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9)화 (9/90)

<9화>

수도의 카페 거리에 도착하자, 다미안 마탑주는 조금 질린 기색을 드러냈다.

“……이곳은 사람이 상당히 많군요.”

“아무래도 유명한 곳이라 그런가 봐요!”

특히 사교계에 출입하는 귀족들에게 말이지.

나와 다미안 마탑주의 사이가 저번에 무도회에서 만난 걸로 그치지 않는다는 걸 과시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폴리우스와 헤어진 게 분명하다고 인식되는 점도 좋고.

‘소문이 나면 당장 폴리우스와 파혼하거나 다미안과 약혼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버틸 만할 거야.’

이곳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흡족했다. 나는 느긋하게 찻잔에 든 물을 마셨다.

이곳은 차와 디저트가 유명한 곳이었지만, 난 먹을 수 없었다. 마차를 타고 움직이느라 힘들어서 도착하기 직전 진통제를 조금 많이 먹었다.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지금은 순수한 물만 마셔야 했다.

“마탑과 거래하시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건 다미안 마탑주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대지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이 있어 채굴이 광부가 채굴하는 것보다 빠를 겁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채굴하는 양까지 달라지죠.”

나는 가문에 있던 금광을 채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걸 떠올렸다.

“마탑에서 제공하는 인건비를 감안하면 결코 영애가 손해 보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수익 분배 비율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 다미안 마탑주의 말처럼 마법사를 이용하면 확실히 빨리 많은 양을 채굴할 수 있을 것이다. 채굴을 빨리하면 대출을 빨리 갚을 수 있을 거고.

채굴 후 판매에 그친다면 이 계약 비율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채굴하는 걸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전 마탑주님과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싶어서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좀 달라질 것 같은데요.”

마력석을 파는 건, 어쩌면 마탑보다 더 좋은 거래처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력석 채굴 역시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가성비가 좋은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마법 아티팩트 사업만은 마탑과 하는 편이 좋았다.

“마탑은 제국에 중요한 기관이지만 전처럼 마수 토벌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에 비하면 예전보다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나요?”

대담한 제안을 하되, 상대가 화를 내지 않게끔 어조를 가다듬었다. 이 중요한 순간을 한순간의 도발로 잃을 수는 없으니까.

“제가 마탑의 영향력을 다시 키울 수 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그러니 당신을 뛰쳐나오게 만든 가문에게 통한의 한 방을 날려 보자고. 정부의 아들인 폴리우스에게 기회를 준답시고 당신을 붙잡지 못한 걸 아버지가 후회하도록.

“……영애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들어 보고 싶습니다.”

과연 유능한 사람은 다르다. 다미안 마탑주는 금방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마력석 중 상등품 일부는 마탑에 팔고 싶어요. 그리고 마력석을 세공하면서 남는 자투리 마력석을 쓰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어머니가 남긴 상단을 키우기 위해 마탑과 마력석을 이용한 사업까지 하려고 한다.

“영상석 사업이에요. 저는 영상석을 시작으로 앞으로 마법 아티팩트 산업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들지 않는다.

소설에서 폴리우스가 승승장구하는 영상석 사업, 사실 아이디어는 내가 처음 냈다.

“저는 몸이 좋지 않아서 집 밖을 잘 못 나가니까, 영상석으로 연극을 보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을까요?”

그리고 영상석 사업에 들어가는 마력석 광산도 내 명의로 대출받아서 샀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순리대로.

폴리우스가 아닌, 마력석 광산과 아이디어의 주인인 내가 가져가겠다는 거다.

‘이번 생에서도 폴리우스에게 끌려다니다가 후레자식이 될 수는 없지.’

그리하여 내가 부모님께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 만약 일이 꼬여도 수습이 쉬울 만큼 큰돈을 확보하기 위해.

“영상석이라면 마력석에 영상을 담아 커다란 행사 같은 곳에 띄우는 것 말씀이십니까? 그건 자투리 마력석으로는 무리입니다.”

다미안의 말대로 기존 영상석은 높으신 분들이 직접 연설할 수 없을 때 대신 신전에서 포교용으로 쓰는 정도다.

“제가 말하는 건 영상석을 조그맣게 만들어 거기에 연극을 담을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연극?”

나는 전생에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하는 것은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큰 형태다.

‘음, 대충 태블릿 정도 크기면 되려나.’

그 정도 크기의 영상을 허공에 쏘는 형태라면 가공하고 남는 마력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을 가서 보지 왜 영상석을……”

“그 정도 크기면 집에서 누워서 볼 수 있잖아요.”

그 말을 들은 다미안의 눈빛이 달라졌지만, 석연치 않음이 묻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더 인기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차별화를 둬야죠. 기존의 영상석처럼 한 자리에 고정시켜서 촬영하는 거로는 안 돼요.”

“그렇다면?”

“다양한 시점으로 보여 주는 거죠. 저는 그걸 ‘영화’라고 부를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자세히 말할 수 없어요.”

“왜죠?”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업 비밀을 외부자한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다미안 마탑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

나는 적절한 밀당-입씨름 혹은 말싸움- 끝에 마침내 계약서에 다미안 마탑주의 도장을 받아 냈다.

“잘 생각하신 거예요. 저 역시 클로틸드 상단이 있으니 유통 면에서 이점이 있지요. 이전보다 유통이 훨씬 수월해져서 판매량도 늘어날 거예요.”

사실 여태까지 말만 상단주고 폴리우스에게 투자만 열심히 해 줬지만. 으흠, 이제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전부 떠맡기는 일은 없어야겠지.

나는 꽤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계약을 끝낸 뒤, 다미안 마탑주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갔다.

짐작이지만, 처음에 다미안 마탑주가 생각했던 내 배분율보다는 높았을 거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분명 이득이 되는 계약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영상석에 대한 비전과 마력석이, 다미안 마탑주에게는 채굴 기술과 마법 아티팩트 기술이 있으니까.

“……생소한 영상석이라면 가장 중요한 건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일 것 같습니다.”

“네, 그것에 관해서는 제가 생각해 둔 바가 있는데요. 들어 보실래요?”

보통 마법사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하긴 벨데르트 백작가에서 나와 이 사람도 이런저런 고생을 했겠지?’

내가 말하는 의도를 바로 알아차려서 설명을 길게 할 생각이었던 나는 입이 편해서 좋았다.

“마케팅에 힘을 줄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니까 진입장벽을 낮춰야겠죠.”

그렇게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고 있었을까. 한창 물이 올라 있는데, 다미안 마탑주의 후드에서 빛이 깜빡거렸다.

“마탑주님, 잠시……”

통신 마법으로 온 연락을 듣던 다미안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죄송하지만 영애,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다미안 마탑주가 자리를 비운 건 정말로 아주 잠깐이었는데 말이지.

“저기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눈에 띄는 건 또 무슨 일일까.

나는 눈앞의 영애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음, 클라라 마르티스 영애던가요? 오랜만이네요.”

얼핏 봤지만 기억난다. 내가 며칠 전 건국제에서 다미안과 입장했을 때 폴리우스의 옆에 있던 영애다.

“지금 마음 편하게 인사가 나와요?”

마르티스 영애는 한껏 흥분한 채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예의를 지켜 줄 필요 없지.

“이런 걸 보통 예의라고 하지요. 영애는 못 배운 모양이지만.”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내 행동에 마르티스 영애는 더 열이 받았는지 한 번 더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둘러댈 생각 말아요. 다 봤으니까. 영애는 어떻게 폴리우스 영식의 이복형과 만날 수가 있나요!”

“이렇게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여상하게 덧붙였다.

마르티스 영애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마르티스 영애. 남의 일에 흥분해서 갑자기 달려드는 게 평범한 건 아니잖아요.”

“말을 참 곱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나를 쏘아보던 마르티스 영애는 불현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의 일…… 그래요. 당신이 보기에는 그럴 수 있겠죠.”

한참을 씨근덕거리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몇 초 전까지 화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폴리우스 님을 사랑해요.”

“그걸 왜 저한테 고백하시나요. 당사자한테 가서 말할 일이지.”

마르티스 영애가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의 사랑 고백이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내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는 걸 눈치챈 마르티스 영애는 이를 악물었다.

“폴리우스 님이 왜 영애를 만났는지 모르겠어요. 마탑주와 만나는 걸 알면 폴리우스 님은 분명 상처받을 것……”

“상처받으면 오히려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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