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30)화 (30/90)

<30화>

아버지가 한숨을 참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고개를 숙인 탓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이어지고.

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내 옆을 지나쳐 가셨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쾅, 들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뒤로도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 *

나는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 클로틸드 상단주에서 내려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난 내 사무실에서 서류 몇 종류를 챙겼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러 갈 준비였다.

‘내 보직 변경에 따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이미 말해 두었고. 시간이 지났으니, 다들 결정을 내렸겠지.’

상단주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마탑에 있던 클로틸드 상단 직원들과도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물론, 클로틸드 상단에 유통을 맡기는 걸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상단 규모를 키우는 일이었고, 장차 클로틸드 상단을 어머니가 운영하던 때보다 키우려는 내 꿈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단주가 아버지로 바뀐 이상 정확한 소속이나 일하는 형태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는데.’

현재 클로틸드 상단에서 나를 돕기 위해 거의 검은 달 소속처럼 일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말이다.

‘상단 직원들이 있어서 사업 초기에 수월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운담.’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클로틸드 상단에서 온 직원들을 호출했다.

그저 직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갑자기 하던 업무가 바뀌는 셈이니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직접 사과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대표가 못나서 그런 건데. 피해는 이 사람들이……’

직원들이 클로틸드 상단으로 돌아갈 때, 새로운 상단주가 될 아버지에게 최대한 잘 말해 봐야겠다.

내 잘못에 휩쓸린 직원들에게 잘해 달라고, 염치없지만 어떻게든 말이다.

“죄송하지만 제가 클로틸드 상단주에서 물러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지만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그러나 다시 끊기고 마는 내 목소리.

아, 마지막이니만큼 제대로 인사하며 보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멜라니 클로틸드, 너 정말 끝까지 한심하구나.’

더 주저해 봤자 이 사람들한테 시간을 빼앗는 거 아닌가.

‘네가 더 망설일 자격이나 있어?’

난 결국 눈을 질끈 감고서 빠르게 말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앞으로 클로틸드 상단으로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편이 여러분들에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만 클로틸드 상단과의 협력은 남아 있기 때문에, 가끔 얼굴을 볼 일은 있을 거라고.

뭐 그런 말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도 최대한 설명을 해야……’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내 호출에 불려 온 직원 중 한 명이 뜻밖의 말을 했다.

처음에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보이던, 최고참 직원 안드레였다.

“클로틸드 상단에서 나와 검은 달 소속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들었습니다.”

“예?”

“저희는 검은 달 직원으로 여전히 일하고 싶습니다.”

나는 안드레에게 바로 되물었다.

“검은 달은 솔직히 말해 신생이잖아요. 클로틸드 상단은 건재한 곳이고요. 그런데 왜 남아요?”

“하하, 며칠 전 이야기를 듣고 저희끼리는 이야기가 다 되었습니다. 그렇지?”

안드레가 옆을 바라보니, 옆에서 젊은 직원 하나가 패기 넘치게 외쳤다.

“저희 모두 상단주, 아니, 클로틸드 대표님을 따르고 싶어서 남기로 했습니다!”

“……?”

감동적인 대사다.

하지만 나는 감격하는 대신 내 귀와 직원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능하고 멍청한 공작 영애라 불렸던 내가 이런 말을 들을 리가?’

처음 검은 달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나를 낮춰 보던 직원이 한둘인가.

그때보다는, 음.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나름대로 능력 있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다.

물론 그것도 ‘작년에 비해서’라는 단서가 붙는다.

워낙 처음에 최악이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더 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말을 들을 정도의 대표는 또 아니잖아.

‘이상해. 나를 진심으로 따르고 싶어 할 리 없는데.’

아아. 그렇다면 혹시 다른 쪽인가.

“여러분. 제가 공작 영애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보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예?”

이번에는 직원들이 얼이 빠졌다. 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상단주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어 여러분들이 고생하게 된 건데, 그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믿기 어려우실 수 있지만, 그래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거고요.”

“아니, 그런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그냥 클로틸드 대표님이랑 같이 검은 달에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제정신인가?”

“클로틸드 대표님, 방금……?”

“아, 제가 실언했습니다. 여러분을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놀랍다는 표현이었어요. 정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생각하던 말을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나는 황급히 수습하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하지만 내가 제정신이냐고 말할 만도 하잖아.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대표님, 저희 멀쩡해요. 너무하십니다!”

“같이 일하겠다는 말을 왜 그렇게 곡해하세요!”

제정신이냐는 말을 들은 직원들은 반발했다. 나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당황해서.”

대표로서 마지막으로 보는 건데 이런 결례라니.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러분, 그렇지만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굳이 여기에 남을 메리트가 없어요. 검은 달에서 주는 돈은 클로틸드 상단에서 일할 때랑 비슷하지 않나요?”

그럴 거면 기존에 익숙한 업무를 하는 클로틸드 상단이 더 낫지.

“그렇지만, 검은 달에서 하는 일들이 재미있어 보여서요.”

“클로틸드 대표님의 꿈을 같이 이뤄 내고 싶습니다.”

“영상석처럼 새로운 물건을 이 세상에 펼쳐 보고 싶어요. 앞으로 계획 중인 아티팩트도 많잖아요!”

음, 솔직히 말하겠다. 지금까지도 직원들의 말이 안 믿긴다.

이렇게 날 따를 정도로 잘해 준 것 같지 않은데?

괜히 이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실망하게 되면 아무리 나라도 속상할 것 같은데.

“크흠,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는 척하며 은근히 떠보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검은 달에서 계속 일하실 거라면,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데……”

말을 멈추고 흘끔 눈치를 살폈다.

“한번 서명하면 다시 못 무릅니다?”

“당연하죠.”

“했던 말 취소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클로틸드 대표님, 혹시 대표님께서 저희를 못 믿으시는 건 아닙니까?”

그런데 뜻밖에 직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희를 이렇게 거절하실 수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이 사람들, 내가 계속 안 믿어 주니까 눈으로 욕했어.

눈으로 욕했다고!

‘내가 엄청 무서운 대표는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내 사적 보복이 두려워서 나가지 않으려 한다.’라는 가능성은 집어치우자.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여기서 더 못 믿겠다고 하면 저 사람들한테 진짜로 욕먹을지도 몰라.

그러나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어?”

하지만, 나는 내 청력은 정상이며, 이 사람들도 진지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희는 진심입니다. 이게 그 증거고요.”

내 앞에 빼곡하게 내민 서류들을 보고서도 더 부정할 수가 없었거든.

“새로운 계약서입니다. 이미 저희는 서명을 했고요.”

“클로틸드 대표님만 서명하시면 저희는 검은 달 직원이 되는 겁니다.”

“하하, 대표님이야말로 저희 직원으로 들이시는 거 못 무릅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니까, 안드레가 이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 같다.

아니, 처음에 나를 가장 날 안 좋게 보던 최고참 직원 아니었어?

“허……”

나는 다시 한번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둘러보았다.

내가 몇 번이고 상단으로 옮길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아무도 안 빠졌다.

단 한 명도 말이다……

난 소설로 이 사업이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은 아니다.

영상석이라는 생소한 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고 클로틸드 상단과 달리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곳인데.

유망하던 사업들이 얼마 가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걸, 상단에서 일한 이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여기에 남아 주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야. 결코 쉬운 결정도 아니었을 거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전과 다른 책임감이 생겼다.

“검은 달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말해 줘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검은 달이 단순히 내 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났거든.

나는 어물거리며 직원들에게 앞으로 같이 열심히 해 보자는 말을 하고는 넌지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솔직히, 눈가가 조금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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