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 *
클로틸드 공작은 제 딸에게 크게 화냈던 날, 자신이 했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거냐? 너에게 상단주 자리는 다시 가져와야겠다. 내가 너를 너무 믿었다.”
대출 건으로 멜라니와 부딪힌 이후, 제 딸의 얼굴을 보는 게 어려웠다.
태어나서 이토록 크게 딸에게 화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사이좋던 부녀지간이었기에 오히려 더더욱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마주칠 일을 피했는지도 몰랐다.
라닐다 백작 모임이 끝난 후 대화를 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업 파트너인 다미안 마탑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전 약혼자인 폴리우스는 멜라니가 대출을 받게 만든 원흉, ‘요정의 축복’으로 그저 아픈 딸의 곁을 지켜 주는 남자라고 안심하면 안 되는 상대였다.
어쩔 수 없기에 멜라니 곁에 두었지만 이 정도로 나쁜 놈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번 사업 파트너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폴리우스 벨데르트의 이복형이라니.
물론 폴리우스와 다미안이 사이가 안 좋다고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그 형제와 얽힌 게 제 딸이니만큼 그저 낙천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 또 다치는 게 멜라니면 어쩌냔 말이다.
‘다미안 마탑주도 우리 멜라니를 이용하는 거면 어쩌지?’
마탑주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사업은 어쩌다 같이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런 만큼 딸과 겪은 큰 갈등 탓에 다가가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클로틸드 공작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딸과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말이다.
“멜라니!”
게이트에서 타이밍이 맞는다면 만날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실제로 이루어져서……
그 다미안 마탑주의 얼굴을 좀 봐야겠다고.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왜 그가 마주한 것은 다시는 보기 싫은 모습인지.
“너에게 정말 실망이구나.”
멜라니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클로틸드 공작은 자신이 거칠게 딸에게 쏘아붙인 말을 떠올렸다.
‘화내지 말고, 멜라니가 하려고 했던 말을 들어 주고…… 응원해 줘야 했는데.’
어쩌면 멜라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 * *
정신이 혼란한 와중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멜라니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다니, 최근에는 그런 적이 없는데!”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옆에 있었던 게 아닌가? 왜 말리지 않고……”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와, 변명하거나 맞서 싸우는 일 없이 그저 사과하는 다미안 마탑주.
‘아버지. 내가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쓰러진 건데 마탑주님한테 뭐라고 해요? 마탑주님은 오히려 나를 아닌 척하면서 계속 쉬게 했다고요.’
그리고 다미안 마탑주도 이상하다.
‘마탑주님, 당신이 자기 잘못 아닌 일로 사과하는 사람이었나요? 언제부터 그렇게 온순했다고…… 밀라 부인한테 막말하던 사람 어디 갔어요?’
나는 그 상황에 끼어들고 싶었다.
모든 건 다 내 책임이니 서로 목소리를 높일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시 괜찮아졌다고, 별거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몸이 너무 무거워……’
내 의지와 따로 노는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내 정신 역시 무거운 몸과 함께 어디론가로 끌려갔다가, 겨우 눈을 떠 보니 직감적으로 시간이 꽤 흐른 뒤라는 게 느껴졌다.
“멜라니!”
“아버지……”
눈을 뜨자 바로 아버지의 얼굴과 마주쳤다.
나는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드리려 웃어 보이려 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서 잘되지는 않았다.
“네가 쓰러졌다고 해서, 나는……”
평소 아버지는 말문이 잘 막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대사를 잊은 연극배우처럼 우두커니.
옆에서 의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말했다.
“무리해서 쓰러진 정도고, 예의 병은 그리 심각하게 진척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얘는 진통제를 먹으니까 괜찮다고 하는데, 그 진통제도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것 같고……”
아, 머리가 아프다. 순간 높아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니 내 얼굴을 본 아버지가 바로 말을 멈췄다.
“미안하구나, 일단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하니 푹 쉬렴.”
“네……”
나는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며 대답했다.
으음,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힘든 건 여전해서, 나는 그냥 푹 쉬기로 했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겠지.
* * *
어느 정도 내 상태가 진정되었다는 걸 확인하셨을 때쯤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멜라니, 할 이야기가 있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렇게나 쓰러졌는데 아무런 말 없이 넘어가는 건 이상하다.
“네가 검은 달로 세운 사업 계획서는 꼼꼼히 읽어 보았단다.”
“그걸 읽어 보셨다고요? 어떻게……”
상단을 담보로 잡았다는 것에만 신경 써서, 내 사업 자체는 별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미안하다. 어쩌면 나는 항상 네가 어린 딸이라고, 어느 정도 무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우리 딸이 하는 거면 나도 진지하게 임했어야 했는데…… 어떤 일을 하든 무조건 받아 준다는 건 어쩌면,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신경 안 쓰겠다는 것과 별다를 것 없지 않겠느냐?”
그건 솔직히 아니다. 아버지는 자책하셨지만, 솔직히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공녀로서 하는 일이 없는데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다.
“아버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이 세상에서 저를 가장 사랑하는 게 아버지라는 걸 알아요.”
“이런 못난 아비를 좋게 봐 주다니 고맙구나. 하지만…… 그래서 나는 늦게라도 너에게 나쁜 말을 해야만 하겠다.”
아버지는 내 손을 끌어당겨, 따뜻하고 커다란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집사에게 들었다. 말라붙은 금광인 줄 알았던 곳에서 마력석을 발견했고, 그 때문에 고리대금업도 정리하고 대출도 안정적으로 바꾸었다며.”
“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마력석으로 마탑과 협력해 사업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
아버지의 칭찬이 이어졌다.
“마력석 광산을 발견했다고 한들 누구나 영상석 사업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저번에는 내가 너무 험하게 이야기해서 미안하다.”
내가 공작저에 설치한 홈시어터를 얼마나 다른 귀족들이 좋아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는지를 이어 말했다.
“모두가 너를 달리 봤다고 하는데, 나도 어깨가 으쓱하긴 하더구나.”
내가 하는 사업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아버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계속해서 좋은 말이 이어지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리고 그 말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 같으니, 직원을 더 고용하고 너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어떠니?”
순간 끝을 모르는 아득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싫어요.”
“멜라니, 이건 고집부릴 일이 아니야.”
아버지는 집사를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사업에서 일했는지, 진통제는 얼마나 늘렸는지 따위를 설명했다.
내가 사업에 참여하는 빈도를 줄이라는 아버지의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닌 것 같았다.
“사업을 아예 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란다. 너는 지금 몸 상태에 비해 너무 무리했어.”
“이번에는 제가 조금 과하게 움직인 게 맞긴 해요.”
무려 아버지의 앞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평소보다 더 일하긴 했기로서니 나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방에도 영상석 사업을 전파시킬 구체적인 방안도 생각 중이고, 새로 영화와 드라마라는 매체도 만들고 있어요.”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했다.
“걱정을 끼쳐 드린 건 죄송해요. 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말씀은 못 듣겠어요.”
그러자 아버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네가 이번처럼 또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면!”
“물론 조심할 거예요. 이렇게 쓰러져서 며칠이나 누워 있는 게 더 손해라는 것도 알았고……”
“시간 문제가 아니라, 네 몸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거야. 이 아비의 뜻을 정말 모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