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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46)화 (46/90)

<46화>

“헛소리를 하려고 오신 건가요?”

“이봐, 시치미 떼지마. 나도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온 거야. 내가 힘들게 대출까지 해 가면서 산 게 그 광산인데, 위치 같은 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고!”

혹시라도 자신이 산 노르펠의 광산이 아니라 다른 곳일까 확인했다. 제 증거는 명확했다.

폴리우스는 자신이 챙겨온 서류 몇 가지를 테이블에 던지며 조소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 내가 서류를 얼마나 뗐는지 알아? 내가 산 광산이 마력석 광산이라는 걸 모르겠어?”

폴리우스는 멜라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항상 잘 보이려고 애쓰던 주제에, 자신을 앞에 두고도 담담하고 차분하기만 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내가 다미안 마탑주보다 더 나은 남자라고 말하면 좀 봐줄 수도 있어.”

“…….”

“나 같은 남자를 놓친 걸 후회한다고 울어보기라도 하란 말이야! 잘하면 내가 다시 약혼해 줄 수도 있거든? 내가 그동안 너무 잘해 준 것 같아서, 예전처럼 대해 줄지는 자신 없지만 말이야!”

폴리우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는 제 말에 취해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여태까지 쓴 마력석 값을 내놓으라는 말까지 듣기 싫으면 고분고분하게……”

“시끄러워서 더는 못 들어 주겠네.”

“뭐?”

“멍청한 착각을 어디서 어디까지 짚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멜라니는 폴리우스의 말을 듣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표정이 굳은 건가, 애써 강한 척하려는 건가 생각해 봤지만……

아니었다. 멜라니의 눈은 고요한 호수처럼 조금의 파문도 없었다.

“노르펠 광산은 내 거예요, 영식.”

“하지만 내가 샀잖아! 내가 알아낸 광산이었고, 내가 직접 가서……”

멜라니는 시큰둥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폴리우스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미안이 너한테 진심일 것 같으냐고. 그 자식은 나한테 열등감으로 가득 찬 나머지 그냥 널 가지고 놀려는 것이라고.

자신이 얼마나 잘난 남자인지 멜라니에게 깨닫게 해 줄 기회인데, 왜?

왜 멜라니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대출을 영식이 갚았나요?”

“어? 그야 대출은 내 앞으로 나오질 않아서 네가 갚기는 했지만……”

“광산의 명의가 지금 누구 명의로 되어 있죠?”

사실 멜라니가 대출은 받되, 거의 폴리우스에게 사 준다는 느낌으로 대화한 건 맞았다.

어차피 가져 봤자 쓸모없는 금광이라는 건 피차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직접 가서 샀어! 대출도 내가 받았고……”

거기에 더해 폴리우스는 본인이 계약서에 서명한 탓에,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요. 단순히 대리인으로서 말이죠.”

폴리우스는 분명 멜라니의 대리인으로서 움직이긴 했다.

엄청난 금리의 고리대금업자에게 가서, 클로틸드 상단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오랜만이야. 대출 서류 마무리된 걸 보여 주려고 왔어. 명의는 너로 되어 있으니까 너도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애초에 대출을 받을 때는 주인이 아니면 대출이 안 되게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두꺼운 계약서……

자신의 돈을 쓰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쉽게 넘어간 폴리우스는 서명하는 칸도 제대로 안 본 거였다.

“영식이 서명한 건 대리인란이잖아요.”

멜라니는 넋이 나간 폴리우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한 푼이라도 낸 줄 알겠어요. 이거 다 내 돈인데.”

물론 원작 소설에서 멜라니가 죽은 이후로는 폴리우스가 주인처럼 군다.

아니, 정말 자신이 주인이라고 알고 있다.

광산의 주인인 멜라니가 죽었지만, 상단으로 빚이 청산되기는 했고.

정말 알짜배기인 마력석 광산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소유권을 주장해야 할 유족인 클로틸드 공작은 거의 폐인이 되어 마력석 광산에 관한 건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

“저, 전부가 아니라면 지분이라도……!”

“대출을 몇 퍼센트나 갚으셨죠? 그에 따라 지분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폴리우스는 당황해서 입술만 달싹거렸다.

하지만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그래도 내가 광산을 샀으니까 어느 정도는 떼어 줄 수 있잖아!”

인정과 도리를 들먹이면 어느 정도는 들어 주지 않을까?

폴리우스는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광산을 왜 사겠다고 했더라. 아하, 아는 여자가 너무 안타까워서 사야겠다고 했었죠? 영식은 그분을 구했으니 된 거 아닌가?”

“…….”

“내가 착하게 살아서 행운이 굴러들어 왔나 봐요.”

“그 여자를 도와주려고 한 건 네가 아니라 나잖아! 그런데 착하게 산 내가 아니라, 왜 네가……”

“내 돈으로 그 여자한테 가서 생색 실컷 냈을 텐데, 그걸로는 부족한가 봐요? 지껄인 건 영식이고 책임은 내가 졌는데 그걸로는 부족한가?”

폴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자신이 산 광산이었다.

그래서 채굴된 마력석 역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벌려 놓은 영상석 산업에서 마력석은 어떻게 조달하지?’

멜라니가 호위 기사의 귀를 다시 들리게 해서, 자신을 데리고 나가도록 명령한 것도 들리지 않았다.

폴리우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멜라니는 조용히 웃었다.

‘영상석 사업, 벌리도록 마르티스 영애에게 지시한 보람이 있네. 역시 마력석 광산 이야기를 흘리면 자신의 것으로 여길 줄 알았어.’

애초에 광산을 샀을 때부터 전문가에게 알아본 게 명의 문제였다. 모두 그녀의 계획대로였다.

* * *

충격을 받은 폴리우스는 그 길로 조세핀에게 찾아갔다.

워낙 자신이 자신만만하게 굴었던지라 얼굴을 보기 민망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마력석 조달이 어려울 것 같아.”

충격적인 소식에 조세핀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폴리우스?”

조세핀의 눈을 슬쩍 피하며 폴리우스는 자신은 최대한 잘못이 없으며, 상대가 나쁜 것임을 열심히 피력했다.

“아무래도 멜라니가 나한테 술수를 쓴 것 같아.”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요, 제대로 말해 봐요. 무슨 술수인가요? 제가 도와줄 수는 없나요? 다시 돌릴 수 있다면……”

폴리우스가 애초에 제대로 확인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폴리우스는 되레 조세핀에게 역정을 냈다.

“제기랄, 이미 그 간악한 여자한테 당한 거라 방법이 없다고, 조용히 해!”

“……그런.”

조세핀은 충격에 입을 다물었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서 벽을 짚기까지 했다.

그녀는 폴리우스가 단편적인 부분만 말했는데도 금방 사건의 핵심을 짚어 냈다.

“그럼 당신은 굳이 마력석 광산을 사서 가만히 있던 멜라니 클로틸드한테 떠먹여 준 거라고요?”

“뭐라고? 말 다 했어?”

“그러게 왜 확인도 해 보지 않고 일을 저지른 거예요? 마법사에게 지불한 비용은 어쩔 건데!”

조세핀의 얼굴이 화르르 불타올랐다.

이렇게 되면 폐광산을 샀다고 사교계에서 멜라니를 비웃은 자신의 꼴이 더 우스워지지 않은가.

‘애초에 멜라니 클로틸드는 마력석 광산이라는 사실을 왜 바로 안 밝혀서!’

그리하여 조세핀은 저번부터 꾹꾹 참고 있던 일까지 모두 토해 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 멜라니 찾아가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다가 차였다고 다 소문났더라. 사교계의 귀족들한테까지 말이야!”

“뭐라고? 그건……”

“덕분에 이제 마력석은 고사하고 이미지까지 날아가게 생겼는데, 최악에서 더 최악을 만들다니 대단하네요!”

조세핀은 이제 참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폴리우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옆에서 말렸어. 조금만 더 신중하자고.’

하지만 폴리우스는 클라라가 상단주의 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말보다 그녀의 말을 더 따랐다.

‘아니, 단순히 상단주의 딸이라서일까?’

폴리우스는 그저 쓴 말보다 듣기 좋은 단 말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상석 사업은 폴리우스가 건물을 판 돈과 더불어, 조세핀이 나중에 결혼을 하면 받을 지참금까지 미리 투자되어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도 잉그다 후작이 거기까지는 손을 대지 않은 덕분이었다. 한데……

자신이 잘못한 주제에 되레 성질을 부리던 폴리우스는 화살을 조세핀에게 돌렸다.

“너희 집안에는 광산 같은 거 없어? 혹시 거기서 마력석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멜라니도 얻어걸렸는데, 너도……”

“그럴 리가 없잖아요.”

“왜?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너도 마력석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확인해 봐!”

조세핀은 이를 악물었다. 마력석이 그렇게 흔한 거였으면 이런 고생을 왜 하고 있었겠는가.

그런 게 있었다면 잉그다 가문에 왜 빚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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