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45)화 (45/90)

<45화>

* * *

팔찌를 찬 멜라니는 시간이 지나도 정말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 마탑주님께서 만들어 준 팔찌의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뇨, 별것 아닙니다.”

“그래도 죄송해요, 마탑주님. 누워 있을 때 아버지께서 마탑주님께 하는 말을 언뜻 들었거든요. 괜히 저희 아버지에게 책망하는 말도 들으시고.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건 제가 공작님이어도 그랬을 겁니다.”

“네? 그건 부당한……”

그리고 그때, 소식을 들은 클로틸드 공작이 달려와 시끄럽게 멜라니의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오……”

하지만 멜라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클로틸드 공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딜 보나 일하던 도중에 급히 달려온 모양새였다.

매고 있던 타이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고, 잠시 단추를 풀었을 재킷도 헐겁게 벌어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로틸드 공작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온 게 확실했다.

“멜라니, 정말로……”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달려온 사람치고, 클로틸드 공작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 진통제는 먹지 않아도 되는 거야?”

차마 하려던 말을 꺼내지 못하는 클로틸드 공작에게 멜라니는 환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일하는 시간 줄이라고 해서 안 아픈 척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셨죠?”

“아니, 멜라니. 네가 거짓말한다는 게 아니라……”

“그럴 만도 해요. 제가 아버지랑 싸우고, 일을 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아버지!”

클로틸드 공작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멜라니가 진통제를 먹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본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미안의 손을 잡고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정말 고맙네. 나도 모르게 멜라니를 부추겼다고, 옆에 있었으면서도 무리하게 내버려 뒀다고…… 엄한 자네에게 원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말았네.”

“따님이 쓰러진 상황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클로틸드 공작은 다미안을 경계하는 태도를 아예 떨쳐 낸 것은 아닌 듯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감사 인사는 확실하게 했다.

다미안에게 쉽게 긴장을 풀지 않는 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가 보기에 멜라니는 쉽게 인간을 믿는 경향이 있었다.

‘고통을 덜어 준 것은 폴리우스도 마찬가지로 요정의 축복으로 한 일이다.’

다미안은 자신이 지금 해낸 일을 간단히 폄하해 버렸다.

‘아버지인 클로틸드 공작이 정신을 바짝 차린다면 적어도 제2의 폴리우스 같은 인간에게 당하지 않겠지.’

다미안은 제법 억울할 법한 일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넘겨 버렸다.

사실, 지금 그에게 있어 정말로 중요한 건 클로틸드 공작의 태도가 아니었다.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된다면 적어도 부작용면에서는 자유롭잖아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한다고 약속할게요, 아버지.”

“……하지만 다시 한번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면 그때는 반드시 그만두거라. 그것까지는 포기 못 한다.”

“그럼요, 당연하죠!”

기세를 타서 클로틸드 공작은 너무 무리하지만 말라며 멜라니가 일을 하는 것도 응원해 주었다.

그 와중에 의사를 불러와 부작용이 없다면 멜라니가 얼마나 무리가 가지 않을까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여태까지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드리면서도 부작용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정말 잘되었군요!”

하지만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다미안은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완전히 웃지는 못했다.

물론 싫은 건 절대 아니었다.

멜라니처럼 능력 있는 사업 파트너가 아파서 일을 같이 못 한다면 큰 손해니까.

그런데……

‘마법 아티팩트에 반응하는 양상이…… 꼭 병이 아니라 저주 같은데?’

어려서부터 아팠다고 했는데, 클로틸드 공작가의 영애가 저주에 걸려서 아플 리가 없지 않나.

그래서 아티팩트를 만들면서도 큰 효과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작은 가능성에 도전해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효과를 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자신이 마법 아티팩트를 만든 메커니즘은, 저주를 해결하는 방식과 비슷했는데.

그 사실이 다미안 마탑주를 홀가분하게 웃지 못하게 했다.

* * *

폴리우스는 거침없이 클로틸드 공작저로 향했다.

‘어쩐지 멜라니가 사업이라는 안 하던 짓을 한다 했어.’

마력석 광산을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이것으로 무언가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 마력석 광산의 주인은 나잖아!’

그 사실을 여태껏 감쪽같이 속이다니.

“영식께서는 방문이 어려우시……”

예전과는 다르게, 문지기는 자신을 보며 경계 태세를 보였다.

자신을 보면 냉큼 문을 열어 주며 멜라니에게 가라고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바뀐 기사들은 죄다 건방지다.

하지만 폴리우스는 기분이 좋았기에 문지기의 태도를 눈감아 주기로 했다.

“아가씨에게 노르펠의 광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러 왔다고 전하게. 그럼 분명 방문 허락이 떨어질 테니.”

“……노르펠의 광산이라고요?”

평상시에는 멜라니를 만나야겠다고 난동을 부리다가 쫓겨난 적도 있던 폴리우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기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걸 보아하니 뭔가 있는 듯했다.

문지기는 말을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폴리우스는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오는 클로틸드 공작저는 그리 달라진 것 없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정원은 피어난 꽃이 바뀌어 있었지만, 대세를 따라가기보다는 고풍스러움을 선택한 인테리어는 변함없었다.

그때그때 바뀌는 유행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장엄한 성.

제국이 생기기도 전부터 존재했던 클로틸드를 말하는 듯했다.

얼마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 공작저, 더 나아가 클로틸드의 주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괘씸하다고, 멜라니. 이런 맹랑한 짓을 벌이다니.’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다미안과 장난질이나 하고.

아무리 자신이 조세핀과 다소 친밀한 자세로 침대에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전혀 귀엽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멜라니.”

“격식을 지켜 주시죠, 영식.”

오랜만에 만나는 멜라니는 예전과 다르게 도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폴리우스는 그러한 멜라니의 태도가 다소 귀엽게 느껴졌다.

“너무 딱딱하게 구는 거 아니야? 오랜만에 요정의 축복이라도 해 줄까, 몸은 괜찮아?”

그러자 옆에 있던 호위 기사가 나섰다.

“거리를 지켜 주시고, 아가씨께 너무 허물없이 굴지 말아 주십시오.”

“아아, 무섭구만. 무서워. 나는 배려해서 말한 건데 말이지.”

폴리우스는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에 기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런데 멜라니…… 아아, 아니지. 클로틸드 영애, 노르펠 광산 이야기를 할 건데 기사를 옆에 둬도 됩니까? 나는 단둘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기사는 옆에 있을 겁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허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고? 밖에 나가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멜라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호위 기사에게 한 물건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호위 기사는 익숙한 듯 물건을 받아 자신의 귀에 썼다.

“그게 뭐야……?”

“반말하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그러신다면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허, 지금 아쉬운 게 자신인 걸 모르고.’

폴리우스는 멜라니의 태도가 거슬렸으나, 기사에게 건넨 것이 궁금해서 일단은 말투를 다시 고쳤다.

“방금 건네준 게 뭡니까?”

“제가 건네준 건 마탑에서 최근 개발한 마법 아티팩트예요. 제 허락 없이 기사는 이곳에서 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마탑이라는 말에 폴리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놈의 마탑, 마탑. 대체 마법 아티팩트는 몇 개나 개발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도한 멜라니와는 반대로 폴리우스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는 다리까지 꼬았다.

“마력석 광산을 여태까지 감쪽같이 숨기고 계셨더군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노르펠 광산 이야기가 어디서 샜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남을 허락한 겁니다.”

정보의 출처는 클라라였다. 상단주의 딸이라 그런지 역시 정보가 빨랐다.

마력석 광산을 여태까지 숨기던 건 자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을 텐데, 너무 이쪽을 얕본 거 아닌가.

“하하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폴리우스는 유쾌했다.

최근 멜라니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자신이 오랜만에 멜라니에게 반격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광산, 원래 내 것이잖아?”

폴리우스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괜히 멜라니에게 쓰던 존대도 집어치운 뒤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