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그냥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몇 년 안에 죽을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떠들어 댔다.
맨 처음 그 사실을 들었던 소년 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볍게 흘릴 가십 중 하나라고 여겼으니까.
그래서 실제로 당차 보이기만 하던 그녀가 몸에 힘을 잃고 무너지는 모습이 충격이었던 걸까?
‘사실 점심시간에도 아파서 누워 있는 거 아는데.’
멜라니는 대표인 자신이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눈치가 보일 거라며 점심시간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다미안도 처음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보다 배려심이 깊구나 하는 정도.
분명, 일주일 전쯤만 해도 그랬는데……
“클로틸드 대표님은 안에 계신 것 아닌가?”
“네. 분명 방에 들어가신 뒤 나오지 않으셨는데……”
몇 번이고 노크했지만, 만나기로 한 멜라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어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는데.
혹시 쓰러지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했던 멜라니는 책상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니, 이걸 잠들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분명 눈을 감고 누워 있는데 고른 숨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잠든 멜라니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팔 저림으로는 볼 수 없는 확연한 근육 경련이었다.
다미안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무리해도 되는 건가?’
멜라니를 깨워야 하나 고민하던 다미안은 무심코 떨리는 손끝을 살며시 잡았다.
떨림은 잠시 멈췄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겠지. 나에게 말릴 권리도 없고.’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식당 예산을 추가하는 것 정도다.
예전보다 높은 품질의 재료를 풍부하게 쓰기 때문인지 입이 짧은 멜라니도 비교적 먹는 양이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먹는 진통제의 양이 느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자주 복용함에 따라 강해지는 진통제의 내성.
병 자체로도 힘들 텐데 약의 부작용까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여린 몸.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공녀라고.’
다미안은 전에도 멜라니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봤었다.
“진통제의 부작용이 심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고 그때 그녀가 한 말은.
“저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바스러지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
하지만 선명하게 마주치는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남은 시간이 소중하니만큼, 남들보다 몇 배는 충실하고 밀도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미안은 다시금 ‘검은 달 극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반짝거리는 눈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넘치는 생명력, 흘러넘치는 활기.
이 사람들을 꿈꾸게 해 준 건 바로 멜라니다.
그러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겠지.’
다미안도 멜라니의 꿈을 도와주고 싶었다.
* * *
검은 달은 여러 입소문을 타고 사용자가 점점 늘어났다.
그만큼 여러 곳에서 검은 달에 대해 떠드는 빈도도 높아졌다.
덕분에 일은 예전에 비해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제 지인에게 연극용이 아니라 폐기해 두었던 기가 막힌 시나리오가 있다고 했는데……”
나에게 여러 극본을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주어졌다.
“와, 내용은 좋은데 이런 역할을 할 배우가 있을지 모르겠네. 음, 이건 연출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연극으로 본 것을 영상물 시리즈로 내고 싶어서 연락했던 곳에 승낙도 받았다.
높아진 검은 달의 명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뭐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가씨…… 공작님께서 지금 급히 서재로 오라고 하십니다.”
검은 달이 커짐에 따라……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게 결국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 모양이었다.
“공작님의 표정이 심각하신 것 같은데, 조금 조심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폴리우스의 행동에 신경질을 내는 게 줄어들어서 그런지, 걱정하는 말을 다 듣는다.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럼 나는 서재에 가 볼게.”
“아가씨……”
나는 잔뜩 걱정하는 얼굴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휴우.”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짐짓 덤덤한 척했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빚을 갚고 나서 잘 준비해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서재의 문을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
아버지는 나를 보고도 차가운 표정 그대로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내가 들어오는 걸 봤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사업 자금이 어디서 났나 했더니, 상단을 담보로 고리대금 대출받았다는 게 사실이냐?”
다소 차가운 느낌의 이목구비여도 아버지는 나를 보면 항상 표정이 풀어졌다.
언제 어느 때건 나를 보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의 온기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냉담한 얼굴이었다.
“네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잘못되면 상단을 뺏길 수도 있는 일인 걸 몰랐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멜라니 네가! 이본느가 남긴 상단을 건드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가 나에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상단을 담보로 대출을 받다니.’
나는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평소와는 대비되는 서슬 퍼런 음성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분노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상단을 잘 일구어 보겠다고 아버지에게 상단주 자리를 달라고 한 게 나잖아.’
물론 폴리우스가 대출이 급하다고 닦달하고, 그가 사게끔 유도하긴 했다.
그렇지만 결국 광산을 사기로 결정한 건 나다. 누구 핑계를 댄단 말인가.
‘아버지가 상처를 받으시는 것도 당연해.’
마력석 광산에서 채굴한 마력석을 모두 내다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금리가 높지 않으니, 빚을 지금 당장 갚기보다는 검은 달의 사업에 좀 더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현재, 고리대금업의 대출은 모두 안전하고 낮은 금리의 은행 대출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그저 뭣 모르는 귀족 영애 취급받았지만, 지금은 검은 달의 대표로 어엿한 사업가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어머니의 유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 세계가 소설 속 안인 것을 깨닫기 전이라고 하지만…… 진짜 미친 짓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상단주님께서 제 인생을 바꾸셨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탄복해 마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상단주라서, 공작 부인이라서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눈부신 사람.
조그마한 상단을 제국에서 손꼽히는 상단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모든 걸 키운 건 ‘사람’이라며, 남을 돕는 일에도 힘쓰셨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떻지?’
정말 상단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맞을까.
단순히 딸이라는 이유로, 상단을 물려받고는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쾅!
아버지가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너에게 정말 실망이구나.”
실망,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거냐? 너에게 상단주 자리는 다시 가져와야겠다. 내가 너를 너무 믿었다.”
사실 이것도 온건한 반응이다.
믿음을 이렇게 돌려드리다니 죄송할 따름이어서, 나는 반발하지 않았다.
아니, 차마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이냐. 죄송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말을 해 보거라.”
하지만 내가 몸이 아프다는 이유 때문일까. 아버지는 일단 참고 있었다.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면 어쩌지. 그냥 내가 미쳐서, 미친 짓을 저지른 게 맞는데.’
하지만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건 지금 질문을 던진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나는 차마 열리지 않는 입을 힘겹게 뗐다.
“항상…… 요정의 축복을 주는 폴리우스의 비위를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렇지만 지금은 폴리우스와 파혼했고, 요정의 축복을 받는 대신 진통제를 먹을 겁니다. 어머니의 유산을 위험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환생 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계속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살았겠지.
그리고 부모보다 일찍 죽는 불효까지 저질렀을 거다.
“상단주 자리, 아버지께 넘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