탄 서준하. F1 무대에서 보여준 실력은 카트를 타던 시절부터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준하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윤호, 너는 괜찮겠어?”

“아빠, 나 wRacing 하는 거 못 봤어요?”

자신감을 드러내는 윤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실제로 윤호는 wRacing 게임을 잘했으니까.

‘응? 이건 그런 게임이랑 성격이 좀 다른데.’

하지만 게임과 실제 레이싱은 다르다. 포뮬러 카만큼은 아니겠지만, 저 작은 카트도 운전자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준하는 몇 분 뒤 당황한 윤호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했다.

“아까 안전 유의사항은 다 설명해 드렸고, 저기 앞쪽에 놓인 카트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앉으시면 됩니다.”

다양한 색 조화가 아름다운 카트들. 카트장 직원이 카트들을 가리켰다.

‘고카트! 이게 얼마만이야.’

준하는 카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화려한 카트의 외형보단 카트 뒤에 장착된 엔진이 눈에 들어왔다.

‘YAMAHA네. 보나 마나 입문용 스탠다드겠지?’

유럽이나 북미에선 만 9세에서 12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이 엔진이 장착된 카트를 몬다.

‘크, 옛날 생각 나는데?’

서준하도 전생에서 이 엔진으로 카트를 시작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

“와, 나는 저거 노란색 탈래!”

윤호가 노란 카트 한 대 앞으로 달려가 운전석에 앉자, 준하도 재빠르게 빨간 카트에 달려갔다.

“기본 조작법부터 알려드릴게요.”

선글라스를 낀 카트장 직원이 윤호의 카트 앞으로 다가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 카트는 레저용 스포츠 카트에요. 가속 페달은 오른쪽에 있...”

두두두두둥.

카트에 시동이 거는 소리.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

“저기, 꼬마야 아직 설명도 다 안했...”

부우우우웅.

휑.

서준하의 빨간 카트가 게러지 밖을 빠져나가 트랙 위에 올랐다.

“준하야?!”

< 준하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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