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어머니는 다르지만 관심사는 같아”
벨데르트 형제의 영상석 서비스 싸움, 과연 승자는 누구?]
[“사업가로서도 여자로서도 내가 우위”
멜라니 클로틸드 VS 조세핀 잉그다, 영상석에서 맞붙게 된 폴리우스의 여자들]
[“너 말고 네 형”
동생과 파혼하고 형과 만난 공작 영애. 이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은 멜라니의 이름이 부정적인 어조로 헤드라인에 걸렸다.
멜라니는 제 이름이 나온 기사를 몇 개 읽어 보지도 않고 신문을 집어 던졌다.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어떤 기사가 나오던 간에 기사 말미는 다 비슷했다.
[……한편, 폴리우스 벨데르트와 조세핀 잉그다는 손을 잡고 올가을 ‘붉은 해’ 영상석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거, 일부러 영상석 홍보가 되도록 자극적인 기사로 뽑은 게 분명해.’
분명 의도한 거다.
멜라니는 기존에 영상석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도 저를 두고 떠드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도 나와 다미안 마탑주가 검은 달이라고 지으니까, 붉은 해라고 지었네. 일부러 상반되면서 비슷한 이름으로 노린 거지?’
사업체 이름까지 교묘하게 라이벌처럼 인식되도록 지은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사업인데, 기존에 잘되고 있는 검은 달과 동등한 위치에 선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나쁜 일이라면 아주 능력이 뛰어나네. 평소에 그 능력 좀 보여 주지 그랬어.’
원작 소설의 흐름과 다르다.
그때는 참으로 주인공다운 행보를 걷던 폴리우스가 시도했는데도, 배우 로비오 탐다제는 출연을 거절했다.
영상석 같은 건 연극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고 말이다!
분명 그랬는데……
[“아버지가 등 돌린 클로틸드 영애?”
배우 로비오 탐다제가 검은 달 대신 붉은 해를 선택한 속사정]
신문은 여전히 이 상황에 대한 저속한 기사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왜 원작 소설과 달라졌는지 알게 되었다.
‘평소 검은 달의 영상석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아서 영상석으로 만드는 걸 받아들였다니, 내가 폴리우스와 잉그다 영애를 도와준 꼴이 됐잖아?’
허…… <13번째 기사> 때문이라도 꼭 붉은 해의 영상석을 보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멜라니는 혀를 찼다.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폴리우스의 운 하나는 말도 안 되게 좋았다.
‘관심 없던 사람들도 영상석 싸움의 결과를 기대하는 눈치네. 어떤 신문을 펼치던 다 이쪽 이야기밖에 안 하니.’
혹자는 멜라니와 다미안 마탑주가 벌써부터 폴리우스와 조세핀에게 패배한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글쎄다.
‘고작 몇 달 만에 영상석 사업을 선보이겠다는 거야?’
마탑의 뛰어난 기술이 아니었으면, 검은 달도 이렇게 빨리 준비 못 했는데.
폴리우스 쪽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출시 날짜는 왜 이리 빠르담.
‘게다가 <13번째 기사> 하나로는 안 되지.’
나름대로 이쪽도 홍보가 되었으니 신문사에 따질 생각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목이 쏠리면 쏠릴수록 좋다.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실히 보여 주겠어. 사생활까지 건드리며 이용했으니 요란하게 망해 보라지.’
품질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이목이 붙은 순간 처참하게 깨지도록.
‘마르티스 영애가 너무 미안해해서 문제지.’
며칠 전 마르티스 영애는 <13번째 기사>가 제작되는 걸 중간에 자신이 막았어야 했다며, 자신은 스파이 실격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다고, 괜히 자책할 필요 없는데 말이다.
나는 마르티스 영애가 답지 않게 구구절절 쓴 편지를 다시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 역시 펜을 들었다.
[미안해할 것 없어요. 다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폴리우스가 이렇게 나를 물고 넘어지며 요란하게 굴다니.
그렇다면 나도 그쪽을 좀 정신 사납게 해 볼까 해서 말이다.
* * *
도페란 클로틸드. 그가 공작이 된 지 이십오 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그가 신문을 읽는 것은 일과 중 하나였다.
특히 요즘에는 상단주 자리를 멜라니에게서 돌려받는 시기라, 더욱 여러 매체를 접하려고 했다.
물론 질 좋은 기사를 내는 신문은 별로 없고, 간혹가다 자극적인 기사만을 보도하는 곳들도 있지만.
성실하고 묵묵한 그는 최근 가십 잡지까지 읽기 시작했다.
그 역시도 세상 물정을 알기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감히, 어느 놈이 이딴 기사를……”
가십 잡지 역시 정보를 접하는 매체 중 하나라는 생각은 오늘부로 깨어졌다.
[“아버지가 등 돌린 클로틸드 영애?”
배우 로비오 탐다제가 검은 달대신 붉은 해를 선택한 속사정]
클로틸드 공작은 제가 읽는 가십 잡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딸을 아끼는 걸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더 잘 알기를 원했다.
이 아이는 클로틸드 공작의 보물이니,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노라고.
그 누구도 멜라니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등을 돌렸다고?
그는 놀라서 기사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적나라하게 멜라니를 깎아내리는 기사가 맞았다.
상단주 자리에서 내려온 것, 그리고 상단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것.
[……더 이상 클로틸드 공작은 철부지 망나니 클로틸드 영애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등을 돌렸다고 표현하다니.
단순히 헤드라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철부지니 망나니니, 가십 위주라지만 정식 잡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단어만 수두룩했다.
‘이런 기사는 사람들이 걸러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로비오 탐다제의 인터뷰가 실린 신문인지라, 그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 기사를 읽을 게 뻔해 보였다.
그가 영상석에 진출한 이유를 자극적으로 풀어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멜라니를 버린 것처럼 말하다니!’
물론 서재를 박차고 난 뒤로 멜라니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그의 기색을 안 건지 멜라니도 그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나타나지 않으려 했다.
“…….”
하지만 멜라니에게 화를 냈다고 해서, 그가 후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픈 딸이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인데.
어머니가 없는 게 안쓰러워 최대한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이것이라면, 자신은 양육을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다른 잘못을 저질렀으면 평소처럼 괜찮다고 했을 텐데.’
하지만.
하마터면 죽은 아내가 공들여 운영하던 상단이 날아갈 뻔했다.
클로틸드 공작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으나, 이내 자신에게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래도, 얼마나 폴리우스를 사랑했으면.’
아니,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인 자신이 보기에도 멜라니는 폴리우스를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다.
폴리우스가 오지 못한다고 하면 핏기가 하얗게 질리고, 다른 여자와 만난다고 하면 덜덜 떨며 예민해지던 모습은……
‘하지만 그래도 고리대금업은 선을 넘었지.’
다시 한번 화가 솟구쳤다.
게다가 사업을 한다는 것도 탐탁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금전 감각이 없는 애가 한다는 게 제대로 된 것이겠는가.
아버지인 그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다 내가 잘못 키운 탓이다.’
클로틸드 공작은 심란한 마음으로 집사에게 멜라니가 하는 사업에 대해 알아 오라 명했다.
대표로서 멜라니의 평판, 현재 대출 상태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포함해서.
‘더 큰 일 내기 전에 사업은 정리하도록 해야겠어.’
정말 기사에서 나오는 대로 엉망진창이라면.
동업자인 다미안 마탑주가 폴리우스 놈의 이복형답게 나쁜 놈이라면.
그래서 멜라니가 상처받고 있다면…… 아버지인 그가 더 늦기 전에 말려야 했다.
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 * *
신문과 잡지에 ‘붉은 해 사업’이 떠들썩하고, 배우 로비오 탐다제와 만나 <13번째 기사> 영상석의 계약을 체결했건만.
정작 당사자인 폴리우스는 출근조차 하지 않고 벨데르트 백작저의 제 방에 누워 멍하니 늘어져 있었다.
사실,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그의 머릿속에 온통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 멜라니 클로틸드. 진짜 이렇게 귀엽게 굴 건가?’
폴리우스는 얼마 전 클라라와 만나 들은 말을 내내 되새기고 있었다.
“클로틸드 영애가, 지금은 해체한 벨데르트 극단 사람들을 고용했다던데요?”
“맞아. 멜라니가 방해해서 <13번째 기사>를 다른 극단에서 사람을 구해서 할 수밖에 없었……”
“이거, 혹시 클로틸드 영애가 폴리우스를 못 잊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폴리우스가 욕먹을까 봐 힘쓴 거 아니냐고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