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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7)화 (7/90)

<7화>

그래서 폴리우스는 만만한 멜라니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멜라니. 내가 더 화가 나기 전에 잠잠히 이리로……!”

“아앗!”

폴리우스가 더 힘을 주자 멜라니의 가녀린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렇지 않아도 무도회에 참석하겠다고 준비를 하느라 피곤한 몸에 힘이 없었던 터라 쉽게 끌려간 것이다.

멜라니의 위태로운 모습에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그러나 옆에 있던 다미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동시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목을 쥔 다미안의 힘이 더 거세어져서, 폴리우스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힘을 써서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는데, 다미안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끔한 모습이었다.

마법사 주제에 손아귀 힘은 왜 이리 센지!

“레이디를 힘으로 겁박하다니, 언제부터 이렇게 쓰레기가 됐지. 폴리우스?”

다미안은 자신의 뒤로 멜라니를 숨겼다. 다미안이 덩치가 커서 멜라니는 완벽하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폴리우스를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지금 누구더러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멜라니를 지키는 사람은 약혼자인 나인데! 남의 여자에게 같잖은 수작 부리지 마!”

“클로틸드 영애는 분명 너와 헤어졌다고 말했어. 지금 너 때문에 크게 넘어질 뻔했는데도 잘도 그런 말을 내뱉는군.”

“누구 마음대로!”

폴리우스는 분명 오늘 멜라니가 제 앞에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오늘의 무도회는 자신의 모습만 엉망진창이었다.

“폴리우스 영식. 이제 그만해요.”

“멜라니!”

“다른 여자와 침대에 있는 것도, 다른 여자의 무릎에 누워 있는 것도, 내 생일 파티 날에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도…… 나는 속이 좁아서 이해하지 못하고 분명 앞으로도 폴리우스 영식을 힘들게 할 거예요.”

그리고 멜라니의 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요? 다른 여자와…… 침대…… 뭐라고요?”

“그런 잘못을 해 놓고도 지금 클로틸드 영애를 붙잡는 겁니까?”

아무리 헤어졌다고 해도 멜라니가 전 약혼자의 이복형과 나타난 것은 질타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물론 멜라니는 남들의 평가가 어쨌건 흔들리지 않을 클로틸드의 하나뿐인 후계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상쇄시킬 만한 가십을 또 한 번 꺼낸다.

한창 논란의 중심에 있을 때 최대한 처연한 얼굴로 입을 연 건 멜라니가 계획한 대로였다.

“그건 다 사정이 있……!”

“그러니까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요.”

멜라니는 일부러 폴리우스에게 잡혀 붉으락푸르락한 손을 가슴에 얹었다.

힘없이 가련하게 떨리는 목소리, 폴리우스가 위협해서인지 아까보다 혈색이 안 좋아진 얼굴.

그동안 가문의 힘을 믿고 날뛴다는 평판이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편을 들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가녀린 영애에게 멍이 들 때까지 힘을 쓸 수가 있지? 더군다나 클로틸드 영애는 몸도 안 좋은데!’

‘말을 들어 보니까 폴리우스 영식이 먼저 바람을 피운 거잖아?’

‘그럼 그간 클로틸드 영애가 다른 영애들에게 패악을 부렸던 것도 폴리우스 영식이 전적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폴리우스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 그건 다 오해……”

폴리우스는 당황스러움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평소 자신이 말실수를 하면 도와주던 멜라니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별을 고할 때와는 전혀 딴판인 연약한 모습이었다.

‘이러면 진짜 내가 나쁜 놈 같잖아……!’

공교롭게도 무도회장의 모두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소 그와 친한 사람들이 사교계에 많은 것을 생각하면 멜라니의 예상보다 강력한 한 방이었다.

* * *

‘한동안 가십거리가 없던 사교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겠는걸.’

목표는 달성했다.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아직 다미안 마탑주랑 무슨 사이도 아닌데 밑천이 털리기 전에 빨리 도망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제가 피곤해서요. 이만 쉬러 가고 싶은데……”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의외로 다미안 마탑주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하긴 현명한 처사였다. 나 없이 혼자 남아 있어 봤자 저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에게 시달릴 테니.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데?’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피곤한 척하는 게 아니라 사실 오늘도 좀 무리한 게 맞긴 했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더는 서 있는 게 무리였거든.

사람들에게 가련한 영애로 보이려고 애써 연기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이지.

‘슬슬 진통제로도 버티기 힘든 시간이 다 되어 가.’

멍든 자국을 다시 강조해 주며 퇴장을 하고 있노라니 몸이 힘든 것과는 별개로 속으로 뿌듯함이 차올랐다.

무려 몸이 좋지 않은데도 폴리우스에게서 돌아서고 있지 않은가!

평소라면 그에게 축복을 걸어 달라며 옷소매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릴 몸 상태인데, 내가 생각해도 오늘은 잘 참았다.

‘오늘, 생각보다 잘 풀렸어.’

무도회장을 나선 뒤 나는 부축해 주는 다미안 마탑주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저를 부축해 주겠다고 나오셔서 다행……”

“그 자식이 영애를 이렇게 겁박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다미안 마탑주의 얼굴은 대단히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부러 눈치껏 빠진 게 아닌가?’

나는 내 손목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으음, 피부가 약해서 그런지 꽤 요란스럽긴 하다.

그렇게 놀란 것도 아닌데 몸에 힘 하나 없이 빌빌대는 꼴이 꼭 폴리우스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제가 옆에 있었음에도 이런 일이 생겼다니 한심하군요.”

어라, 왜 이렇게 자책을? 정작 당사자인 나보다 신경을 쓰다니 의아했다.

“갑자기 끌고 갈 줄 누가 알았나요. 결과적으로는 더 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주었으니 괜찮죠.”

“…….”

그러나 끝내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고지식한 성격이네.’

저러다 미남의 얼굴에 주름이라도 가면 국가적인 손실인데 말이야.

나는 가쁜 숨을 애써 갈무리하며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 진통제를 더 먹으면 허용치 이상이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아직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

“오늘 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이제는 저희가 좀 더 이야기해 볼 시간이 아닐까요?”

착하지 않은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지.

내 청을 거부하기 어려울 때 치밀하게 파고들어 주겠어.

“……저와 더 만나고 싶으신 겁니까?”

“르웬느의 날에 시간 있으세요? 한번 봐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나는 눈을 휘며 웃었다.

“제가 이번에 마력석 광산을 매입했거든요.”

“마력석 광산이라고요?”

“수도 근교에 있어서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돼요.”

다미안은 그 말에 조금 미심쩍은 눈빛이 되었다.

마력석 광산은 귀하디귀한 것인데, 여태까지 먼 곳에만 있어서 수도로 운송이 쉽지 않았다. 그러니 수도 근교에 마력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한순간에 믿을 수 있을 리가.

“좋습니다.”

그러나 눈을 잠깐 떴다 감는 사이에 미심쩍은 빛이 사라져 있었다.

꼬치꼬치 캐물을 법도 한데 바로 긍정하는 대답이 나오다니 의외였다. 아무리 내가 아픈 모습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더 묻지 않으시네요.”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도 할 말 없으니, 좀 더 설득할 만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다음에 만나는 게 약혼을 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네에, 그럼요.”

나도 별다른 말 없이 눈을 휘며 웃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오래 보게 될걸요?’

* * *

다음 날, 나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을 꽁꽁 둘러매고 있었다.

‘열 시간은 족히 잤는데도 피곤이 안 풀려……’

오랜만에 무도회이자, 폴리우스 앞에 선답시고 공들여 준비했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에는 원래도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오늘은 유독 피곤했다.

‘역시 간단한 사교 모임하고 무도회는 다르네……’

하지만 수고한 보람은 있었다.

“아가씨, 스칼렛 유포나 영애께 편지가 왔습니다.”

건국제에 참석했던 소꿉친구 스칼렛이 내가 무도회를 떠난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편지를 써 줬는데, 나는 읽으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해. 나는 네가 파혼한다느니 마느니 해서 걱정했었거든. 폴리우스는 파트너로 데리고 올 여자들이 잔뜩 있으니 얼마나 기세등등할까 싶어서!]

스칼렛은 폴리우스가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그다지 착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예전에 내게 폴리우스가 그다지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고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말이 귀에 안 들어왔었지.

[내가 폴리우스에게 가서 은근슬쩍 네가 아까 한 말이 진짜냐고 물었더니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한두 마디씩 던지더라고. 그랬더니 폴리우스가 뭐 영애를 위로해 주다가 침대로 들어갔느니 어쨌다느니 헛소리를 하던데 누굴 바보로 아나?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비호감인 걸 모르고! 이제 사람들도 폴리우스의 바람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 거야.]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폴리우스를 두고 여태까지의 모습은 가식이었나 떠들고 있으니 어지간히 신난 모양이었다.

오늘 폴리우스를 보며 혀를 찬 사람들 중에서는 저번 사교 모임에서 폴리우스를 보석 같다고 칭한 텔리다 부인도 있었다는 말을 신나서 전하는 걸 보면.

[게다가 네가 다미안 마탑주를 파트너로 데려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멜라니 네가 제대로 한 방 먹인 거야!]

강력한 한 방이긴 하겠지.

‘이 말을 들으니 내가 데려온 상대가 이복형이라는 게 더 열 받을지, 내가 저보다 잘난 남자를 데려온 게 열 받을지 궁금한데?’

폴리우스와 친한 영식들도 다들 편을 들지 않고 외면했다는 걸 보면 꽤나 일이 잘 풀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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