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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82)화 (82/90)

<82화>

예전에 우연히 만난 이후로 인연이 생겨 계속 편지를 이어 갔었지만 근 일 년은 연락하지 못했다.

헤네시아가 해외에서 체류 중이었기 때문이다.

폴리우스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울컥했다.

헤네시아는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심성으로 폴리우스를 보듬는 위로를 건넸다.

예전과는 달리 얼굴을 보면 화만 내는 아버지나, 매일 멜라니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며 우는 어머니와는 달랐다.

[……해서, 제국으로 돌아왔어. 우리 얼굴 한번 보자.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어.]

멜라니에게 대출을 받게 해서 광산을 사라고 한 것도 헤네시아였다.

갑자기 멜라니가 헤어지자고 굴지만 않았더라면, 폴리우스는 마력석 채굴된 광산을 잘 쓰고 있었을 거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헤네시아는 정말 도움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줬었다.

가령, 멜라니 클로틸드는 아프니까 폴리우스가 가진 요정의 축복을 써 주며 친해지라든가…… 하는 종류의.

‘그래, 헤네시아라면 나에게 또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줄 거야.’

폴리우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달력을 보았다.

어서 헤네시아와 만나기로 한 날이 오기를 바라며.

* * *

물길 문제가 해결되고, 가신들은 이제 자신들이 나서야 할 때라며 눈을 빛냈다.

“다미안 도련님께서는 더한 일도 하셨는데요!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른 세율도 다시 조정하고 이참에 다음 대 백작에 대한 문제를 가신들도 함께 담판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영지의 분위기가 다미안에게 워낙 좋게 흐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영지에 살지도 않던 다미안 도련님이 한순간에 문제를 해결했잖아.”

“좋긴 한데 좀 허무해.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거였어? 여태까지 넥크스 영지와의 문제로 세금 거둔 건 뭐야?”

“아들 사업 망한 걸 메꾸려고 우리한테 전가한 것도 그렇고……”

다미안은 실제로 본 사람이 절대로 잊을 수 없게, 인상 깊은 한 번의 마법으로 물길을 만들어 버렸다.

한순간에 백여 년을 끌어온 문제가 해결되다니.

다미안이 대단하다 일컬어질수록, 벨데르트 백작과 폴리우스도 함께 입에 오르내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폴리우스는 영지에서 쫓겨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이 잦아들었지만.

벨데르트 백작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다미안 도련님이 백작이 되는 게 낫지 않아?”

폭동 직전까지 간 영지민들은 물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벨데르트 백작의 무능을 지적하며 계속해서 수군거렸다.

벨데르트 백작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

“세, 세금만 해결하면 되는 거지! 내리면 되지 않느냐!”

“아뇨.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영지민과 더불어 가신들의 충성심은 단순히 세금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백작님, 영지민들에게 추하게 쫓겨나시겠습니까?”

“뭐라고!”

“당장 은퇴하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 최소한 다미안 도련님을 후계자로 지정은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번 일로 다미안 마탑주님이 백작님의 아들이고, ‘벨데르트 가문’에서 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테니까요.”

“건방진 소리는 집어치워! 백작 위는 물론이고, 후계자 위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가신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벨데르트 백작님, 훗날 오늘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하십니까?”

“으, 으으……”

아무리 벨데르트 백작이라고 해도,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영지민과 가신들에게 끝까지 뻗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젤던 남작에 의하면 벨데르트 백작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고.

그 결과, 허겁지겁 다미안에게 달려오게 된 것이었다.

“다미안, 애비다. 설마 애비가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을 셈이냐?”

물론 벨데르트 백작의 생각대로, 다미안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벨데르트 백작을 특별하게 생각하리라는 건…… 큰 착각이지만 말이다.

“돌아가시죠.”

“다미안.”

“할 이야기 없습니다.”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

벨데르트 백작은 생각지 못한 반응이라 여겼는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미안! 네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나는 한 발자국도……”

“백작님, 마탑주님께서 바쁘신 듯하니 오늘은 가고 다음에……”

“다음은 무슨!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는 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자신을 말리는 손길을 거칠게 뿌리친다.

상대가 다치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

그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벨데르트 백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다미안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할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다미안, 할 이야기가 없다니.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그게 할 소리니.”

“…….”

“하아…… 그래, 그동안 내가 많이 미웠겠지. 오늘은 사과하러 온 거란다. 세금 이야기도 해야 하지 않니. 잠시만 시간을 내다오.”

나는 예전에 다미안을 만나려 벨데르트 백작이 미혼인 귀족들이 오는 연회에까지 따라온 것을 떠올렸다.

다미안이 뜻대로 휘둘리지 않자 약혼 상대를 폴리우스로 바꾸겠다며 협박한 것도.

‘아니, 그 이전에 다미안과 다미안 어머니의 앞에서 정부와 폴리우스를 들인 거. 대놓고 두 사람을 무시하고 푸대접한 거……’

이제까지 염치없이 굴어 놓고 먼저 아버지와 아들을 운운해?

당사자도 아닌 내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벨데르트 백작은 뻔뻔해도 너무 뻔뻔했다.

그래, 그때는 이렇게 자신이 다미안 앞에서 싹싹 매달릴 일이 없을 줄 알았겠지.

“네가 그렇게 냉대해도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는 법이지 않니. 내게도 너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오.”

“…….”

“바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만나러 왔지 않니. 응?”

그러나 다미안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차갑다 못해 시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아들이 가문을 뛰쳐나갈 때는 전혀 찾지 않더니. 이제 와서 아들과 아버지의 인연을 들먹이십니까.”

“그, 그건!”

“말로만 미안하다 말하는 건 쉽지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응? 세금은 네가 말하는 대로 줄이마. 그러니까……”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벨데르트 백작의 말문이 막혔다. 다미안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넌지시 말했다.

“정말 제게 용서를 받고 싶으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뭘 할까? 응? 뭘 해야 내가 정말 미안하다는 걸 믿어 주겠니?”

다미안의 말에 벨데르트 백작은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설마, 정말 용서라도 하려는 건가?

벨데르트 백작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다미안을 바라보던 그때.

다미안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용서받고 오십시오. 그러면 저도 백작님을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

벨데르트 백작은 환한 얼굴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에잉턴 후작 내외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나는 에잉턴 후작 내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생판 남인 나도 대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지은 죄가 많은 벨데르트 백작은 과연 어떨까.

“저기, 정말로 하는 말이니? 응?”

벨데르트 백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믿고 싶어 했다.

절벽에 몰린 양 손을 덜덜 떠는 모습이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다미안이 말을 물리지 않자 그는 이내 눈썹이 축 처져서는 불쌍한 척 굴었다.

“얘야, 나도 물론 용서를 빌고 싶지. 하지만 그분들께서는 나를 굉장히 미워하시고……”

“만약 두 분께서 벨데르트 백작님을 용서한다면, 저도 당신을 아버지라고 불러 드리죠.”

“!”

그걸로 끝이었다. 벨데르트 백작은 망연한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내, 내가 그분들께도 굉장히 큰 심려를 끼쳐 드렸지. 하지만…… 뭐라고 해야 좋을지…… 차마 찾아가는 것도……”

“여태까지 한 잘못들, 전부 용서받고 오십시오.”

“오, 맙소사. 얘야. 너는 정말 나한테 무리한 걸 요구하는구나.”

하지만 다미안은 벨데르트 백작이 무슨 말을 하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벨데르트 백작은 체념해서는 고개를 떨궜다.

“그래, 에잉턴 영지에 다녀오마. 그리고 물길을 내게 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도 해야지……”

“…….”

“네가 나를 에잉턴 영지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해도 되겠지? 응?”

그렇게 해 봤자 별로 변하는 건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다미안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벨데르트 백작은 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걸 포기하고는, 잘 지내라는 둥 자상한 아버지인 척 인사를 건넸다.

“너와 예전처럼 잘 지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되면 내가 그동안 매정했던 날들을 다 보상해 주고 싶구나.”

과연 그럴 날이 올까.

나는 안 온다에 내 전 재산을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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