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멜라니! 말이 심하잖아!”
멜라니의 말에 폴리우스는 무척 당황했다.
“당신은 영상석 사업에 재능도 없고 센스도 없어. 해 봤자 실패할 게 뻔한데 정말 모르겠어요?”
“뭐?”
“대체 다미안 마탑주님보다 자신이 낫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언제까지 할 건가요?”
멜라니는 당황한 폴리우스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시와 경멸을 가득 담아,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은 한 명의 남자로서도, 한 명의 사업가로서 모두 다미안 마탑주님을 못 이겨.”
“……너,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야.”
폴리우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최대한 단호한 태도로 돌아섰다.
그리고 클라라가 제의했던 영상석 사업을, 제대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폴리우스가 멜라니와 헤어져 바로 찾아간 곳은 건물을 팔겠다고 찾아갔던 업자였다.
“건물을 사겠다고 한 사람은 없는가? 언제쯤 팔리지?”
“가격이 좀 세서 사겠다는 사람이 금방 나타나지는 않네요.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는 물건이니 반드시 팔릴 겁니다.”
업자는 폴리우스의 속내도 모르고 여유롭게 웃었다. 그러더니 곧 폴리우스의 말에 안색이 바뀌었다.
“급매로 파시겠다고요? 아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걸 왜 굳이……”
하지만 폴리우스의 강경한 말에 업자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이 가격이라면 금방 팔릴 겁니다. 저도 수고를 더는 셈이니 좋기는 한데…… 아닙니다, 파는 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게 맞지요.”
폴리우스는 제 커다란 뜻을 알지 못하는 업자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제가 가진 열정의 불꽃을 뜨겁게 불태워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기필코, 멜라니. 네 눈에서 후회의 눈물이 흐르도록 해 줄 거야.’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다.
‘내가 다미안보다 나은 남자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태어난 순간부터 이어지던, 이복형 다미안과의 지긋지긋한 비교.
단순히 어머니의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깎아내려졌던 가여운 자신.
이제는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거두는 날이 온 거다!
* * *
나는 부동산 업자에게 폴리우스의 건물이 급매로 팔렸다는 걸 확인한 후 미소 지었다.
‘알짜배기 건물을 쓸데없이 손해를 보고 팔다니, 정말 독이 잔뜩 올랐구나.’
클라라는 정말로 잘해 줬다.
폴리우스가 되도 않은 자신감에 차서 자신을 찾아오다니.
탐다제가 합류했으니 한창 붉은 해 사업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클라라를 통해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혼란스러운 말들을 흘렸다.
물론 내가 의도했다고 해도 그딴 말을, 그딴 짓을 해 놓고 자신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며 찾아온 게 생각보다 불쾌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할 필요는 없어.’
폴리우스가 지금 느낄 감정은 강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가장 그를 흔들 수 있는 말을 했다.
“당신은 영상석 사업에 재능도 없고 센스도 없어. 해 봤자 실패할 게 뻔한데 정말 모르겠어요?”
“당신은 한 명의 남자로서도, 한 명의 사업가로서 모두 다미안 마탑주님을 못 이겨.”
그렇게 실컷 긁어 줬으니 지금 이성적으로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한때는 감정적으로 굴며 앞뒤를 따지지 않는 그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폴리우스의 모습은 이용하기 쉬운 약점일 뿐이었다.
* * *
클로틸드 공작은 가십 잡지에 오른 멜라니에 대한 이야기를 본 이후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집사에게 조사를 명했지만, 그는 그동안 당장 멜라니에게 집에 얌전히 있으라 명하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예전에도 폴리우스에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평판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의 입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지는 않았는데.
“휴우……”
하지만 심란한 와중에도 그는 수행해야 할 공작으로서의 책무가 있었다.
클로틸드 공작은 한숨을 내쉬며 일정이 잡힌 연회의 참석 따위를 상기했다.
‘지금 누군가를 딱히 보고 싶은 기분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신을 사교계에 비추지 않은 지도 너무나 오래되었다.
순전히 책임감으로 클로틸드 공작은 내키지 않은 걸음을 이끌었다.
최근 영지의 일 때문에 바빴기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나가는 사교 모임이었다.
“아이고, 클로틸드 공작님 오셨습니까!”
“바쁘시다더니 굉장히 오랜만에 뵙네요!”
여기까지는 무난한 전개였다.
그러나, 클로틸드 공작은 사람들이 다음으로 하는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대단하십니다. 따님을 대체 어떻게 키우신 겁니까?”
“……예?”
“클로틸드 영애가 하는 영상석 사업이 보통 대박이 아니던데, 정말 부럽습니다!”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요.”
“예?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러나 상대는 클로틸드 공작의 얼떨떨함을 그냥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귀족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 사방이 온통 클로틸드 영애가 만든 영상석 이야기인데요. 괜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맞습니다. 제 자식도 검은 달의 영상석만 보느라 아주 정신이 없던데요.”
“어디 어린 애들만 그렇습니까. 저만 해도 영상석을 구독해서 보는데 어제까지 잠도 잘 못 자고……”
클로틸드 공작은 아첨과 진심을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공작이 될 사람이었고, 그와 친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끝도 없이 있었으니까.
‘뭐지……?’
하지만 지금 하는 말들은 순수한 칭찬이었고, 딸을 잘 키웠다는 부러움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괜히 공작인 자신과 친해지기 위하여 쥐어짜는 말과는 다르게 진심이었다.
“솔직히 대단하긴 하더군요. 아무도 생각 못 한 거 아닙니까.”
“아니, 백작님이 무언가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건 처음 봅니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니까요.”
아첨과는 거리가 먼,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백작이 칭찬을 건네자 클로틸드 공작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클로틸드 공작님, 영애께서는 대체 사업을 언제부터 시작하셨답니까?”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다고 하셨나요?”
“사실 저는 영상석도 영상석인데, 구독 서비스라는 게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영애께 언제 그런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있었지요?”
클로틸드 공작은 자기 자신의 딸을 잘 알았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건네는 질문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연극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클로틸드 공작님은 처음 영상석을 접하시고 어떠셨습니까? 당연히 아버지시니만큼 제일 먼저 보셨겠지요?”
“그 대단한 걸 보고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니, 엄청난 인내심이시네요.”
클로틸드 공작은 쏟아지는 질문에 어물쩍거리다가 말을 돌렸다.
“으음, 멜라니가 공작저에 홈시어터인지 뭔지를 설치했다고는 하더군요.”
“네? 그게 뭡니까?”
평소 클로틸드 공작과 친하지도 않던 귀족들까지 몰려와 흥미를 가지고 기웃거렸다.
클로틸드 공작은 사교계에 데뷔한 이래 가장 정신이 없었다.
“그……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영상석보다 훨씬 크기가 크다고 하더군요.”
“아니, 얼마나 더 크다덥니까?”
“화면이 크니 공작저에서 가장 큰 방을 내어 달라길래 그걸 주었지요.”
“세상에나!”
멜라니의 말로는 크기가 커다란 영상석도 생각 중이라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것이라고 했다.
“그 영상석도 대여한답니까?”
“설치라니, 영상석은 설치하는 종류가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건 좀 다른 건가요?”
“크기가 크면 마력석도 많이 들 텐데, 그럼 가격이 얼마나 되는 거죠?”
하지만 클로틸드 공작은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언제 한번 그들을 초대하겠다고만 말하고는 겨우 소란에서 벗어났다. 머리가 멍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할 정도로 멜라니가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귀족들이 모두 알 정도로 큰 사업이었단 말인가?
‘이 정도 규모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
멜라니의 성취는 굉장히 기뻤지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죽은 자신의 아내처럼 멜라니 역시도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났다.
클로틸드 공작은 아직 한창인 사교 모임을 뒤로하고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한 그는 고용인들에게 멜라니가 설치했다는 홈시어터에 대해 물어봤다.
“저도 잘은 모르는데…… 설치하러 온 마법사가 대여용은 아니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영상석과는 원리가 다르다고 하던데 마법사들의 용어를 써서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어쨌든 커다란 마력석을 써서 굉장히 귀한 거라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공작은 서재에 올라가, 집사가 구해 뒀다는 사업 계획서를 읽기 시작했다.
멜라니가 콘텐츠 계약을 하면서, 극단 관계자들에게 보여 준 사업 계획서였다.
“…….”
멜라니가 분기별로 세운 목표, 마법 아티팩트 시장의 잠재성, 영상석 구독 서비스의 성과……
‘멜라니가 언제 이런 걸 배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