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앞으로 두 선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
처음 차량이 멈춘 순간, 해밀턴과 서준하의 대처는 완전히 달랐다.
“아! 서준하! 살려냈어요!!!”
시동이 꺼진 걸 확인한 해밀턴은 곧바로 차량에서 내려 사고 지점 주변을 벗어났지만, 서준하는 마샬들을 대동해 경주차를 다시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서준하! 페라리카가 COTA를 다시 질주합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일단 다시 달리는 데 성공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는 서준하.
띠링.
플라잉 랩을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평균 랩타임보다 30초 이상 느렸다.
홈스트레이트 1턴 오르막에 오르는 잠깐 사이,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남은 시간을 확인하던 그때,
파바바바박.
치지지직.
“...!!!”
순간 프론트 쪽 무게 중심이 휘청이는 느낌과 함께 불꽃들이 눈앞으로 튀어 올랐다.
-제기랄! 프론트 윙이 주저앉았어!!
충돌 이후 흔들거리던 프론트 윙이 1턴 헤어핀을 만나며 무너져 내렸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꿀 때마다 트랙과 마찰하며 불꽃을 냈다.
-XX! 마지막까지 거의 완벽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불길한 예감을 직감한 롭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내쉬는 롭을 향해 결국 서준하가 한마디를 던졌다.
“달려있는 게 어디냐.”
-...?
만약 충돌로 윙이 완전히 부서졌다면 피트로 결코 돌아가지 못하고 멈췄을 거다.
아직 희망은 있다.
“교체하고 다시 나온다. 피트 스탑 준비해.”
얼음처럼 차가운 서준하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같은 침착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될까?!
이제 Q3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3분 29초가량. 한 바퀴를 도는데 1분 35초가 평균인 COTA에서 이 상태로 인 랩을 도는 데 2분은 걸린다.
뒤이어 교체 시간과 다시 아웃 랩을 도는 시간을 포함한다면, 교체 후 어택을 다시 시작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딴 건 교체 끝나고 확인해. 일단 무조건 바꾼다.”
“c, copy...!”
여기서 멈춘다면, 추월이 쉽지 않은 COTA 레이스에서 9번째 그리드로 시작해야 한다. 이는 곧 우승은 물론, 순위권도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어떻게든 경주차를 살려내 다시 기록을 만들어 봐야 한다.
“서준하의 프론트 윙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렇게 달리다 급격하게 밸런스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일부러 느리게 달리고 있긴 한데, 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될지... 아마도 교체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Q3 초반부터 이미 두 바퀴를 달렸던 서준하의 US 타이어. 설사 교체에 성공하고 다시 한번 어택을 노려볼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레이스 당일 타이어의 컨디션은 엉망일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스튜어드들의 판정을 기다려 봐야겠군요.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한 장면이긴 한데요.”
중계화면으로 서준하와 해밀턴의 충돌 장면이 리플레이 됐다.
“그렇습니다. 결국엔 심판진의 선택이 이번 라운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군요.”
만약 서준하의 과실로 판정된다면, 페널티를 받게 될 상황. 설령 지금 좋은 기록을 내더라도, 순위를 뒤바꿀 변수는 또 있었다.
“메르세데스팀의 코칭 스태프가 레이싱 컨트롤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두 선수의 충돌로 팀 분위기가 많이 과열된 것 같군요!”
이어서 운영진의 오토바이를 타고 서킷을 빠져나가는 해밀턴의 모습과 아직 서킷을 달리고 있는 서준하의 모습이 투샷으로 등장했다.
“해밀턴이 서준하를 바라보는군요. 과연 앞으로 두 선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15턴 근처 서준하의 차량으로 향한 해밀턴의 시선. 그 모습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예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그리고,
-들어와!! 아직 2분 안 넘었어!!
예상 소요 시간보다 일찍 인 랩을 마친 서준하가 피트 레인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Q3 Rank]
[1. 페텔: 1:33.347]
[2. 보타스: 1:33.464]
[3. 막누스: 1:33.599]
......
페텔의 잠정 폴기록에도 페라리 팀의 분위기는 밝지 못했다.
긴장된 순간, 이제 피트 박스로 서준하의 경주차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
“...!!!”
박스에 멈춰선 레이싱카의 모습에 피트 크루 대다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프론트 윙은 박살 나 있었고, 모래 먼지로 뒤덮인 것은 물론, 우측 윙미러는 온데간데없었다.
‘이 너덜거리는 경주차를 끌고... 용케 피트까지 왔구나.’
프론트 윙만 교체하면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몰골.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드라이버의 모습을 롤리팝맨이 포착했다.
“프론트 피니시!”
“리어 피니시!”
“잭 내려!!”
미캐닉 리더의 사인에 경주차의 타이어가 다시 바닥에 붙었다. 그와 동시에 롤리팝맨이 든 신호등에 초록불 사인이 떨어지고,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몇 초야?!”
팀원들의 표정을 살피며 혹여나 실수가 있었는지 체크하는 미캐닉 리더.
“4.2초! 아슬아슬할 것 같은데요...”
교체 시간은 4.2초. 타이어 교체보다 2배 더 오래 걸렸지만, 돌발 교체치고는 기록이 나쁘지 않았다.
[17R. Qualifying 3]
[00 : 01 분: 38 초]
...
남은 시간을 확인하자 서준하의 등골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피트 레인을 빠져나가고, 다시 아웃 랩을 마치는 데까지 1분 38초가 남은 상황.
지켜보는 페라리 팀도 피트 레인의 제한 속도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남은 시간과 현재 경주차의 상태 그리고 레이스 타이어 전략으로 봤을 때, 지금 서준하의 어택은 도박이었다.
[17R. Qualifying 3]
[00 : 01 분: 35 초]
하지만 페라리 팀 어느 누구도 마지막 트라이를 말리지 않았다.
시즌 초중반이었다면, 타이어를 아끼고 전략적으로 레이스에 접근했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번 라운드 서준하는 반드시 우승해야 했으니까.
[...EXIT]
모든 불안을 짊어지고 다시 서킷으로 나온 페라리카가 팀으로부터 남은 시간을 전해 들었다.
-피니시까지 1분 33초!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정 폴기록으로 봤을 때, 남은 시간 안에 들어가는 건 불투명했다.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페텔의 기록을 넘는 것도 보장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타이어 아끼지 말고 써버려!!! 우린 무조건 들어간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롭의 오더와 함께 페라리카의 질주가 다시 시작됐다.
***
“Q3 또 한 번의 아웃 랩을 달리는 서준하! 이제 마지막 섹터에 진입합니다!”
Q3의 최종 어택은 공식 타임 종료 직전에만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면 가능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2.4초! 과연 서준하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오늘 Q3만 네 바퀴째, 아웃 랩을 마치 플라잉 랩처럼 달리는 페라리카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이제 마지막 코너! 남은 시간은 5.1초!!!”
긴장되는 순간.
“지금 이 돌파가 굉장히 중요해 보이는데요...!”
파이널 5초에 전광판에 표시된 타임 체커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훼에에에에에엥.
띠링.
스타트 라인을 통과함과 동시에 Q3가 끝나버렸다. 결과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중계진이 우왕좌왕하는데,
[Qualifying Finish]
[00 : 00 분 : 00초]
“아...!!!”
무언가를 발견한 캐스터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Ferrari No. 50 SEO]
[00 : 05 : 492...]
전광판에 표시된 서준하의 타임 로거. 티포시와 한국팬들의 함성이 COTA를 가득 메웠다.
“종료를 0.01초 남기고 스타트라인을 통과한 서준하! 벼랑 끝에서 천금 같은 기회를 얻어냅니다!!”
사고 이후 어느 한 턴에서 아주 작은 오차 하나에 잃었을 뻔했던 0.01초.
또 한 번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자, COTA의 분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홈스트레이트를 빠져나온 서준하. 절정에 달한 그립감을 맛보며, 곧바로 COTA의 베스트 라인을 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제기랄...!’
좌측 시야로 아직 피트로 복귀하지 않은 차들이 보였다. 플라잉 랩을 달리는 차들은 상관없었지만, 어택을 마치고 피트로 복귀하는 차들이 몇 대 있었다.
베스트 라인은 속도가 잘 나오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다.
블라인드 코너가 대다수인 COTA에서 자칫하면 인 랩을 도는 차량들과 충돌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방법이 없어. 트래픽이 없길 바라는 수밖에...!’
고민할 시간은 없다.
곧바로 1턴 헤어핀의 안쪽 뾰족한 모서리를 스치듯 돌아들어 가는 페라리카. 순위권 도약을 위해 과감히 베스트 라인을 타기 시작했다.
“최후의 플라잉 랩! 서준하 섹터 2까지 완벽하군요!!!”
운 좋게도 서킷의 절반 넘는 코스에서 트래픽은 없었다.
과감한 코스 돌파에도 드라이버의 실수는 없었는데,
“12턴 통과 랩타임 1분 3초! 섹터 3만 무사히 마쳐준다면...!”
섹터 2까지의 기록만 놓고 봤을 때, 순위권 기록자들과 같은 1분 33초대 기록은 충분히 가능하다.
[Sector 3 lap time]
[베텔] - [서준하]
[1:24:213...] - [-0.142]
“아! 16턴을 통과하는 서준하!! 처음으로 페텔보다 빨리 달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대와 긴장감으로 가득한 COTA.
그렇게 마지막 턴을 빠져나온 서준하가 스타트 라인 쪽으로 레이싱 카의 헤드를 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띠링.
“1분 33초 298!”
12분 동안 혼란으로 가득했던 서준하의 최종 퀄리파잉.
“이번 라운드 파이널 어태커가 폴기록을 뒤집습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경이적인 랩타임이 탄생했다.
-와!!!
함께 한 레이스 엔지니어에게도 오래 남을 듯한 인생 최고의 랩. 메가 에픽 랩의 탄생에 롭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서준하의 이번 시즌 월드 챔피언 달성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전문가들로부터 쏟아지는 찬사와 파이널 랩의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갤러리들의 환호. 지금 COTA는 엄청난 감동에 뒤덮였다.
“COTA에선 폴투윈 확률이 70퍼센트가 넘지 않겠습니까?! 서준하가 새로운 역사에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하지만 이 모든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서준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검차대로 복귀한 서준하가 곧바로 경주차에서 내렸다.
끼익.
관제 타워 내부의 선수 대기 장소로 들어서는데,
‘...’
자신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는 해밀턴. 그의 어두운 표정이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 과연 앞으로 두 선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