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93화 (93/200)

< 고요하다 >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몬차의 마지막 코너 파라볼리카로 진입하는 제프. 이곳을 빠져나간 후 곧바로 피트 스탑에 들어가려는데,

‘...!!!’

자신의 뒤로 점점 더 크게 울려퍼지는 경주차의 배기음. 어느새 파란색 경주차가 따라붙고 말았다. 그리고,

쎄에에에엥.

자신보다 브레이킹 타임을 훨씬 늦게 가져간 듯 보이는 뒤차가 재빠르게 코너의 안쪽을 파고 들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

“앞으로 나와요오오오오오!!!”

시속 140km/h가 넘는 속도로 코너 안쪽을 깊숙이 돌아나가는 서준하와 제프.

“제프가 선두 자릴 지킬 수 있을지!!!”

코너의 정점에 다가선 두 대의 포뮬러카. 재가속 타이밍을 누가 더 빠르게 가져가느냐가 관건인데,

“서준하아아아!!!”

3단, 4단, 5단... 귀신같이 빠르게 시프트업하며 쭉쭉 뻗어나오는 서준하의 차량. 코너의 끝자락에서 승부가 갈리고 말았다.

“선두 탈환! 서준하 다시 1위로 올라섭니다아아아!!!”

스타트라인과 피트레인으로 들어가는 갈림길. 서준하가 먼저 스타트라인으로 들어가고,

“제프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리는군요! 뒤처진 제프가 곧바로 피트 스탑에 들어가고요.”

이번 랩을 끝으로 타이어 교체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제프. 스메들리 피트에서도 이를 예측해 레이서에게 추월 시도를 주문하지 않았지만, 서준하는 결코 경쟁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놀랍습니다, 서준하! 지금 12랩에서 무려 네 명의 선수를 제쳐버렸어요!”

“그렇죠. 근데 더 놀라운 건 서준하가 피트 스탑에 들어갔다가 나온 선수라는 사실입니다...!”

피트에 한번 들어갔다나오면 대략 30초 이상을 피트 레인에서 머물게 된다. 앞서 제친 네 명의 레이서 모두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았던 상황. 중계진은 물론 많은 참가 팀 코치진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추월을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는 거겠죠. 아, 오늘 레이스 역시 서준하 덕분에 짜릿하군요.”

총 네 번의 연속 추월. 추월 당한 차들은 마치 약속이라도한 듯 12랩에서 전부 속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다른 우승 후보들이 피트 스탑에 나와도 선두 자리를 노려보기는 굉장히 힘들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 정도 격차라면 서준하는 한 번 더 피트 스탑하면서 잠깐 쉬고 나와도 괜찮을 정도예요.”

지난 F3 대회를 기준으로 1위와 2위의 격차는 대략 2~3초 차이. 하지만 지금 서준하는 제프와 15초 이상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랩타임은 곧 실력.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이였는데,

“서준하! 여유롭게 달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로지아 시케인 진입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60도 이상으로 치솟은 콕핏의 내부 온도. 피니시까지 여덟 바퀴를 남겨둔 서준하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

“만나겠구만.”

메인그랜드스탠드에 앉은 포뮬러 B의 관계자들. 편집장 숀과 기자 존 핵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피트 레인 출구를 바라봤다.

“둘 다 타이어 교체할 일 없고, 이제부터 진짜 순위권 싸움이겠는데요.”

3위를 달리는 페트로의 빨간 차량과 맞딱드린 스메들리 팀의 강민수. 레이스 후반 또 다른 배틀이 시작됐다.

“바깥쪽이 더 빠를 거 같긴 한데...!”

1번 시케인을 빠져나온 두 차량. 페트로가 순위를 유지하며 먼저 3턴에 진입했다. 강민수가 수차례 페트로의 슬림스트림에 들어가며 추월 기회를 노리는데,

“강민수의 압박이 좋아요. 이번 랩페트로 선수가 너무 오버히트 하는데요?!”

“어린 선수들일수록 조급해지기 마련이지, 7턴 이후가 승부처겠구만.”

편집장의 말대로 브레이킹 타임을 최대한 늦추는 강민수. 7턴의 안쪽을 파고들며 이어지는 직선 주로에서 페트로와 나란히 섰다.

“달린다!”

아스카리 시케인에 도달하기까지. 미친 듯이 악셀을 밟는 두 선수. 다음 코너 진입까지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는데,

“...!!!”

“뭐야, 저 스모그는...!”

페트로의 차량에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연기. 곧이어 빨간 포뮬러가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끝났어...!”

계속해서 연기를 뿜어내며 서킷의 한쪽 구석으로 점점 속도를 줄이는 페트로. 그의 5차전 레이스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엔진 아니면, 타이어 문제처럼 보이는데, 역시 몬차군요. 이런 날씨엔 완주도 쉽지 않군요. 이렇게 되면 뒤따라오는 파비앙한테 기회가 생기겠는데요?”

“아니, 그럴 것 같진 않아.”

4위를 달리던 모터파크의 파비앙이 멈춰선 페트로를 지나갔다. 하지만 편집장의 눈엔 그의 주행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타임 로그 좀 보게. 저 선수는 세 바퀴 전부터 계속 랩타임이 떨어지고 있어. 아마 대부분 그럴거야.”

편집장의 말에 선수들의 랩타임을 살핀 존 핵. 정말이었다. 참가자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레이스 후반 심각한 수준으로 랩타임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근데 딱 한 대가...”

전체 참가자들의 타임 로그를 살피던 존.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데,

“다섯 바퀴 연속 페스티스트 랩?!”

한 바퀴 랩타임 중 가장 빠른 랩타임 기록자를 가리는 페스티스트 랩. 무려 다섯 바퀴를 연속으로 가장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 있었으니,

“아마 저 선수겠지. 콕핏에 에어컨이라도 나오나 보지? 하하.”

손을 뻗어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는 서준하를 가리키는 숀. 레이스가 막바지에 이르며 차량 문제와 더불어 정신을 잃고 리타이어까지 발생한 상황에, 서준하는 오히려 조금씩 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저러다 엔진이 터지진 않을까 무서운데요. 이거 참 F3 레이스에서 레이서 상태가 걱정되긴 처음이네요...!”

35분이 넘는 시간동안 계속해서 몰아붙인 레이스. 존은 물론 편집장 역시 레이서의 몸이 걱정스러울정도.

“저 친구 덕분에 이번 F3 갤러리들이 눈호강을 하는구만. 저것 보게.”

스메들리 팀과 한국 팬들은 물론, 몬차 서킷을 찾은 일반 관람객까지 서준하의 질주에 온통 빠진 듯한 모습. 그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주변 스탠드에선 연신 환호가 쏟아졌다.

심지어 페라리 F1 팀의 열정적인 티포시들조차 서준하를 응원할정도였다. 또 한 번 서준하가 스타트라인으로 등장하는데,

“...!!!”

“어! 저건!”

시속 250km/h로 스타트라인을 빠져나간 서준하. 순식간에 일어난 장면이었지만, 숀과 존은 단숨에 포착했다. 어디선가 봤던 그 동작을.

***

“아! 찔렀습니다!”

중계 카메라에 등장한 서준하의 온보드. 그 모습을 본 중계석이 난리가 났다.

“서준하!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습니다! 무언가 보여줄 듯한데요!!!”

“오늘 이걸 보기 위해 팬들이 몬차를 찾았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어요오오오!”

중계진의 호들갑과 함께 서킷 전역 스크린으로 서준하의 손동작이 리플레이됐다.

“와아아아아아아!!!”

“몬차 서킷의 모든 시선이 서준하에게로 향합니다!”

레이스 종료까지 두 바퀴 남은 상황. 2위 제프와 20초 이상 차이를 벌린 서준하가 자신만의 의식 행위를 치루며 새로운 주행을 시작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우측으로 이동하는 백마커들! 서준하의 앞으로 참가자들이 비켜섭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던 걸까, 청색기가 휘날리기도 전에 재빠르게 진로를 변경하는 백마커들. 마치 서준하 개인 주행 쇼를 위한 세팅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서준하의 앞으로 1번 레티펠로 시케인이 나타났다.

끼이이이이익.

정확한 브레이킹 타이밍, 부드러운 릴리즈, 깔끔한 재가속. 100점 만점에 1000점을 줄 수밖에 없는 드라이빙 테크닉이었다. 이어지는 중고속 코너에서도 강한 횡G들을 견뎌내며 질주를 시작하는데,

“후... 후...”

서준하의 몸은 불덩이와도 같았지만, 심장은 차가웠다. 거센 숨이 몰아 닥쳤지만, 시야는 또렷했다. 시트에 파묻힐 듯한 원심력을 이겨내며 어제 예선과 같은 정신 상태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생각, 의지, 행동. 이 세 가지가 레이싱카와 하나가 된다.’

최고속에 이르자, 공중에 붕뜬 듯한 느낌을 받으며 경주차를 조작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레이서와 경주차가 혼연일체된 상황.

‘커브길에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직선로에선 폭포수처럼 세차게.’

굉장히 단순해진 차량 조작. 마음 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밸런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레이싱 중인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며 파이널 랩을 시작하는 서준하. 그의 기록에 모든 갤러리가 환호했지만, 서준하에겐 그 모습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고요하다.’

이미 F1 무대를 경험해봤지만, 이번 생 역시 배울 게 넘쳐났다. 레전드 레이서들이 도달했다고 하는 무의식의 질주. 최고속을 달리는 서준하의 주위로 서킷과 차량 앞바퀴를 제외한 모든 것이 새카만 어둠으로 변했다.

띠링.

“믿겨지지 않습니다아아!!!”

“이게 무슨 경우인가요?!?!”

파이널 랩을 달리는 서준하를 두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는 중계진들.

“랩 레코드(Lap Record)가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를 넘어선 경우가 도대체 어느 레이스에서 나온단 말입니까아아아!!!”

레이스 상황에서 나온 역대 최고 기록을 랩 레코드, 퀄리파잉 상황에서 나온 역대 최고 기록을 트랙 레코드라고 한다.

어느 레이스를 막론하고 레이스 상황에서 벌어진 기록은 백마커나 경쟁자 덕분에 랩타임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전 21랩에서 서준하가 어제 예선에서 본인이 세운 역대 최고 기록을 넘어서고 말았다.

“현재 서킷의 온도는 32도! 이러면 노면은 55도, 콕핏은 65도가 넘는단 소리죠! 말 그대로 레이서에겐 극한의 환경인데...!!!”

“F1의 톱 드라이버들도 레이스 직후 쓰러지는 게 8월의 몬차 아닙니까아아아... 억!”

띠링.

지난 시즌부터 매일 아침 해온 체력 훈련은 오늘 같은 상황을 견뎌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완주만 성공해도 박수가 나오는 상황에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뽑아낸 서준하. 이제 파이널 랩의 끝이 다가오는데,

“서준하!!! 서준하!!! 서준하!!!”

“25초! 26초! 27!초”

몬차는 이미 서준하의 이름으로 가득한 상태. 오늘 레이스의 주인공이 마지막 파라볼리카에 들어갔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불이 붙은 듯 시뻘겋게 달아오른 브레이크 디스크. 차량과 레이서가 가진 한계는 넘어선지 오래다. 모든 이의 시선이 홈스트레치로 향하는데,

“피니시이이이이!!!”

체커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측정된 파이널 랩의 기록.

“OMG!!!”

쏟아지는 환호와 함께 서킷 펜스로 달려가는 갤러리들. 중계진이 랩타임을 확인했다.

“다시 한 번 랩 레코드와 트랙 레코드를 갈아치웁니다아아아아!!!”

일반적으로 F3 경주차는 F1보다 한 바퀴에 25초 가까이 느리다. F1 레이서들의 몬차 트랙 레코드는 1분 20초대인데,

“1분 35초 375!!!”

“서준하의 질주가 F1 그랑프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아아아!!!”

F1 기록과 15초 차이라는 실로 엄청난 기록. 5연속 우승은 물론, F3 시작 이후 50년 동안의 무대를 통틀어 고정불변할 역사를 쓴 순간이었다.

< 고요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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