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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69)화 (69/90)

<69화>

“흠, 자식이 혼담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가주가 충분히 대화를 들여 해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부모가 제대로 키웠다면 당연히 자식 역시 그 뜻을 존중하려 들겠지요.”

혼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선 벨데르트 백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자신은 목에 핏대까지 섰는데, 다른 사람들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크윽.”

“왜요, 벨데르트 백작님의 자식들은 말을 잘 안 듣나 봅니다?”

하하하.

평소 그와 사이가 좋지 않던 귀족 하나가 비웃듯 말하자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벨데르트 백작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니까.

자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 사달이 난 게 맞으니까!

조롱하는 눈빛, 비꼬는 말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법안은 순조롭게 통과됐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이 자식들이, 이때다 싶어서 덤벼!’

벨데르트 백작은 술을 진탕 퍼마시고 늦은 밤에 백작저에 돌아갔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집에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밀라 부인과 폴리우스가 있었다.

“여보, 멜라니가 다미안과 약혼하게 되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거짓말이죠, 제가 잘못 들은 거죠?”

“…….”

“아버지. 설마 그걸 그렇게 돌아가게 두신 건 아니죠? 왜 그러셨어요? 다시 한번 황제 폐하께 이야기를……”

“시끄러워!”

벨데르트 백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내미는 것에 환하게 웃고, 미소 지어 주던 밀라 부인과 폴리우스가 지겹게 느껴졌다.

오늘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요구, 요구!

또 요구!

“나한테 매일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대체 언제까지 징징거릴 건데?”

“여보, 그게 아니라!”

“아버지! 하지만 멜라니는……”

“조용히 하렴, 폴리우스!”

벨데르트 백작은 두 사람을 쳐다도 보지 않고 제 서재로 향했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죽은 아내와, 집을 뛰쳐나간 아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아무리 가장이라지만, 지나치게 자신만 바라보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밀라 부인과 폴리우스, 두 사람에게는 전혀 기댈 수가 없었다!

‘에멜다와 다미안은 제 할 일은 알아서 잘했는데. 오히려 내게 도움도 줬고……’

잘난 척하고 귀여운 맛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차라리 그 두 사람이 나은 것 같았다.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기대에 어긋나면 오히려 저토록 얼굴이 변해서는……

“젠장!”

벨데르트 백작은 하인을 불러 술을 따르게 했다. 너무 과음하는 게 아니냐며 말렸지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었다.

콰광!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용하던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을 연 건 다름 아닌 제 아들인 폴리우스였다.

“아버지, 지금 술이 넘어가십니까?”

“뭐?”

“폴리우스, 그만하라고 했잖니!”

폴리우스는 한마디로는 멈추지 않았다.

뒤쫓아온 밀라 부인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제가 멜라니와 다시 약혼하게 해 달라고 한 것도 들어주시지 않더니!”

그는 옆에서 자신을 붙잡는 밀라 부인을 귀찮다는 듯 뿌리쳤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절 생각한다면 술을 드실 게 아니라 뭐라도 하셔야 하잖아요. 멜라니가 다미안과 약혼할 게 뻔한데 그걸 내버려 두……”

폴리우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난 벨데르트 백작에 의해 멱살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인데, 지금 뚫린 게 입이라고 아직도 나불거려?”

“여보!”

“애초에 클로틸드 가문의 계집애도 네가 여자 하나 간수 못 해서 도망간 게 아니냐!”

폴리우스는 목이 졸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벨데르트 백작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선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그것뿐이냐? 입지가 좋은 극장 건물을 멋대로 팔아치운 것도 모자라, 그 돈으로 사업을 한다는 게 기껏 영상석 사업!”

“읍……”

“형제를 돕지는 못할망정, 처참하게 다미안에게 짓밟히기나 하고! 클로틸드를 버리고 파트너라고 선택한 여자애는 황실을 건드리지 않나!”

잉그다 가문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동업자인 폴리우스는 다행히 혐의가 없다며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피해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황실에 밉보일까 봐 평소 교류하던 가문은 서서히 발길을 끊었고, 벨데르트 영지를 지나가며 돈을 쓰고 다니던 상단도 더는 경유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졸지에 벨데르트 가문은 고립되다시피 하며 큰 손해를 보았다.

물건을 사려면 먼 길을 떠나야 하니, 물가가 오른 것은 물론이고 생활의 질이 한순간에 낮아졌다.

“벨데르트 백작님, 가뜩이나 영지민들이 힘들어하는데 여기서 세금을 더 올리시다니요!”

“내가 백작이지 너희가 백작이야!”

가문이 입은 피해를 벨데르트 백작은 세금을 올려 해결하고자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가문의 건물은 폴리우스가 팔아 버리고, 사치품은 밀라 부인이 제 외상 빚을 갚으려 팔아 치운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벨데르트 백작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안 그래도 너 잘 왔다.”

“케, 켁…… 네?”

폴리우스는 멱살이 풀리고 나서도 화내지 못했다.

제 아버지가 갑자기 저를 보며 진중한 눈빛을 한 게 어째 불길했다.

“어차피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냐? 책임을 지고 네가 물러나면 되겠지.”

“예?”

“수도에서 꺼지라는 얘기다, 당장!”

폴리우스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을 벌렸다.

지금 제가 들은 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갔다.

“아버지. 그게 무슨…… 지금 머리를 맞대야 멜라니가 다미안과 약혼하는 문제가 해결……”

“허, 아직까지도 그 얘기냐?”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폴리우스는 교육을 잘못 받았다. 그래서 삐뚤게 자라났다.

“키운 사람이 네 어머니라 그리도 아둔한 것이냐? 아니면 네 어머니의 핏줄이라 그 모양인 거냐? 대답해 보거라.”

“여보,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그럼 내 말이 틀려?”

“애는 나 혼자 키우…… 하, 폴리우스는 교활한 여자애들을 잘못 만난 것뿐이에요! 애가 얼마나 착한데요!”

“그럼 그 여자애들을 못 만나는 곳으로 가면 되겠군.”

밀라 부인이 열심히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탁, 서재의 문이 닫히고. 폴리우스는 자신이 지금 처하게 된 처지를 멍하게 곱씹어 보았다.

“……수도에서 쫓겨난다고? 내가?”

결국 책임 소재를 폴리우스에게 묻고 이번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거였다.

황실 회의에서 결혼 제도 수정 안건이 통과되는 걸 말리지도 못한 저 아버지가 말이다!

“하, 하하……”

“폴리우스. 정신 차리렴. 다시 생각해 보면 이건 기회가 될 수 있어.”

밀라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폴리우스의 어깨를 잡았다.

“다미안 그놈이 잘나간다고 해 봤자 정작 벨데르트 영지민들은 잘 몰라. 차라리 영지에 내려가 영지를 위한 일들을 한다면, 후계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후계자요?”

“그래. 수도에 올라와 있느라 영지를 잘 못 돌보는 귀족들이 많다는 말이 있잖니. 이럴 때 너는 영지에 내려가서 위기를 기회를 만드는 거야!”

“…….”

“후계자 자리라도 이제 지켜야 해. 이것만은 네 것이야.”

폴리우스는 멍한 머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사업은 잘하지만 영지에는 관심 없는 다미안, 사업은 비록 잘하지 못했어도 영지는 잘 돌보는 폴리우스.

그래. 귀족이 돈을 잘 벌어서 무엇하겠는가. 사업은 숫자 놀음 하는 것들이나 하는 일이다.

진짜 귀족은 영지를 다스리는 거다……

“잘은 모르지만, 가신들이 영지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는 것 같던데. 네 아버지가 술 마시느라 정신없는 동안 네가 해결하면 되잖니?”

“네…… 알았어요.”

밀라 부인의 입에서 나온 것치고는 대단한 책략이었다.

폴리우스는 결국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다미안에게 자신의 것을 더는 빼앗길 수 없었다.

여자와 사업이 휩쓸렸다면, 최소한 후계 자리라도 지켜야 했다.

* * *

나는 마탑에 출근해 다미안 마탑주를 보자마자 인사말 대신 대뜸 말했다.

“드디어 상대가 마탑주님으로 정해졌네요!”

나는 결혼 제도 개선 소식을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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