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인합시다. 오늘만.” 캐스팅 0순위 배우, 태서준. 그가 우아한 걸음으로 처음 보는 여자에게 다가가 미친 소리를 건넸다. “좋아요. 도울게요!” 내세울 거라곤 올곧은 고집밖에 없는 배우 지망생, 엄소연. 그녀는 밑바닥 생각까지 전부 내비치는 커다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대리 애인 역을 수락했다. 신의 오류, 혹은 얄궂은 장난,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태생부터 모든 것이 갖춰진 완벽한 삶. 그게 너무도 시시해 뛰어든 다른 세상도 형편없이 실망스럽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서준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엄소연을 만났다. 그러나 그의 견고한 삶 전체를 한순간 뒤흔들어버린 그녀는 사라지는 것도 일순간이었다. 그리고 3년을 훌쩍 넘겨버린 어느 날, 자신이 어떤 시련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 채 한국을 떠났던 태서준이 돌아왔다. “엄……소연?”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연은 단 하룻밤이었기에 ‘우리 사이에 예쁜 아이가 있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이별한 적도 없기에 서준은 그녀를 계속 마음에 두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죽어 있던 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독한 설렘이었다.