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31)화 (31/90)

<31화>

* * *

사람들은 <13번째 기사>를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13번째 기사>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비오 탐다제.

수십여 년 전 엄청난 흥행작인 추억의 연극을 다시 올리지 못한 건 사실 배우 문제가 가장 컸다.

몇 번이나 사람들은 로비오가 다시 <13번째 기사>를 해 주길 원했지만, 다양한 배역을 맡길 원하는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폴리우스는 즉흥적인 그답지 않게 로비오를 설득할 계획을 열심히 짜 왔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좋아한다든가…… 그런 건 열심히 조사해 왔어.’

이번 설득에 성공해서 폴리우스는 사람들이 안 될 거라 생각한 걸 보란 듯이 비웃어 주고 싶었다.

거절당한다고 하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부딪히리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다미안에게 굴욕을 안기고, 자신을 떠난 멜라니가 지독한 후회를 하게 만들 거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일은 자신이 엄청난 우위다.

‘딱딱해서 사람들이 대하기 어려워하는 다미안이나, 친한 친구라고는 소꿉친구 하나인 멜라니. 둘 다 사람 만나는 건 젬병이지만, 나는 다르다고.’

원래는 귀족인 폴리우스가 보고 싶다 말하면 평민인 로비오가 그를 찾아뵙는 게 맞다.

하지만 오늘 폴리우스는 그의 집까지 친히 선물을 들고 방문하기까지 했다.

폴리우스는 당연히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그를 설득할 말을 고민하며 로비오 탐다제를 만났는데……

“영상석에 출연할 의향은 있습니다.”

뜻밖에도 단숨에 승낙의 말을 들었다.

그를 설득하러 온 폴리우스는 오히려 당황해서 되묻고 말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농담하시는 것 아니죠?”

“폴리우스 벨데르트 영식, 저는 괜한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하던 말과는 달리 로비오 탐다제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로비오 탐다제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멜라니가 다미안과 손을 잡고 만든 영상석 때문이었다.

원작 소설에서 폴리우스가 만든 영상석은 로비오 탐다제의 눈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멜라니는 달랐다.

‘이건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자신이 주인공 아트런 역할을 맡은 <13번째 기사>를 사람들은 보고 싶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청을 계속 들어주려면 다른 연극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무대에 자주 서야 했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준 <13번째 기사>에 물론 애착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른 연극에 아예 출연하지 못하는 건 거북스러웠다.

“얼마 전 검은 달의 영상석을 보았습니다. 그 정도라면 <13번째 기사>를 좋아하던 팬들도 만족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검은 달과 같은 수준의 영상석이라면, 팬들은 계속해서 로비오 탐다제가 출연한 <13번째 기사>의 무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3번째 기사>의 주인공, 아트런은 중년의 남성입니다. 다만 그때는 제가 젊었던지라 무대에 분장을 하고 올랐지요.”

“네, 이십 대에 이미지가 워낙 배역과 어울려서 캐스팅되셨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훨씬 더 잘 어울릴 겁니다!”

“지금이야말로 보다 나은 연기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모도 그렇지만, 확실히 더 살아 보니 주인공 아트런의 심리가 더 잘 이해되더군요.”

배우 로비오 탐다제는 폴리우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폴리우스 벨데르트 영식, 검은 달처럼 빼어난 퀄리티의 영상석이 아니면 오히려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향은 있다고 말한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벨데르트 부극단주로 극단을 운영을 한 건 다미안이 아니라 접니다.”

폴리우스는 배우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최고의 영상석을 약속드리지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헤어진 뒤, 폴리우스는 낭패라는 얼굴을 했다.

‘극단 건물을 팔면서 벨데르트 극단을 해체시키기로 했는데, 이걸 어쩐다?’

폴리우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간단하게 해결책을 찾았다.

‘<13번째 기사>를 영상석으로 만들 때만 잠깐 일해 달라고 하지 뭐.’

자신도 그들을 해고한 건 마음이 아팠던 터였다.

그러나 <13번째 기사>를 영상석으로 만들면 그들에게도 돈이 될 테니 서로 좋은 일이다.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다른 사람과 일하게 되어서 못 온다고?”

폴리우스는 그 ‘다른 사람’이 멜라니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왜 이런 곳에서도 방해하고 난리란 말인가.

‘검은 달만큼의 영상석 퀄리티를 만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예전에 올렸던 연극이니, 그때랑 연출을 비슷하게 하면 되지 뭐.’

다른 극장을 구해서 연출까지 맡기면 될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배우 로비오 탐다제가 <13번째 기사>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돈이 부족한데. 내놓은 건물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마침 폴리우스는 함께 사업을 하기에 적절한 사람을 알고 있었고, 별 망설임 없이 잉그다 후작저로 향했다.

그리고 조세핀에게 협업하자고 제안했다.

연극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조세핀은 사업이라는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클로틸드보다 교양 있고 지혜롭다는 너의 이미지가 필요해.”

“제가요?”

“응, 다른 여자는 안 돼. 후발 주자인 이상 검은 달보다 더 낫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야 해야 하니까.”

“…….”

“내가 멜라니 클로틸드와 헤어졌지만, 사교계의 꽃인 너와 만나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여길 수 있게 해 줘.”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조세핀은 멜라니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폴리우스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그 부분을 이용했다.

물론 조세핀은 폴리우스에게 호감이 있지만 그것 하나로 사업을 결정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멜라니 클로틸드의 전 약혼자’인 폴리우스가 아닌가.

“……저는 사업 자금도 없고.”

“어차피 나와 결혼하면 지참금을 들고 오잖아. 그걸 미리 쓰면 되는 거 아니야? 결혼하기 전까지 자금을 불리면 더 좋잖아.”

그리고 이어지는 설득.

“검은 달과 나의 차별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멜라니와 대비되는 너의 이미지. 그리고 두 번째는 <13번째 기사>야.”

“하지만 그 배우는……”

“설득했어. 내가.”

“그게 정말인가요?”

“응, 오히려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던걸. 첫 만남에 바로 승낙을 받았지.”

가장 끌어들이기 어려웠던 로비오 탐다제를 설득했다. 폴리우스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고, 노련해 보였다.

조세핀이 봐 온 와중 그는 가장 여유롭고 능숙해 보였다.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나는 조세핀을 아끼니까 가장 좋은 기회를 너에게 먼저 말하고 싶었어.”

“자, 잠시만요. 할게요. 폴리우스랑 같이!”

그리하여 조세핀은 지참금을 가지고 폴리우스와 사업을 함께하기로 했다.

“저, <13번째 기사>를 비롯한 영상석 사업을 폴리우스 님과 같이하기로 했어요.”

폴리우스에게 사업에 대한 계획과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자신이 가장 유리한 전장인 사교계에서 선공을 시작했다.

“우와, 아트런 역할을 맡으신 로비오 탐다제 님은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13번째 기사>는 약 수십 년 전의 연극이지만, 로비오 탐다제라는 배우는 워낙 인지도가 있어 젊은 영애에게까지도 큰 관심을 받았다.

“제가 <다섯 번째 숲>을 굉장히 감명 깊게 보았는데, 아버지께서 로비오 탐다제는 아트런 역할을 맡았을 때가 최고라는 거예요.”

“맞아요, 저희 아버지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얼마나 궁금했는지 몰라요.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잖아요.”

영애들의 반응에 조세핀은 우아하게 웃었다.

그녀는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며 떠들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전설적인 연극인 <13번째 기사>에 대해서는 직접 보지 않은 그녀들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시다시피 전 영상석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직접 보는 연극 무대의 힘을 담을 수 있을까 하고요.”

이어서, 조세핀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먼저 꺼내기 전에 선수를 쳤다.

“하지만 로비오 탐다제 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마음이 움직였답니다.”

영상석 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설득되었다고 말이다.

“전에는 영상석을 그렇게 깎아내리더니, 생각보다 검은 달이 잘되니까 본인도 해야겠다 싶었나 봐요?”

“태도를 순식간에 바꿀 거면서 그렇게 욕한 것도 우습지 뭐예요.”

조세핀이 폴리우스와 함께 영상석 사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분명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비웃을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연극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렇게라도 팬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드리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어머……”

“그런 말을 들었는데,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더군요. 결국 그분을 도와드리기로 했어요.”

“잉그다 영애는 역시 생각이 깊으시군요! 영애와 폴리우스 벨데르트 영식이 하는 영상석 사업이 정말 기대돼요.”

조세핀은 이날을 시작으로, 자신이 영상석 사업을 하게 된 것을 떠벌리고 다녔다.

“제 형제인 다미안처럼 저 역시 영상석 사업에 뛰어들어 볼까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시죠? 그럼 형제 싸움인가요?”

폴리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미안이 자신의 이복형제라는 것을 은근슬쩍 이용했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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