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보다 차가 훨씬 지저분해진 거 같은데? >
유로컵 대회를 며칠 앞으로 앞둔 스메들리 팀. 팀 전체가 게러지로 집결했다.
“이번 유로컵은 총 3차전. 매 경기 10위 안에 든 레이서들에게 차등적으로 포인트가 주어지고, 합산 포인트가 가장 높은 선수가 최종 챔피언이 된다. 이건 팀 챔피언도 마찬가지야.”
포뮬러 르노 2.0 유로컵은 엔트리급에서도 가장 이름난 대회다. 긴장된 표정으로 프랭크의 말에 집중하는 팀원들.
유로컵을 우승하게 된다면 상위 리그인 F3로 진출로 진출하게 되는 만큼, 서준하 역시 긴장과 함께 기대감에 찼다.
“1차전은 지난번 레이서 결정전이 있었던, 스네트 서킷. 우리팀에겐 엄청난 행운이지.”
총 3번의 경쟁을 통해 챔피언을 가리는 유로컵.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영국의 스네트 서킷으로 결정됐다. 다양한 서킷 가운데 랜덤으로 선택된 1차전 대회 장소. 영국 팀인 스메들리에겐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헨리, 피트 스탑 준비는 철저히 하고 있는 거지?”
이번 대회에선 적어도 무조건 한 번은 피트 스탑을 하는 게 룰이다. 레이서의 실력만큼 팀의 타이어 체인지 기록 또한 경기 승패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
프랭크가 미캐닉 팀이 모인 테이블로 고개를 돌리자, 헨리가 문제 없다고 답했다.
“레리, 댄, 자히르 그리고 윌슨. 미캐닉 자네들도 서킷 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레이스에 임해줘. 레이싱으로 랩타임을 만드는 건 차에 탄 레이서만 하는 게 아니야. 자네들이 관여하는 피트 스탑에서도 랩타임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게나.”
모터레이싱에선 미캐닉의 작은 실수 하나가 순위를 바꾸는 일이 다반사. 피트로 들어와 수리를 하거나 부품 교체를 하는 시간 역시 랩타임에 포함된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이번 대회 우리 팀 목표는 우승이네. 가능하다면, 드라이버 챔피언 자리까지 노려보고 싶어. 나는 우리 팀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모두들 잘 해주게나.”
레이서 테이블 쪽으로 눈을 돌린 프랭크. 드라이버 챔피언이라는 말을 꺼내며 그의 시선을 서준하에게로 고정했다.
프랭크의 말처럼 스메들리 팀은 대회 다크호스였다. 상위 리그 경험을 보유한 팀원들이 팀에 합류하며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전력. 무엇보다 서준하 역시 전생 유로컵 경험자였다.
프랭크의 공지가 끝나고, 각자의 업무로 복귀한 스메들리 팀.
“아참 그리고 내가 레이서들한테 따로 할말이 있네.”
연습 주행 전, 레이서들과 작전 회의에 들어간 레이스 엔지니어들 앞으로 프랭크가 다가섰다.
“대회가 시작되고, 레이스에 들어가면, 팀 메이트 레이서끼리 호흡이 중요해. 지난번에 메인과 서브를 나눈 결과에 따라 각자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해주길 바라네.”
디펜스부터 추월 전략까지. 특히나 같은 팀 포뮬러끼리 팀워크를 발휘한다면, 다른 차의 추월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그만큼 팀메이트 간의 호흡이 중요한 법. 프랭크가 레이서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자, 그럼 이제 오전 연습 주행 시작하지.”
***
“총 8팀 출전에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 무려 세 팀이나 돼요.”
대회 준비가 한창인 스메들리 팀 오피스. 이번 대회에서 다른 팀 전략 분석을 맡은 맬릭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유로컵은 스페인 쪽이 강세였던 걸로 아는데, 더 있나?”
“네, 맞아요. 스페인 오로라 모터즈가 매년 우승을 놓치지 않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르노 아카데미한테 챔피언 자릴 내줬어요. 다들 좋은 레이서를 데리고 기세가 바짝 오른 거 같아요.”
르노 아카데미의 이름을 듣고 오피스에 모인 팀원 전체가 술렁거렸다.
“에이, 르노는 별 거 아니야, 작년 우승자가 다시 나오진 않을 거 아냐. 게다가 지난번 브리티시컵 때 보니까, 그때 라인업한 애들도 그렇게 빠르지 않더만.”
“그래도 스페인 애들을 잡은 거 보면, 엄청난 강팀 아닙니까?”
르노에 대한 엇갈리는 반응들. 시시하다며 웃는 롭에게 막내 레이스 엔지니어 맬릭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롭 말대로 작년 우승자는 상위 리그로 올라갔는데, 그때 당시 유로컵 2위 레이서가 다시 나오나봐. 아마도 챔피언을 따고, F3로 넘어가려는 것 같아.”
“와, 그럼 작년에 르노가 유로컵 1,2위를 다 먹었나 보군요. 오로라 팀이 완전 밀렸네요.”
전반적으로 경험 적은 주니어 레이서들이 출전하는 유로컵에서 대회 포디엄에 오른 유경험자가 다시 나오는 건 드문 일. 맬릭도 쉽게 볼 일은 아니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로라 모터즈에선 특이하게 터키 선수가 메인 레이서로 나온다고 하고요.”
“아, 그 쿠쉬라는 애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코치진 모두에겐 생소한 이름에 롭이 아는 척을 했다.
“걔가 터키의 서준하잖아. 크크큭.”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쿠쉬 메오라고. 아마 준하랑 동갑일 거야. 나도 SNS에서 몇 번 봤는데. 그 나라에서 떠오르는 유망주라고 하더라고. 어디갔나 했더니 스페인에서 포뮬러 하는구나.”
터키 카트 천재로 불렸던 쿠쉬 메오. 남유럽의 다양한 카트 대회를 돌며, 실력을 입증한 그도 서준하와 비슷한 시기에 유로컵에 출전했다.
“우승 후보가 셋이라고 하지 않았어? 오로라, 르노 아카데미, 그럼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지?”
“이탈리아의 WD 모터즈요. 이쪽이 오래된 팀은 아닌데, 스카웃을 잘하나 봐요. 이번에 프랑스에서 카트로 유명했던 유망주를 포뮬러에 앉혔대요. 주니어 팀치고는 큰돈 주고 데려왔다는데. 아무튼 여기도 이번 대회 경쟁 팀이에요.”
팀 빌딩과 뛰어난 인재 양성에 힘쓰는 대신, 외국인 용벙을 통해 대회 우승을 노리는 것으로 이름난 WD 모터즈. 대회 우승을 위해 매 시즌 레이서들을 물갈이하며 스카웃에 열중하는 팀이다.
“사실 유로컵에 나오는 거면 전부 유망주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근데 프랑스 유망주면 누구지?”
대회에 출전 가능한 레이서 수가 한정적이다 보니, 대부분의 참가자가 각 나라와 지역을 대표하는 유망주들이다.
거액을 주고 데려온 레이서라는 말에 모두가 궁금한 눈으로 맬릭을 바라봤다.
“카트 탈 때 세계 대회 우승도 여러 번 따낸 레이서라는데요? 포뮬러 르노 프랑스컵 우승 경험도 있고. 아, 누구였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천장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려는 맬릭. 잠시 후 무언가 생각났는지 기쁜 얼굴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 맞아요. 샤를! 샤를 가도였어요.”
***
대회 시작 이틀 전. 영국으로 도착한 참가 팀들이 장비 점검과 연습 주행을 마치고 퀄리파잉(예선전)에 들어갔다.
[2014 포뮬러 르노 유로컵 1차전 퀄리파잉]
퀄리파잉은 참가한 경주차 모두 정해진 시간 동안 자유롭게 서킷을 돌아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는 타임 트라이얼 방식. 이를 기준으로 본선 레이스 그리드가 정해진다,
[엔트리 넘버 # 11]
[스메들리 포뮬러 팀 Seo]
퀄리파잉이 시작되기 전, 스메들리 피트에선 마지막 출발 점검이 한창이었다.
“오호, 지난번보다 차가 훨씬 지저분해진 거 같은데?”
포뮬러카에 올라 콕핏을 점검하던 서준하. 차에 붙은 리버리 킷을 발견한 롭이 말을 건넸다.
“준하, 이번 대회 끝나면, 더 지저분하게 만들어줘.”
레이싱 카의 보디나 레이싱 팀의 의상에 적용되는 데칼을 뜻하는 리버리(livery). 카 넘버와 대회 명칭과 함께 스폰서들이 담긴다.
파랑과 노랑의 색조화가 아름다운 포뮬러카 위로 지난 대회보다 더 늘어난 스폰 스티커들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었다.
“차량 세팅 값을 어제랑 똑같이 해뒀어.”
바닥에서 휠을 점검하던 헨리가 롭의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도 적당하고, 노면 온도도 크게 달라질 거 같지 않아. 어제랑 별 차이 없어.”
출발 전 점검은 마지막으로 차량과 드라이버의 컨디션을 점검하는 일. 최적의 차량 세팅 값을 놓고, 헨리가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데이터는 어제랑 상황이 비슷하긴 해도, 실제로 노면에 오르면 전해지는 감각이 조금 다를 수 있어. 정확한 정보는 실제 운전을 해봐야만 알 수 있는 법이니까. 들어가서 좀 타봐야 될 것 같은데?”
데이터는 데이터일뿐. 서킷의 환경은 매일 변한다. 가령, 먼지가 쌓인 코너가 있다거나, 전에 발견하지 못한 불규칙한 뱅크(기울기)가 있을 수 있다. 헨리가 데이터 분석표를 서준하에게 들이 밀었다.
“음, 근데 최근 서킷 데이터랑 크게 다르지 않네.”
데이터 분석표를 유심히 바라보는 롭. 최근 서준하가 연습주행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오늘은 유사한 환경으로 보였다.
“준하야, 그럼 어제 말했던 전략대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준하를 바라보는 롭. 그의 말에 서준하도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
퀄리파잉 타임 트라이얼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롭이 서준하에게 헬멧을 건넸다.
-엥? 준하, 너 떠는 거냐?
레이스 경험이 없는 스네트 서킷이라 긴장되는 건 사실이지만, 몸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트랙에서 레이스를 한다는 사실에 흥분한 서준하였다.
두두두두두둥.
속도광 서준하. 롭을 한 번 흘겨본 뒤 자신의 포뮬러카에 시동이 걸렸음을 가리켰다.
-이제 슬슬 나가자
레이스가 아닌 예선전이라 스메들리 팀은 곧바로 출발하지 않은 상황. 서준하의 근처로 피트를 빠져 나오는 포뮬러들이 여러 대 보였다.
‘요란하네.’
좁은 피트 라인에서부터 롤링을 시작하는 포뮬러카가 있는가 하면,
‘다들 긴장되겠지.’
본 트랙에 들어서기 전까지 천천히 차를 몰며 몸을 푸는 레이서도 보였다.
‘1차전은 반드시 폴포지션을 따내야 하니까.’
참가 선수가 많은 만큼 본선 순위권 그리드를 점하지 못한다면, 대회 포디엄에 오르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
긴장되는 예선전, 레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부우우부우우웅웅.
위이이이이이잉.
피트 레인을 빠져나오는 포뮬러들. 점점 트랙 위에 포뮬러카가 많이 보이자, 스탠드에선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출구로 나온 서준하. 롤링을 시작하며 타이어의 온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준비 됐어?
“아직.”
한 반바퀴 째 속도를 높이지 않는 서준하.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계속 롤링에 들어갔다.
부우우웅.
끼익.
끼익.
부우우웅.
퀄리파잉 극초반, 대다수의 포뮬러들이 서행하며 서킷을 탐사했다.
-더 굴렸다간 타이어에 불 나겠어. 이제 됐지?
마지막 코너까지 롤링에 집중한 서준하. 눈앞으로 스타트라인이 보였다.
“퍼팩트.”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서는 서준하의 포뮬러카를 두고, 롭이 무전을 날렸다.
-플랜 A 스타트!!!
롭의 작전 지시와 함께 서준하가 순식간에 속도를 높였다.
“서준하! 예선 극초반 가장 먼저 어택을 시작합니다!!!”
초반 적응없이 곧바로 어택에 들어간 서준하. 모든 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순간이었다.
< 지난번보다 차가 훨씬 지저분해진 거 같은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