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그래? 클라라 덕분에 쉽게 풀리겠네. 고마워.”
“하하…… 뭘요. 이 정도야 별거 아니죠.”
물론 별게 아닐 리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석의 생산을 맡는 사람이다.
하지만 폴리우스는 마법사가 어떤 사람인지 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는 마법에 문외한이었지만, 그래서 더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마법이라고 해 봤자 다미안이 매일 하는 거 아냐?’
어느 날 다미안이 벨데르트 백작저를 뛰쳐나가 우두머리가 된 곳이 마탑이었다.
그런 만큼 마법이 대단히 어려운 분야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법사분들이 제국어를 하지 못하시지만, 보안을 위해 통역사는 없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하긴, 통역사를 통해 영상석 기술이 빠져나가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마법사들과 직접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폴리우스, 마법사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으음.”
마법사들을 데려온 클라라 역시 외국어를 다 아는 건 아니라서, 간간이 맥락만 해석하는 정도였다.
폴리우스는 클라라의 어설픈 통역을 들으며 마법사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어, 클라라. 그런데 이 부분 음성이 좀 이상하지 않아?”
“폴리우스 님, 제가 마법이나 영상 쪽은 잘 몰라서요. 지금 마법사분들이 말하는 게 맞지 않나요? 연출을 살리려고 보통 이렇게 한다고들 하시는데요.”
“어? 아아…… 그렇지.”
“그럼 그냥 이대로 진행할게요.”
폴리우스는 자신의 지식이 얕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냥 넘어갔다.
“음, 샘플은 이 정도라고 하시네요.”
다행히 영상석 샘플을 받아 본 결과물은 대단히 흡족했다.
그래서 폴리우스와 조세핀도 찜찜함을 넘기고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무슨……”
폴리우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청구된 금액을 보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
물론 어느 정도 비쌀 것은 감안하고 있었다. 마탑에 비교하면 아무래도 경쟁력이 약할 테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예상을 뛰어넘는 아득한 가격에 폴리우스는 머리가 멍해졌다.
“이 영상석 만드는 데 마력석이 이만큼이나 든다고?”
이 가격은 말이 안 된다. 제작 단가가 이렇다면 지금 멜라니는 수익을 포기하고 서비스를 하는 건가?
아니, 오히려 사업을 하면 할수록 심한 적자가 날 텐데?
이 정도는 초기 투자 비용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다!
‘극장 건물을 팔고 나면 <13번째 기사> 영상석을 만드는 데 투자하려고 했는데……’
로비오 탐다제가 자신에게 망할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아른거렸다.
‘이대로라면 돈이 남기는커녕, 오히려 부족하잖아?’
“초창기라 손해를 감수하는 거겠죠. 검은 달 쪽도 지금쯤 피눈물 흘리고 있을 거예요. 보기에만 화려한 거고.”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나…… 게다가 영상석 기술 대금을 선금으로 이만큼이나 지불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검은 달은 제작 비용을 낮추기 위해 마탑에서 자투리 마력석을 활용하려 기술을 갈고닦은 것이지만, 이 사실을 폴리우스가 알 리 없었다.
‘멍청하기는. 클로틸드 영애는 마력석 광산까지 있다고.’
클라라는 속으로는 비웃기 바빴지만,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었다.
<13번째 기사>를 멜라니에게 말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어, 더더욱 폴리우스의 옆에서 열심히 웃었더니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다행히 멜라니가 바란 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클라라는 돌연 웃던 표정을 바꾸어, 폴리우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폴리우스 님…… 지금 겁먹은 거예요?”
“뭐?”
“하긴, 다미안 마탑주님은 영상석 기술을 직접 했으니 이 비용도 안 들었을 거고. 상대가 안 될까 봐 무섭긴 하겠죠.”
“마르티스 영애, 말조심해요!”
“거기다 지금은 아니라지만 마탑주님도 똑같이 극단을 가지고 있는 벨데르트 가문의 사람이었잖아요?”
폴리우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옆에 있던 조세핀이 눈치를 볼 정도로 다미안은 그의 역린이었지만, 클라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들어가는 비용이 크긴 해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클로틸드 영애가 마탑주님을 선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겠네요. 그렇죠?”
“클라라.”
“무서워서 도망칠 거면 빨리해 주세요. 하지만 실망이네요, 폴리우스 님이 이렇게 겁쟁이일 줄은 몰랐는데.”
항상 폴리우스의 비위를 맞추던 클라라였다.
참지 않고 들이받던 성질도 폴리우스의 앞에서는 꾹 참았다.
그랬던 그녀인지라, 지금 폴리우스를 사랑하지 않는데도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조금 무서웠다.
‘클로틸드 영애가 하라는 대로 하고는 있는데, 진짜 이래도 되나? 진짜 폴리우스가 포기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멜라니는 이렇게 해야 폴리우스가 마력석 산업에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진행할 거라고 말했다.
“거기다 그쪽은 마력석 걱정 안 해도 되긴 할 것 같아요. 클로틸드 영애가 마력석 광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다음 일부러 정보 흘리기.
그 말에 폴리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력석 광산이라니? 클로틸드 가문이 마력석 광산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게, 최근에 클로틸드 영애가 산 광산에서 마력석이 나왔대요. 위치가…… 노르펠 쪽이었던가?”
‘말도 안 돼. 내가 폐광산을 샀다고 조롱했는데, 그게 사실은 마력석 광산이라는 거야?’
사교계에서 멜라니의 사업적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조롱한 것을 떠올린 조세핀은 사색이 되었다.
반면, 폴리우스의 표정은 활짝 피어났다.
“노르펠이라니, 그거 확실해?”
“네? 네에……”
그 말을 들은 폴리우스의 얼굴이 단숨에 바뀌었다.
“역시 수가 있었어. 이건 운명이야.”
폴리우스는 환하게 웃었다.
노르펠의 광산은, 자신이 멜라니를 설득해서 직접 산 곳이었다!
대출을 받을 때도 그가 직접 은행에 방문했었다.
그렇다면 마력석 광산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가?
“클라라, 내가 겁낸다고 생각해? 나를 너무 쉽게 봤어!”
“뭐예요, 폴리우스? 그게 무슨 일이에요?”
폴리우스는 조세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멜라니를 비웃었던 자신의 모양새가 꼴사납다고 생각하던 조세핀은 마력석 광산이 폴리우스의 것이라는 말을 듣자 바로 진정했다.
“다행이네요. 그게 폴리우스의 마력석 광산이라니! 그 여자가 자신의 것인 줄 알았던 광산을 빼앗기고 허망해하는 모습이 기대돼요.”
폴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마법사가 청구한 말도 안 되는 기술 비용을 치렀다.
“포, 폴리우스!”
“다미안 같은 쫌생이와는 달라. 난 한다면 하는 남자라고!”
“와아아, 폴리우스 님은 정말……”
멍청해요!
클라라는 저도 모르게 벌어지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내뱉은 감탄사는 정말 진심이었다.
‘와, 이게 되네?’
건물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영상석 기술 비용이라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내밀고, 단가가 안 나오는데도……
다미안 마탑주와 클로틸드 영애의 이름을 내미니 바로 승낙한다.
멜라니는 때가 되면 노르펠 광산 이야기를 흘리라고 했지만, 폴리우스가 마법사에게 넘어가 큰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13번째 기사>를 만들기로 한 폴리우스는 이제 성공이 손에 잡힐 듯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극장 거리에서 멜라니를 만난 후 잔뜩 약이 오른 그는 평소보다 조심성이 더 없어졌다.
“폴리우스. 중요한 일이니 조금 더 신중하는 게 어때요? 아무리 그 마력석 광산이 폴리우스의 것일 거라고는 하지만.”
조세핀은 영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폴리우스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신에게 취한 나머지 오히려 그녀를 설득했다.
“지금 영상석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이잖아. 우리가 뛰어난 콘텐츠와 품격 있는 퀄리티로 승부를 하면 클로틸드는 곧 망하고 말 거야.”
“하지만……”
“독점 시장이 되면,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어. 손해를 보는 건 순간뿐이야.”
폴리우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세핀. 마력석은 내가 끌어올 수 있어. 나만 믿어.”
자신만만한 폴리우스의 말에 조세핀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은 사업 이야기를 끝내고 클라라가 돌아가면 폴리우스에게 진지하게 따지려 했다.
당신이 멜라니와 단둘이서 만난 바람에 사교 모임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우습게 되었다고.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아느냐고.
아니, 자신과 아버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영상석 사업의 이미지에도 손실이라 할 수 있다고.
‘이제는 나도 돌아가기에는 글렀으니 반드시 성공해야 해. 클로틸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하지만…… 멜라니와 다미안이 그토록 과감할 수 있었던 이유인 마력석 광산만 빼앗아 온다면.
멜라니를 찾아간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